“우리나라에 영재교육은 없다. 아주 똑똑한 천재를 키우는 것보다 뒤처진 아이들을 함께 이끌고 가야 한다는 게 우리의 정책이고 원칙이다.”(마리아 타우라 핀란드 미래위원회 위원장)
“뛰어난 학생이 아니라 가장 약한 학생을 지원하는 것과 같은, 근본적 의미의 평등과 형평성이 핀란드 교육의 가장 중요한 가치다. 평등이란 어떤 지역에 살더라도 동등한 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요우니 발리예르비 핀란드 이베스퀼라대학 교수)
실제로 그랬다. 우리가 방문한 핀란드종합학교(초·중등학교)에서 이런 핀란드의 교육적 특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헬싱키 라토카르타노종합학교는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친환경 학교다. 학생 친화적인 건물을 짓기 위해 디자인 공모전까지 거쳤다는 목조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어두운 북유럽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안온한 느낌이 들었다. “건물 디자인의 핵심 목표는 가정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사투 혼칼라 교장은 설명한다. ‘돌봄과 공동체를 위한 공간으로서의 학교’라는 이 학교의 교육관을 디자인에 반영해달라는 교사들의 요구에 따른 건물이라는 것이다.
유치원에서부터 9학년까지 모두 420명의 학생들이 있는 이 학교에서 눈에 띄는 것은 건물만이 아니었다. 학습장애를 가진 어린이들과 외국인 어린이들이 함께 공부하는 이 학교에선 장애아나 외국인 또는 뒤떨어진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남달랐다.
핀란드에선 1970년대 이래 장애아와 비장애아 등 모든 차이를 가진 아이들을 통합해 교육하는 게 교육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학생들이 공동체 안에서 느끼는 인격적 자존감과 학습을 위한 흥미와 동기, 앞서는 학생과 뒤지는 학생 간의 인격적 교류가 교수나 학습의 효율성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확고한 교육학적 관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안승문 웁살라대학 객원연구원은 지적한다. 그러나 장애아와 비장애아의 완전한 통합으로 가기까지 아이들의 상황을 섬세하게 살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참관했던 7∼9살 집중장애아들을 위한 수업에는 장애아 10명을 위해 정규교사 1명과 보조교사 2명이 배치돼 있었다. 이 반 아이들은 30분간 수업을 하고, 나머지는 블록 쌓기 등 집중훈련에 좋은 놀이를 한다. 장애아를 위한 교실에는 아이들이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도를 낮추기 위해 전등에 가림막을 씌워놓았다. “아이들의 집중도가 향상되면 정규반에 보내기 시작해 점차 수업 시간을 늘려간다”고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특수반 담임 교사는 설명했다. 이 반의 미러는 상태가 좋아져 하루 5시간씩 정규반에 가서 수업을 듣는다. 정규반으로 가는 것은 아이들의 상태를 봐서 교사가 부모와 상의해 결정한다. 특수교육 대상자 역시 교사가 학부모와 협의해 정하지만, 중증 장애가 있는 학생이라면 병원의 진단을 받아 지방자치단체에 추가예산을 요구할 수 있다.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배려 또한 남달랐다. 8∼9살 아이들이 수학을 공부하는 한쪽에서 탄자니아 출신인 토미는 모국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교육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정신에 따라 핀란드에선 외국계 학생들에게 모국어 수업을 제공하도록 돼 있다. 일반적으론 각 자치단체 교육청에 등록된 모국어 교사들이 학교를 방문해 수업을 하지만, 학생 수가 아주 적은 경우엔 학생들이 다른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기도 한다고 혼칼라 교장은 설명했다.
특별한 배려를 받는 것은 장애아나 외국인 어린이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연령대 정규반 수학 시간. 교실에는 듬성듬성 빈자리가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담당 선생님은 일부 뒤처진 아이들을 다른 선생님이 집중지도를 하러 데리고 나갔다고 설명했다. 교실 밖을 나오니 특수교육 담당 선생님이 아이 4명에게 열심히 동전으로 수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었다. 이렇게 뒤처지는 아이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니 국제학생평가에서 하위 수준의 성적을 거둔 학생의 비율이 가장 낮을 수밖에 없다.
이렇듯 학생들의 처지를 배려하는 유연한 대응이 가능한 이유는 교사들에게 주어진 자율성 때문이다. “우리는 국가가 정한 교과과정을 따라야 하지만 학교는 자체 교육 내용을 조직할 자유가 있다”고 혼칼라 교장은 설명한다. 이에 따라 이 학교가 학생들에게 최상의 학습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무학년제도다. 각 학생은 자신의 학습 내용과 학습 속도를 선택할 자유를 갖는다. 다만 그런 선택을 통해 9학년을 마칠 때에는 국가가 정한 교육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교사 2~3명이 팀으로 수업“무학년제도란 핀란드의 발명품이 아니라 이미 1930년대 미국과 스웨덴에서 시작됐다. 모든 아이들은 배울 능력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전진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게 이 제도의 철학”이라고 설명한 혼칼라 교장은 핀란드에선 1990년대 이래 이 제도가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무학년제도에 따라 학생들은 각각 개별화된 학습목표를 갖게 되며, 그 목표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부모의 3자 대화에서 결정된다. 교사와 학생은 수시로 합의한 목표에 도달했는지 스스로 평가하고, 목표에 미달했다고 판단하면 새로운 학습 방식을 적용하는 등 다시 목표 달성을 위한 도전에 나선다.
무학년제의 유연한 학습이 가능하려면 교사들의 협력이 긴요하다. 라토카르타노종합학교에서 우리가 참관한 어느 교실에도 선생님 혼자 있는 곳은 없었다. 늘 두세 사람이 함께 팀을 구성해 가르쳤다. 정규교사 외에 별도로 뽑은 보조교사들이 있지만, 정규교사가 다른 교사의 수업에 보조교사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교실에는 혼자 뒤처진 아이는 없다. 한 교실 안에서 대부분의 아이가 수학을 공부하더라도 한쪽에서 탄자니아 출신의 어린이가 모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것 역시 이런 팀 티칭이 있기에 가능하다.
이 학교에서는 팀 티칭을 통한 선생님들 사이의 협력 못지않게 교사와 학생 사이, 학생과 학생 사이의 협력을 중시한다. 학습그룹을 서로 도와주는 방식으로 구성하도록 한다. 이 학교가 중시하는 학습 방식이 모둠 수업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 따라 학습 속도는 빠르기도 하고 늦기도 한다. 그렇지만 모든 아이들이 함께 갈 수 있게 배려하는 게 교육이다. 우리는 개별 학생이 아닌 모둠을 학습의 기본 단위로 삼는다. 모둠 속에서 서로 도와가며 배우는 일은 사회화 과정에서도 긴요한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혼칼라 교장은 설명했다.
이 학교가 유치원생과 초등 1·2학년생들을 한 건물에 배치한 것도 같은 뜻에서다. 유치원생들은 초등학생들과 함께 지냄으로써 자연스레 학교생활에 적응하게 되고, 초등학생들은 동생들을 돌보는 등 공동체적 삶을 배우게 된다.
“선행학습은 금물, 괜히 산만해지죠”
모둠을 중시하는 핀란드에선 선행학습을 금물로 여긴다. 헬싱키에 사는 한국 동포 곽수현씨는 선행학습을 시켰다가 학교에 가서 골칫거리로 전락했던 한 동포의 아이를 예로 들었다. “다른 핀란드 아이들은 1시간 걸려 푸는 문제를 5분 안에 다 풀곤 나머지 시간에 친구를 괴롭히고 산만해져 결국 문제학생으로 지목됐다”는 것이다. 선행학습이 아이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모둠의 분위기를 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핀란드종합학교의 저학년 단계에선 언어 교육만큼이나 집중력 교육을 중시한다. 집중력이 미래의 학습 능력을 좌우한다고 보아서다. 라토카르타노가 집중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에게 특별 배려라 할 만큼 신경을 쏟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고 집중장애 담당 특수교사는 설명한다. 그런 교육이 아이뿐 아니라 앞으로 핀란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라는 것이다.
헬싱키(핀란드)=글·사진 권태선 한겨레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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