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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트레이드 하면 안 된다?

팀 전술 노출 이유로 피하라는 격언 있는 포수 트레이드 박경완 등 30여명 트레이드 됐지만 통계상 승패에 영향은 적어
등록 2012-10-13 13:31 수정 2020-05-03 04:26

‘포수를 트레이드하지 마라.’
프로야구의 오랜 격언 가운데 하나다. 트레이드, 또는 계약 양도는 프로야구 구단이 할 수 있는 전력 개편의 수단이다. 부족한 전력을 다른 팀에서 보충하는 게 첫 번째 목표. 두 번째 목표는 트레이드된 선수만큼의 손실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영입한 선수가 맹활약하고 보낸 선수가 새 팀에서 부진하다면, 트레이드 담당자에게 그보다 즐거운 일은 없다.
포수 트레이드 불가론에선 두 번째에 방점이 찍힌다. 수비를 할 때 포수의 시선은 9개 포지션 가운데 유일하게 홈플레이트에서 외야로 향한다. 전체적인 경기 상황을 파악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야구 경기의 핵심인 투수와 타자의 대결을 배터리 사인을 통해 조율한다. 사인은 더그아웃의 감독에게서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포수를 트레이드하지 말라는 말은 팀의 전술과 팀 구성원의 장단점이 노출돼선 안 된다는 뜻이다.

차동열부터 박경완까지, 트레이드 이후

역으로는 그만큼 포수가 트레이드 시장에서 가치가 높다는 의미도 된다. 실제 프로야구에서 포수 트레이드는 꽤 자주 일어났다. 2000년대 대표적인 포수 출신 명장으로 꼽히는 김경문·조범현 감독은 모두 현역 생활 말년에 다른 팀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1990년대 이후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포수인 김동수·박경완·진갑용·조인성 등도 최소한 한 차례는 이적을 경험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이후 트레이드와 프리에이전트(FA)로 유니폼을 바꿔 입은 포수는 30명이 넘는다.

결과는 어땠을까. ‘포수 이적은 팀 전력 노출’이라는 트레이드 불가론을 바탕으로 트레이드 전후 두 팀의 상대 전적을 살펴보자. 1983년 롯데가 포수 차동열을 MBC로 보내고 유격수 정영기를 받은 게 프로야구 최초의 포수 트레이드다. 차동열은 원년 롯데의 주전이었지만 이듬해 당대 최고 포수로 꼽히던 심재원이 입단해 출전 기회가 줄었다. 1982년부터 1983년 전반기까지 MBC는 롯데에 15승 11패로 우위를 지켰다. 1983년 후반기부터 1984년까지 롯데전 성적은 17승 13패다. 트레이드 전이나 후나 승차는 +4로 동일하다. 큰 효과는 없었던 셈이다.

1985년 시즌을 앞두고 롯데와 MBC는 사상 최초의 포수 대 포수 트레이드를 추진한다. 이번에는 롯데 심재원과 MBC 김용운이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포수의 기량이라는 면에선 심재원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심재원은 1970년대부터 최동원·김시진·김용남·선동열 등 당대 최고 투수의 공을 받은 국가대표 포수였다. 그러나 1985년 롯데는 MBC에 15승 7패를 거두며 전해(11승 9패)보다 더 뛰어난 전적을 기록한다. 이 결과는 포수의 차이보다는 팀 전체 기량의 변화로 해석해야 한다. 롯데는 1984~85 시즌 모두 상위권 성적을 냈지만 MBC의 승률은 1984년 0.515에서 이듬해 0.404로 추락했다.

전통적인 ‘포수 왕국’ OB는 프로야구 원년을 조범현과 김경문이라는 A급 포수로 시작했다. 김경문은 1989년 태평양, 조범현은 1990년 삼성으로 각각 이적했다. 태평양의 OB전 전적은 트레이드 전이나 후나 12승 8패로 똑같았다. 삼성은 1990년 OB전에서 15승 1무 4패로 일방적인 우세를 보였다. 김경문을 영입한 1991년엔 오히려 10승 8패로 고전했다. 두 시즌 동안 OB는 모두 최하위를 기록했다.

역대 가장 큰 규모로 꼽히는 포수 트레이드는 1997년 11월15일 일어났다. 재정난에 시달리던 쌍방울은 9억원에 무명 선수 2명을 받고 주전 포수 박경완을 현대로 넘긴다. 1997년 쌍방울은 현대에 10승 8패로 우위를 지켰다. 그러나 1998년엔 ‘박경완의 현대’에 5승 13패로 완패했다. 박경완은 투수와 상대 타자의 마음을 읽는 데선 역대 최고로 꼽히는 명포수다. 그러나 이 전적은 본격적으로 ‘선수 팔기’에 나선 쌍방울의 전력 급하강 결과로 해석하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다. 2012년 SK는 오랫동안 LG의 간판이던 조인성을 FA로 영입했다. 지난해 SK는 LG에 11승 8패로 우위를 보였다. 올해는 거꾸로 7승 11패로 열세다. LG 선수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조인성을 영입했음에도 LG전에서 기대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팀도 포수를 잘 안다”

포수는 투수를 제외한 수비수 가운데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다. 그러나 그 가치에 대해선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다. 김성근 전 SK 감독은 박경완에 대해 “전력의 50% 이상”이라고 극찬했다. 반면 후임인 이만수 감독은 “포수의 가장 큰 임무는 공을 받는 것”이라며 포수의 가치는 과장돼 있다는 의견이다. 평가야 어쨌든 올해까지 30여 회 일어난 포수 이적에서 두 팀의 시즌 전적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사례는 많지 않다. 팀의 전력과 성적에는 포수 1명의 기량보다 훨씬 많은 변수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포수마다 기량의 개인 차이도 있다. 한 방송사 해설위원은 “트레이드된 포수가 전 소속 팀을 아는 것처럼, 팀도 포수에 대해 잘 안다”고 말했다. ‘상대에게 손실을 강요한다’는 트레이드의 두 번째 목표에 따르는 함정이다.

역대 포수 이적이 전체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트레이드된 뒤 주전급으로 활약한 포수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영입한 선수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트레이드의 성패는 갈라진다. 야구장 안에서만 해당되는 교훈은 아닐 것이다. 프로야구 스토브리그가 시작되기도 전에 서울 여의도에선 대형 트레이드 시장이 선 듯하다.

최민규 <일간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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