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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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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씨름으로 천하를 호령하라

다윗이 골리앗 물리치듯 기술로 제압하며 씨름 중흥에 앞장서는 중량급과 경량급을 대표하는 두 선수, 이슬기와 임태혁
등록 2012-01-13 06:49 수정 2020-05-02 19:26
씨름팬들은 올 설날씨름장사대회에서 이들 두 선수의 활약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설렌다. 이슬기가 2011년 11월27일 천하장사 씨름대축제에서 우승한 뒤 포효하고 있다. 대한씨름협회 제공

씨름팬들은 올 설날씨름장사대회에서 이들 두 선수의 활약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설렌다. 이슬기가 2011년 11월27일 천하장사 씨름대축제에서 우승한 뒤 포효하고 있다. 대한씨름협회 제공

‘인간 기중기’ 이봉걸(55·에너라이프 감독)은 말 그대로 거인이었다. 이만기(49·인제대 교수) 앞에 선 그는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커다란 벽이었다. 이봉걸의 키는 무려 205cm. 182cm의 이만기보다 무려 23cm가 더 컸다. 몸무게도 족히 40~50kg은 더 나갔다. 샅바를 맞잡으면 이만기의 얼굴이 이봉걸의 가슴팍에 묻혔다.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55·한국씨름연맹 경기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키 196cm에 몸무게 125kg으로 이봉걸보다는 작지만 이만기와의 차이는 컸다. 게다가 순진하고 우직한 이봉걸과 달리 이준희는 머리도 좋았다.

이만기가 안다리나 밭다리를 걸면 이봉걸의 종아리에 걸렸다. 오금당기기를 시도하려고 해도 덩치 차이가 많이 나 기술이 잘 먹히지 않았다. 그래도 승자는 언제나 이만기였다. 관중은 ‘기술씨름’에 환호했다. 1980년대 하늘을 찔렀던 씨름의 인기는 이만기로 대표되는 기술씨름 덕분이다. 관중은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듯 이만기가 거인들을 고꾸라뜨리는 모습에 환호했고, 희열을 느꼈다.

모래판에 ‘리틀 이만기’가 떴다

대한씨름협회는 기술씨름을 앞세워 씨름 중흥을 꿈꾸고 있다. 160kg 상한제를 도입해 기술씨름을 유도하는 방안도 시행하고 있다. 이런 씨름계에 기술씨름을 앞세워 천하를 호령하는 두 청년이 나타났다. 국내 씨름 중량급과 경량급을 대표하는 간판 선수 이슬기(25·현대삼호중공업)와 임태혁(23·수원시청)이 주인공이다.

2010년 2월8일 강원도 영월학생체육관에서 열린 MBC ESPN 대학장사 씨름대회 소장급(80kg 이하)에서 ‘최강자’에 올라 기념 촬영 중인 임태혁. 한국대학씨름연맹 제공

2010년 2월8일 강원도 영월학생체육관에서 열린 MBC ESPN 대학장사 씨름대회 소장급(80kg 이하)에서 ‘최강자’에 올라 기념 촬영 중인 임태혁. 한국대학씨름연맹 제공

지난해 11월27일 경북 김천체육관. 체급과 상관없이 펼쳐진 ‘2011 천하장사 씨름 대축제’ 결승에서 이슬기와 장성복(31·동작구청)이 맞붙었다. 이슬기는 키 190cm, 몸무게 145kg의 ‘거인’ 장성복을 세 차례 연속 모래판에 눕혔다. 마지막 셋째 판이 백미였다. 이슬기는 장성복의 밭다리를 피해 전광석화처럼 배지기 기술로 황금빛 장사복의 주인공이 됐다. 기술씨름을 연마하려고 몸무게를 146kg에서 138kg으로 줄인 덕분에 이슬기는 날렵하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천하장사 세 차례와 백두장사 20차례에 빛나는 ‘모래판의 황태자’ 이태현(36)의 은퇴식이 열렸다. 이태현은 굵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정든 모래판을 떠났다. 그러나 씨름 팬들은 황태자가 떠나던 날 ‘신황태자’ 이슬기의 등장에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이슬기는 지난해 2월 설날대회와 4월 보은대회에 이어 연말 천하장사까지 제패하며 모래판의 신황태자로 우뚝 섰다.

금강급인 임태혁의 기술씨름은 ‘21세기판 이만기’를 연상케 한다. 임태혁은 성인 무대 데뷔전이던 2010년 2월 설날장사대회에서 ‘깜짝쇼’를 선보였다. 당시 유일한 대학생(경기대 4학년)으로 출전한 그는 16강전부터 숱한 강자들을 상대로 단 한 판도 내주지 않고 결승까지 올랐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1975년생으로 임태혁보다 14살이나 많은 백전노장 박종일(태안군청). 하지만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임태혁은 밭다리와 잡채기로 박종일을 세 판 연거푸 모래판에 거꾸려뜨렸다. 임태혁은 지난해에도 금강급에서 4월 보은장사, 5월 단오장사에 이어 연말 올스타전에서 태백·금강 통합장사까지 거머쥐며 3관왕에 올랐다.

이슬기와 임태혁은 ‘기술씨름의 대가’ 이만기와의 인연이 남다르다. 이슬기가 샅바와 인연을 맺은 것은 이만기 인제대 교수 덕분이다. 경남 김해 신호초등학교 6학년 때 이 교수가 만든 유소년 씨름팀에 들어가 씨름에 재미를 붙였다. 이슬기는 “어렸을 때 덩치가 컸는데, 이만기 교수님이 씨름 끝날 때마다 맛있는 걸 사주시곤 했다. 그 재미에 씨름하러 다녔다”며 웃었다. 임태혁의 별명은 ‘제2의 이만기’ ‘리틀 이만기’다. 키 183cm, 몸무게 83kg으로 금강급(90kg 이하)치고도 작은 편인 그가 기술씨름으로 상대를 압도하자 자연스럽게 붙은 별명이다. 그도 “가장 존경하는 분이 이만기 교수님”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부상을 떨치고 지존이 되기까지

이슬기와 임태혁은 씨름에 소질이 있었다. 이슬기는 김해 장유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5년에는 전국대회 8개를 모조리 석권했다. 이만기 교수가 재직 중인 인제대에 진학해서도 1·2학년 2년 동안 무려 11개 대회에서 정상을 정복했다. 이런 ‘천재성’ 덕분에 대학 3학년 때 서둘러 성인 무대에 입문했다. 임태혁도 대학 시절 신화적인 존재였다. 대학 1학년 때 3관왕을 차지하며 몸을 풀더니 2학년과 3학년 때 모든 대회를 휩쓸며 연속 6관왕에 올랐다. 두 시즌 연속 전관왕은 대학씨름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충남 공주가 고향인 임태혁은 어린 시절 먼저 씨름을 시작한 형을 따라 샅바를 잡았다. 그는 “처음엔 솔직히 재미있어 보이지 않았다”며 “학교에서 20분 거리인 집에 같이 가려고 씨름부에서 훈련하던 형을 기다리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씨름부에 들어갔다”고 했다.

이슬기와 임태혁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이슬기는 성인 무대에 일찍 입문했지만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2008년 현대삼호중공업에 입단하자마자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그해 고스란히 재활에만 전념했던 그는 이듬해부터 대회에 출전했지만 2년 동안은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몸무게를 줄이고 기술씨름으로 3관왕에 오르며 완벽히 부활에 성공했다. 임태혁도 2010년 설날장사를 석권하며 성인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부상으로 그해에 더는 장사 타이틀을 추가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3개 타이틀을 거머쥐며 경량급의 ‘지존’이 됐다.

이슬기는 요즘 전남 영암에 있는 소속팀 숙소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아침과 오후, 야간 훈련까지 하면서 하루 세 차례씩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해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기 때문에 올해는 좀 부담되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재미있는 기술씨름으로 씨름 인기 부활에 앞장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임태혁은 경기 수원시 연무동 수원시청 숙소에서 맹훈련 중이다. 비닐 천막을 씌워 만든 모래판은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었지만 선수들이 내뿜는 열기가 한기를 녹이고 있다. 임태혁도 “씨름 인기가 살아나려면 기술씨름을 많이 구사해야 한다”며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기술을 끊임없이 연구 중”이라고 했다.

설날장사씨름대회가 기다려지는 이유

이슬기와 임태혁은 1월21~24일 전북 군산에서 열리는 설날장사씨름대회에 출전한다. 금강급인 임태혁이 22일 먼저 경기를 치르고, 백두급인 이슬기는 대회 마지막 날인 24일 대미를 장식한다. 동그랗고 귀여운 외모의 이슬기와 곱상한 얼굴에 생글생글 눈웃음이 매력적인 임태혁. 설날 연휴 모래판의 두 선수를 지켜보려는 씨름 팬들의 마음이 벌써부터 설렌다.

김동훈 기자 스포츠부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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