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KBO)의 올해 프로야구 전망은 장밋빛이다. 숙원 사업이던 리그 확장은 이사회의 9구단 창단 승인으로 가시화됐다. 2008년부터 시작된 흥행 붐은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방송가에서 프로야구는 시청률을 보장하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이진형 KBO 홍보팀장은 “그런데 딱 하나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바로 일본 프로야구다.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인 박찬호는 지난해 12월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리그 소속인 오릭스 버팔로스에 입단했다. 그 한 달 전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퇴단한 이승엽이 오릭스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투수와 타자가 한 팀에서 뛴다는 자체가 일대 사건이다.
박찬호는 한때 “스포츠 매체를 먹여살린다”는 평을 받았던 슈퍼스타다. 박찬호가 전성기를 누리던 1990년대 후반은 프로야구의 침체기이기도 했다. 1995년 1만820명이던 평균 관중 수는 이 시기 5천 명대로 급감했다. 사상 처음으로 정규 편성된 메이저리그 중계는 야구팬의 눈높이를 한껏 높여놨다. 아마추어 유망주의 미국 진출도 박찬호의 성공 이후 줄을 이었다. “박찬호 때문에 한국 야구가 망한다”는 말이 이때 나왔다. 이승엽은 요미우리로 이적한 첫해인 2006년 41홈런을 치며 다음해 일본 프로야구 최고액 연봉 선수가 됐다. 한 수 위로 여기던 일본 무대에서 최고 선수가 된 이승엽에게 팬들은 열광했다. 과거 박찬호가 덩치 큰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울 때 느낀 카타르시스와 비슷했다. 그해 SBS가 중계한 요미우리 경기 시청률은 1.25%였다. 반면 프로야구 평균시청률은 전년의 0.94%에서 0.75%로 떨어졌다. 한 방송 관계자는 “최근 프로야구 시청률 상승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승엽의 부진”이라고 분석했다. KBO 홍보팀장의 위기의식에는 근거가 있는 셈이다.
올해 두 선수의 화두는 ‘재기’다. 박찬호는 2008년 LA 다저스에서 구원투수로 성공적인 변신을 했다. 2009년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셋업맨으로 뛰며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도왔다. 우승 뒤 박찬호는 뉴욕 양키스 입단 사실을 발표하며 주위를 놀라게 했다. 입단 조건은 1년 계약에 연봉 120만달러. 원소속팀 필라델피아에서는 2년 300만달러를 제시했지만 거절했다. 박찬호의 지인은 이에 대해 “메이저리그 선수라면 명문 양키스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박찬호도 선수 생활의 대미를 양키스에서 장식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찬호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4월 허벅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복귀 뒤에도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양키스는 매년 우승을 노리는 팀이다. 대단한 유망주거나 고액 장기계약을 맺은 선수가 아니라면 시즌 중에도 서슴없이 ‘정리’한다. 결국 박찬호는 8월 양키스에서 방출됐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이적했다.
잡기 힘든 공, 38살 노장의 A급 구종
‘명문 구단에서의 실패’는 이승엽도 겪은 시련이다. 이승엽이 2004~2005년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뛴 뒤 요미우리를 택했다. 연봉(1억5천만엔)은 지바 롯데의 제시액보다 낮았다. 이승엽은 소년 시절 요미우리의 전설적인 스타 오 사다하루를 동경했다. 자연스레 ‘일본 최고의 팀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2006년 이승엽은 요미우리 4번 타자로 대활약했다. 2007년에도 홈런 30개를 쳤다. 하지만 그해 말 왼손 검지를 다쳤다. 부상은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타격 폼이 무너졌다. 스윙의 기본 리듬은 ‘하나·둘·셋’이다. 하나에서 다리를 들며 회전운동을 시작한다. 둘에서 공을 겨냥하며 힘을 모은 뒤 셋에서 스윙이 이뤄진다. 이승엽은 부상 후유증에 대해 “‘하나·둘·셋’이 아니라 ‘하나·둘’ 리듬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힘을 제대로 싣지 못했고, 공을 정확히 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한번 무너진 타격 폼은 좀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2008년 이후 이승엽은 많은 시간을 2군에서 보내야 했다.
두 선수의 재기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오릭스 주전 포수 히카다 다케시는 스프링캠프에서 박찬호의 공을 받은 뒤 “이렇게 움직임이 좋은 공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아키야마 고지 감독은 “올해 최대 라이벌은 오릭스이며, 가장 큰 걸림돌은 박찬호”라고 말했다. 일본 야구계는 실적을 존중한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의 박찬호는 아직 경외감의 대상이다. 하지만 실전에서 부진하면 평가는 급전직하한다. 지난 2월15일 박찬호는 팀 청백전에 등판해 2이닝을 3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의 투구를 지켜본 타 구단 전력분석요원들은 “매우 위력적인 공은 아니다”는 평가를 내렸다. 물론 박찬호도 지금 모든 것을 보여주진 않았다.
38살의 노장이지만 박찬호는 아직 힘이 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박찬호의 직구 평균 구속은 시속 146km였다. 국내 프로야구에선 두산 마무리 이용찬이 시속 148km로 가장 빨랐고, 다음이 캘빈 히메네스의 145km였다. 구속만으로 따지면 국내 특급 선수보다 낫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낯선 구종을 던진다는 점도 유리하다. 일본의 오른손 투수들은 평균적으로 4:2:1.5 비율로 직구, 슬라이더, 포크볼을 구사한다. 직구는 움직임이 적지만 컨트롤을 잡기 쉬운 포심 패스트볼이 주종이다. 반면 박찬호의 직구는 움직임이 심하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일본 타자들은 박찬호의 움직이는 직구를 공략하는 데 애를 먹었다. 주로 던지는 변화구도 일본 투수들이 잘 던지지 않는 커브다. 박찬호의 커브는 메이저리그에서도 A급으로 평가받은 구종이다.
압박감 덜고 ‘하나·둘·셋’ 리듬 회복할까
요미우리와의 결별은 이승엽에겐 시련이자 기회다. 타격 폼이 무너진 건 부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롯데 투수 김사율은 “투수든 타자든 폼이 무너지는 이유는 두 개다. 몸 상태가 좋지 않거나, 심리적으로 부담을 가지거나”라고 설명한다. 양키스처럼 요미우리도 매년 우승에 도전하는 팀이다. 6억엔 연봉의 이승엽도 부진하면 2군으로 내려보냈다. 그의 전 소속 팀인 삼성 관계자는 “삼성도 우승에 대한 압박감이 큰 조직이다. 다른 팀이 100의 전력으로 우승할 수 있다면 삼성은 120을 해야 하는 팀”이라며 “이승엽이 요미우리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일본에서 이승엽은 ‘한국인 용병’ 신분이었다. 이승엽은 “요미우리에서의 부진은 팀이 아닌 나의 문제”라고 하면서도 “퇴단 통보를 받은 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고 말한다. 몸은 완벽하다. 그리고 마음의 짐도 덜어냈다. 일본 야구계는 “아직 이승엽은 30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라고 평가하고 있다.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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