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6일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FC포르투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박지성이 엔트리에서 아예 제외되자 다시금 그에 대한 ‘위기론’이 고개를 들었다. 지난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박지성이 출전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는 일이 있었기에 더했다. 실상 포르투와의 1차전 및 영국 프리미어리그 선덜랜드와의 경기에서 박지성의 경기력은 좋지 못했으며 교체 시점 또한 이른 것이었기에, 포르투 2차전에서의 엔트리 제외가 여러 가지 말을 낳게 될 공산은 비교적 컸다. 변함없이 낙양의 지가를 올리는 이른바 ‘박지성 위기론’에 관해 하나하나 답해보고자 한다.
포르투 2차전에서 박지성이 제외된 이유는? 물론 그 이전 경기들에서 저조했던 컨디션이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으로, 맨유가 처한 상황에 따른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첼시에 ‘세 골 넣고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던 리버풀보다야 다소 나았지만, 맨유도 포르투 원정에서 ‘일단 두 골 정도 넣고 앞서가야 하는’ 처지였다. 결과는 물론 맨유의 1-0 승리로 귀결됐으나 사실상 맨유에 한 골 차 리드는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언제든 포르투가 불시에 한 골을 만회할 경우 탈락의 고배를 드는 것은 맨유였던 까닭이다. 따라서 맨유는 선발 라인업을 공격적으로 꾸려야 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포르투가 만회골을 터뜨릴 경우에 대비해 언제든 공격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벤치를 구성해야 했다. 홈에서 두 골이나 실점한 맨유가 포르투 원정에서 박지성의 투입 타이밍을 찾아낼 가능성은 애당초 적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박지성은 ‘공격 옵션’으로 평가받지는 못한다는 이야기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아쉽지만 ‘그렇다’이다. 이는 박지성의 동선과 기록이 말해준다. 박지성의 주요 움직임은 미드필드의 높은 지역보다는 다소간 아래쪽에서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 최전방 중앙 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움직임도 종종 펼치지만, 그 경우에도 지금껏 잡아낸 골 수가 많지 않으므로 득점력 증강을 위한 옵션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물론 공간 확보에 열심인 박지성의 움직임이 공격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나, 포르투전과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직접적으로 공격을 펼치는 옵션을 선택하는 것이 좀더 자연스럽다.
포르투전에서 맨유의 ‘신성’ 페데리코 마케다가 벤치에 앉았는데, 마케다가 박지성에게 주는 영향은 없을까? 마케다의 등장은 박지성에게 궁극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다. 마케다의 등장으로 영향받는 이들은 오히려 테베스·베르바토프·웰벡과 같은 포워드들이다.
그렇다면 박지성은 중요한 경기마다 제외되는 선수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지난 시즌 박지성은 챔피언스리그 8강전 AS로마와의 경기들을 비롯해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4강전 바르셀로나와의 ‘꿈의 대결’에서 활약했다. 결승전 기회를 놓친 것이 심히 아쉽기는 하지만 박지성은 분명 중요한 경기들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올 시즌에도 박지성은 강팀인 첼시·아스널·리버풀과 리그 경기에서 뛰었고 챔피언스리그 16강 인테르밀란 원정에서도 활약했다. 이 경기들은 포르투와의 2차전 못지않게 실로 중요했다. 또 한 가지, 맨유에서 경기 상대나 상황과 무관하게 언제나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는 선수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면 박지성에게 골이 중요한가? 이에 대한 대답은 다소간 모순적이다. ‘그렇다’이면서 ‘그렇지 않다’이다. 물론 축구에서 골은 중요하다. 골을 더 넣게 될 경우 박지성은 좀더 다양한 유익함을 가져다주는 옵션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커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 남는 의문점은 ‘과연 골을 얼마나 더 넣어야 그리될 수 있는가’이다. 올 시즌 라이언 긱스는 리그에서 단 1골에 그치고 있지만 그가 박지성보다 더 ‘직접적’인 공격 강화 옵션이라는 평가는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이와 유사한 의미에서, 단지 몇 골을 더 추가한들 박지성이라는 선수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맨유에는 기본적으로 골을 많이 넣어야 할 의무를 지닌 다른 선수들이 즐비하다. 따라서 박지성에게 골이란 ‘보너스’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의 ‘본질적 가치’를 규정하는 요소는 아닐 수 있다. 물론 정말로 좋은 기회가 찾아왔을 때엔 넣어줘야 하지만 말이다.
빅리그, 빅클럽 선수의 숙명
그렇다면 박지성에게 진정한 위기란 무엇인가? 진정한 위기는 박지성의 본질적 가치가 소멸해 그가 더 이상 소속팀에 유익함을 제공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에 찾아올 것이다. ‘산소탱크’에게도 부상이 있으며 나이 또한 먹게 마련이다. 이러한 것들이 누적되면 박지성에게도 위기가 온다. 하지만 이러한 유형의 위기는 모든 선수들이 언젠가는 맞이하는 운명이다. 맨유의 ‘영원한 캡틴’처럼 여겨졌던 로이 킨조차 이러한 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더 이전의 브라이언 롭슨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박지성은 위기인가? 아직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올 시즌 박지성의 리그 출장 시간은 플레처, 테베스 등과 엇비슷한 수준이며, 긱스, 안데르손, 나니 등을 앞지르고 있다. 이는 박지성이 적어도 지금껏 맨유에 유익함을 준 존재라는 증거다. 게다가 나니는 언제나 믿고 맡길 만한 옵션으로 자리잡지 못했고, 조란 토시치의 본격적인 가세는 다음 시즌부터 시작될 것이다. 물론 앞으로 박지성에겐 더욱 어려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 틀림없지만, 지금 이 순간 자체를 커다란 위기로 규정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어차피 매 시즌 어려운 도전을 헤쳐나가야만 함은 빅리그, 빅클럽에 소속된 선수의 숙명이다.
한준희 한국방송 축구해설위원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친구’ 선관위 사무총장도 ‘부정선거론’ 반박했다
서부지법, ‘윤석열 영장판사 탄핵집회 참석 주장’ 신평 고발
‘윤석열 충암고 동창’ 정재호 주중대사, 탄핵정국 속 이임식
당진영덕고속도로서 28중 추돌…눈길 교통사고 잇따라
‘뿔 달린 전광훈 현수막’ 소송…대법 “공인으로 감당해야 할 정도”
“새해 벌 많이 받으세요”…국힘 외면하는 설 민심
민주 “윤석열 기소 부정하며 조기대선은 하겠다는 국힘 한심”
내란의 밤, 불난 120·112…시민들 “전기 끊나” “피난 가야 하나”
김용현 변호인단,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 ‘직권남용’ 고발
중국 개발 ‘가성비 최강’ AI 등장에…미국 빅테크 ‘패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