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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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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태진 작가의 죽음 앞에서

등록 2008-08-29 00:00 수정 2020-05-03 04:25

마지막 순간까지 미디어아트 후학 양성에 힘써… ‘백남준의 후예’들의 악전고투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지난 8월1일 새벽 서울대병원에서 평생을 비디오아트에 몸바쳤던 토종 작가가 임종을 맞았다. 대전에서 20년 가까이 수행자처럼 영상 설치작품을 만들어온 소장작가 육태진(47). 간암 말기였던 고인은 타계 3주 전 입원한 뒤 병상에서 5년간의 투병 생활을 접었다. 미술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부고를 받고서야 암투병 사실을 알았다. 2003년 6개월을 버티기 어렵다는 말기 간암 판정을 받았지만, 고인은 주위에 알리지 않고 올해 상반기까지 대학 강의와 작업을 지속해왔다. 대전 대흥동 구도심의 낡은 상가 작업실에서 컴퓨터와 각종 전자 기기에 싸인 채 5년 이상을 버텨냈다. 작업과 후학을 키워야 한다는 열정 때문이었을 거라고 지인들은 입을 모았다. 사막 같은 길 위를 어딘가 끊임없이 걸어가고 있었던 10여 년 전 고인의 영상물 처럼 그는 홀로 영원의 세계로 걸어들어갔다. 입원 전까지도 그는 촛불집회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인터넷상의 UCC 영상과 미디어아트의 결합에 천착했었다고 전해진다.

90년대 초반부터 비디오아트에 뛰어든 육태진의 작업들은 첨단 전자 기술에 치중하는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는 화가나 조각가처럼 오롯한 작가의식이 기술력의 제약을 벗어날 수 있으며 놀라운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한 작가였다. 자의식이 가득한 철학적 영상을 만들면서 지속적인 작업의 변모를 보여주었다. 움직이는 재봉틀, 낡은 고가구와 어디론가 걸어가거나 계단을 올라가는 작가의 뒷모습을 결합한 영상 설치물들은 방황하는 익명의 현대인이자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철제 튜브 속에서 멀어졌다 가까와졌다를 되풀이하며 기차 소리 속에 비치는 작가의 영상을 담은 나 격렬하게 회전하다 두 존재로 갈라져 사라져버리는 작가의 앉은 모습을 담은 등의 영상은 지금도 ‘시시포스’처럼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신문의 부고란에 한 줄로 남은 그의 임종은 외화내빈의 상황에 처한 한국 비디오아트의 악전고투를 상징적으로 암시한다. 미술시장 활황은 컴퓨터, 비디오 등의 매체 작업을 하는 미디어작가들에게 치명적 타격을 주고 있다. 젊은 작가들이 너도 나도 잘 팔리는 그림 그리는 데만 몰두하면서, 미대를 다니거나 갓 나온 20대 작가들은 미디어아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2000년대 초 한국 현대미술의 유력한 대안으로 각광받으면서 전공 불문하고 비디오아트에 몰두하던 분위기가 불과 수년 만에 바뀐 셈이다. 돈 버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쌓이면서, 20대는 후속 작가층 자체가 형성되지 않고 중견 영상작가들도 그림을 그려 전시하는 형편에 이르렀다.

역설적으로 국내 미디어아트 전시는 적지 않다. 대안공간, 아트센터의 국제교류전, 각 대학 미디어랩(연구소) 등의 기획전, 서울 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등이 잇따른다. 외국의 교과서적 작품전이나 공학적 기술력을 우선 부각시키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전시들이다. 작가적 감수성을 다듬어낸 전업작가의 자리는 관객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벤트 성격의 ‘인터랙티브’ 전시들이 주로 뒤덮고 있다. 기존 미디어아트 작가들도 창작 환경의 열악함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상쇄할 만한 내용성을 확보했는지는 의문이다. 사실 한국만큼 좋은 미디어 소재가 흘러 넘치는 곳도 없다. 석 달여 정국을 달구었던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우리 삶을 언제나 극적으로 옥죄는 남북 문제, 격심한 이념대립, 양극화 등등…. 인터넷 대국인 한국은 몇 개월 주기로 모바일 영상 정보기술이 업그레이드된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이 너나할 것 없이 UCC 모바일로 올리고 유통시키는 촛불 현장 같은 뜨거운 현실들을 작업으로 소화하는 미디어아트 전시들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미술시장에서 비디오아트 작업은 천덕꾸러기다. 조작과 관리가 까다롭고, 전자기기의 수명이 짧다는 약점도 작용한다. 인사미술공간 등에서 아카이브용으로 작품들을 일부 구입하고 국내외 전시공간에 작가들 작품을 배급하고 수익을 나눠주는 사업도 하고 있지만, 혜택을 보는 경우는 극히 적다. 작가들 차원의 소단위 플랫폼 전시를 활성화하고, 독일의 세계적인 복합예술 미디어센터 ZKM과 같은 공공 미디어아트 기관도 세워야 한다. 그렇지만 결국 열쇠는 작가들이 쥐고 있다. 테크놀로지를 숙명적으로 업고 만드는 것이 비디오아트지만, 여느 예술과 마찬가지로 테크놀로지가 절대 조건은 아니다. ‘기술을 철저히 증오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한다’는 비디오 거장 백남준의 말을 기억하는가. 작가의식과 영혼이 배어 있는 작업이 기술을 넘어 관객을 움직인다. 미디어아트 기획자 신보슬씨가 최근 열린 뉴미디어 워크숍 자리에서 발제했다며 건네준 글 제목은 현재 국내 미디어아티스트들에 대한 절절한 충고로 읽혔다. ‘백남준의 후예들이여, 생각하라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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