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는 섬이되, 더는 섬이 아니다. 오래 유배되었던 섬은 2000년 영종대교가 놓이면서 뭍과 연결됐다. 육지로 통하는 길이 열리자 도시민이 몰려들었다. 공항신도시와 영종하늘도시가 들어섰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하듯, 섬은 ‘개발’의 새 옷을 갈아입었다.
“결국 불법체류자 범죄로 연결”
여전히 섬으로 남은 땅이, 영종도 안에도 있다. 개발지를 찾아 사람들이 떠나고 남은 땅은 황량하다. 법무부 산하 ‘난민지원센터’(출입국지원센터)가 들어선 인천 중구 운북동 933-22 일대도 그러하다. 100여 명의 난민인정자 또는 난민 인정 신청자가 3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는 센터는 지난 8월 공사를 마쳤다. 그러나 9월24일, 난민지원센터 앞 울타리에 내걸린 붉은 펼침막은 요란하게 나부끼며 이방인의 방문을 거부하고 있었다. “국제난민 살리려다 영종주민 다 죽인다!” 구호는 밑도 끝도 없이 목숨의 양자택일을 요구했다. 왜 난민을 살리는 일이 주민을 죽이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센터에서 직선거리로 300m쯤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고욤나무골 주민 김태기(48)씨에게 물었다. “딸 가진 부모로서 걱정되는 게 사실이죠.” 김씨가 당연한 이치라는 듯 답했다. 김씨는 원래 ‘난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마을 근처에 난민지원시설이 들어온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분노가 치밀었다. 난민과 관련된 언론 보도를 뒤져보니 폭동이나 범죄와 같은 부정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다. “지금도 이 동네는 치안 공백이 심각해요. 결국엔 여기에 난민촌이 생길 수도 있는데 중학생인 딸이 있으니 걱정스럽죠.” ‘난민=잠정적 범죄자’라는 등식 위에 성립된 두려움이다.
그처럼 불완전한 전제를 발밑에 두고 영종도 주민들은 지난 7월 ‘난민지원센터 반대 주민대책위원회’(대책위)를 꾸렸다. 신도시인 영종하늘도시와 공항신도시, 미개발지역에서 고루 참여했다. 9월 하순부터 주민들을 대상으로 반대서명운동도 벌이는 중이다. 반대의 주된 이유는 김태기씨의 근심과 결이 다르지 않다. “난민 인정 신청자 중에 순수하게 실제 난민이 몇이나 되겠어요. 불법체류를 위해 난민 인정을 신청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니 난민시설이 아니라 불법체류자를 위한 시설이라고 볼 수밖에요.” 대책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하늘도시 주민 김요한(42)씨가 말했다. “결국 불법체류자 범죄로 연결되겠지요.”
난민과 미등록 체류자를 등치시키고 미등록 체류자를 잠정적 범죄자로 의심하는 시선은 옳지 않다. 그래도 거기엔 나름의 논리 구조는 있다. ‘난민촌’ 괴담이 확산되는 상황에선 논리가 배제된 감정의 언어도 불쑥 등장한다. “난민이라는 용어는 사전적·법적 의미를 떠나 일반적으로 들었을 때 피난민을 연상하게 된다. 아무튼 영종 지역 주민들은 난민의 실체가 어떻든 그저 ‘난민’ 하면 못살고 못 배운데다 종교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활보하고 다닌다는 그 자체가 불안하고 싫은 것이다.” 법무부와 지역 주민들의 토론회에서 김대영 국제공항신도시주민협의회 고문이 내놓은 의견이다.
모든 주민이 난민에 떠는 것은 아니다. 소문과 괴담에서 동떨어진 이들은 소요 앞에 되레 침착하다. “난민요? 외국인들 말하는 거래요?” 고욤나무골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희분(73·가명)씨는 난민이 무엇하는 사람들인지 모른다. 식당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새 건물이 그들을 위한 시설인 줄은 더더욱 모른다. “무슨 공항 건물을 짓는다고는 들었는데, 나는 잘 몰라요.” 무엇을 잘 모르는 김씨는 증오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인적 없는 외딴 곳에 철책 둘러싸여불완전한 정보에 기초한 주민들의 감정적 반응 앞에 법무부가 내놓는 설명은 초등학교 저학년용 교과서 수준에 가깝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난민으로는 미 과학자 아인슈타인, 체코 출신 전 미국 국무장관 올브라이트, 폴란드 출신 쇼팽 등이 있음.” 주민설명회를 위해 법무부가 만든 자료의 한 대목이다. 실제로 어떤 나라의 난민들이 어떤 이유로 본국을 탈출해 한국에 오는지,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나라들이 정말 치안을 위협받고 있는지, 법무부는 주민들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법무부의 무책임한 행정이 시설에 대한 주민의 반발을 부추긴다는 의견도 있다. 법무부는 원래 사업 초기인 2009년 경기도 파주 지역에 난민지원센터를 짓기로 했다가 주민의 반발로 포기한 바 있다. 2010년 2월 주민 10여 명을 모아놓고 실시한 영종도 주민설명회 당시 ‘주민협의체’를 꾸려 치안 문제 등을 상의하기로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6월 일방적인 ‘난민지원센터 개청’ 홍보자료를 내놓기까지 주민들은 법무부와 대화를 나눠본 일이 없다. 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난민지원센터’가 아니라 공항부대시설로 인정받을 수 있는 ‘출입국지원센터’로 사업 승인을 받은 것 또한 주민 공청회 등의 절차를 회피하려는 꼼수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법무부는 주민들이 난민에 대해 잘 몰라서 반대한다고 하는데, 정작 주민들을 제대로 설득시키려고 한 적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대안도 없고 설명도 없이 몰래 처리하고 이제 와 ‘이해 부족’이라고 하니 돌 맞을 일이지요.” 김요한씨가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
애당초 시설 수용으로 난민지원 정책의 가닥을 잡은 것부터 인권에 반하므로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다양한 종교·문화·정치적 견해를 가진 이들을 같은 공간에 수용하면 마찰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해를 받고 이동하는 과정 등에서 경험한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고 지역 공동체 안에서 주민들과의 상호관계를 통해 정체성 회복에 도움을 주려는 통합적인 시각이 필요합니다.” 김성인 난민인권센터 사무국장의 제언이다.
실제로 센터의 입지는 ‘난민지원센터는 친주민적’이어야 한다는 법무부 사업계획서 속 원칙과 거리가 멀다. 차라리 ‘게토’에 가깝다. 하수종말처리장과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동물검역계류장 등 ‘기피시설’에 가까운 공공기관이 터잡고 있을 뿐, 인근엔 사람의 발길이 드물다. 공사 현장을 찾는 덤프트럭 말고는 드나드는 차량도 없다. 해안도로를 지키고 선 철책은 서슬 퍼렇고 마른 잡초 돋아난 나대지는 스산하다. 한때 바다로 힘차게 흘러들었을 하천도 건천으로 말라붙어 을씨년하다. 내전과 핍박으로부터 달아나 한국에 온 난민들은 철책을 올려다보며 무엇을 떠올릴까. 외딴 곳에 133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어 세운 난민지원센터의 개청은 현재 기약 없이 미뤄진 상태다.
배제와 분리는, 밀려드는 난민을 맞는 유일한 해법이 아니다. 상상력의 빈곤을 극복하면 다른 세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2010년 독일 영화감독 빔 벤더스가 만든 다큐멘터리 (Il Volo)는 갈림길에 놓인 우리 사회에 영감을 준다. 이탈리아 남부 해변의 시골마을 ‘리아체’의 난민 정책을 다룬 짧은 기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몰려드는 보트피플 환대로 맞이한 이들“한 떼의 이방인이 해안가에 내렸다. 뒤이어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모래사장에 파라솔을 친 임시 출입국관리사무소가 꾸려진다. 간단한 심사를 마친 뒤 이방인들의 손에 노란 종이 한 장이 쥐어진다. ‘우리 도시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카드다. 검은 피부의 보트피플들은 마을 곳곳의 빈집에서 삶을 꾸렸다. 남자들은 마을의 일손이 됐고, 여자들은 다국적의 문화를 살려 수공예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멸해가던 마을에 삶의 기운이 되살아났다.” 몰려드는 보트피플들을 환대로 맞이한 이들이 지중해 푸른 바닷가에서 이주민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 너무 ‘해피엔딩’이어서 믿기 어려운 이야기는 지구의 한편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실재하고 있다.
인천=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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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난민이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이 10명 중 3명 이상으로 나타났다. 설문 참여자 7707명 가운데 33.1%(2597명)는 ‘한국에도 난민이 살고 있다’는 질문에 ‘아니다’ 또는 ‘모른다’로 답했고 66.9%(5264명)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아프리카인이다’라는 질문에는 47.2%(3661명)가 ‘아니다’라고 답했지만 절반이 넘는 52.7%(4086명)는 ‘그렇다’거나 ‘모르겠다’고 답했다. 국내 난민인정자 가운데 상당수가 버마(미얀마)나 방글라데시 출신인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갖는 편견이다.
난민에 대해 잘 모르면서 그들을 ‘잠정적 범죄자’로 인식하는 태도도 눈에 띄었다. 응답자 10명 중 3명에 가까운 26.3%(2046명)는 ‘난민은 불법을 저지르거나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아프리카인, 방글라데시인, 파키스탄인, 별별 종족들이 모여 살면 바로 남미 어느 나라에서 보듯이 공권력조차 미치지 않는 슬럼가가 되는 건 순간입니다.” 영종도 난민지원센터 건립 소식을 두고 ‘다민족 반대’를 표방한 한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편견을 여실히 드러낸다.
응답자 10명 중 4명은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으면 정부로부터 특별한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로 나타났다. 난민법 시행 이후에도 국내 난민인정자들은 어떤 경제적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대신 우리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되레 난민으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0년 케냐 국경의 다답 난민캠프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를 보면, 교역·고용 등을 통해 난민캠프가 난민 수용국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가 1400만달러(약 1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주의가 아니라 실용주의적 관점에서라도 난민을 환대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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