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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는 ‘난민’의 역사

기획연재 국민과 난민사이 ④ 난민이 된 한국인들 식민지배·전쟁·분단·군부독재 거치며 생겨난 수많은 한국의 ‘난민’들…
성소수자·병역거부자·장애인 등 난민 여전
등록 2013-10-24 06:32 수정 2020-05-02 19:27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난민’의 삶을 상상한 적이 있는가. 사실, 한국이란 ‘국가’가 태어난 지는 6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식민지배·전쟁·분단·군부독재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재일조선인·조선족·고려인·새터민…

국제사회에서 ‘난민’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1951년 유엔에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난민협약)을 채택하면서부터다. 난민 보호가 본격화된 데는 2차 세계대전과 냉전 체제가 큰 몫을 했다. 당시 전쟁으로 인해 유럽을 떠난 이는 4천만 명에 달했다. 서구 국가들은 공산주의에 반대해 본국을 떠난 사람들을 ‘난민’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국경을 넘는 일이 어려워 유입되는 난민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후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탈식민지화가 진행돼 내재돼 있던 종족 간 갈등이 폭발하면서, 대규모로 국경을 넘는 새로운 난민들이 생겨났다.

한국으로 온 탈북자 중에는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제3국으로 떠나는 이들이 있다. 2004년 탈남해 미국으로 건너간 북한 출신 여성의 뒷모습.한겨레 송경화

한국으로 온 탈북자 중에는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제3국으로 떠나는 이들이 있다. 2004년 탈남해 미국으로 건너간 북한 출신 여성의 뒷모습.한겨레 송경화

일본의 식민지배 이후 하나의 조선인들은 여러 ‘국민’으로 갈렸다. 한반도 내 조선인들은 사는 지역에 따라 한국 국민과 북한 인민이 된다. 가난, 일제의 강제동원, 독립운동 등의 이유로 국경을 넘은 조선인들은 재일조선인·중국 조선족·소비에트 고려사람으로 분류됐다.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어느 나라 국민으로도 불리지 못한 조선인들이 있다. 1947년 일본 정부는 일본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에게 외국인 등록을 강요했다. 남·북한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었다. 국적란을 채울 국가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이들을 ‘외국인’으로 간주해, 국민에게 주는 기본적 권리를 내주지 않았다. 고국이 분단된 상황에서 남·북한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일본에 귀화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조선적 재일동포는 3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난민과 다름없는 ‘무국적’ 삶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난민협약에 따라 국외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한국인은 모두 몇 명일까. 유엔난민기구(UNHCR) 자료를 보면, 1951년 이후 2013년 1월까지 난민으로 인정된 한국 국적자는 559명이다. 비호 신청자, 즉 난민 심사가 진행 중인 사람은 186명이다. 같은 기간, 북한 국적 난민 인정자는 1110명이었으며, 난민 심사가 진행 중인 사람은 1027명이다.

이들의 삶은 한국 사회가 품어안지 못하고 억누르고, 배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내란 음모’ 주동자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2년 형집행정지 판결을 받고 석방돼 미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민주주의를 갈구하던 시대의 정치적 난민이었던 셈이다. 1987년 절차적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성소수자·양심적 병역거부자·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탈북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을 나와 중국·동남아를 거쳐 미국이나 유럽 사회에서 난민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들이, 제3국으로 떠나는 탈남 현상이 시작됐다. 탈북자에겐 한국 역시 낯선 나라다. 같은 민족으로부터 차별을 받느니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게 낫다고 여기기도 한다. 난민지원단체 ‘피난처’ 이호택 대표는 “한국 사회가 정착할 만한 곳이라고 느꼈다면 계속 머물렀을 것”이라며 “이들은 삶의 돌파구를 찾아 끊임없이 떠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탈북자 난민 인정 까다로워진 영국

탈북 난민이 많은 나라로 꼽히는 곳은 영국이다. 2007년부터 2년간 영국 정부는 한국 체류 여부와 상관없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했으나, 재영 탈북자가 1천여 명에 이르자 난민 신청 절차를 까다롭게 하고 있다. 한국에서 차별이 있을지라도 보호를 받지 못하는 건 아니라며 난민 인정을 불허하기도 했다. 그런데, 현행 북한이탈주민 지원법상 제3국에서 10년 이상 체류한 탈북자 등은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 최근엔 이런 상황을 반영해 예외적으로 난민 지위를 부여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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