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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해주고 살지는 마’

기획연재 국민과 난민사이 ④ 난민이 된 한국인들 1960~70년대 독일 등 유럽서 널리 시행하다 실패한
일시노동이주제도 고수하는 한국… 이주민도 삶의 주체인 점 인식해야
등록 2013-10-24 06:33 수정 2020-05-02 19:27

한국 노동이주 정책의 원칙은 ‘일만 해주고 살지는 마시오’다. 전세계적으로도 이러한 ‘단기순환’ 정책이 유행이다. 이민국가로 불리는 캐나다나 오스트레일리아도 일시노동이주 혹은 순환노동이주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도 다 하니까 대세를 따르면 되는 것일까?

혈통주의 포기, 태어나면 국적 부여하는 독일

사실 일시노동이주 제도는 1960~70년대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 널리 시행되다가 중단된, 정책 실패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정책 입안자들은 노동력을 필요할 때 수입해서 쓰고 필요 없을 땐 되돌려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노동력은 사실,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사람들’이었다. 독일은 전후 경제 재건에 필요한 노동력을 단기간 동안만 수급하기 위해 터키·모로코·한국 등에서 노동자를 데려왔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돌려보낼 계획이었으나, 많은 노동자가 귀국하길 원치 않았다. 이미 독일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잘 살 수 있을까를 걱정했고, 고용주들은 일 잘하는 노동자를 돌려보내길 꺼렸다. 노동조합에선 이주노동자가 중요한 구성원이 돼 있었다.
결국 독일 정부는 정책을 수정해, 이들을 계속 살 수 있게 했다. 독일에 남게 된 사람들은 고향에 있는 가족을 불러와 같이 살기로 했다. 혈혈단신 상경해 고생했으니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으니까. 소문을 들은 고향 친구들도 이런저런 방법으로 독일에 와서 장사도 하고 음식점도 열고. 그렇게 이주민 사회도 커지게 됐다. 이주의 통로가 한번 열리게 되면 사람들은 제도가 어떻든 상관없이 계속 그 길을 통해 이동하기 시작한다. 1960년대 경제성장 과정에서 시작된 서울로의 인구 유입이 갖가지 인구분산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계속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독일은 2010년 혈통주의 국적 제도를 일부 포기하고, 외국인 자녀라도 독일에서 태어나면 국적을 부여하는 출생지주의 국적제도를 도입했다.
일시노동이주 정책이 유지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떠나게 하고 이를 어기면 폭력적인 방법을 써서 쫓아내는 방식이다. 한국이 그러하다. 그런데 독일 사례에서 보듯 이 방식은 민주적 정치제도를 지닌 나라에선 유지되기 어렵다. 사회적으로 그러한 폭력을 용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일시노동이주 정책으로 입국한 노동자라 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고 자격을 갖추면 영주권을 부여해 계속 살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가 대표적이다. 최근엔 ‘순환이주’라는 이름으로, 일시노동이주 정책이 유럽 여러 나라에서 부활하고 있는데, 돈을 벌어 되돌아가면 고향의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니 그렇게 하라고 장려하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귀향을 장려한다 해도 사람들이 되돌아갈지 논란이 많다.
일시노동이주 정책은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는 노동의 유연화·비정규화·불안정화에 딱 들어맞는다. 이주노동자는, 기본적으로 비정규직이다. 더구나 출입국 관리의 도움을 받아 노동의 질까지 관리할 수 있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대세 정책이 됐다. 문제는 이 제도가 사람의 삶과 사회에 끼칠 악영향에 대해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떠날 사람이라며 배제하는 한국

한국이 ‘단기순환’ 원칙의 노동이주 정책을 도입한 지 8년째가 됐다. 고용주는 일 잘하는 이주노동자가 계속 머물기를 원하고, 노동자도 계속 체류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정책을 유지시키는 폭력적인 강제추방은 계속해서 비판받았다. 결국 정부는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간과 횟수를 점차 늘리는 방식으로 ‘단기순환’ 원칙을 스스로 희미하게 하고 있다. 독일이 지나온 길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이주노동자는 곧 떠날 사람’이라는 환상에 빠져, 이른바 ‘다문화’ 정책에서도 끊임없이 배제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주노동자가 통제와 관리 대상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삶의 주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김철효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대 사회학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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