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길은 누구의 것인가

대한문 옆 ‘농성촌’철거하려는 경찰-<조선일보>-중구청의 한목소리… 백화점·교회의 도로 ‘점용’엔 눈감고 미국·독일 인정한 길의 ‘소통적 기능’ 무시한 처사
등록 2012-11-29 22:11 수정 2020-05-03 04:27

서울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이 사람과 차의 왕래를 위해 뒤로 물러 앉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1968년 서울시청 앞 태평 로를 35m에서 50m로 넓히며 덕수궁 담장과 대한문을 원래 있던 자리 에서 해체해 20여m 뒤쪽에 다시 짓는 계획이 세워졌다. 이런 서울시의 방침에 문화재관리국이 반발했고, 결국 담장만 뒤로 물리는 이상한 상 황이 벌어졌다. 대한문은 지금의 남대문이나 동대문처럼, 태평로 한가 운데 홀로 고립된 섬으로 남았다. 직선으로 뻥 뚫린 태평로를 달리는 차들에게 대한문은 피해가야 할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 교통에 방 해가 됐고 도시 미관상으로도 흉물이었다. 대한문은 결국 1970년 여 름에 헐려 강추위가 찾아온 그해 12월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중구청이 농성촌에 철거 계고장을 보낸 다음날인 11월21일 오후, 중구 명동에선 백화점 진입 차량을 유도하기 위한 원뿔 모양의 빨간색 러버콘이 백화점 앞 도로 차선을 ‘점용’한 채 100m 정도 설치됐다. 백화점이 공용 도로의 일부를 자기 땅이라고 선을 그어버린 셈이다. 주말이나 백화점 세일 기간에는 근처 사거리를 지나는 신호를 받는 데만 1시간씩 걸리곤 한다.

대한문 앞 함께살자 농성촌 스케치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대한문 앞 함께살자 농성촌 스케치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 철거한 경찰

2012년 12월의 겨울은 대한문 옆 농성 천막들이 헐린 날로 기록 될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데 조금 걸리적거린다는 것이 철거 이유가 될 것이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에 웬 흉물 이냐는 속 좁은 민원이 이유가 될 것이다. 섬이 된 천막들은 대한문 처럼 복원되지는 못할 것이다. 몇 차례 반복된 기억에 의하면 이른 아침 마구 짓밟힌 천막들은 구청이 끌고 온 쓰레기차에 던져질 것이 다. 천막을 친 이들은 저항하고, 일부는 사지가 들려 경찰서로 끌려 갈 것이다. 대한문 앞으로 열린 길은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을 것이 다. 천막이 사라진 자리는 농성자도, 보행자도 아닌 경찰들이 대신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경찰들은 ‘그 길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 에 답하지 못할 것이다. 길은 누구의 것인가.

조선시대 수문장 복장을 한 이들이 지키고 있는 대한문을 정면에 서 바라볼 때 오른쪽으로 난 덕수궁 돌담을 따라 비닐로 만들어진 천 막 3동이 서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쌍용차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천막이다. 경기도 평택 공장에서 해고된 쌍용자동차 노동 자들이 대한문 앞으로 찾아든 것은 지난 4월 초였다. 4·11 총선을 앞 두고 동료였던 해고노동자가 서른여섯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 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다. 2009년 쌍용차 파업 이후 스물두 번째 죽음 이었다. ‘쌍용차 희생자 추모와 해고자 복직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 (이하 범대위)는 4월5일 더 이상의 죽음은 없어야 한다며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렸다. 쌍용차 천막에는 지금도 분향소가 자리잡고 있다.

월요일마다 덕수궁은 휴일이다. 대한문이 문을 걸어닫은 11월12 일, 200일 넘게 외롭게 홀로 서 있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두 개의 천 막 옆으로 천막 한 개가 몸을 붙여왔다.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 진상 규명,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백지화, 핵발전 폐기, 경남 밀양의 송 전탑 건설 반대를 촉구하는 이들이 함께 마련한 천막이었다. 그렇게 세 채의 천막이 모여 ‘함께 살자! 농성촌’을 이뤘다.

그동안 범대위는 법에 따라 남대문경찰서에 집회신고를 내왔다. 매일, 24시간씩 대한문 앞에서 옥외집회를 열겠다는 내용이었다. 천 막도 넉넉하게 적어냈다. 5월24일 대한문 주변을 관리하는 서울 중 구청이 공무원과 용역 직원, 남대문경찰서 경비 병력 등과 함께 대한 문 앞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를 철거했다. 집회 자체는 문제 삼지 않 았던 경찰은 천막을 걸고넘어졌다. 천막은 집회 물품이 아니라 ‘농성’ 물품이라고 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는 집회 물품 이 무엇인지에 대한 규정이 없다. 경찰 등은 이날만 세 차례나 천막 을 헐거나 빼앗았다. 쌍용차 파업은 전쟁에 가까운 경찰의 진압 작전 으로 유혈낭자하게 끝났다. 그런 경찰이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마저 밟고 들어왔다. 그래도 천막은 다시 세워졌다.

“불법 농성촌 왜 철거 않느냐”

범대위 쪽은 720시간(30일) 전부터 집회신고서를 낼 수 있는 집시 법 규정에 따라 매일 아침 9시께 남대문서에 집회신고서를 내왔다. 7 월26일 집회를 한 달 전인 6월26일에 미리 신고하는 식이다. 집회신고 를 하며 하루 세 차례 있는 대한문 수문장 교대식 행사 시간에는 희 생자 추모 문화제 등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관광객들을 배려하려는 것이다. 6월27일 남대문경찰서는 갑자기 범대위가 신고한 집회(7월7 일 0시부터 7월26일 23시59분까지)를 금지한다고 했다. 이전 신고 내 용과 변한 것은 없었다. 경찰의 태도만 바뀌었다. ‘대한문 앞은 주요 도로에 해당하여 시민들의 이 도로에 대한 수요 등을 고려할 때 집회 시 통행인에게 불편을 주고 있고, 지속적으로 불편을 줄 우려가 있다’ 는 이유에서였다. 집시법 제12조에 따르면, 관할 경찰서장은 교통 소 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 벌어지는 집회·시위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

천막은 도로가 아닌 인도에 설치돼 있다. 도로의 교통 상황과는 아 무런 관련이 없다. 경찰은 인도도 도로에 포함된다고 했다. 차가 아닌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이었다. 너비 12m 인도에서 천막 이 차지하는 자리는 3m 정도였다. 나머지 9m 공간을 통해 시민들은 큰 불편 없이 왕래하고 있었다(천막 3동이 설치된 11월 말 현재 인도 폭 이 6m로 가장 좁은 쪽은 3m의 보행 공간이 있다). 서울시의 경우 ‘세 종로∼태평로∼한강로’로 이어지는 길이 주요 도로로 지정돼 있다. 경 찰의 주장대로라면 서대문구 자하문 앞부터 효자동을 거쳐 광화문, 남대문, 서울역, 삼각지, 한강대교 남단에 이르는 도로와 인도에서는 경찰서장이 마음만 먹으면 집회·시위의 씨를 말릴 수 있다는 얘기다.

범대위는 서울행정법원에 집회 금지를 풀어달라고 소송을 냈고, 법원은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집회를 허가한다고 결정했다. 이어 지난 11월8일 “집시법에서 말하는 교통 소통은 주요 도로 전체를 기준으 로 판단해야지 차도를 제외한 인도만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은 아니 다. 경찰은 집회로 인해 도로법을 위반하게 되고 문화재인 덕수궁을 훼손할 우려가 있으며 보행자와 인근 상가에 피해가 속출하게 된다 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경찰이 집회를 금지한 사유와 사실관계의 동 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경찰의 명분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가 나섰다. ‘불법 농 성촌을 왜 철거하지 않느냐’며 기사로 바람을 넣었다. 농성촌 지척에 사옥이 있다. 이 지역 도로를 관리하는 중구청이 집시법 대신 도로법을 들고나왔다. 도로법에서의 도로는 일반적으로 인도 까지 포함한다. ‘도로 점용’은 허가 사항이다. 도로나 인도변에 있는 전주·변압기·공중전화·우체통 등도 협의·승인·허가를 통해 설치 된다. 장기간 이어지는 농성촌은 결국 도로를 점용한 것인데, 경찰에 낸 집회신고와는 별개로 도로 점용 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불 법이라는 것이다. 중구청 가로환경개선팀 관계자는 “농성자들이 요 구하는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면 좋겠지만, 정당한 허가를 받지 않고 도로를 점용하면 공무원으로서 법에 의해 조처할 수밖에 없다. 불법 을 왜 보고만 있느냐는 민원도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중구청은 11 월26일까지 농성촌을 철거해달라는 계고장을 보냈다. 전국금속노조 법률원 김유정 변호사는 “계고 처분은 강제 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의 첫 단계다. 이미 법원에서 교통 소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행정대집행 집행정지 신청을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어떤 물품을 사용할 것인지는 집회의 방법에 해당하며, 이는 집회 자유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어떤 물품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농성촌도 있고, 보수와 극우의 목소리도 있다. 그저 지나가는 시민도, 외국인 관광객도 있다. 길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탁기형 선임기자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농성촌도 있고, 보수와 극우의 목소리도 있다. 그저 지나가는 시민도, 외국인 관광객도 있다. 길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탁기형 선임기자

거리는 사회적 약자의 싸움터

최창식 중구청장은 새누리당 출신이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서울의 한 구청 공무원은 “중구청의 방침에 무리가 있어 보인다. 다른 구청들은 집회신고한 천막에 대해선 통상적으로 철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도로법상 통행에 방해되는 시설물은 긴급 철거가 가능하지만, 대한문 옆 농성장이 그 정도의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공무원은 “특히나 인도에 설치된 천막은 집회신고가 돼 있지 않아도 웬만하면 철거하지 않는다. 간혹 국가정보원 담당자나 경찰 정보과에서 농성천막 철거를 종용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중구청이 농성촌에 철거 계고장을 보낸 다음날인 11월21일 오후, 중구청 관내인 명동은 차들로 북적였다. 백화점 진입 차량을 유도하기 위한 원뿔 모양의 빨간색 러버콘이 백화점 앞 도로 차선을 ‘점용’한 채 100m 정도 설치됐다. 백화점 직원 여럿이 도로에 서서 ‘고객님차’와 그렇지 않은 차를 갈라놓았다. 백화점이 공용 도로의 일부를 자기 땅이라고 선을 그어버린 셈이다. 이 북새통에 주말이나 백화점 세일 기간에는 근처 사거리를 지나는 신호를 받는 데만 1시간씩 걸리곤 한다. 자본의 도로 점용은 사실상 무제한으로 용인된다. 대신 20년 넘게 오르지 않고 있는 교통유발부담금을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로부터 연간 몇억원씩 거둬들이는 게 전부다. 서울 서초구는 수천억원을 들여 교회 건물을 새로 짓는 ‘사랑의 교회’ 쪽에 도로 지하 공간에 대한 점용 허가를 내줬다. 소송 등 반발이 이어지고 있지만 도로 지하는 예배당으로 채워지고 있다. 일부 대형 음식점 앞 인도는 식사 시간이면 손님들 차량으로 넘쳐난다. 인도로는 걷는 것이 어려워 차도로 비켜가기도 한다. 여기서 길은, 도로는 누구의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집회가 열리는 ‘장소’는 중요하다. 어느 장소를 택하는지가 강력한 상징 효과를 발휘한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상의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와 관련해 이런 설명을 달았다. “집회가 국가권력에 의해 세인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장소나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장소로 추방된다면 기본권의 보호가 사실상 그 효력을 잃게 된다는 점에서도 집회의 자유에 있어서 장소의 중요성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집회 장소가 바로 집회의 목적과 효과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자신이 계획한 집회를 할 것인가를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만 집회의 자유가 비로소 효과적으로 보장되는 것이다.”(2000헌바67·83 병합 사건) 공장에서, 고향 마을에서, 철거지에서 내몰린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다. 거리는 언제나 없이 사는 이들, 사회적 약자의 싸움터였다. 헌법학계의 한 인사는 “도로법과 집시법이 충돌한다면 집시법이 우선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집회는 당연히 도로 등 공간 점유를 전제로 하며, 다른 이들에 대한 불편 역시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집회가 정상적인 신고 절차를 따랐다면 도로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지적이다.

독일 역시 도로의 소통적 기능을 중시해왔다. 1970년대에 세워진 판례를 통해 ‘대도시 중심가의 넓은 보도는 공동체의 광장으로서 전적으로 장소 이동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다양한 접촉과 의견 교환에도 기여한다. 따라서 도시 청결이라는 미적 이익보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우선한다’고 했다.
미국 법원 “정부 반대한다고 집회 금지 안 돼”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미 70여 년 전부터 도로와 인도가 가지는 ‘소통적 기능’에 주목했다. “도로와 공공장소의 사용은 고대부터 시민들의 특권이자 면책, 권리와 자유의 일부였다.”(1939년) 공공장소에서의 집회를 금지한 시 조례에 맞서 미 산별노조회의(CIO)가 낸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이 내린 결론이었다. 전통적으로 집회와 토론에 이용돼온 ‘길’의 역사성을 간파한 것이다. 같은 해 연방대법원은 도로 청결을 목적으로 전단지 배포를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민권운동이 확산되던 1960년대에는 도로·인도·공원을 두고 ‘퍼블릭 포럼’, 즉 ‘공적 광장’이라는 개념이 확립된다. 도로 등은 미 수정헌법 제1조가 떠받드는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 행사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서의 집회 등을 제한할 때는 ‘대체 수단’ ‘대체 공간’을 남겨둬야 한다. 제한을 하더라도 그 주장하는 ‘내용’이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금지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또 ‘행정적 편의’만을 위한 제한도 금지된다. 독일 역시 도로의 소통적 기능을 중시해왔다. 1970년대에 세워진 판례를 통해 ‘대도시 중심가의 넓은 보도는 공동체의 광장으로서 전적으로 장소 이동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다양한 접촉과 의견 교환에도 기여한다. 따라서 도시 청결이라는 미적 이익보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우선한다’고 했다.(문병효 ‘서울광장조례와 공물의 사용관계’)

우리 헌법재판소도 유사한 판례를 만든 바 있다. “집회의 금지와 해산은 원칙적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될 수 있다. 집회의 금지와 해산은 집회의 자유를 보다 적게 제한하는 다른 수단, 즉 조건을 붙여 집회를 허용하는 가능성을 모두 소진한 후에 비로소 고려될 수 있는 최종적인 수단이다.” 현실은 판례를 배반한다. 통행에도 크게 방해받지 않고, 도시 미관에도 무리가 없고, 외국인 관광객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는 천막을 철거하자고 난리치는 우리 현실에서는 아득한 얘기들이다.

11월20일 농성촌에서 만난 문정현 신부는 “서울광장은 몰라도 대한문 옆에서 이렇게 장기간 농성을 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거리의 신부’에게도 대한문은 낯선 공간이다. 지금 왜 대한문일까. 지난 5년간 우리 시대의 ‘중세’를 여러 차례 경험한 이들에게는 온당치 않은 질문일 수 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대한문 앞에 차려진 시민분향소가 경찰에 의해 박살이 났다. 분향소가 다시 차려지고 얼마 뒤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수단체 회원들이 분향소를 또다시 철거했다. 항의하는 시민들을 경찰이 막는 동안 중구청은 쓰레기차에 분향소 잔해를 실어 날랐다. 분향소 자리는 경찰 병력으로 메워졌다. 지난해 8월에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대한문 옆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던 희망단식단 천막이 강제 철거됐다. 대한문은 그렇게 차곡차곡 어떤 공간의 역사성을 획득해갔다. 그러고 보면 대한문은 1919년 3·1운동의 중심이기도 했다. 고종 장례 행렬이 대한문을 빠져나간 인산일을 전후해 수만 명의 인파가 대한문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지난 6월에는 두 명의 세계적 석학이 대한문 농성촌을 찾았다.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손을 맞잡았다. 그는 “분향소 설치가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로 알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정의’ 바람을 몰고 온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도 쌍용차 천막을 방문해 고개를 숙였다. ‘외국인 관광객’인 이들은 천막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백화점은 차도를 마음껏 ‘점거’한다. 매출액에 견줘 쥐꼬리만 한 교통유발부담금만 내면 된다. 그럼 도로는 백화점의 것인가? 한겨레 이종근 기자

백화점은 차도를 마음껏 ‘점거’한다. 매출액에 견줘 쥐꼬리만 한 교통유발부담금만 내면 된다. 그럼 도로는 백화점의 것인가? 한겨레 이종근 기자

당신도 언젠가 도로에 설지 모른다

지난해 미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의 성지로 떠오른 뉴욕 주코티 공원의 원래 이름은 ‘리버티 플라자(자유 광장) 공원’이었다. 땅 소유자인 부동산 업체 회장의 이름을 따 주코티로 바뀌었다가 시위대에 의해 ‘리버티 스퀘어’로 재명명됐다. 대한문 역시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는 ‘명동성당’을 대신해 이름을 바꾸고 있다. 쌍용차 대한문, 용산 대한문, 강정 대한문으로.

“‘길’은 제도나 기구에 선행했던 최초의 공론장이자, 제도나 기구가 기능하지 못하거나 나쁘게 기능할 때 출현할 수밖에 없는 최후의 공론장이다.” 월스트리트 현장에서 점거운동을 체험하고 르포 를 쓰기도 한 ‘수유너머R’ 고병권 연구원은 그런 의미에서 월스트리트와 대한문 앞이 똑같다고 했다. “쫓겨난 민중이 별수 없이 찾아든 곳이지만 대의기구가 작동하지 않을 때 민중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비전을 열 수 있는 창조적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고 연구원은 “지금 대한문 농성촌은 한국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배제와 추방을 가장 가혹하게 겪은 이들이 모인 곳, 그동안 목소리를 내도 들리지 않았던, 말 그대로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가 모인 곳”이라며 “강제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리도록 하는 것이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목격하고 있는 ‘점거’”라고 했다.

공익변호사모임 공감의 차혜령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도로 위에 선 사람이 비록 내가 아닐지라도 나 또한 언젠가는 그 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 공공재인 도로의 표면, 지상과 지하 공간이 공동체의 일원인 나를 위해 쓰일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도로가 공공재라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도로는 누구의 것인가?”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