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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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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회 변화, 변수는 시민참여

6·2 이후 1년, 지방자치 20년 기획 첫회, 세 지역의 지방의회를 돌아보다… 시정 운영 능력 꼬집는 ‘바뀐 권력’이냐 정부 눈치 보는 ‘종이호랑이’냐
등록 2011-06-02 16:03 수정 2020-05-03 04:26

<font color="#006699"> 2011년 6월2일은 6·2 지방선거가 치러진 지 꼭 1년 되는 날이다.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생활정치, 풀뿌리 정치로 표현되는 주민 참여의 열망은 지난해 선거에서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런 열망과 기대 속에서 출발한 민선 5기 지방의회는 그동안 어떤 변화를 불러왔을까? 1년이라는 시간은 성과를 이야기하기엔 다소 짧지만 새 지방의회가 첫 단추를 어떻게 꿰었는지, 앞으로 펼쳐질 의정활동의 방향이 어느 쪽인지를 가늠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특히 올해는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20년 된 해라는 특별한 의미도 있다. 민선 5기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를 단단히 뿌리내리는 데 얼마나 역할을 하고 있을까? 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지방자치위원회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도움을 얻어 세 차례에 걸쳐 새 지방의회의 활동과 지방자치의 의미를 되짚어보려고 한다. -편집자</font>

» 충청북도의회, 청주시의회,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한겨레21 박승화

» 충청북도의회, 청주시의회,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한겨레21 박승화

지난 3월29일 충북 청주시의회는 청주시의 2010년도 예산 부풀리기와 선심성 예산 편성 의혹을 규명해달라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 예산 부풀리기 등은 지역을 안 가리고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의 ‘고질병’으로 지적돼 왔지만, 지자체를 감시하는 지방의회가 이 문제를 끈질기게 파고들어 감사 청구까지 한 건 이례적인 사태 전개다.

청주시의 주먹구구식 가계부 파헤쳐

민선 5기 청주시의회가 처음 받아본 예산안은 지난해 9월 2010년도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이었다. 그런데 청주시의 사업 계획과 지출 규모를 정한 세출예산안은 집행되지 않은 사업에서 230억원을 깎는 등 온통 삭감 예산으로 잡혀 있었다. 게다가 단기차입금 100억원 상환은 연기하는 반면, 추가 단기차입 185억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애초 2010년도 본예산은 1조51억원이었고, 당시 청주시는 2009년에 이어 청주시 예산이 또다시 1조원을 넘었다고 자랑하기 바빴다. 시의회에 제출된 추경안은 이 예산이 부풀려진 것이라는 자백과 마찬가지였다.

세출을 삭감하는 건 쓸 수 있는 돈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즉, 세입과 잉여금, 이자수입 등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거나 애초 과도하게 계상됐다는 것이다. 청주시 예산의 ‘구멍’은 애초 770억원으로 편성됐다가 323억원에 그친 잉여금, 100억원으로 계상했다가 15억원에 그친 이자수입이었다. 무려 530억원이 넘는다. 시의회는 행정사무감사 등을 통해 그 이유를 밝히려 했지만, 예산 관련 시 공무원들은 법적으로 정해진 일주일의 감사 기간에 “오류”라며 발뺌만 거듭했다.

진상을 밝혀보려고 시의회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석 달 동안 행정사무조사를 벌였다. 결국 아무런 근거나 협의 없이 최소한 잉여금 210억원이 증액됐고, 이자수입 계산도 주먹구구식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10년 1월 이미 청주시가 세입 결손을 알고 있었는데도 이를 9월 추경 때까지 감췄다는 점도 드러났다. 문제는 이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밝히는 것이었다. 시의회는 예산 담당부서 책임자들과 남상우 전임 시장에게 증인 출석을 요구했다. 그런데 충북도의회로 파견간 예산 담당 책임자는 ‘출장’을 핑계로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남 전 시장은 “조사의 실익조차 없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며 불출석했다. 심지어 “예산이 축소된 것은 정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능력 부족 및 시정 운영에 대한 열정과 노력의 부족 때문”이라며 한범덕 현 시장을 비난했다.

»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활동가들이 5월25일 충북 청주시 운천동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왼쪽). 청주시의 2010년도 예산 행정사무조사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윤송현 청주시의원이 5월25일 청주시의회 사무실에서 행정사무조사 보고서를 보며 조사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오른쪽). 한겨레21 박승화

»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활동가들이 5월25일 충북 청주시 운천동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왼쪽). 청주시의 2010년도 예산 행정사무조사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윤송현 청주시의원이 5월25일 청주시의회 사무실에서 행정사무조사 보고서를 보며 조사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오른쪽). 한겨레21 박승화

업무처리비 공개 조례 제정해

시의회는 남 전 시장이 6·2 지방선거에 출마해 입지를 세우려고 예산을 부풀렸다고 의심한다. ‘1조원 예산’ 2년 연속 달성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선거에서 이용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하지만 남 전 시장 등의 출석 거부로 이와 관련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시의회는 행정사무감사·조사 때 증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지방자치법 제41조에 근거해 남 전 시장 등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의결했지만, 청주시는 이를 집행하지 않았다. 행정사무조사특위 위원장인 윤송현 시의원은 “증인 출석을 강제하는 규정도 없고, 집행부(시)가 시의회 의결 사항 집행을 거부하면 과태료 부과도 실효성이 없다”며 “결정적인 때에 지방의회는 ‘종이호랑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한 것은 최후의 수단인 셈이다.

제도적 장벽에도 청주시의회가 예산 부풀리기 의혹을 밝히려고 강도 높은 행정사무조사를 벌이고, 감사 청구까지 할 수 있었던 건 시의회의 권력 교체 때문이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다수당이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뀐 것이다. 이들은 예산안 작성 때의 문제점만 짚은 게 아니라, 청주시장과 청주시의원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도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지난 3월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분기별로 청주시·시의회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신용카드 사용을 원칙으로 하는 내용의 업무추진비 공개·지출 조례를 제정한 것이다. 업무추진비는 대부분 지자체와 지방의원의 ‘쌈짓돈’으로 여겨지는 탓에, 이를 공개하는 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로 여겨진 지방자치의 오랜 숙제의 하나다.

의회의 권력 교체는 시민사회와 소통도 원활하게 만들었다. 시의원 6명은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자치센터가 말 그대로 ‘주민자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이들은 ‘희망의원모임’이라는 연구모임을 만들어 이런 생각을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등 지역 시민단체에 전했고, 함께 주민자치위원회와 간담회를 열어 의견을 듣고 있다. 곧 청주시 주민자치위원 모두를 상대로, 자치위원회의 권한을 어떻게 강화할지, 주민에게 제공하는 스포츠·학습 프로그램을 어떻게 개선할지 등에 관한 설문조사도 실시할 계획이다. 송재봉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그전엔 지역 단체들이 시의회에 뭘 해보자고 제안해도 시큰둥했고,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시의원 일부만 우리 의견을 듣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확 달라졌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데 적극적이고 말도 잘 통한다”고 말했다.

야간 자율학습 둘러싼 충북의 줄다리기

충북도의회의 변화 노력도 눈에 띈다. 지금 충북 지역의 최대 현안은 중·고교 야간 자율학습을 둘러싼 도의회와 도교육청의 줄다리기다. 교육청은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침에 따라 학원 심야교습 시간을 밤 10시까지로 단축하는 ‘학원 설립 등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2010년 3월 도의회 교육위원회에 제출했다. 지난 도의회는 이 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았지만, 바뀐 도의회는 지난 1월 교육위에서 이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도의회는 한발 더 나아가, 정규 교과 이외의 교육 활동에서 학생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이 최대한 존중돼야 하므로 학교는 야간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내용까지 포함시켰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학생 학습 자율선택권 조례’(가칭)를 만들 계획도 세웠다.

물론 아직은 ‘절반의 성공’이다. 사태가 복잡하다. 학원가의 반발은 예상가능한 것이다. 도의회가 ‘학교의 야간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강요 금지’를 조례에 추가한 것에 대한 교육청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의 격렬한 반발로 학원 교습시간을 제한하는 조례는 아직 도의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교육청은 ‘강제 자율학습 따위는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교총은 도의회가 ’월권’을 저질렀다고 비난한다. 도의회는 교육청에 공동 실태조사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교육청은 이를 거부했다. 관행을 바꾸기 싫은 보수 교육감, 폐쇄적인 교육 관료와 새로운 도의회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돌인 셈이다.

충북도의회는 도의회의 의정활동 수준을 높이는 시도도 하고 있다. 조례를 새로 만들 땐 사전 공청회를 의무화해 주민 의견을 반드시 수렴키로 한 것이다. 지난해 10월부터 도정질의 방식도 일문일답으로 바꿨다. 대부분의 지방의회는 여전히 지방의원이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죽 늘어놓은 다음 남는 시간에 지자체의 답변을 듣기 때문에 사실상 ‘질의’만 있을 뿐 충실한 답변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방자치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에선 일문일답 방식을 지방의회에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강정기지 공사 강행에 무력한 제주도의회
»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 현장에 세워진 해군기지 기본설계 조감도.

»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 현장에 세워진 해군기지 기본설계 조감도.

제주도의회는 청주시의회·충북도의회와 마찬가지로 지난 지방선거 때 다수당이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뀌었다. 도의회의 가장 큰 당면 과제는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들어서는 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생명과 평화의 섬 제주를 해군기지에 내줄 수 없다”며 제주 해군기지 반대 대책위원회(대책위)를 꾸려 4년째 기지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환경·평화운동 단체 등 전국의 시민단체도 이들을 돕고 있다. 더구나 강정마을은 보전가치가 높은 지역이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것을 막으려고 제주도가 지정한 ‘절대보전지역’이다. 제주올레 7코스 가운데 가장 풍광이 아름다운 장소로 손꼽히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도의회에서는 주민 의견 청취 절차도 밟지 않고 2009년 12월17일 다수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사당 주변을 봉쇄한 채 ‘절대보전지역 취소동의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그리고 2010년 12월17일 강정마을에선 포클레인의 삽질이 시작됐다.

6·2 지방선거에서 다수당이 된 민주당 중심의 새 도의회는 이 절대보전지역 취소동의안 처리가 무효라고 보고 지난 3월16일 ‘절대보전지역 해제 취소결의안’을 가결했다. 절대보전지역 해제가 잘못된 결정이었으므로 이를 도의회가 스스로 취소한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별 효력은 없었다. 해군은 공사를 계속하고 있고, 법원은 주민 등의 공사 중단 신청을 두 차례 기각했다. 도의회는 자신들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모두 썼다고 생각한다. 문대림 제주도의회 운영위원장은 “현실적으로 해군기지 계획을 전면 철회시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공사를 잠시 중단하고, 정부는 주민들과 대화를 통해 해군기지에 (땅을 내주는 것에) 상응하는 강정마을과 제주도 발전·지원 대책을 내놔야 한다. 취소결의안도 정부에 그런 의지를 보여달라는 요구”라고 말했다.

강정마을 주민 대부분과 지역 단체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취소결의안이 “정치쇼”였다고 비판한다. 더 많은 보상이나 지원이 아니라 해군기지 건설계획 자체가 철회되길 바라는데 도의회가 이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또한 취소결의안을 통과시킨 뒤, 절대보전지역 변경처분을 직권으로 취소할 권한을 가진 우근민 제주지사(무소속)에게 어떠한 압력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제주도의회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를 통과시켰고, 업무추진비 조례도 마련했을 뿐 아니라 영·유아 발병률이 높은 홍역 등 3종의 예방접종비를 전액 지원하는 등 적잖은 노력을 했다. 특별자치도법이 있어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의회의 정책 역량을 강화하려고 정책자문위원 제도를 도입해 조례 제정 등에서 박사급 전문인력 17명의 도움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시민사회의 도의회 평가는 박하다. 김아현 제주참여환경연대 정책팀장은 “‘사소한 변화’들은 적지 않았지만, 정말 도의회가 변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했다. “얼마 전 한 의원이 자신이 관련된 선교단체 소속 대학생 축구대회에 500만원을 지원하라고 도청에 요구했다. 담당 공무원이 근거 규정이 없다고 거절하자, 이 의원은 공무원을 폭행하고 도에 인사조치까지 요구했다. 시민단체들이 이 의원을 윤리심사위원회에 회부하고 징계하라고 했지만, 아직 회의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대체 뭐가 변했다고 할 수 있는가?” 김 팀장의 이어진 말이다.

도의원 후보 공천도 감시해야

청주시·충북도의회와 제주도의회는 모두 지난해 권력 교체가 일어났는데, 어째서 이런 차이를 보이는 걸까? 이유를 딱 한 가지로 꼽을 수는 없지만, 두드러지는 건 공천 문제다. 어느 당이 권력을 갖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을 공천하느냐가 지방의회 변화에 더 큰 변수라는 얘기다. 청주시·충북도의회의 공천은 민주당 충북도당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가 주도했는데, 이 공심위엔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시민사회 인사 2명이 참여했다. 그래서 지역구 국회의원의 반대를 꺾고 주민·교육 운동이나 의정 감시활동 등을 오랫동안 하며 지역에서 명망을 쌓은 인사를 단수로 공천하거나 경선을 하도록 관철시켰다. 송재봉 사무처장은 “이렇게 당선된 사람은 눈치 볼 게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자기주장을 펼 수 있고, 원래 관심을 둔 분야의 전문성도 높다”며 “이런 의정활동 결과를 다음 공천에도 반영할 수 있는 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제주도의 경우 정당 공천 과정에 시민사회가 개입할 여지가 적었고, 그나마도 성희롱 전력이 있는 우근민 지사를 민주당이 공천하려고 나서는 바람에 시민사회의 눈이 여기에 집중됐다. 해군기지 문제가 선거의 핵심 이슈였고, 도지사를 바꿔야 이 문제를 해결할 단초가 생긴다는 생각도 커서 도의원 공천을 ‘감시’할 힘은 별로 없었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은 “도의원은 민주당에서 많이 당선됐지만, 실제로 지역에서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무슨 큰 차이가 있느냐”며 “선거 공간에서 시민사회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더욱 많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청주·제주=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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