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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문학은 이들 때문에 행복하였노라

젊은 문학평론가가 뽑은 2000년대 최고의 한국문학…
장편 <칼의 노래>, 단편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소설집 <카스테라>, 시 ‘가재미’,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 작가 박민규

제826호
등록 : 2010-09-02 09:58 수정 : 2010-09-2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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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등 일련의 역사소설을 2000년대에 상재한 김훈, 2000년대를 가장 성실하게 보낸 김연수, 2000년대 문학 키워드의 중심에 있는 박민규. ‘한 편의 시’라는 ‘곤혹스러운 뽑기’가 가리킨 곳은 문태준의 ‘가재미’였다. 황병승은 〈여장남자 시코쿠〉로 2000년대를 반으로 쪼개버렸다.(왼쪽부터) 생각의 나무 제공, 한겨레 이정아, 문학사상사 제공, 한겨레 자료, 황병승 제공.

<한겨레21>은 문학평론가·문학전문기자·서점 MD들을 대상으로 2000년대 한국 문학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2001년 1월1일부터 2010년 7월30일까지 발표된 문학작품 중 최고의 장편소설, 중·단편소설, 소설집, 시, 시집을 뽑아달라고 주문했다. 더불어 2000년대 최고 작가와 이 시대 문학을 특징짓는 키워드 및 그것을 가장 잘 보여준 작품·작가도 추천을 부탁했다. 각 항목당 셋까지 추천을 받았다. 문학전문기자 2명, 서점 MD 3명을 포함해 총 68명이 회신을 해주었다. 문학평론가가 63명으로 회신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셈이다. 최근 등단한 이를 비롯한 젊은 문학평론가들의 회신율이 높았다. ‘젊다’는 것이 편향성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응답자 나이에 상관없이 골고루 추천을 받은 작품이 많았다. 7개의 칸을 다 채울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많은 이들이 몇 편의 시를 고르는 것, 시집을 고르는 것은 벅찬 일이라며 ‘패스’를 외쳤다.

결과를 내보인다. 장편소설에서는 김훈의 <칼의 노래>(생각의나무·2001), 중·단편소설에서는 김연수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나는 유령작가입니다>(창비·2005) 수록), 소설집에서는 박민규의 <카스테라>(문학동네·2005)가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시는 문태준의 ‘가재미’(<가재미>(문학과지성사·2006) 수록)를, 시집은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랜덤하우스코리아·2005)를 가장 많이 추천했다.

젊은 문학평론가가 뽑은 2000년대 최고의 한국문학

김훈·김연수·박민규, 2000년대는 그들의 시대

소설의 각 부문별로 ‘타이틀’을 사이좋게 나눠갖기도 했지만, 각 부문에서 빠지지 않고 노크한 이가 김훈·김연수·박민규다. 최고 작가 지명에서도 앞자리를 차지했다. 김훈의 <칼의 노래>가 2001년, 김연수의 문학이 본령으로 올랐다고 평가되는 <꾿빠이, 이상>(문학동네)이 2001년, 박민규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한겨레출판)과 <지구영웅전설>(문학동네)로 혜성같이 등단한 것이 2003년이다. 2000년대 초반 문제작을 내놓은 이들은 2000년대 내내 왕성한 활동을 계속했다. 세 작가 모두 2000년대 이상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을 사이좋게 나눠가졌다(이상문학상 김훈 2004년·김연수 2009년·박민규 2010년, 황순원문학상 김훈 2005년·김연수 2007년·박민규 2009년). 미래가 기대되기도 하지만 분명 2000년대는 그들의 시대였다.

김훈과 <칼의 노래>에 대해 회신자들은 이렇게 평가했다. “2000년대적 역사소설의 탄생! 이순신도 이제는 영웅이 아니라 ‘개인’이 된다. 내용을 결코 요약할 수 없는 문체소설의 진수.”(함돈균·문학평론가) “2001년 <칼의 노래>부터 2009년 <공무도하>에 이르기까지 어느 순간 홀연히 나타나 그 자체로 완성된 세계를 보여주다, 홀로 사라질 대가.”(박하영·알라딘 도서1팀장) <남한산성>을 최고 걸작으로, <공무도하>와 <현의 노래>를 최고로 꼽아준 이도 있었다. <칼의 노래>는 그가 이어나간 역사소설의 황홀경을 연 작품이었다. “한국 문학에 쏟아진 ‘벼락’ 같은 축복”(동인문학상 심사평)을 고 노무현 대통령도 추천으로 보탰고, 출간된 지 7년 만에 100만 부 판매를 기록했다. 김훈의 ‘화장’ 또한 단편소설에서 많은 표를 얻었다.

김연수는 ‘단편소설의 왕’이었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 대해 문학평론가 오창은은 “역사를 개인화하려는 의지가 문학적 성취로 이어진 작품”이라고 했다. 한 작품으로 가장 많은 표를 얻기도 했지만, 흩어진 표를 그러모아서도 단연 압도적이다. 최고 단편으로 거론된 것만 ‘세계의 끝 여자친구’ ‘달로 간 코미디언’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뿌넝숴’ 등 다섯 작품에 이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내놓은 단편소설집만 2000년대 초·중·후반에 걸쳐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문학동네·2002),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비·2005), <세계의 끝 여자친구>(문학동네·2009) 등 세 권이다.


평론가 68명이 꼽은 2000년대 최고의 작품과 작가
 

태작 없는 성실과 문학 흐름의 중심

장편소설에서도 그를 최고로 꼽은 이가 많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은 이가 최고라고 지목한 작품은 <밤은 노래한다>이다. 이 작품에 대해 문학평론가 허병식은 “세계, 이념, 자아의 몰락과 종언”으로 평가한다. 되레 왕성한 필력은 표를 흩어지게 했다. <밤은 노래한다>를 비롯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꾿빠이, 이상>까지 거론한 이가 여럿이다. 쓸데없는 ‘산수’를 하자면, 김훈과 김연수의 장편을 지목한 숫자를 합치면 똑같다. 틈틈이 김연수는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마음산책·2004), <여행할 권리>(창비·2008), <대책 없이 해피엔딩>(공저·씨네21북스·2010)을 썼고 레이먼드 카버를 비롯한 번역에도 몰입했다. 많이 썼고 여러 가지로 인정받았다. 한 문학평론가는 “출발 작품 <꾿빠이, 이상>과 도착 작품 <세계의 끝 여자친구>가 다 훌륭하고 그 사이에 태작이 하나도 없다. 10년을 이렇게 성실하게 보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그가 2000년대 대표작가임을 역설한다.

김연수가 ‘이야기’를 다 드러내놓고 이야기한다면(그는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소설을 시작하곤 한다), 박민규는 ‘2000년대적’ 서사에 몰입했다. 함돈균은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대해 “바야흐로 2000년대는 루저들의 시대다. 아 그런데 이야기는 왜 이렇게 웃긴단 말이냐”라고 말한다. 오창은은 “2000년대 한국 소설의 스타일을 바꾼 작품이다. 발랄한 서글픔을 통해 한국 사회의 상처를 헤집었다. 젊은 감각으로 IMF의 상처를 묘파한다”고 말한다. 요약되듯 그는 2000년대적 문제 인물이다. 문학평론가 이선우의 말대로 “박민규의 등장으로 2000년대의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해요. 딱 한 명만 짚으라면, 어쩔 수 없이 박민규입니다.” 키워드에서도 그를 중심으로 문학판을 평가한 이가 많다. 문학평론가 이정석은 ‘역사적·개인적 자의식의 무거움을 벗어던진 경쾌함’이라는 면에서, 박혜경은 ‘사실주의적 개연성의 세계를 뛰어넘는 환상과 엽기의 상상력’이라는 면에서, 황종연은 ‘하위문화’, 원종찬은 ‘루저’, 노대원은 ‘백수’라는 키워드로 그가 2000년대 문학의 중심에 있음을 말했다.

박진 문화평론가는 ‘장르 혼종’이라는 2000년대적 현상의 중심에 박민규가 있다고 말한다. “2000년대는 역사소설, SF, 판타지, 추리물과 스릴러 등 그동안 순문학이 아닌 대중문학이나 하위장르로 평가돼왔던 경향이 문학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적극적으로 교섭·혼종되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이제 누구도 장르문학(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의 경계를 가를 수 없는 시대, 그것이 얼마나 인위적인 구획이었는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경향이 2000년대 들어 문학의 지형을 크게 변화시켰으며 문학에 대한 배타적인 선입관을 무너뜨리게 되었다. 이런 경향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준 작가는 박민규이고, <지구영웅전설> <핑퐁> 등의 장편소설과 단편집 <카스테라>가 그 좋은 예다.”

김애란(왼쪽)은 단편만으로 전 세대로부터 고루 사랑을 받았다. 황석영은 2000년대에도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는 2000년대 ‘장편소설’ 논쟁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고수 황석영, 신예 김애란, 핵폭풍 ‘여장남자’

등단 이후 언제나 문제작을 써온 황석영은 2000년대에도 건재했다. 황석영의 <손님>(창비·2001)은 “2000년대 분단문학의 가능성을 몸으로 써낸 문제작. 한반도에서 분단의 상처는 어떻게 우리의 삶에 개입되어 있는가를 보여주었다”(오창은), “문학적으로 실험된 사회적(정치적) 한의 씻김굿”(함돈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일제강점기의 민족 내부 갈등에 대한 정직한 응시들”이 2000년대 주요한 경향이었다며, <손님>을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와 함께 거론했다.

단편집 두 권을 낸 김애란 역시 주요하게 언급된 작가 중 한 명이다. <달려라 아비>(창비·2005), <침이 고인다>(문학과지성사·2007)의 표를 합치면 소설집 1위인 <카스테라>에 맞먹는다. 2000년대 감수성을 요약한다는 면에서 박민규와 함께 김애란을 키워드로 거론한 이가 많았다.

시에서는 25명이 37편을 추천했다. 문태준의 ‘가재미’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두드린 작품이었다. ‘맨발’도 거론한 이가 많았다. 다음으로 김경주의 다섯 작품(‘내 워크맨 속 갠지스’ ‘당신의 잠든 눈을 만져본 적이 있다’ ‘드라이아이스’ ‘무릎의 문양’ ‘외계’)을 6명이, 황병승의 2편(‘불쌍한 처남들의 세계’ ‘여장남자 시코쿠’)을 4명이 거론했다. 김사인, 문인수, 신용목, 이영광, 김행숙의 시들도 2편씩 추천됐다.

시집은 단연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였다. 신형철은 “2005년에 출간돼 2000년대를 반으로 쪼개버린 시집”이라고 말한다. 오창은은 “2000년대 미래파의 화려한 등장을 위해 터뜨려진 폭죽”, 함돈균은 “핵폭풍이었다고 할 만한 2000년대 시들의 바람. 그 폭풍의 눈에 ‘시코쿠’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이번 ‘설문조사’가 몰이해에서 시작됐음을 밝힌다. 많은 답신자가 ‘최고’라는 표현에 의문을 표했다. 문학적 성취가 투표로 가늠하는 선거가 아니라는 면에서 십분 공감할 수 있는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작품을 뽑은 이도 있고 2000년대라는 시대성을 담은 작품을 뽑았다는 이도 있다. 그런 점에서도 이 ‘최고’는 헷갈린다. 문학 종사자들의 난감함은 더한다. 최고의 작품을 뽑는 것에 대해 소설가와 시인은 아예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이 가장 최고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 작가”라는 개인적인 토로도 있었고 “내 글을 쓰느라고 시대 전체를 조망할 만큼 읽지 못했다”는 현실적인 설명도 있었다. 애초에 설문 대상에서 소설가와 시인이 빠진 이유다. 설문에 이름이 보이는 소설가나 시인은 문학 수업이나 강좌를 하는 일로 ‘조망권’을 획득했달 수 있는 이들이다. 젊은 작가들에 대한 응원의 느낌도 읽힌다.

 

문학의 수학, 시대적 성취

무엇보다도 이들 난감함 중 최고는 이 발표의 자리다. 개인이 ‘최고’를 밝히는 일은 수줍은 사랑 고백이지만, 이것을 세어서 숫자로 명시하니 이 일은 난감을 넘는 ‘몹쓸 짓’으로 보인다. 이 설문조사는 ‘문학’이라기보다는 ‘수학’이다. 어쨌든 추첨보다는 조금 낫다는 점이 위로다. 그리고 시대를 읽는다는 면에서, ‘문학의 수학’이 몹쓸 일이나마 필요했음을 변명으로 내놓는다. 많은 이들의 시선이 간 곳, 공감을 얻은 작품에는 분명 ‘시대적 성취’가 있을 것이다. 문학의 입지가 좁아지고, 출판 상업 안으로 소설이 포획된 때에 문학을 새롭게 되새김질하는 계기로도 작용하길 바란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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