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의 대규모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서 121가구를 면접조사했다. 낡고 허름하지만 굳게 닫힌 현관문을 열어보니, 각자의 사연이 아파트 구조만큼이나 서로 닮아 있다. 질병이나 사고로 누군가 앓거나 숨진 가족사, 무허가 판잣집·비닐하우스촌·철거촌을 거쳐온 빈곤 이주의 경로, 평균 100만원 이하의 월수입과 과도한 주거비 부담이 그러했다. 노인 세대는 영구임대아파트 20년 역사만큼 낡은 ‘가난의 역사’를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청년 세대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부모들이 일을 나가고 면접조사에 응할 때, 청년 세대는 주로 방에서 잠을 잤다. 영구임대아파트 1세대의 무능력은 2세대에게 무기력으로 더 진하게 대물림됐다. ‘역할 모델’도 ‘추진 로켓’도 없이 좁은 방에 드러누운 이들에게 꿋꿋이 살아내라는 격려조차 가혹한 주문일지 모른다.글 싣는 순서
1회: 영구 빈곤의 둥지
2회: 무기력의 대물림
3회: 격리당한 아이들의 미래
에필로그: 가난을 이기는 길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놀이터가 있다. 미끄럼틀, 시소, 정글짐, 벤치가 있다. 오후가 되면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논다. 초등학생은 미끄럼틀 주변, 중학생은 나무 벤치 주변에서 논다. 고등학생은 놀이터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논다.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 “우리, 어린 애들 좀 팰까?”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남자 고등학생이 말했다. 곁에 있던 친구들이 키득거렸다. 실제로 때리지는 않았다. 농 삼은 말이었다. 만약 누군가를 때린다면, 지는 게 뻔한 싸움이 될 것이다. 그들의 편이 돼줄 사람이 없다.
1. 사나운 눈빛으로“제발 그렇게 하지 마.” 김영주(가명) 사회복지사가 말했다. “돈도 없잖아.” 수신자 부담 전화였다. 김 복지사는 휴대전화 요금을 내지 못하는 형진(16·가명)의 전화를 꼬박꼬박 받았다. “돈이야 삥을 뜯어도 되고, 집을 털어도 되지.” 전화기 너머에서 형진이 말했다. 반말을 해도 김 복지사는 다 받아준다. 형진은 한 달 전, 길 가던 또래를 때렸다. 어울려 다니던 친구 2명과 합세해 때렸다. 돈을 뺏었다. 맞은 아이는 코뼈가 부러졌다. 전치 8주 진단이 나왔다. 부모들이 경찰에 신고했다. 형진은 쫓겨다녔다.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경찰에 붙잡힐까 두려웠다. 형진은 김 복지사한테만 마음을 주었다. “ㄱ시로 갈 거야.” 그 전화를 끝으로 연락이 없다. 형진이 저 멀리 ㄱ시로 도망갔는지, 여전히 놀이터 주변을 어슬렁거리는지 알 수가 없다.
“여기서도 많이 싸워서 만기 연장될 거 같아 그리고 면회 부말(‘주말’의 오기) 받게 않 되 근데 상담 선생님이 특별이 됫다고 했어 내가 여기서 않 싸우고 잘지내고 있을계 잘 있다가 나가면 지금보다 더 잘할꼐.” 형진은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맞춤법도 지키지 않는다. 지난해 겨울, 형진은 분홍색 편지지에 마침표 없는 편지를 썼다. 김 복지사에게 보냈다. 그때 형진은 청소년재활시설에 있었다. 길 가던 아이를 때린 죄로 6개월간 보호 위탁됐다. 더 일찍 나올 수도 있었는데, 그 안에서 또 누군가를 때렸다. “나가면 지금보다 더 잘할꼐”라는 다짐은 잊혀졌다. 형진은 올해 초, 임대아파트로 돌아왔다.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코뼈를 부러뜨렸다. 이번에 붙잡히면 진짜 감옥에 갈 것이다.
형진의 어머니는 키가 작다. 소아마비를 앓았다. 친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형진에겐 없다. 의붓아버지는 술을 많이 마셨다. 알코올중독이었다. 새아버지와 어머니는 형진 옆에서 부부 관계를 했다. 새아버지는 형진과 형진의 누나를 구박했다. 어머니는 아파트 근처에 단칸방을 구했다. 두 남매만 따로 살라고 했다. 형진이 초등학교 5학년, 누나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좁은 방에 아이들만 살았다. 쓰레기가 쌓였다. 바퀴벌레가 기어다녔다. 형진의 친구, 형진 누나의 친구가 이 방에서 놀았다. 학교에 가기 싫은 아이들, 집에 들어가기 싫은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누나의 남자친구가 오토바이를 몰고 왔다. 훔친 오토바이였다. 형진도 그 오토바이를 몰았다. 생전 처음 탄 오토바이가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돈이 필요했다. 부모에겐 돈이 없었다. 영구임대아파트 내 복지관의 도움을 받았다. 김 복지사를 그때 만났다. 형진은 동네 아이들을 때리고, 돈도 뜯고, 집도 털었다. 단지 안에서 유명해졌다. 형진은 이듬해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1학년 때 퇴학당했다. 지금까지 3년 동안 단지 놀이터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형진의 눈빛은 자꾸 사나워졌다. 형진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이곳에는 없다. 주먹을 들어 때리는 순간부터 형진이 지는 싸움이었다.
“이것도 좀 치워주세요”폭력은 나쁘다. 절도도 나쁘다. 형진이 그런 짓을 못하도록 누군가 나서야 한다. 그러나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응어리진 것이 분출되지 않으면, 속에서 곪는다.
박성령(가명) 교사는 초인종을 한참 찾았다. 버튼이 떨어져나간 초인종 구멍에 겨우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초인종은 쇳소리를 냈다. 아무 응답이 없었다. 돌아서려는데 문이 열렸다. 냄새가 훅 풍겼다. 해가 졌는데 방에는 전등도 켜져 있지 않았다. 문을 열어준 윤진(16·가명)은 이내 돌아가 방에 누웠다. 박 교사는 윤진의 담임이었다.
윤진이 학교에 나오지 않아 그 집을 찾아나선 길이었다. 걸어서 5분 거리였다. 교복 때문일 것이라고 박 교사는 생각했다. 윤진은 후드 티셔츠 차림으로 학교에 나타났었다. 지난 1년 동안 윤진의 몸무게는 20kg 이상 늘었다. 입학 때 산 교복이 맞지 않았다. 새 교복을 살 돈은 없었다. 윤진은 티셔츠를 입었다. 다른 학생들은 교복을 입었다. 그러다 윤진은 학교 나오는 일을 그만뒀다. 아무 연락 없이 결석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며칠을 기다리다 찾아간 윤진의 12평 집에는 과자 부스러기, 라면 봉지, 옷가지 등이 어질러져 있었다. 부엌 개수대는 라면, 김치 등 오물로 가득했다. 화장실 쓰레기통에는 휴지가 넘쳤다. 박 교사는 아무 말 없이 청소만 했다. 윤진은 문만 열어주고 아무 말 없이 다시 돌아가 누웠다. 그러다 박 교사에게 다가왔다. 냄비를 가리켰다. “이것도 좀 치워주세요.” 안에는 언제 끓였는지 모를 된장찌개가 심하게 부패해 있었다.
윤진에겐 어머니도 있고 언니도 있다. 어머니는 일본에 있다. 홀로 자매를 키우다 1년 전 일본으로 떠났다. “돈을 벌어오겠다”는 말만 남겼다. 연락은 잘 되지 않는다. 어디서 뭘 하는지 윤진은 알지 못한다. 고등학생인 언니는 좀체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윤진은 밥 대신 과자나 라면을 먹었다. 살이 쪘다. 문 밖에 나가는 일이 귀찮아졌다. 등교 시간이 돼도 혼자 천장을 보며 누워 있었다. 눈을 감으면 일본에 가서 엄마를 만나는 꿈을 꿨다. 박 교사가 썩은 냄비를 설거지한 뒤에도 윤진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2. 굶어가며 공부하다모두가 무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방법을 알지 못한다. 미영(17·가명)이는 밤늦도록 눕지 않는다. 인터넷을 한다. 미니홈피를 꾸미고 친구를 만난다. 인사도 건넨다. 다만 학교에서는 말하지 않는다. “안녕?” 수없이 연습했지만 누구한테도 이 말을 먼저 건네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가면 그 소극적인 성격 좀 버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그 말에 미영은 더 움츠러들었다.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인터넷은 다르다. 그곳에 가면 미영의 남자친구가 있다. 짝사랑하고 있다. 인사한 적은 없다. 말도 못 건넸다. 그 남학생의 미니홈피를 구경하며 미영은 새벽을 맞는다.
“몰라요.” 기자가 장래 희망을 물었을 때, 미영이 말했다. “몰라요.”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물었을 때, 미영이 말했다. 모른다고 말할 때 미영은 아기처럼 옹알대며 작게 말한다. “어떤 직업이 또 있는지 모르겠어요.” 미영이 알고 있는 직업은 미싱사뿐이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미싱일을 했다. 미영도 미싱일을 해봤다. 지난 겨울방학 때, ‘미싱 보조’로 일했다. 아버지가 일하는 직물 공장이었다. 공장에는 창문이 없었다. 직물에선 먼지가 계속 나왔다. 눈을 뜰 수 없었다. 손은 금세 더러워졌다. 손을 씻을 곳은 없었다. 일주일 만에 눈병이 났다. 그만뒀다. “넌 공장일에 잘 맞지 않는다.” 아버지가 말했다.
미영의 언니는 얼마 전 카드회사 대리점에 취직해 월급을 받았다. 세금을 떼고 109만원을 받았다. “큰돈을 버는 언니가 부러워요.” 미영이 말했다. 미영은 자신이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100만원 넘게 버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만 확실하다. 돈을 벌면 제 몸을 치장하는 데 쓸 생각이다. 옷도 사고 구두도 살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는 미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고등학생 미영은 손톱에 투명한 매니큐어를 발랐다. 그 손톱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돈을 벌어 몸을 치장하는 게 꿈이지만, 미영은 세수하고 머리 감는 일이 귀찮다. 100만원 넘게 벌던 언니는 집을 나갔다. “언니… 언제 와?” 미영은 방에 누워 언니에게 문자를 보낸다. 답은 없다.
딸 고교 졸업하면 ‘한부모’ 박탈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좋을 것이다. 목표가 있으면 더 열심히 살 수 있다. 그러나 눈치를 봐야 한다. 미숙(17·가명)은 어머니 눈치를 보며 말했다. “모르겠어요.”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묻자, 미숙도 그렇게 말했다. 거짓말이다. 미숙은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으로 ‘입시 미술’ 과목을 듣고 있다. 미술 선생님이 어머니를 설득했다. 수업료 10만원을 대신 내주기로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미숙은 그림을 잘 그린다. 미술 선생님이 그걸 알아보고 미대 진학을 권했다.
그러나 방과후 수업은 모녀에게 고통이었다. 수업료는 해결했지만, 재료비가 필요했다. 22만원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큰이모에게 빚을 졌다. 빚을 냈는데도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었다. 미숙은 저녁을 굶고 수업을 듣는다. ‘입시 미술’ 수업은 밤 9시에 끝난다. 학교 저녁 급식을 먹으려면 돈을 더 내야 한다. 밤 10시, 미숙은 빈속으로 집에 돌아온다. 허겁지겁 냉장고를 뒤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돈 벌어서 나를 도와야 하지 않겠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그 말을 하는 어머니는 힘이 없다. 어머니는 얼마 전 암수술을 받았다. 아버지와는 이혼했다. 어머니 눈치를 보다가 미숙이 말했다. “어차피 대학도 못 갈 텐데 이제 입시 미술은 그만두려고요.” 그렇게 말하는 미숙은 여전히 ‘입시 미술’ 수업을 듣는다. 배고픔을 참으며 듣는다.
냉정한 것은 미숙의 어머니가 아니다. 제도다. 외동딸인 미숙은 어머니와 산다. ‘한부모 가족’이다. 그래서 영구임대아파트에 들어올 수 있었다. 현행법상 ‘한부모 가족’ 지원을 받으려면 편부모 아래 미성년 자녀가 있어야 한다. 미숙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미숙의 가족은 더 이상 ‘한부모 가족’이 아니다. 영구임대아파트 입주도, 어머니의 자활근로도 한부모 가족이기에 가능했다. 이제 자격이 박탈되면 영구임대아파트 보증금마저 거침없이 오를 것이다. 돈이 필요하다. 미숙이가 그 돈을 벌어야 한다.
3. 길을 잃다
“학교라도 고급스럽게 지어야 해요.” 한승원(가명) 교사가 말했다. 한 교사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중학교에서 담임을 맡고 있다. “아이들이 밥 먹으러 학교에 와요. 그러니 급식이 맛있을수록 아이들이 학교에 더 애착을 느끼겠죠. 아이들은 놀기 위해서도 학교에 와요. 수업이 끝나면 달리 할 일이 없거든요. 방과후 수업에서 여러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더 좋겠죠.” 그러나 지난해부터 교육 방침이 바뀌고 있다. “방과후 수업을 교과 학습 위주로 변경하라”는 게 교육부와 교육청의 지침이다. 성적을 끌어올리라는 이야기다. 학업성취도 평가의 후폭풍이 이곳에도 불어닥쳤다. 밥 먹고 어울려 놀고 다른 세상도 경험할 수 있었던 학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국·영·수 중심의 방과후 교실에서 영구임대아파트 아이들은 이내 지칠 것이다.
한 교사도 힘이 조금 빠졌다. 그는 서울 강남의 이른바 ‘명문’ 고등학교에서 일해봤다. 그곳 학생들은 깍듯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학교와 교사를 업신여겼다. 학원과 강사를 더 신뢰했다. 이곳에선 다르다. 집과 부모보다 학교와 교사에게 더 기댄다. 교사가 노력한 만큼 학생들이 달라진다. “강남 아이들은 교사를 가장 우스운 직업으로 봐요. 부모 직업이 대단하니까요. 반면 이곳 아이들은 교사를 최고의 직업으로 치죠. 부모가 무직자이거나 일용직 노동자이거든요.” 한국 정치의 변화는 이곳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줬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일상의 목표를 새로 전달할 여지를 잃어가고 있다.
남은 길은 스스로 자립하는 것이다. 10대에게 그것은 벅찬 일이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승혜(18·가명)는 혼자 힘으로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예술대학을 가거나 실용음악학과가 있는 2년제 대학을 가려 한다. 승혜는 수녀원에서 지낸다. 수녀원이 운영하는 보육원이다. 수녀님들이 노래 학원비도 대준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수녀원에 돌아와야 하지만, “지금껏 살면서 요즘이 가장 편한 시간”이라고 승혜는 생각한다.
“과대망상이 있으시니,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의사가 승혜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치료를 거절했다. “하느님을 믿으니까 괜찮아요.” 어머니는 새벽 기도를 가자며 승혜와 승혜 오빠를 깨웠다. 오빠는 그게 싫어 일찌감치 가출했다. 어머니는 화가 나면 승혜를 무릎 꿇게 했다. 3시간은 기본이고 한나절 동안 벌을 세웠다.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다. 딸의 끼니도 챙겨주지 않았다. 단지 안 복지관에 가면 토할 때까지 음식을 먹었다.
그래도 “엄마한테 미안하다”고등학생이 되어 승혜도 집을 나왔다. 스스로 아동학대센터를 찾아갔다. 이후 수녀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승혜의 기억 속에 있는 첫 집은 모자원이다. 어머니 혼자 남매를 데리고 모자원에서 살았다. “모자원 앞에 철길이 있었다”고 승혜는 말했다. 모자원에서 영구임대아파트로, 아동학대센터에서 수녀원으로 옮겨다닌 19살 승혜는 “그래도 내가 도움받은 게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만큼 지내게 된 것도 주변의 도움 덕택이라 생각한다. “엄마를 버리고 온 것 같아 미안하다”는 생각도 한다. 언젠가 가수가 되어 돈을 벌면 다시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고에서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준비한 또래들과는 경쟁하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다. 1년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승혜는 보육원에서 나와야 한다. 보육원은 18살 미만의 미성년만 지낼 수 있다. 올해가 지나면 승혜가 어디에서 지낼지 알 수가 없다. 대학에 들어간다 해도 생활비는 승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 복잡한 문제를 승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열심히 노력할 뿐이다.
승혜가 학원에서 열심히 배우는 노래가 있다. “가장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라고 승혜는 말했다. 실기시험을 치르게 되면 그 노래를 부를 것이다. “잠시 길을 잃었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어/ 난 아이인가봐 그저 온종일 울기만 하잖아/ 네가 없인 무엇도 못해/ 어리광 부리며 헤맬 뿐이야/잠시 길을 잃은 거야/ 다시 길을 찾을 거야.”(015B의 )
*다음호에 에필로그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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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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