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서·논술형’ 예정된 부작용?… 채점 공정성 담보할 수 있나

‘국민과 함께 그리는 미래 대입제도’ 지역 토론회가 2026년 8월11일 오후 인천 미추홀구 콜라보마이스컨벤션센터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이민석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교육인재분과장의 발제를 경청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현행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체제는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를 무한반복 풀이 훈련을 하는 것이다. 서(술)·논술형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자기 손으로 자기가 정답을 쓰게 만들어야 한다.”
차정인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 위원장이 2026년 8월5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수능 서·논술형 문항 도입을 포함한 대입제도 개편을 공식화하고, 8월11일부터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 교육당국은 이런 내용을 포함한 ‘중장기(2028~2037) 국가교육발전계획’ 시안을 10월 말 발표한 뒤, 2027년 3월 이를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계획에는 수능 서·논술형 도입 검토와 함께 중고교 내신 서·논술형 평가 확대, 고교 내신과 수능 절대평가 전환 검토, 고3 2학기 수업 정상화를 위한 대입전형 시기 조정 검토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국교위는 대입 개편안이 확정되면 2033학년도(현 초6) 수능부터 서·논술형 문항을 도입할 예정이다.
수능 서·논술형 도입은 암기 위주의 객관식 시험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시대에 걸맞은 논리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갖춘 미래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다. 이날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해지는 AI 시대에 오지선다형은 학생을 망치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교육계 역시 개편 방향의 큰 틀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좋은교사운동,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교육의봄은 8월18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수능과 내신에서 서·논술형 평가로의 단계적 전환을 국가교육발전계획에 명시적으로 담을 것을 요구한다”고 찬성 의견을 밝혔다.
다만 교육계는 학력고사와 수능으로 이어진 지난 50년간의 객관식 점수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초대형 개편인데도 충분한 공론화와 숙의 과정 없이 추진되는 것에 우려가 없지 않다. 이한섭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실장이 “수능 서·논술형 문항과 관련해서 어떤 취지나 목적, 형태나 형식으로 하겠다는 내용도 없고, 실체도 없다”고 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대입 개편안 추진 자체가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나온다. 학교에서 학습한 내용을 수능으로 평가하는 방식이 순리인데, 선후 관계가 틀렸다는 얘기다. 유성룡 1318대학진학연구소장은 “수능 서·논술형 도입에 앞서 이와 관련한 학교 교과과정을 만들어 학생들이 학습·평가로 적응한 다음 시행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말했다. 장승혁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수능 서·논술형에 대한 교과과정뿐 아니라 교사 등 현장의 준비도 전혀 안 돼 있다”며 “학생과 교사가 혼란한 틈을 비집고 사교육이 진입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미 학원가와 학부모 사이에서는 일찍부터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이은영(47)씨는 “아직 논술학원을 보내지 않고 있는데, 수능이 바뀐다는 소식이 있어 곧 보내려고 한다”며 “주변에서도 어릴 때부터 책과 친해지고 글쓰기를 많이 시켜야 유리하다고 생각해, 논술학원을 알아보는 엄마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차정인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2026년 8월11일 오후 인천 미추홀구 콜라보마이스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 그리는 미래 대입제도’ 지역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수능 서·논술형 문항 도입을 시기상조라고 보는 또 다른 이유는, 채점의 공정성 논란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 때문이다. 수능 서·논술형 도입은 1998년 김대중 정부 ‘대국민 교육 토론회'에서 시작해 2005년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재직 시절과 2018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때도 논의됐지만, 채점의 공정성 논란을 이유로 실제 도입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국교위도 2024년과 2025년 잇따른 정책연구 용역 결과에서 채점의 공정성을 이유로 수능 서·논술형 도입의 현실적 어려움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역시 2025년 5월 낸 ‘미래형 대입제도 모색과 교육현장 안착 방안 연구’에서 “국가수준 시험에 서·논술형 문항의 도입은 채점의 신뢰성 문제를 유발하여 또 다른 형태의 공정성 시비 가능성이 있으므로 도입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썼다. 국교위와 교육부는 AI 채점으로 일관성을 도모하겠다는 구상이지만, AI 오류로 인한 평가 책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팔로어 199만 명의 입시·교육 유튜버 ‘미미미누’도 8월16일 공개한 영상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했다. 입시 일정에서 채점에 소요되는 시간이 과도하게 길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채점자에 따른 점수 편차와 이의제기 급증 등이 우려된다는 주장이다. 교육당국이 개발·도입하겠다는 AI 채점 시스템에 대해선 “단 1의 오차도 없이 모두가 인정하는 채점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짚었다. 이한섭 전교조 정책실장 역시 “서·논술형 시험은 같은 답안이라도 채점 기준과 주체에 따라 점수가 달라져 평가의 공정성 논쟁을 피할 수 없다”며 “특히 AI의 경우 어떤 모델을 적용하느냐, 똑같은 내용을 어떻게 서술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들 역시 채점의 공정성을 가장 우려한다. 국교위 누리집(www.ne.go.kr) ‘국민 의견 플랫폼’ 의견을 보면, 다수가 채점의 공정성과 신뢰성이 중대한 문제이며, AI를 활용하더라도 오류와 편향, 판단 과정의 설명 가능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면 공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 작성자는 “AI가 서·논술형 답안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규모 모의평가와 장기간 시범운영을 통해 채점의 신뢰성을 먼저 입증해달라”고 주문했다.
수능 서·논술형 도입과 별개로 현행 대학입시 시스템에서 교육과정과 내신, 수능이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고교학점제 시행으로 선택과목이 늘어났음에도 정작 2028년부터 치르는 수능 출제 범위(공통수학·공통과학만 해당)에 포함되지 않아 교실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김희정 전국중등교사노동조합 위원장(교사노조 대변인)은 “고교학점제와 내신 5등급제 이후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커지고 내신 경쟁이 훨씬 심해졌을 뿐 아니라 고2~고3 때 배우는 선택과목들이 수능 출제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교과목의 파행 운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고교학점제와 ‘통합형 수능’의 보완 및 개선 대책, 즉 당장 급한 불부터 꺼달라는 요구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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