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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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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 법·제도에선 언제쯤 ‘국뽕’이 차오를까

국가인권위원회 공동기획
최은영 작가의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인터뷰… ‘이직할 자유’ 없이 기본권 사각지대 놓인 이주노동자들
등록 2024-06-15 04:55 수정 2024-06-19 02:12
2024년 5월26일 경기도 안산에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앞줄 가운데)이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우다야 라이 제공

2024년 5월26일 경기도 안산에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앞줄 가운데)이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우다야 라이 제공


얼마 전, 미국으로 망명한 한 탈북자의 인터뷰를 봤다. 그 여성은 탈북한 후 자신이 한동안 살았던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 ‘한국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그는 저개발 국가들의 이름을 대면서 그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에 대한 한국인의 차별을 고발한다. 그 인터뷰 영상 아래에는 그를 비난하는 한국인들의 댓글이 가득했다. 한국은 그런 곳이 아니라는 말. 우리는 그런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말. 그 익숙한 풍경을 보면서 나는 말문을 잃었다.

나는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별은 없다’는 다수자 목소리는 실제로 그런 차별을 경험하는 소수자에 대한 폭력이다.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개선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능동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인종차별,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 탄압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그런 차별과 환경이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차별 없다’는 다수의 폭력

이주노동자에 대한 다수의 시각은 투명한 편이다.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사람들, 위험한 사람들, 잠재적인 범법자…. ‘노동 인구가 급감한 미래에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으로 많이 올 것이다’라는 전망에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두려움과 그에 기반한 혐오가 묻어나기도 한다. 한국 경제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을 제외하고 기능할 수 없다. 130만 명 정도의 이주노동자는 이미 도시와 농촌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노동조건 속에서 노동하는지 알려진 건 별로 없다.

한파주의보가 내린 2020년 12월20일, 서른한 살의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숙소’인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은 많은 이를 충격에 빠뜨렸다. 속헹씨의 비극은 예고된 인재였다. 2004년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뒤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에 관한 문제 제기는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2018년에는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개선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2021년 1월 고용노동부는 ‘농·어업 분야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69.6%가 가설건축물인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샌드위치 패널), 비닐하우스 내 시설에서 살았다.

이주인권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우춘희는 그의 책에서 “저개발국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컨테이너 집, 비닐하우스 집,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집에서 사는 것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자 인종차별적 착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고용노동부가 말하는 ‘임시 숙소’라는 명명에 의문을 제기한다. “도대체 여기서 ‘임시’는 무슨 뜻일까? 이주노동자는 언제까지 ‘임시’로 사는 것일까? 말 그대로 ‘임시’로 잠시 살다가 ‘상시’로 옮겨갈 수 있는 것일까?” 그는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인력 수급 정책’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그들이 어떤 곳에서 사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일하는지,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를 받기는 하는지, 그 실상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지적한다.

2021년 1월17일 경기도 포천의 한 채소농장에 있는 비닐하우스 숙소 방문 앞 고무대야에 받아놓은 물이 꽁꽁 얼어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매일 씻고 빨래한다. 류우종기자 wjryu@hani.co.kr

2021년 1월17일 경기도 포천의 한 채소농장에 있는 비닐하우스 숙소 방문 앞 고무대야에 받아놓은 물이 꽁꽁 얼어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매일 씻고 빨래한다. 류우종기자 wjryu@hani.co.kr


나는 2024년 5월7일 이주노조에서 활동 중인 우다야 라이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이주노동자의 ‘임시 숙소’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라면 그런 곳에서 살 수 없죠. 사람이 살 수 있는 조건에서 살아야 하죠. 기본적으로 냉난방 장치가 설치돼 있고 재해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고 시끄럽지도 않은 곳에서 사람이 살아야죠.” 그의 말이 맞았다. 왜 이 기본적인 상식이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는 걸까. 속헹씨의 사망 이후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의 기숙사로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는 금지했지만 ‘비닐하우스 밖 컨테이너’는 허가했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 그곳은 집이 될 수 없다.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 한국인의 3배

이주노조는 상근자 두 명, 지부 8개, 조합원 600여 명이 활동하는 단체다. 이들은 이주노동자에게 불합리한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 활동한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우리 사회에 알리기 위해 집회와 기자회견 등의 활동을 하는 한편 이주노동자에 대한 교육 활동, 상담 활동, 연대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권리와 법, 제도에 관해 노동자들에게 알리는 역할도 한다. 이주노동자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경우 어떻게 신고하는지 같은 실질적으로 중요한 사안들 말이다.

라이 위원장은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의 권리는 보장하지 않고 사업주의 권리만 강화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자유로운 사업장 변경을 ‘허가’하지 않는다. 노동조건이 열악해도, 육체적으로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해도, 더는 일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해서 직장을 옮기고 싶어도 사업주가 ‘허가’하지 않으면 그곳에서 계속 일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에게 부당한 일을 당해도 그곳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임금이 두 달 이상 밀리면 이주노동자는 사업자의 임금체불 사실을 신고할 수 있지만, 어떤 사업자는 법의 허점을 이용하기도 한다. 제때 임금을 주지 않고 두 달이 되기 직전에 주는 식이다. 앞으로의 거취에 대한 사업주의 협박 같은 것은 따로 신고할 길도 없다.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호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사업주의 부당한 대우에도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실제로 ‘이주노동자 체불임금 발생률은 내국인 노동자의 2배 이상이다. 5월26일 이주노동자평등연대가 노동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해 받은 자료를 보면, 2023년 이주노동자 체불임금은 1215억원이었다’.

라이 위원장에 따르면 계절 이주노동자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계절 이주노동자는 한국에서 3~5개월, 길게는 8개월 정도 일하는데, 한국에서 임금체불을 당하더라도 보장받을 길이 없다.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한국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임금체불을 신고하기가 어렵다. 그런 사정을 이용해 사업자가 계절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라이 위원장은 앞서 언급한 주거 문제뿐만 아니라 안전과 건강 문제 또한 이주노동자가 당면한 문제라고 설명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하고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고, 안전 장비도 없고 안전 교육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빨리빨리’ 노동하기를 강요받는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지금 적용되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 사고가 한국인 노동자에 비해 3배 정도 많은 것은 이주노동자의 노동환경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20만 명 줄이겠다는 윤 정부

윤석열 정부는 현재 40만 명이 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2027년까지 20만 명으로 줄이겠다고 선포했다. 2024년 현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동 단속 기간이다. 라이 위원장은 지금과 같은 법과 제도 아래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런 법과 제도를 고치지 않고 무작정 ‘단속’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는다는 것이다. ‘단속’ 과정에서 미란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렇게나 진입하고 무단 침입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가 모두 이주노동자 개인의 책임일 뿐일까.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는 이유로 고용허가제, 계절 노동제도, 점수제, 숙련 인력 제도 등의 제도에 큰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이들 제도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자의 허가를 받아야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이런 평등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의 위험한 노동을 강제로 하고 있다. 사용자에게 폭력이나 성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사용자가 노동자의 ‘이직의 권리’를 쥐고 있는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은 강제노동이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업장을 벗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사용자의 허가’를 받지 않은 이직이기 때문에 비자를 잃고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된다. 라이 위원장은 이런 법과 제도는 문제시하지 않으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이주노동자 개인에게 전가하는 정부의 태도를 지적한다. 사업장 변경을 비롯해 기본적인 노동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허가제를 실시하지 않는 한 이주노동자는 강제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고,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주노동자 단속 추방을 중단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체류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4년 4월3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이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허가제 실시’ 등 이주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알리고 있다. 우다야 라이 제공

2024년 4월3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이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허가제 실시’ 등 이주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알리고 있다. 우다야 라이 제공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인간의 기본 권리 밖에서 살아간다.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위험하고 어려운 노동조건에 내몰리기도 한다. 사업주가 미등록 노동자로 신고한다고 협박하는 경우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어 부당한 요구를 모두 감수해야만 한다. 그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숫자’ ‘잠재적 범죄자’로만 인식하는 상황을 비판한다. 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이렇게 늘어나는지, 어떻게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하는지에 집중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단속하고 추방하는 방식으로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고립시키고 혐오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을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노동자로서, 사람으로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인간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안전하게 살고 있고, 사람답게 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이 지난 시간 동안 한국 경제에 기여해왔으며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왔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의 노동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들을 이익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태도를 지양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말했다. 이주노동자를 차별과 착취,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같은 사람, 같은 노동자로 인식하고 노동자로서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이주노동자의 권리와 안전, 생명을 보장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이익이라고 말이다. 그는 앞으로도 인간답게 살 권리, 같은 노동자로서 일할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투쟁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저개발 국가 출신’ 차별에 인종차별도

라이 위원장과의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생각했다. 재해나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고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주거환경, 사고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노동환경,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고 신고할 수 있는 권리,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권리, 이동의 자유…. 나는 폭력이란 인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도구가 될 때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을 이윤을 위한 도구로 이해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그 자체로 인간에게 폭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조건에 따라서, 인간을 도구화하고 비인간화하는 정도가 다르다. 이주노동자들은 인간의 기본 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법과 제도, 잠재적인 범죄자라는 시선과 저개발 국가 출신을 향한 한국 사회의 차별과 인종차별 등의 악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당장 오늘 밥상에 오른 깻잎, 상추, 고추와 식후에 먹은 사과까지 이주노동자의 손길이 닿아 있다. 그들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삶 또한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최소한의 자각을 해야 한다.

‘이 아르바이트생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라는 말을 나는 싫어한다.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어야지 인간으로 존중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조건 없이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엄하며 최소한의 존중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인간 존재에 대한 의식은 제도와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없다. 그 자체로 인권 침해 요소가 있는 고용허가제와 계절 이주노동자 제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향한 폭력적인 단속 등은 이주노동자가 ‘우리’와 동등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어렵게 한다.

‘사람이라면’이라는 질문을 던지자

라이 위원장의 말대로 ‘사람이라면…’이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사람이라면 이런 숙소에서 지낼 수 있을까, 사람이라면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일할 수 있을까, 사람이라면 폭언과 폭력을 견디면서 버틸 수 있을까. 이주노동자를 향한 법과 제도는 ‘사람이라면…’이라는 질문 속에서 다시 세워져야 한다. 그들이 법과 제도 속에서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을 때,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권 감수성 또한 성숙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최은영 작가

최은영 작가. 류우종 기자

최은영 작가. 류우종 기자


*동료시민 이주민: 인구절벽으로 나아가는 한국에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는 선택일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이주인권’을 소재로 한 소설가들의 연속 기획을 선보인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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