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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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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복을 폭행하지 마세요, 내 자유를 차별하지 마세요

최진영 소설
본국에서 살해 위협 받고 한국으로 탈출했지만 한국에서도 탈출 필요한 상황 있어… 행복·자유 바라는 건 당신과 같아
등록 2024-08-10 15:25 수정 2024-08-15 17:50
최진영 소설가가 2024년 7월14일 경기도 한 마을에서 이주 난민을 인터뷰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최진영 소설가가 2024년 7월14일 경기도 한 마을에서 이주 난민을 인터뷰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이주민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소설입니다. 

중고 의류 분류 작업장. 벨트 위로 다양한 의류가 실려 나온다. 노동자는 벨트 앞에 서서 각자 맡은 의류를 골라낸다. 나는 재킷을 맡았다. 실수로 재킷 아닌 의류를 집어든다면 다시 벨트에 내려두면 된다. 외국인도 단번에 이해할 만큼 복잡하지 않은 작업 방식이다. 그런데 내 옆에 선 두 명의 한국 여자는 그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들은 잘못 집어든 의류를 벨트에 내려두지 않고 내게 던진다. 한 사람이 바지를 던지고 또 한 사람은 셔츠를 던진다. 나는 놀라서 생각한다. 실수겠지. 벨트에 두려다가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서 내게 던져진 거겠지. 그런데 다시 던진다. 또 던진다. 이젠 실수일 수 없다.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내게 한 번만 더 옷을 던진다면 나도 똑같이 할 거야. 그들은 내 말을 듣고 내게 옷을 던진다. 그래서 나도 그들처럼 던진다. 두 여자가 내게 달려든다. 나를 때린다. 정말, 나를, 때린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 관리자에게 달려가 말한다. 저들이 내게 옷을 던지고 나를 때립니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을 알고 두 여자가 내게 따져 묻는다. 누가 네게 그 말을 할 권리를 줬지?

*

천부인권을 아십니까.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헌법에 적혀 있기 때문에, 혹은 나라에서 허락했기 때문에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아니라 하늘이 주는 권리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입니다.

천부인권은 초등학생인 내 아들도 압니다. 학교에서 배웠다고 합니다.

*

내게 옷을 던지고 나를 때린 여자들에게 답한다.

신이 내게 줬다. 그 권리는 신을 믿지 않는 당신들에게도 있다. 그리고 당신들에게 나를 때릴 권리는 없다. 사람을 차별하고 때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 여자들은 천부인권을 이해 못한다. 내가 외국인이고 자기들과 피부색이 다르고 다른 언어를 쓰기 때문에 내게는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들이 내게 권리를 주거나 뺏을 수 있으며 나를 때려도 된다고 믿는다. 관리인도 그들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이 아니라 나를 먼저 해고하는 걸 보면. 부당하게 일자리를 잃은 나는 ‘엑소더스’(천주교 이주사목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이주민 지원센터)를 찾아간다. 엑소더스는 구약성경의 탈출기(Book of Exodus)에서 따온 이름이다. 대탈출. 태어난 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는 이야기. 나도 본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살해 협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탈출할 상황은 있다. 나를 때리는 사람들, 내게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정당한 돈을 주지 않으려는 사람들, 나를 노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엑소더스 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믿고, 나 대신 말해준다. 그들은 관리자를 찾아가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한다. 관리자는 내 말은 무시하지만 그들의 말은 듣는다. 그들이 말하는 인권을 이해하는 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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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신은 태어나자마자 살해 협박을 받아서 탈출했습니다. 그들의 조상들 또한 살아남으려고 이주했습니다. 대대로 핍박받은 나의 신은 복수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절대, 결코, 자기 민족만을 사랑하고 보호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국가와 인종을 가리지 않고 전세계의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 신을 믿고 있어요. 신은 국가와 인종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도 부처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자비를 가르칩니다. 그런데 신을 믿는 사람들이 사람을 차별합니다. 차별하면서 구원받고자 기도합니다. 어떤 기도는 죄가 됩니다. 죄를 빌지 마세요. 벌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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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는 물의 신을 믿었다. 사람들은 할머니에게 염소나 닭, 돈을 주면서 물의 신에게 자기 대신 기도해주길 부탁했다. 또는 자기 미래를 예언해주길 요구했다. 한국의 무당과 비슷할 것이다. 딸은 그 일을 물려받아야 한다. 나의 엄마는 서른 살에 죽었다. 엄마가 언제나 보고 싶어서 엄마 사진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해뒀다. 나는 매일 수십 번씩 젊은 엄마를 본다. 이제 나는 엄마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 사랑해요, 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가 죽었으니 할머니의 일을 내가 물려받아야 했다. 그러나 나는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로서 절대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또한 그 일을 하려면 여성할례를 받아야만 했다. 게다가 나의 딸은? 딸이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내가 끊어내야 했다. 그 일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하자 물의 신을 믿는 사람들이 나를 죽이겠다고 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내 미래는 두 가지뿐이었다. 할머니의 일을 이어받거나 죽거나. 나는 그들의 살해 협박을 피해서 한국에 왔다. 딸은 아직 본국에 있다. 믿을 만한 어른이 돌봐주고 있다. 딸도 성인이 되면 탈출해야 한다. 어느 나라로 탈출하든 살해 협박을 받는 본국보다 나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에스엔에스(SNS)에 자꾸 올라온다. 잘사는 선진 국가로 이주한 동포가 그 나라 사람들에게 살해 협박을 받고 쫓겨났다는 소식이. 이주민을 이유 없이 폭행하는 영상이 자꾸 올라온다. 피할 수 없는 피습. 딸이 보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내 딸이 너무 보고 싶다.

*

당신은 당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본 적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결코 없습니다. 모조리 다릅니다. 외모, 목소리, 말투, 키, 체중, 피부색은 모두 다릅니다. 신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각각 고유하고 유일한 단 한 사람으로 창조했습니다. 그러니 내가 당신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차별하지 마세요. 그러면 당신도 차별당합니다. 당신보다 몸이 크다고 돼지라고 부르지 마세요. 요즘은 아이들도 서로에게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교육을 받습니다. 당신과 피부색이 다르다고 빤히 쳐다보지 마세요. 우리가 다른 건 신의 뜻입니다. 신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단 하나의 계명을 남겼습니다.

*

중고 의류 분류 일을 하기 전에는 김치 공장에서 일했다. 세탁 일도 했다. 정해진 급여를 주지 않았다. 한 달에 80만원, 많으면 110만원을 받았다. 같은 일을 하는 한국인보다 훨씬 적게 받았다. 하루를 빠지면 이틀치 급여를 뺐다. 아들이 아파서 하루 일을 쉬어야겠다고 말하면 그만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가 아프면 어른이 곁에서 돌봐야 한다. 한국은 그렇지 않은가? 아니면 한국 국적의 노동자만 그럴 수 있는가? 이주 노동자는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가? 자녀가 있는 이주 노동자는 채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언니는 울면서 빌었다. 내게 자녀가 있지만 일하게 해주세요. 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저녁 6시에는 퇴근벨이 울렸다. 그러면 누구든지 퇴근할 수 있었다. 내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도 저녁 6시에 끝났다. 나는 퇴근벨이 울리자마자 작업복을 갈아입었다. 아들을 데려다주는 어린이집 차량 도착 시간에 맞춰야 했다. 그런데 사장은 내가 정시에 퇴근하는 걸 싫어했다. 나는 늦었고 아들은 기다렸다. 그래도 우리는 일해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공짜가 아니다. 공짜로 살지도 않는다. 생활하면서 우리도 돈을 쓴다. 집세를 지불하고 음식을 사서 먹고 각종 요금을 낸다. 외국인이라고 월급은 적게 주면서 외국인이라고 싼값에 물건을 팔지는 않는다. 나는 무릎이 아프고 남편은 발목이 아프지만 우리는 계속 일하고 싶다.

*

내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신다면, Happiness(행복), Freedom(자유). 당신이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다릅니까? 우리의 행복과 자유는 다릅니까?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자유로울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내 정당한 요구를 비난하지 마세요. 내 행복을 폭행하지 마세요. 내 자유를 차별하지 마세요. 나의 신은 말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해라.’ 우리는 이웃입니다. 나는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언젠가 떠날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은 농장에서 일합니다. 이전에는 청소를 했습니다. 포장 일도 했습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나는 도둑질하지 않습니다. 거짓말도 안 합니다. 게으르지 않습니다. 내 말을 못 알아듣겠다고 소리 지르지 마세요. 우린 모국어가 다릅니다. 내게 욕하거나 침 뱉지 마세요. 내가 당신에게 하면 안 되는 말과 행동을 내게 하지 마세요. 내 이름은 이현진. 빛나는 별이란 뜻입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요즘 한국을 탈출하는 청년이 많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 유세 중에 총격당하는 장면을 얼마 전 뉴스에서 봤다. 나의 본국도 미국처럼 총기 사용이 자유다. 10여 년 전 선거 때는 투표소에 가는 사람들에게 총을 쏴서 수십 명이 죽었다. 학교나 사원에서도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길을 가다가 납치돼 죽을 수도 있다. 치안이 좋지 않다. 외국에 살던 가족이 돌아오면 그 집에 돈이 많을 거라는 소문이 난다. 그럼 가족 중 한 명을 납치해서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일도 벌어진다. 우리 가족은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사랑하는 내 딸을 만나고 싶다. 우리는 한국이나 제3국에서 만나야 한다. 내 아들이 성인이 되면 나와 남편은 한국을 떠나야 한다. 떠나고 싶지 않다. 우리 가족이 한국에서 계속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뿐. 그것이 내 행복이고 자유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평범한 삶을 살 방법을 함께 찾아주십시오. 나는 본국에서 살 수 없어 한국에 왔습니다. 나는 언젠가 떠날 사람이 아니라 당신의 이웃입니다. 행복을 기원한다는 당신의 말에 나는 아멘, 하고 대답합니다. 우리의 행복은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그렇습니다. 내 이름은 프레이(Pray). 기도란 뜻입니다. 서아프리카에서 왔습니다. 김치찌개와 두부과자를 좋아합니다.

최진영 소설가


*동료시민 이주민: 인구절벽으로 나아가는 한국에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는 선택일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이주인권’을 소재로 한 소설가들의 연속 기획을 선보인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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