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이 모인 공간이 있다. 서로 얼굴도 사는 곳도 모르지만 피를 나눈 자매 못지않게 끈끈한 정을 자랑한다.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 위로하고 화나는 일엔 함께 분노한다. 처음 모인 목적은 지역에서 육아·교육·살림 정보를 공유하고 어쩌다 사는 이야기를 하는 정도였다. 오늘날 이곳은 ‘갑질’ ‘조리돌림’ ‘집단이기주의’의 상징이자 ‘맘충 본부’가 되어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이곳은 맘카페다.
<맘카페라는 세계>(사이드웨이 펴냄) 저자 정지섭씨는 남편 말고 아무도 몰래 지난 5년간 어느 맘카페 운영자로 일하며 겪은 일을 토대로 맘카페의 정체성과 모성 수행의 복잡성을 설명한다. 맘카페의 열렬한 회원이자 운영자이자 관찰자로서 냉철하게 분석한 한 편의 인류학 보고서처럼 읽힌다. 엄마들의 정보 창구인 맘카페가 어쩌다 비밀스럽고 이상한 마녀집단처럼 취급받게 됐는지 설명한다.
맘카페의 시초 격인 ‘맘스홀릭베이비’는 2003년 개설됐다. 2006년 전후 크고 작은 지역 맘카페들이 생기면서 1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유지됐다. 새로운 과학지식과 육아 이론으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과학적 모성’들은 최신 육아 정보를 주고받으며 서로 상처를 주지 않는 둥글둥글 순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 우정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은근한 폭력성을 지닌 수동 공격성을 발현하기도 했다. ‘이 얘기, 나만 불편한가요?’라는 말과 함께 격한 논쟁을 거듭했다. 맘카페는 힘이 있었고, 정치화되기도 했다.
저자는 모성의 본질을 ‘내 자식만 위하는 이기심’이라 본다. 본디 ‘내 엄마’의 모성이나 아름답지, 타인의 모성은 아름답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소리다. 무조건적 사랑을 대변하는 모성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엄마들을 쉽게 비난하는 근거가 된다. 모성을 혐오하고 아이들까지 낙인찍는 사회 분위기는 엄마들을 고립시켰다. ‘엄마 되기’는 극단적 경쟁과 사회적 비난 속에 점점 어려운 목표에 도전해야 하는 불가능하고 위험한 일이 됐다.
여성을 ‘아이 낳는 부품’ 취급하는 출산 정책, 워킹맘 중심의 육아 정책, 주양육자를 여성으로 한정하는 교육 정책, 남성을 소외시키는 저출산 정책 또한 문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모성 수행은 공기처럼 저평가됐지만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니 이를 재사유하자고 말한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애국의 계보학
실라 미요시 야거 지음, 조고은 옮김, 정희진 기획·감수, 나무연필 펴냄, 2만원
미국의 한국학 연구자인 실라 미요시 야거가 한국 근현대사의 정체성을 만든 장면들을 젠더화된 민족주의 계보로 보여준다. 국가 건설에 영향을 미친 요소 중 행위자들이 추구하던 국가의 이상적 이미지를 탐구했다. 강인한 무사로서 남성성을 주장한 신채호, 박정희가 취한 농촌 서사 전략, 김일성이 강조한 자애로운 부성 전략 등.
감정의 문화정치
사라 아메드 지음, 시우 옮김, 오월의봄 펴냄, 2만9800원
주류가 갖는 부정적 감정의 표출은 소수자를 규율해 자기 집단을 재형성하고 사회적 규범을 재생산한다. 역사에 대한 반성은 사라지고 주류인 ‘우리’가 갖는 감정이 타자의 고통에 대한 인정과 보상을 대신한다. 시민권을 규율하는 핵심이 문화정치에 있음을 논증하는 사라 아메드의 2004년 작. 정동 이론과 감정 연구의 필독서.
김명시
이춘 지음, 산지니 펴냄, 2만3천원
사회주의 계열이란 이유로 잊힐 뻔한 여성 항일독립영웅 김명시의 생애를 복원했다. 고려공산청년회 소속으로 모스크바 유학을 떠난 김명시는 상해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펼친다. 조선의용군에는 수많은 여성이 참여했지만 장군으로 불린 여성 지휘관은 김명시가 유일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노동운동가의 면모도 확인할 수 있다.
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만6천원
소설가 김혜진의 세 번째 소설집. 집에 관한 이야기이자 사람들의 마음 이야기. 재개발 동네로 이사 간 해미는 누구에게나 해맑게 말을 걸고, 만옥과 순미는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이지만 서로 끼니를 챙기는 다정한 이웃이었다가 반목하게 된다. 세입자들을 관리하는 호수 엄마는 월세를 독촉하다가도 재민 엄마에게 조의금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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