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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카페는 대체 왜 이러는 거죠?

엄마들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자가 쓴 인류학적 보고서 <맘카페라는 세계>
등록 2023-11-10 05:50 수정 2023-11-16 00:14

엄마들이 모인 공간이 있다. 서로 얼굴도 사는 곳도 모르지만 피를 나눈 자매 못지않게 끈끈한 정을 자랑한다.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 위로하고 화나는 일엔 함께 분노한다. 처음 모인 목적은 지역에서 육아·교육·살림 정보를 공유하고 어쩌다 사는 이야기를 하는 정도였다. 오늘날 이곳은 ‘갑질’ ‘조리돌림’ ‘집단이기주의’의 상징이자 ‘맘충 본부’가 되어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이곳은 맘카페다.

<맘카페라는 세계>(사이드웨이 펴냄) 저자 정지섭씨는 남편 말고 아무도 몰래 지난 5년간 어느 맘카페 운영자로 일하며 겪은 일을 토대로 맘카페의 정체성과 모성 수행의 복잡성을 설명한다. 맘카페의 열렬한 회원이자 운영자이자 관찰자로서 냉철하게 분석한 한 편의 인류학 보고서처럼 읽힌다. 엄마들의 정보 창구인 맘카페가 어쩌다 비밀스럽고 이상한 마녀집단처럼 취급받게 됐는지 설명한다.

맘카페의 시초 격인 ‘맘스홀릭베이비’는 2003년 개설됐다. 2006년 전후 크고 작은 지역 맘카페들이 생기면서 1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유지됐다. 새로운 과학지식과 육아 이론으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과학적 모성’들은 최신 육아 정보를 주고받으며 서로 상처를 주지 않는 둥글둥글 순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 우정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은근한 폭력성을 지닌 수동 공격성을 발현하기도 했다. ‘이 얘기, 나만 불편한가요?’라는 말과 함께 격한 논쟁을 거듭했다. 맘카페는 힘이 있었고, 정치화되기도 했다.

저자는 모성의 본질을 ‘내 자식만 위하는 이기심’이라 본다. 본디 ‘내 엄마’의 모성이나 아름답지, 타인의 모성은 아름답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소리다. 무조건적 사랑을 대변하는 모성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엄마들을 쉽게 비난하는 근거가 된다. 모성을 혐오하고 아이들까지 낙인찍는 사회 분위기는 엄마들을 고립시켰다. ‘엄마 되기’는 극단적 경쟁과 사회적 비난 속에 점점 어려운 목표에 도전해야 하는 불가능하고 위험한 일이 됐다.

여성을 ‘아이 낳는 부품’ 취급하는 출산 정책, 워킹맘 중심의 육아 정책, 주양육자를 여성으로 한정하는 교육 정책, 남성을 소외시키는 저출산 정책 또한 문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모성 수행은 공기처럼 저평가됐지만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니 이를 재사유하자고 말한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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