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들은 오만하다.”
2014년 5월. 중국 상하이 고급 아파트 단지 내 스타벅스에 앉은 20대 여성은 한국에서 온 성형 연구자에게 언짢은 투로 말했다. 중국인들의 성형수술은 그저 예뻐지려는 실천일 뿐인데 서구인들이 ‘우리를 닮으려 노력한다’고 평가하면서 우쭐댄다는 얘기다. 몇 년 뒤 또 다른 중국 여성은 이 시대의 가장 예쁜 얼굴로 이상적인 백인 얼굴과 동양인의 외모가 섞인 ‘혼혈 얼굴’을 꼽았다. 현대 중국 여성의 미인 이미지는 인종과 계급 동학, 글로벌 소비주의와 관계를 맺으며 유동하고 있었다.
<오만한 서구와 혼혈 얼굴>(서해문집 펴냄)은 미용성형을 중심으로 중국 여성들의 미 인식 변화를 탐색하는 오랜 연구 끝에 나온 대중 인문교양서다. 2015년 한국의 미용성형 문화를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맥락에서 분석한 <성형>을 쓴 태희원 박사가 펴낸 ‘성형 2탄’이자 아모레퍼시픽재단의 지원으로 아시아의 미를 탐구하는 ‘아시아의 미’ 시리즈 18권이다.
지은이는 중국 근현대사와 여성 이미지의 변천사를 검토하며 2014~2021년 중국 상하이·베이징·지난·하얼빈과 한국의 서울, 경기 등에 거주하는 20~30대 중국 여성 16명을 만났다. 주로 대도시에 사는 여성이었지만 출신지는 광둥성·후베이성·랴오닝장성·헤이룽장성 등으로 다양했다.
한국인 독자로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한국의 성형기술이 중국에서 겪는 곤경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중국 시장을 ‘개척’한 한국 미용성형 의료진이 품은 ‘차이나 드림’은 곧 어려움에 부닥쳤다. 한국 미용성형의 상업성과 위험성을 비판하는 중국 내 담론이 증가했고 그곳 미용성형 의사들이 한국 의료진의 기술을 ‘한국 스타일’로 차용해 실속을 챙겼기 때문이다. 중국 의료진의 실력이 한국 못지않다는 대중 여성의 자부심에도 내셔널리즘이 엿보였다.
현대 중국 사회에서 새로운 미의 기준과 욕망이 출현하고 담론이 변화하는 장면은 책의 핵심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마오쩌둥 시대의 이상적인 여성 이미지는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단단한 철의 노동자, ‘철녀’였다. 사라진 것 같았던 미용성형은 폭발하듯 성장한다. 개혁개방정책 이후 1980년대 말 ‘포스트 마오 시대’는 “성형수술이 중국의 얼굴을 바꾼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2000년대엔 여성의 외모를 이윤 창출로 이용하는 산업 전반을 ‘미녀 경제’라 일컬었다. 여성노동자의 지위가 후퇴하고 여성성의 핵심으로 ‘뷰티’가 진입했으며 “예쁜 얼굴은 쌀(돈)이 된다”는 메시지가 여성을 자극했다.
최근엔 찍어낸 듯 비슷한 성형미인을 ‘저급 얼굴’이라 하는데, 이를 ‘왕훙(인플루언서) 얼굴’이라 일컫고 “성형괴물”이라며 배척한다. 이와 대비되는 ‘고급 얼굴’은 성형으로 구현할 수 없는 얼굴, 당당한 기운을 내면의 미로 강조하는 ‘중국의 현대적 여성상’으로 부각된다. 저자는 이런 담론 모두가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고 가격을 매길 수 있다는 사고의 틀 안에 있다고 본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추앙받는 ‘혼혈 얼굴’은 비백인 인종의 외모를 비하하는 시각과 짝을 이뤄 시장을 확대한다고 분석한다.
한국의 ‘성괴(성형괴물) 담론’이나 미용산업 등과 비교할 부분이 많지만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아 아쉽다. 하지만 중국 미용성형 문화와 이상적인 여성상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지구적이면서도 지역적인 접점에서 ‘아시안 뷰티’를 연구한 결과로서 믿음직한 교양서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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