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아닌 연대, 개인이 존중받는 공동체, 자연을 해치지 않는 인간의 삶이 가능한가. 뜬구름 아닌가. 학생운동권 끝자락이거나, 버르장머리 없는 ‘엑스(X)세대’라 불리다 아이엠에프(IMF) 사태로 하루아침에 다른 세계를 맞이했던 이들 중 어떤 이는 지역에서 진짜 해봤다. 그런 삶이 되나 안 되나. 청년도 노인도 아닌 이들은 다 아는 길 대신 미지의 X를 택했다. 민간독립연구소 희망제작소와 공동기획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4주마다 연재한다. ―편집자주
남해 바다는 오목한 만마다 마을을 품었다. 인구 1600명 정도인 경남 남해군 상주면은 은모래해변이 감싸고 있다. 2023년 5월11일 상주복지회관 앞 삼거리에서 이종수(54) 남해상주 동고동락협동조합 이사장은 책가방을 멘 한 소년에게 인사한다. “아버지 일본에서 오셨니?” “아직요.” 그사이 흰색 벙거지를 쓴 30대 청년이 자전거로 쉭 지나가며 둘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금치 극단 다니다 온 친구예요.” 벙거지 이상호씨는 상주면 주민을 모아 농악대를 만들고 지신밟기를 한다.
은모래해변 쪽으로 골목길을 내려와 협동조합이 만든 동네 빵집 ‘동동’으로 들어가니 한쪽엔 비건 빵이 놓여 있다. 남해에서 만든 맥주, 에이드 등도 판다. 골목길을 더 내려오면 은모래해변 바로 앞에 상주중학교가 있다. 폐교 위기에 놓였던 상주중학교가 2016년 대안학교로 바뀌면서 경쟁 대신 연대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은모래해변 작은 마을에서 대안적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작당이 시작됐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 경기도 용인에 살며 부동산자산관리회사(PFV)에 다니던 이종수 이사장은 2010년 42살에 귀촌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9년 어느 날, 옛 직장 후배가 술 한잔 하자며 그에게 전화했다. 주식, 선물옵션 정보도 나누던 후배였다. 그는 접대할 손님이 있으니 내일 보자고 끊었다. 그날 저녁, 후배는 자살했다. 투자 실패 때문이었다.
이 이사장은 학생운동을 하다 1997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한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해 가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부서마다 해고 할당량이 떨어졌다. 결혼 안 한 그가 나왔다. 그 뒤 벤처회사, 건설회사에서 직장인으로 살았다. “어느 날 보니 제 삶이 피폐하더라고요. 건설회사 부조리를 다 알면서 모른 척 돈을 버는 데 회의가 커졌어요.” 큰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이었다. 부부는 아이를 학원 순례하며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가족은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이 이사장의 고향인 충북 음성은 귀촌 선택지에서 지웠다. 내륙고속도로가 뚫리고 고가도로가 솟았다. 고속도로를 따라 물류창고며 공장이 들어왔다. 그가 마음을 둔 곳은 족족 축사, 시멘트공장, 고가도로 차지가 됐다. “땅끝에 가면 고가도로는 안 짓겠다 싶었어요.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고 끌리는 곳이 있는데 남해가 그랬습니다.” 한 신문에서 상주중학교 소식을 듣고 이 이사장 부부는 이곳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1년간 방을 임대해 오가며 마을 사람들을 사귀다 2015년 내려와 집을 짓고 살았다. 일단 마을 이장과 친해졌다. 동네 모든 정보는 이장으로 통하기 마련이다. 곧 청년회 총무를 맡았다. 마을운영위원회 감사도 하게 됐다.
2016년 상주중학교에 이어 상주초등학교가 행복학교로 지정됐다. 대안교육을 고민하는 학부모들이 한 달에 한 번꼴로 모였다. 봄여름 연수도 함께 갔다. “대안교육은 부모들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한계가 있거든요. 학부모 모임에서 공동체를 배웠다니까요.” 2017년 이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협동조합의 과제는 두 가지였다. 마을과 학교를 연결하는 교육공동체와 공동체의 경제적 기반 마련이었다.
협동조합이 처음 만든 건 상상놀이터다. 학교 끝나면 도시에서 이사 온 애, 원래 여기 살던 애 가릴 것 없이 여기서 어울려 놀았다. 이 아이들은 ‘은바지’ 클럽을 결성했다. ‘은모래바다를 지키는 상주초 아이들’의 준말이다. 해변에서 놀며 쓰레기를 함께 주웠다. 협동조합은 마을교육공동체연구회도 꾸려 인문학 강좌 등을 열었다. 조한혜정·유창복 교수 등이 강연하러 왔다 조합원이 돼 돌아갔다. 식당 ‘식량창고’를 열어 지역 농산물로 돌봄 급식을 만든다. 카페나 빵집 같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할 장소가 필요했다. 이 이사장이 지역 마늘을 특화한 아이디어로 빵을 만드는 공모 사업에 도전했는데 덜컥 선정돼버렸다. 문제는 그가 빵을 만들 줄 모른다는 거다. 서울 북촌에서 빵집 하는 후배에게 부탁했다. ‘네가 빵을 보내면 내가 소스를 입히겠다.’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다. 그 북촌 후배 셰프가 아예 남해로 와 눌러앉았다. 지금은 협동조합 빵집 ‘동동’에서 일한다. 그렇게 사람을 보고 사람이 왔다.
은모래해변 작은 협동조합은 꿈의 스케일이 크다. 무지하게 크다. 무려 자본주의의 대안이 되는 ‘생태계’다. 열쇳말은 ‘전환’이다. “도시 모델을 농촌에 가져오면 100% 실패합니다. 백화점 멋있게 지어봤자 서울에 더 멋있는 거 있잖아요. 경쟁교육, 자본주의 소비경제, 개인적 삶 대신 삶을 위한 교육, 공동체 경제와 삶을 꿈꾸는 사람을 위한 마을을 만들어야죠.” 일자리, 교육, 주거, 문화를 이 생태계 안에서 연결해 자생력을 확보하려 한다. 협동조합이 지역특산물 가공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이유다. “협동조합 초기에, 이집 저집 몰려다니며 공부하다 놀다 했던 시절이 좋았는데… 지금은 일이 너무 많아요.”
당장 닥친 일은 ‘인생 학교’다. 내년 착공 예정이다. ‘삶의 전환’을 꿈꾸는 사람을 위한 학교다. 무엇을 가르치나? 이 이사장은 생태적 자급자족 시스템을 갖춘 ‘파머컬처’ 농장 그림을 그리고 있다. “포스트자본주의는 어떤 삶이 돼야 할까요? 저는 개인의 자유로운 삶이 보장되는 생태적 공동체가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먹거리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전기, 목공 등 삶에 필수적인 기술을 갖고 나누면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어요. 로컬 단위의 에너지 자립이 기후위기 해법이기도 하고요.”
이 협동조합이 계획하는 미래에서 노인의 삶은 이렇다. 노인은 친구들, 마을 젊은이들과 여생을 보낸다. 마을이 느슨한 확대 가족이다. “요양원은 마을 단위로 만들어야죠. 노인이 따로 분리되지 않고 마을 아이들 자라는 걸 볼 수 있도록이요.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 요양원으로 옮기며 빈집을 청년들에게 장기임대하거나 팔면 청년들이 살거나 창업 공간으로 활용하는 거죠.”
이 이사장이 상주면으로 오며 만든 블로그 이름은 ‘소요유’, 장자 내편 첫 장 제목과 같다. 그렇게 유유자적하며 살 줄 알았다. 그 블로그는 폐업 상태다. 도시 살 때보다 더 바쁘다. 주 7일 일한다. 협동조합이 풀어야 할 숙제가 쌓여 있다. 경제적 안정을 확보해야 하고 일자리도 늘려야 한다. “힘들 때도 많죠. 그런데 우리 다 알고 있잖아요. 제 세대가 만든 이 세상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거, 아이들을 이렇게 교육하면 안 된다는 거, 1% 빼고 99% 아이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는 쳇바퀴 속에 밀어넣으면 안 된다는 거. 그런데도 그 길을 계속 가잖아요. 불안 때문에.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래서 이런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삶을 전환한 10명이 새로운 10명을 만들고…. 말하고보니 다단계 같네요.” 2015년 남해는 소멸위기 5위 지역이었고, 상주면은 인구 40%(702명)가 65살 이상이었다. 그간 상주초등학교 학생 수는 36명에서 2023년 3월 63명으로, 중학교는 18명에서 92명으로 늘었다. 2016년 이후 학부모나 청년들이 200여 명 상주로 들어왔다. 42명으로 시작한 협동조합 회원은 220여 명으로 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남해로 온 그의 아들은 2023년 산청간디학교를 졸업했다. 같은 반 아이들보다 한 살 더 많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1년 쉬며 여행하고, 농사짓고, 아르바이트했다. 건축가를 꿈꾸는데 대학을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저는 가지 말라 그래요. 대학 학위 같은 거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고 저는 생각해요.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걸 찾고 경험하는 게 중요해요.”
그는 불안하지 않을까? “혁신, 안 될 수도 있죠. 그래도 해보고 싶은 거 해본 거잖아요. 어떻게든 되겠지.” 그는 낙천적이다. “자존감이 튼튼”하다고 한다. 농부 아버지 영향이 컸다. “아버지가 항상 그러셨어요. ‘직장 생활 더럽고 힘들면 때려치워라! 아버지가 밥은 먹여 줄게.’” 그 말이 그렇게 든든했다는 그는 협동조합이 남들이 그려놓은 길이 아닌 길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비빌 언덕’이 돼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을 빵집 ‘동동’을 나와 협동조합의 첫 프로젝트였던 상상놀이터까지 걸었다. 오후 2시, 아직 아이들은 학교에 있다. 조영(44) 상상놀이터 마을선생님이 식탁에 과자를 차려놓는다. 그는 6년 전 아이를 상주중학교에 보내려고 여기 왔다. “울산에 살 때였어요. 아이가 친해지고 싶은 애가 있는데 학교 끝나면 어디로 가버린대요. 자기도 거기 다니고 싶다는 거예요. 그 친구는 복지관에 다녔어요. 우리 아이도 다녀도 되냐니 소득이 얼마 이하여야 한다더라고요. 그렇게 분리되는 거예요. 여긴 그런 거 없어요. 다 뒤섞여 놀아요. 도시에 살 때 엄마들이 아이들 친구를 맞춰줘야 해요. 학원 같이 보내는 식으로요. 그 패턴에 못 들어가면 놀이터에서 혼자 놀아요. 여기선 제가 낄 여지가 없어요. 하루는 마을 애들이 와 우리 집 창문을 두드리며 그러는 거예요. ‘ ○ ○ 야, 놀자!’ 아, 이게 가능하구나.”
상상놀이터 칠판엔 동아리 모임 시간이 적혀 있다. 어른들 용이다. 주민 중 기타 치는 사람이 기타를 가르쳐주는 식이다. 상주마을회관 2층 엄살롱은 그중에서도 유명한데, 엄경근 학교 미술교사한테 그림을 배운 지역주민들이 개인전도 열었다. “상주에 이런 공동체가 있다는 걸 몰랐다면 저 혼자선 귀촌이나 대안교육 엄두를 못 냈을 거 같아요. 아직도 불안할 때 있죠. 도시 사람들 얘기 들으면 우리 아이만 이러고 있어도 될까 싶고. 저 혼자라면 불안했을 텐데 여기 사람들이 있잖아요. 의지해서 사는 거죠. 종수씨(이사장)가 아이들 다 키웠잖아요. 그 아이들 보면서, 괜찮구나 하는 거죠.”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 대여섯 명이 ‘와~’ 상상놀이터로 몰려 들어왔다.
글·사진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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