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그림이 무엇으로 보이나? 이 작품을 만든 장은혁(15) 작가의 답은 이렇다. “뱀이야!” 뱀은 음흉한 동물이라는 고정관념을 지르밟는 작품이다. 장 작가가 색종이를 오려 붙인 것이다. 발달장애인인 장 작가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어머니 임미연씨는 종이와 가위를 줬다. 2023년 장 작가의 개인전 ‘샥둑샥둑 가위로 들려주는 수다’ 전시가 열렸다. 사회적기업 비컴프렌즈가 벌이는 발달장애인 예술가 양성 프로젝트 ‘비 마이 프렌드’(Bee my friend) 가운데 하나다. 2024년 5월3일 경남 양산 친환경 비(Bee)카페 오봉살롱에서 만난 김지영(54) 비컴프렌즈 대표는 자기 휴대전화 첫 화면에 담은 이 귀여운 뱀을 보여줬다.
2017년 겨울,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김지영 대표는 양산시 사회적기업 아이디어 공모 펼침막을 보고 이 이름을 떠올렸다. ‘비컴프렌즈’(Bee+Communication, Community+Friends), 꿀벌과 소통하는 친구들, 그리고 그 친구들과 친구 맺는 커뮤니티. 교육방송에서 꿀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직후다. 그의 머릿속에서 도시 양봉과 발달장애인이 만났다. 그 많던 꿀벌은 어디로 갔을까? 기후위기, 미세먼지 등으로 꿀벌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 2010년 돌림병이 돌아 국내 토종벌의 90%가 사라졌다. 꿀벌이 사라지면 작물의 3분의 1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꿀벌이 사라진 곳에선 사람도 살지 못한다. 도시 양봉이 필요한 이유다.
발달장애인들은 어디에 있을까?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를 보면, 2017년 기준 시설 거주자 가운데 78%가 발달장애인이다. “한국은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해요. 만나기 어렵다보니 (비장애인이) 발달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요.” 발달장애인이 도시 양봉을 직업으로 삼는다면? 생산한 꿀로 가공품을 만들어 팔고 도시 양봉 교육도 벌인다면? “공익에 도움이 되고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발달장애인과 도시 양봉이 잘 맞을 것 같았어요.” 책 <패턴 시커>(2024, 디플롯)의 부제목은 ‘자폐는 어떻게 인류의 진보를 이끌었나’다. 자연계의 놀라운 패턴을 발견한 과학자 중엔 시각적 기억력이나 관찰력이 뛰어난 자폐 성향이 짙은 이가 많다. 김 대표는 이 아이디어로 덜컥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제 진짜 벌을 키워야 하나?” 서울에서 광고기획자로 20여 년 일한 그는 벌을 키워본 적이 없었다.
2017년 겨울방학, 서너 시간이라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양산엔 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계절학교가 발달장애인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는데 신청자가 너무 많아 추첨을 했다. 김 대표가 치료실에서 만난 6명은 모두 추첨에서 떨어졌다. 하루 서너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부모는 마트에 가기도 힘들다. 화가 난 6명은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하루는 요리하고 하루는 박물관 가는 식이었다. 비컴프렌즈의 교육 프로그램 ‘뭐든학교’의 씨앗이었다. “내가 무슨 사회적기업이냐” 하던 6명은 “내 아이가”가 아니라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판을 한번 제대로 벌여보기로 했다.
10년 이상. 누군가는 경력단절 기간이라고 하겠지만 그들에겐 “발달장애인에게 밀착해 치열하게 공부한 시간”이다. 서류에 쓰려고 이력서를 받아본 김 대표는 울컥했다. 사회복지, 미술치료, 바리스타….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다들 뭔가를 공부하고 있었다.
그들의 연대는 7년째 깨지지 않았다. 비법은 5년 동안 받은 집단상담 ‘자분자분’이다. “처음엔 아이 이름만 나와도 다들 울었어요. ‘시부모가 나 때문에 애가 이렇게 됐대’ 이런 사연들을 쏟아내요. 자분자분 클래스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분리’예요. 아이는 나 혼자 오롯이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 아니에요. 엄마가 자신다워질 때 아이에게도 더 큰 행복을 줄 수 있음을 깨달았어요.” 멤버들은 각자 장기를 키워갔다. 그런데 꿀벌은 어떻게 키우지?
“내가 벌을 30~40년 동안 키웠는데도 아직 공부가 부족한데, 발달장애인은 절대 못해요.” 김 대표가 한 양봉가에게 들은 말이다.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꿀벌 세 통을 사서 시작했다. 첫해 겨울이 오기 전 어느 날 아침, 벌통 다섯 통이 모두 비었다. 말벌 탓이다. 비컴프렌즈 멤버들은 거의 독학으로 꿀벌에 대해 알아갔다.
그리고 6년 뒤 그와 인터뷰하는 도중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한 주민이 벌집을 발견했는데 꿀벌집인지도 모르겠다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말벌집은 없애지만 환경지표종인 꿀벌은 보호해야 한다. 꿀벌에 대해 배운 동네 주민은 그걸 알고 있다. 비컴프렌즈는 동네 목공예가가 만든 꿀벌장을 들고 출장 교육도 벌인다. 오봉초등학교 옥상엔 비컴프렌즈의 벌통이 있다. 이 초등학교 ‘허니봉봉’ 동아리와 함께 관찰하고 돌본다. ‘허니봉봉’은 장애·비장애 구분 없는 통합 동아리다. “동아리 활동 시간에 발달장애아들은 보통 특수반에 내려가요.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어요.”
비컴프렌즈가 벌이는 모든 활동의 기본은 ‘통합’이다. “상처가 정말 많아요.(김 대표는 잠시 말을 멈췄다.) 학교에선 장애아이가 수업에 방해되면 분리해요. 학업이 중요해질수록 심해져요. 같은 반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고민하는 시스템이 부족해요. 그래서 학교가 못하는 통합교육, 마을에서 해보자고 한 거예요.”
통합교육 내용은 이렇다. 같이 논다. 비컴프렌즈의 교육 프로그램 ‘뭐든학교’ 첫해, ‘슬기로운 놀이터’라는 이름으로 매주 토요일 놀이터에서 그냥 놀았다. “발달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은 놀이터 가는 게 힘들거든요. 다른 부모들한테 한 소리 들을까봐 두려운 거죠. 그냥 우리끼리라도 놀자고 한 건데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비장애 아이도 하나둘 모여들었다. 놀이터에 스크린을 걸고 영화도 봤다. “동네 식당 사장님이 떡 돌리고 전기도 끌어다줬어요. 저희가 꿈꾸던 통합교육이 놀이터에서 일어난 거죠.” 11월 피날레 파티 땐 마을주민 100여 명이 모여 잔치를 벌였다.
아마도 당신은 이 그림을 보면 놀랄 거다. 도시 위로 까만 밤이 내렸다. 밤하늘에 색색깔 폭죽이 환희처럼 터진다. 초등학교 4학년 장애·비장애 아이들이 함께 그린 작품이다. 마을의 재주꾼들이 선생님으로 참여하면서 ‘뭐든학교’ 수업도 다양해졌다. 바느질, 제빵, 가죽공예…. 400여 명이 모인 온라인 밴드에 수업 일정을 올리면 5분 안에 마감된다. ‘뭐든학교’는 2023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인가받았다. 비컴프렌즈와 ‘뭐든학교’는 장애·비장애 통합문화예술단을 시작으로 올해 여러 지역 기관과 협력해 통합축구단도 만들었다.
통합은 세대를 넘어 확장됐다. 잭슨 폴록 작품인가? 오봉살롱 입구에 걸린 대형 그림을 보면 이런 생각이 떠오를 테다. 김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2023년 말 여섯 살부터 예순 살까지 12명이 모였다. 서로 별명을 부르며 평어를 썼다. 천막 천 위에 캔버스를 깔았다. 애·어른 할 것 없이 양말 벗고 바지 걷고 물감을 뿌리고 찍었다. 오봉살롱의 대표작은 그렇게 탄생했다. 2017년 서울에서 양산으로 이사 온 그는 이런 연결이 일어나도록 1층에 친환경 비카페 오봉살롱을, 2층엔 자신과 비컴프렌즈 멤버인 박유미(현 ‘뭐든학교’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씨 가족이 살 집 두 채를 올렸다. 2층 살림집 두 채의 이름은 ‘호우시절’, 한 채엔 김 대표가 살고, 다른 한 채는 지금은 도시 양봉을 경험할 수 있는 스테이로 운영 중이다.
“워커홀릭”이던 그의 삶은 39살에 첫아이를 낳고 “완전히 바뀌었다”. 아들은 남달랐다. 돌도 되지 않아 알파벳과 도형을 구분했다. 아이가 20개월 때 어린이집 원장이 그에게 시시티브이(CCTV) 화면을 보여줬다. 다른 아이들이 함께 놀 때 아들은 벽면만 훑고 다녔다. 치료센터에서는 다들 “엄마가 아이에게 올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이만이 중심인 그 상황이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죽을 것 같았어요.” 아들이 다섯 살 때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 공공디자인을 공부했다. 일자리를 잡을 순 없었다. 아이가 학교 갈 즈음 예측 불가능한 돌발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측한 적 없는 방식으로 꿀벌의 경이로운 세계가 그 앞에 펼쳐졌다. “벌이 제 스승이에요. 그 귀여운 엉덩이를 보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 꿀벌은 생애주기에 맞춰 제 역할을 받아들인다. 제 속도에 맞게 그 역할을 열심히 한다.
비컴프렌즈의 발달장애인 두 직원은 부지런한 ‘꿀벌’이다. 그의 예상이 맞았다. 벌들이 화나면 윙~ 소리가 변하는데 이 직원들은 이 변화를 누구보다 빨리 알아챈다. 비컴프렌즈는 영세 양봉업자들에게서 꿀벌이 꽃물을 먹고 만든 꿀을 사 ‘오봉미엘’이란 이름으로 비누, 스틱꿀 등을 제작하는데, 그때 이 직원들의 ‘강박적’ 정밀함이 빛을 발한다. 비컴프렌즈는 이들의 경험을 기록해 발달장애인 중심 도시 양봉 교육 직무설계(매뉴얼)를 만들어가고 있다.
어느 날, 오봉초등학교 급식실 나무에 벌집이 매달렸다. 꿀벌인지 말벌인지 구별해야 하니 그가 119와 함께 출동했다. 꿀벌집이었다. 119 사다리가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의 결론은 “그냥 두자”였다. “‘내가 쏘일까 무서우니 죽여주세요’가 아닌 거예요. 꿀벌이 인간과 공존해야 하는 곤충이라는 걸 아는 감수성이 이렇게 높아졌구나, 보람을 느꼈습니다.” 비컴프렌즈는 꿀벌과 인간,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넓혀갔다.
2020년 10월 경남도립미술관 3층 벽면에 발달장애인 33명의 영상이 떴다. 비컴프렌즈의 전시실이다. 스크린 하나는 비었다. 그 앞에 서면 관객이 34번째 얼굴이 돼 33명과 눈 맞추며 인사를 나누게 된다. “안녕하세요.”
김소민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
*[희망제작소×한겨레21 공동기획] X의 지역작당: 경쟁이 아닌 연대, 개인이 존중받는 공동체, 자연을 해치지 않는 인간의 삶을 찾아 다 아는 길 대신 미지의 X를 택한 사람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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