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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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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지켜드릴게요” 비기독교인들의 연대

교회 폭력에 맞서 이어진 연대자들의 든든한 응원에도 최고 형량인 정직 2년 판결
등록 2022-11-17 04:26 수정 2022-11-18 01:37
2020년 10월15일 이동환 목사에 대한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 본부에서 연 첫 재판의 선고공판이 열린 경기도 용인의 교회 앞에서 이 목사와 ‘성소수자축복기도로재판받는이동환목사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축복은 죄가 아닙니다’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성소수자축복기도로재판받는이동환목사대책위원회 제공

2020년 10월15일 이동환 목사에 대한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 본부에서 연 첫 재판의 선고공판이 열린 경기도 용인의 교회 앞에서 이 목사와 ‘성소수자축복기도로재판받는이동환목사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축복은 죄가 아닙니다’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성소수자축복기도로재판받는이동환목사대책위원회 제공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식을 집례했다는 이유로 목회자가 교회 재판에 넘겨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교계 안팎에서 이동환 목사에게 연대하겠다는 성명이 발표됐다. 가장 먼저 연대성명을 보내온 곳은 ‘한국퀴어신학아카데미’(퀴신아)였다. 퀴신아 구성원들은 이 소식이 공개되기 전부터 애타는 마음으로 상황을 주시하다가 긴 싸움에 오르는 우리의 결심이 기사로 공개되자 지체 없이 성명을 내고 연대의 마음을 보냈다.

동환의 신학교 동기들 또한 성명을 내고 재판부가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해온 그의 목회적 삶을 이해해야 하며, 쟁점이 된 사안에 충분한 신학적·신앙적 연구가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환의 동기들은 대부분 일선 교회의 목회자다. 교단에 이미 작동하는 성소수자 혐오 조항(기독교대한감리회 ‘교리와 장정’ 제3조 8항, 동성애를 마약이나 도박과 같은 범죄로 취급) 앞에서 현직 목회자로 사역하는 동기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입장을 발표했다는 소식에 동환은 매우 놀랐다. 그 뒤 여러 목회자가 해당 교회와 지방회(감리회의 행정단위로서 연회보다 더 작은 단위)에서 문책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1812명의 이름에 담긴 무게

노동계, 시민사회단체에서도 탄원서를 써서 “거리에서 거대 권력에 맞서 싸우며 힘들어할 때 기독교 복음으로 말씀을 전하고 함께 기도해준 이동환 목사의 지지와 격려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라고 증언해줬다. 동환이 기독교대책위로서 해고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며 현장 기도회를 하면서 생긴 인연이다. 사실 거리에서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기독교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변변찮다. 그저 우리가 제일 잘하는 일, 신앙공동체가 2천 년 넘게 이어온 일을 했다. 십자가를 놓고 예배처소를 세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로움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끈질기게 연대했다. 그렇게 투쟁 당사자, 그리고 연대하는 기독교인으로 관계 맺었지만 이제는 동환이 투쟁의 당사자가 되어 현장을 함께했던 옛 동지들의 연대에 기대게 됐다. “목사님, 이제는 우리가 목사님을 지켜드릴게요” 하는 메시지를 보고 그는 부끄러워했지만 나는 많이 울었다. 교회의 폭력으로부터 목사를 지켜주겠다는 비기독교인들의 말이 너무도 아이러니하고 또 진실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노동자와 운동가, 정당인이 자신의 이름을 적어 동환의 진심을 변호하고 응원하는 성명을 보내줬다.

우리 대책위(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 차원에서 서명을 받은 성명서도 있었다. 제목은 ‘두려움 없는 축복을 향하여’라고 붙였다. “빛으로 어둠을 이기시는 하나님, 사랑이 으뜸이라 하신 예수님, 우리를 연대하게 하는 성령님”의 이름을 부르며 “소외된 자와 함께하는 이동환 목사의 여정에 당당히 함께해나갈 것이다”라고 썼다. 이 성명서에는 감리회와 비감리회 그리스도인, 또 비그리스도인을 모두 합쳐 총 1812명이 이름을 적었다. 두렵고 외로운 싸움의 길에 나서는 것 같아도 여기에 서명한 이들이 보낸 마음의 무게를 떠올리면 배 안쪽 깊숙이 묵직한 용기가 자리잡았다.

2020년 8월21일, 경기도 안양에 있는 경기연회 본부에서 첫 재판이 시작됐다. 감리회 헌법인 ‘교리와 장정’에 따르면 피고소인, 피고발인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교회 재판에서는 전문 법조인이 아니어도 변호인이 될 수 있다). 우리 변호인단은 모두 43명이었다. 평소 아무 친분이 없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이 이 사건에 연대하기 위해 9명이나 이름을 올렸고, 감리교 목회자 선배들과 교인 34명이 힘을 보탰다. 재판 첫날 현장으로 달려온 변호인은 모두 11명, 민변 변호사 2명과 목회자 9명이었다. 경기연회 재판위원회는 재판 장소가 협소하고 코로나19 방역으로 거리두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변호인 모두가 출입할 수 없다고 했다. 교리와 장정에 따르면 교역자와 교인은 2심제에 의한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변호인 11명이 문제가 아니라 일반인 방청까지 허용해야 하는 것이 재판의 원칙이고 권리인데 재판위원회는 좁은 회의실을 재판 장소로 골라두고는 방역 핑계를 댔다.

이른 아침부터 안양으로 달려가 ‘축복은 죄가 아니다’ ‘재판위원들의 현명한 판단을 부탁한다’는 손팻말을 들고 있던 대책위 구성원들은 속이 빤히 보이는 행정에 분노했다. 이미 우리와 나란히 서서 ‘죄를 축복할 수는 없다’ ‘이동환 목사님 주님께로 돌아오라’는 손팻말을 든 청년들과 그들을 인솔하는 목사 때문에 신경이 바짝바짝 서 있던 터였다. 반동성애 기조를 가진 어떤 매체는 연신 온라인 생중계를 하며 우리의 긴장감을 높였다.

그 와중에 연회 사무실에서 고성이 오갔다. 재판위 처분에 항의하는 우리 변호인들의 목소리였다. 심각한 상황임에도 순간 웃음이 났다. 평소에 남성 선배들이 고집을 부리거나 목소리 크기로 승부하려는 것 같으면 슬쩍 자리를 피하고 멀리해왔다. 그렇지만 교단의 불합리한 힘 앞에서, 소리 지르고 항의하는 기본적인 저항이 위력을 발휘했다. 어찌나 든든하던지! 결국 우리 쪽 변호인 3명과 당사자, 교계 언론 기자 1명이 동석하기로 하고 재판이 시작됐다. 하나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2022년 3월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광장에서 열린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제37회 한국여성대회. 믿는페미 제공

2022년 3월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광장에서 열린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제37회 한국여성대회. 믿는페미 제공

여성적, 순종적… ‘목회자 사모’에 대한 통념

2차 공판은 2020년 9월29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 교회에서 열렸다. 지난 공판 이후 이의제기를 받았는지 재판부는 이제 아무 언론도 입장하지 못하게 했다. 다만 몇 명의 방청이 허용돼 내가 가족 자격으로 재판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방역이 엄혹한 시절이라 출입명부를 적고 체온을 재야 했는데, 출입구에 테이블을 놓고 앉은 행정 담당자들에게 우리 대책위 집행위원장이 나를 가족이라고 소개하는 순간, 그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모가 왔어?” 하면서 목을 길게 빼고 주위를 둘러봤다.

나는 이미 그들 앞에서 명부를 적고 있었지만 두리번대는 그들의 눈은 나를 투명하게 지나쳐 허공을 헤맸다. 그 기묘한 어긋남의 순간, 나는 그들의 눈에서 이른바 ‘목회자 사모’에 대한 통념을 읽었다. 오랜 세월 동안 교회 안에서 온전한 인간이란 남성을 뜻했고, 여성은 남성을 보조하는 자 또는 유혹해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음란한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든 가정에서든 남성이 중심이 돼야 하며, 여성은 남성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남성 가장과 재생산·돌봄을 담당하는 여성, 그리고 규율에 순종하는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은 교회가 수호하는 가장 이상적인 가족 모델이자 신앙에 충실한 가정의 본이다. 재판이 열린 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지독히 ‘여성적인’ 차림과 몸가짐의 여성을 ‘사모’로 찾았을 것이고, 나는 그 렌즈에 포착되지 않았다.(아쉽다, 한복을 입고 갔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실은 교회가 수호하는 이 성스러운 가족 모델을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존재가 바로 성소수자다. 동성애를 악마화하며 편견을 조장하는 기독교 세력의 논리 중에는, 동성애자가 남녀 간 결합으로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없으니 하나님의 섭리를 배반하는 자들이라는 맥락이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늘어나고, 이성애 결합만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이루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는데도, 교회만은 여전히 이성애 규범을 강조하며 가부장적 가정을 수호하는 것이다.

세계 교회들 역시 여성의 지도력을 존중하고 권위를 인정하거나, 성별 권력차로 벌어지는 교회 성폭력을 예방하는 장치를 마련하거나, 성소수자와 더불어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다양한 가족 결합을 인정하며 축복하는 등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 열린 감리회 행정총회(감리회의 최고의결기구)에서는 오직 동성애에 반대하려는 이유로, 세계교회협의회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건의안이 본회의에 올라와 표결 직전까지 갔다. 세계 교회가 오래도록 지켜온 ‘교회의 일치성’이라는 중요한 가치보다 동성애 반대와 척결이 더 급하다고 여겼다. 이런 한국 교회에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굳건한 이성애 규범과 가부장성을 동력으로 교회를 유지하는 한 ‘남성’을 제외한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억압받고 차별당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믿는페미’로서 이동환 목사의 저항에 함께하는 이유다.

2020년 7월28일 이동환 목사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작성한 탄원서에 연명한 이들. 성소수자축복기도로재판받는이동환목사대책위원회 제공

2020년 7월28일 이동환 목사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작성한 탄원서에 연명한 이들. 성소수자축복기도로재판받는이동환목사대책위원회 제공

축복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습니까!

선고공판이 열린 2020년 10월15일, 재판위원회는 방청인 모두를 재판정에 들어오도록 했다. 고발인 쪽은 동환에게 목사 자격이 박탈되는 면직을 구형한 상태, 우리 쪽은 무죄를 꿈꾸지만 비교적 낮은 형량인 정직 3개월 혹은 6개월을 예상했다. 재판정에 긴장이 흐르고 재판위원들이 입장해 판결문을 읽었다. 정직 2년. 면직은 면했지만 목사 자격이 중단되는 정직으로서는 최고 형량인 2년, 중형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대책위 모두는 탄식했고 퇴장하는 재판위원들에게 “축복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습니까!” 항의하며 소리쳤다. 기독교 매체 <뉴스앤조이> 기사에 따르면 연회 재판위원장인 홍성국 목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까 나올 때 ‘왜 축복한 게 죄냐’고 떠들던데, 축복은 얼마든지 목회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이다. 축복한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이동환 목사가 ‘나는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만 했어도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도 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다면 이 재판이 시작될 필요도 없었다는 것을. 하지만 법이 불의할 때 정의로운 시민은 처벌받을 수밖에 없고 반드시 저항할 수밖에 없다. 우리를 점점 더 투사로 만드는 것은 불의한 교회법이고, 또 그 불의함을 수호하는 교계 어른들이었다.

노랑조아(김은선) 믿는페미 활동가

*무지개와 십자가: 크리스천 페미니즘 운동 ‘믿는페미’ 활동을 하는 노랑조아(김은선)가 배우자 이동환 목사와 함께 교회 내 성소수자 혐오, 가부장성에 맞선 이야기를 전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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