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2월20일 서울 광화문 감리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최정규 변호사와 이동환 목사가 ‘무죄’라는 글자가 붙은 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 제공
우리는 재판을 통해, 기독교대한감리회 헌법(교리와 장정)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정당화할 뿐 아니라 해당 조항을 적용해 목회자를 징계하려 할 때 얼마나 불합리하고 부끄러운 일이 벌어지는지 드러내고자 했다.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로 서약한 목회자가 자기 소임을 다했을 때 도달하는 곳이 교단 재판정의 피고석이라는 아이러니(모순)와, 하나님의 뜻은 편협한 정죄에 있지 않고 다양한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에 있다는 것을 밝히고 싶었다. 싸움이 길어지며 계속 만나고 연대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겹 한겹 자라난 꿈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겪는 싸움의 실제는 수치스러울 정도로 형편없었다. 2022년 1월25일, 총회재판위원회가 이전의 상소각하 결정을 뒤집고 2심 재판을 소집했다. 공판에는 감리회 헌법상 검사에 해당하는 경기연회 심사위원회 위원장 또는 서기가 반드시 참석해야 했으나 그들은 반동성애 진영을 옹호하는 활동을 해온 로펌의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보내고는 오지 않았다. 말하자면 재판날 검사가 변호사를 대신 보내고 불참한 모양새였다. 재판이 성립되지가 않았다.
1차 공판이 다시 열린 것은 시간이 훌쩍 지난 6월이었다. 6월27일 소집된 두 번째 공판에서 상대 당사자가 또다시 불참하는 일이 벌어졌다. 참고인들이 전화하자 “미안하다, 까먹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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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재판이 성립되면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 피상소인(경기연회 심사위원회) 쪽에선 유독 참고인들의 발언이 활발했는데, 재판의 쟁점이 ‘이동환 목사의 행위가 교리와 장정 재판법 제3조 8항(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에 저촉되는가’를 입증하는 데 있었음에도 자꾸만 초점에서 어긋난 발언을 했다. 한 사람은 별안간 자신의 음욕(음란한 욕심. 기독교에서 금기시된다)을 고백했다. 누구에게나 음욕이 있고 자신에게도 있으며, 이 많은 사람이 지옥에 가도록 둘 수 없으니 모두 천국으로 이끌어야 한다면서 자신의 목회 소신을 펼치다 재판부의 제지를 받았다. 또 어떤 이는 감리회가 싫다면 그만두고 나가면 그만이지, 감히 교리와 장정을 부인하고 137년 된 한국감리회의 역사를 바꾸려 한다며 동환이 하나님의 이름을 능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2년 10월6일 결심공판에서 상대 쪽 변호사는 “이동환 목사가 지금이라도 ‘동성애는 죄입니다’라고 고백하면 다 끝날 일인데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나는 그가 동환을 조롱하며 모멸감을 주고 있다고 느꼈다.
2심 재판 중, 재판위원이 동환에게 “동성애가 죄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동환에게는 뼈아픈 순간이었을 것이다. 고발 뒤 재판이 시작되기 전 자격심사위원회에 불려다닐 때부터 끈질기게 “그래서 동성애가 죄야, 아니야?”라고 시험하는 이들에게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던 그였다. 그때마다 그들은 비겁하다며 동환을 비난했다.
이후 ‘차별을 넘어서는 감리회모임’과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대책위)가 주관한 재판 평가회에서 홀릭(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은 동환의 침묵이 우매한 질문을 무효로 만들었다며 “이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이 아니라 질문이 나오는 토대 자체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언했다.(‘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정직 2년… 이동환 목사 재판은 무엇을 남겼나’, <뉴스앤조이> 2022년 11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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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는 그해 10월20일에 있었다. 교단 재판으로서는 마지막 기자회견을 준비하며, 대책위는 두 가지 버전의 성명을 계획했다. 유죄 확정, 그리고 무죄판결이었다. 사실 누구도 유죄를 피해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동환만큼은 무죄판결에 무게를 뒀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릴 수 없다고 했다.
선고 당일의 기억은 유난히 희미하다. 많은 동지가 찾아와 응원했고, 판결문을 읽는 재판위원의 목소리가 드문드문 기억나지만 그때의 감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상소 기각, 1심의 유죄판결 확정이었다. 재판부는 “정직 2년이 비록 약한 징계는 아니지만, 피고인의 징계로 감리회의 전통과 질서가 유지되는 측면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원심의 정직 2년이 피고인에게 심히 가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성소수자를 향한 하나님의 차별 없는 사랑보다 그들을 적극적으로 혐오함으로써 지켜진다고 여기는 감리회의 ‘전통과 질서’를 선택했다.

2023년 2월2일 성소수자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받은 이동환 목사의 징계무효소송 기자회견이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렸다.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 제공
우리는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환은 “우리의 노력과 저항은 마중물로서 새 세상을 열어가는 일에 사용될 것”이라며 “끝끝내 사랑이 이길 것이기에 그 사랑이 온 세상에 봄꽃처럼 만발하는 날을 기대하며 우리의 우애를 돈독히 하여 이 겨울을 버텨낼 것입니다”라고 발언했다. 많은 동지가 감리회의 판결을 규탄하고 동환을 지지하며 계속해서 함께 걷겠다고 했다. 대책위는 성명을 내어 의지를 밝혔다. “우리는 불의한 교회의 시대와 불화하고 가는 곳마다 불경한 파열음을 낼 것이다. (…) 우리는 반드시, 우리를 저주하고 처벌한 당신들까지도,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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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돌릴 틈 없게도, 감리회 총회재판부는 바로 재판비용 청구 통보를 해왔다. 항소하며 이미 지급한 기탁금 700만원보다 430만원가량 비용이 더 들었으니 추가 비용을 내라는 내용이었다. 공문에 적힌 비용 청구 내용에는 재판위원장의 결격 사유로 재판을 진행하지 못한 날, 피상소인이 참석하지 않았던 날 등 공판이 열리지 않아 허탕 치며 돌아가야 했던 날에 대한 비용까지 모두 포함됐다. 대책위는 재판비용 납부와 동환의 일상회복 기금을 목적으로 모금을 진행했다. 11월 한 달여 모금 기간에 많은 이의 도움으로, 무사히 재판 추가 비용을 내고 동환의 건강과 심리상담 등 일상회복을 위한 예산을 편성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대학원을 졸업한 뒤 반성매매운동을 하는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동환은 이번 재판을 계기로 시작한 크리스천 퀴어-엘라이(지지자) 운동단체인 ‘큐앤에이’ 활동에 전념하며 일상에 적응해갔다. 또한 2심 재판이 채 끝나기 전 이미 정직 2년이 다 지나갔기에, 항소심이 마무리되며 동환도 담임목사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영광제일교회 교인들은 함께 기뻐했고, 우리는 신앙공동체 생활에 활기를 띠어갔다.
그러던 중 동환에게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동성애 동조’ 혐의로 동환을 추가 고발한다는 내용이었다. 대체 타인을 괴롭히는 일에 왜 이리도 열성인지 감탄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 고발이 어떻게 진행되든, 교회 안 성소수자와, 또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환대하는 목회자를 향한 공격에는 끝이 없겠구나 싶었다.
2023년 2월2일 목요일 오전 11시,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징계받은 이동환 목사 징계무효소송 기자회견이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있었다. 동환은 대책위 회의를 거쳐, 징계무효확인소송을 통해 이 싸움을 더 적극적으로, 끝까지 해나가겠다는 뜻을 굳혔다. 교단 재판 때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공동변호인단을 맡아줬다. 기자회견에서 박한희 변호사는 “이 싸움은 이동환 목사 개인의 투쟁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다양성, 인간의 존엄이라는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가치가 어떻게 보장돼야 하는지, 감리교, 나아가 개신교단들이 혐오와 차별이 아닌 연대와 환대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투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던 2023년 2월4일, 성소수자들의 벗으로 불리며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었던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임보라 목사의 부음을 들었다. 그는 동환이 올랐던 2019년 인천퀴어문화축제의 축복식을 함께한 목회자이고, 크리스천 퀴어-엘라이 운동에서 동환이 가장 존경하고 의지하는 선배였으며, 싸움의 여정마다 우리 부부를 살피고 보듬어준 어른이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여성, 성소수자, 탄압받는 노동자와 약자의 편에서 뜨겁게 운동했고, 제주 강정마을의 평화를 위해, 반려동물 축복식 등 동물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 마음을 쏟았다. 그가 온 생을 불사르며 나눴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빈소에는 그의 사랑을 기억하고 증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났다.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나와 동환 모두 임보라 목사를 어떻게 간직하고 또 떠나보내야 하는지 정리하지 못했다. 아마 그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다. 어떤 언어로 애도하고 또 추억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아직은 마음 편히 울지도 못했다. 아는 것은 단 하나, 지금 걷는 이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뿐이다. 그가 꾸었고 그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이 품은 꿈, 누구도 차별받거나 억압당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는 세상을 향해 “아픔이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 노래했던 임보라 목사를 기억하며 계속해서 걸어가려 한다. 모두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빈다.
노랑조아(김은선) 믿는페미 활동가
*크리스천 페미니즘 운동 ‘믿는페미’ 활동을 하는 노랑조아(김은선)가 배우자 이동환 목사와 함께 교회 내 성소수자 혐오, 가부장성에 맞선 이야기를 전해온 ‘무지개와 십자가’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연재를 사랑해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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