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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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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퀴어를 축복했을 뿐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고 동환은 말했다… “하나님께선 이 땅의 다양한 소수자와 함께하십니다”
등록 2022-10-03 22:42 수정 2022-10-04 08:33
2019년 8월31일 인천 부평역 광장에서 열린 제2회 인천퀴어문화축제 중 ‘함께하는 축복식’에서 이동환 목사가 꽃잎을 뿌리고 있다.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2019년 8월31일 인천 부평역 광장에서 열린 제2회 인천퀴어문화축제 중 ‘함께하는 축복식’에서 이동환 목사가 꽃잎을 뿌리고 있다.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주문. 피고인 이동환 목사를 정직 2년에 처한다. 재판비용은 모두 피고인의 부담으로 한다. (중략) 범과(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범죄’를 이르는 말) 사실. 피고인 이동환 목사는 2019년 8월31일 인천 퀴어 축제에 초청받아 참여한 후 성의를 착용하여 동성애자 축복식을 집례함으로써 동성애에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하였다.”

-2020년 10월15일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 재판위원회(홍성국 위원장) 판결문

판결이 울려 퍼지자 여기저기에서 탄식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직 2년은 정직으로선 최고형량으로, 예상보다 훨씬 무거운 징계였다. 우리는 길어야 정직 1년을 생각했다. 항소심에서 확정되면 동환은 향후 2년간 감리회 내에서 목사로서 목회하지 못한다. 사실상 목사직을 내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판결 뒤 다음 행보를 어떻게 내디뎌야 할지 지난한 토론을 했던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는 그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소 의지를 밝혔다.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밝힙니다. 저는 이 판결에 불복합니다. 저는 계속해서 이 땅의 소수자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 축복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것입니다.”

-이동환 목사 입장문

노랑조아의 ‘노’+동환의 ‘동’, 노동부부

쌀쌀하던 몇 년 전 어느 겨울, 나는 동환을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앞에서 만났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 열리는 ‘재능교육 해고노동자와 함께하는 촛불기도회’ 자리에서였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같은 신학대학교에서 공부하며 서로를 알고 있었지만, 이른바 운동권 동아리에서 도시 빈민의 인권과 주거권, 노동권 운동을 하느라 데모 현장을 뛰어다니던 나와 달리 그는 ‘은혜로 불타는’ 뜨거운 신학생이었다.

각자 사는 세상이 달랐던 만큼 졸업 뒤 마주칠 일도 없거니와, 기독운동 현장에서 만나는 동문은 정해져 있기 마련인데, 갑자기 그가 해고노동자 투쟁 현장에 나타났다. 그는 마치 ‘성실이 장기’라는 듯 매주 근실하게 기도회에 참여했고, 어느새 동지들의 신뢰를 받으며 운동의 한 부분을 감당했다. 그 뒤 투쟁을 논의하고 자주 만나게 되면서, 우리는 물 흐르듯 연애하고 곧 결혼했다. 내 별칭인 ‘노랑조아’의 노, 동환의 동을 따서 우리는 자칭 타칭 ‘노동부부’라 불렸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각자의 활동, 그리고 함께하는 목회가 서로 성장해가는 과정이었다. 그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간사를 거쳐 평화교회연구소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평화와 생명, 정의를 21세기 한국 교회와 사회에서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실험하는 일을 했다. 나는 젊은 세대의 기독여성운동이 필요하다고 느끼며, 동지들을 모아 크리스천 페미니즘 운동인 ‘믿는페미’를 결성하고 교회 내의 뿌리 깊은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고발하는 활동을 했다. 또한 동환과 함께 노동권 투쟁 현장에 주도적으로 연대하면서 기독교대책위 활동을 했다. 우리는 각자의 지향을 존중하는 활동가이자, 기독운동을 펼쳐나가는 동지였다.

동환이 목사로서 한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였기 때문에, 우리는 경기도 수원에 자리한 한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했다. 어느 작은 빌라 지하에 있는 오래된 예배당에서, 청소년 교인 열댓 명과 함께, 변변한 조리대나 가스불도 없이 동환은 교회 밥을 해가며 목회하고 있었다.

가부장제는 일반 사회보다 교회 안에서 더 지독하다. 내가 속한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일찍이 여성목사를 배출했지만 여성의 지도력이 발붙일 땅은 너무도 작아서, 여성이 신학교에 진학해도 모든 과정을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는 비율은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다. 그 남성 목회자와 결혼하는 여성은 이른바 ‘사모’라고 하는데, 가정에서 남편을 내조하고 성생활을 책임져 그의 목회에 부적절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며, 교회 목회를 도와서 주일예배 식사와 예배당 환경 조성, 어린이 교육, 피아노 반주 등을 맡도록 요구받는다. 우리 부부는 이러한 성차별적 역할 분담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서로 힘을 합쳐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의지를 부리며 매 순간 좌충우돌했다.

2022년 9월19일 인천시청 계단에서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제5회 인천퀴어문화축제 개최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한 뒤, 인천애뜰을 행진하고 있다. 이승욱 기자

2022년 9월19일 인천시청 계단에서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제5회 인천퀴어문화축제 개최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한 뒤, 인천애뜰을 행진하고 있다. 이승욱 기자

퀴어축제에 목사가 필요해?!

그러던 2019년 8월 인천 부평역 광장에서 열리는 제2회 인천퀴어문화축제의 ‘무지개예수의 함께하는 축복식’ 행사에 목회자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크리스천 페미니즘 운동 ‘믿는페미’의 일원으로서 크리스천의 퀴어&앨라이(차별에 반대하는 연대인) 네트워크인 ‘무지개예수’에서 활동했기에, 인천퀴어문화축제와 관련해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공유하고 있었다.

“인천퀴어문화축제 축복식에 목회자가 필요해. 당장 급한데, 자기가 올라가면 어떨까?”

“좋아! 내 이름 올리라고 해!”

바로 전년인 2018년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기독교를 주축으로 한 반동성애 혐오 세력의 폭력 사태로 저지돼 모두에게 큰 상처로 남았기에, 목회자로서 할 일이 있다면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고, 동환이 말했다. 곧바로 포스터가 만들어졌다. 대한성공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그리고 기독교대한감리회 3개 교단의 목회자가 무대에 올라 축복식을 하니, 함께 하나님의 복을 누리자고 홍보했다. 당일이 되어 인천으로 향하는데 나와 동환의 휴대전화에 번갈아 알림이 울렸다. 인천에서 목회하는 동문들이 지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상황을 전했다. 인천 지역 감리회 목회자들이 포스터에서 동환의 소속을 발견하고, 교회법으로 고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고발. 고발이라면 근거는 아마도, ‘그 법’일 터였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았다.

기독교의 법이 된 ‘혐오’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입법의회는 2015년 교회의 헌법이라 할 기본법인 ‘교리와 장정’에서 동성애를 마약이나 도박 같은 범과로 다루게 했다. 입법의회는 감리회 최고의결기구로, 주로 목사와 장로가 대의원으로 참석하고 짝수 연도엔 행정총회, 홀수 연도엔 입법의회로 모인다. 2015년의 기본법 개정은 감리회가 한국 교회 어느 교단보다 앞장서서 성소수자에 대한 무지와 혐오를 공식화한 것이었다. 해당 조항(교리와 장정 일반재판법 제3조 범과의 종류)에 따르면 교인, 특히 목회자는 “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 처벌받을 수 있다. 신학적인 검토와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졸속 개정이었다.

당시 이 조항에 문제의식을 느낀 감리교인들이 모여 반대성명서를 쓰고 카드뉴스로 알리고 퍼포먼스를 곁들인 기자회견을 했지만, 이미 제정된 법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뒤이은 입법의회에서 처벌 조항이 더욱 강화되기까지 했다. 이제 어떤 말과 행동이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로 해석되는 경우 목사의 직무가 정지되는 정직, 목사 자격을 박탈하는 면직, 아예 교인으로도 남을 수 없도록 교단 밖으로 쫓아내는 출교 처분까지 받을 수 있다. 그 엄중한 판단은 모두, 졸속으로 개정된 법률에 근거해 교단 재판부가 자의적으로 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들었지만, 걱정하며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인천퀴어문화축제 무대가 긴박하게 준비되고 있었다. 나와 동환은 부평역 일대를 돌며 장미꽃잎을 모아야 했다. 다행히 조금 시들어 상품성이 없는 장미다발을 발견했고, 꽃집 사장님이 꽃잎을 하나하나 따서 물에 담가 생생하게 살려줘, 우리는 바구니마다 싱그러운 장미꽃잎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버려질 뻔한 꽃잎을 살려, 3개 교단의 목회자들이 무대에 올라 신의 축복을 흩날렸다.

“우리의 삶, 우리의 숨, 우리의 사랑과 시간이 모두 하나님의 축복 속에 있나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 땅의 다양한 소수자와 함께하십니다.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과 춤추며 웃고 떠드시는 우리들의 하나님.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을 지켜내며 더 많이 사랑받게 하소서. 더 많이 사랑하게 하소서!”

축복이 꽃잎과 함께 흩날리다

꽃잎이 바람을 타고 폭죽처럼 흩어졌고, 성공회 사제는 성수를 뿌렸다. 무대에 가운을 입은 목회자들이 올라오자 어리둥절했던 참가자들도 이내 마음을 열고 이 이색적인 축복을 즐겁게 누렸다. 기독교인들이 저주 섞인 말과 주문 같은 기도, 호전적인 노래를 부르며 침해했을 공간을 그날만큼은 축복 기원과 성수, 그리고 꽃잎으로 채웠다. 어쩌면 한국 교회가 누구보다 앞장서서 해야 했을 일이다. 참가자들은 뒤이어 행진하면서, 행진트럭에서 울려 퍼지는 찬송가를 목청껏 부르며 인천 부평 시내를 뛰어다녔다. 그 누구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다고 외치면서, 높이 뛰고 소리 질렀다.

그 뒤에 한 언론 인터뷰에서 동환은 이날 이 순간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축제 당일 아침에) 저한테 항의전화가 엄청나게 많이 왔거든요. (그래서인지 그날)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너무 어두운 표정으로 꽃을 뿌리고 있어요. 다시 돌아간다면 활짝 웃으면서 하고 싶습니다.” 나도 그 순간의 동환에게 말해주고 싶다. 앞으로 오랫동안 고단할 거라고. 여태 겪어보지 못한 힘든 길이 펼쳐지겠지만, 또한 여태 겪어보지 못한 연대의 힘을 느끼게 될 테니,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껏 활짝 웃으라고. 하나님은 우리 편이니까.

노랑조아(김은선) 믿는페미 활동가

*무지개와 십자가: 크리스천 페미니즘 운동 ‘믿는페미’ 활동을 하는 노랑조아(김은선)가 배우자 이동환 목사와 함께 교회 내 성소수자 혐오, 가부장성에 맞선 이야기를 전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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