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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세입자의 도시다 [사는집③]

서울의 자가점유 가구는 42%, 목소리 소외된 세입자들이 다수인 도시
세입자 다섯 가구가 거쳐온 14채의 ‘내 집’과 주거정책 그리고 꿈
등록 2022-01-25 08:11 수정 2022-01-26 02:05
‘집걱정끝장 대선주거권네트워크’가 발족식을 열며 대통령선거 후보들에게 주거권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집걱정끝장 대선주거권네트워크’가 발족식을 열며 대통령선거 후보들에게 주거권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값이 감춘 슬픔이 있다.
축축한 공기와 곰팡이, 창틈으로 침입하는 낯선 이의 시선, 집에 이르기까지 마주치는 유흥가의 불빛 같은 것들. 왜 이런 집이어야 하는지 세상은 잘 답하지 않았다. 왜 이런 집을 위해 노동하고, 세를 내고, 갱신에 마음 졸이고, 집주인의 지청구를 듣고, 항변하지 못했는지 답하지 않았다. 대신 집값의 등락을 말했다. ‘내 집 마련’은 의심할 수 없는 꿈이니까. 그 꿈을 향해 잠시 거기 머무는 것뿐이니까. 이 슬픔이 임시라는 건 위로 같기도 했다. 꿈 혹은 욕망이 한데 모였다고 알려지고, 집값이 오르고, 금리도 오르고, 도저히 소유에 가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듯하여 더는 꿈에서 위로를 구할 수 없는데. 아직 명료한 답은 없다. ‘내 집 마련’에 기운 정책, 선언, 공약은 넘친다. ‘내 집’이 아니어도 잘 사는 삶을 향한 말은 가뭄에 콩 나듯 있다. 그마저 부정당한다. 거의 처음이랄 만한 주거 관련 실질적인 법제도인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은 시행 1년 반 만에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값 앞에 슬픔은 감춰져 있다.

값을 거두면 보이는 기쁨도 있다.
세입자, 아니 거주자는 7만원짜리 플루어 조명, 2인용 소파, 처음 짜본 책장, 길게 빠진 떡갈나무 테이블을 집에 들여놓는다. 마룻바닥과 창틀을 윤이 나게 닦는다. 원래 내 것은 아니지만 귀하게 여겨주니 내가 주인이라고 말한다. 내가 사는 곳이므로 ‘내 집’이라고 말한다. 집값을 궁리하며 살 곳을 정하는 대신 삶이 공간을 규정하도록 했다. 그렇게 만든 공간이므로 소유자보다 더 이 집을 사랑한다.

집값과 무관한 사람들, 세입자의 슬픔과 기쁨을 들었다. 값을 뺀 진짜 집의 의미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그들을 둘러싼 제도의 역사를 나란히 본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위해 설계된 세상의 규칙은 이내 낯설어진다. ‘임장’(부동산 매매를 위해 현장을 조사하는 것)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실은 살기 좋은 동네를 탐색하고 있을 뿐인 청년 임장꾼들의 사정도 들었다._편집자주

최선의 집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는집②]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등장인물은 가명으로 표기했다.

시현씨네: 아파트 상품

서울 불광동 오피스텔 → 불광동 빌라 → 구산동 단독주택

그렇다. ‘소유’ 중심 사회를 ‘주거권’ 중심 사회로 옮긴다는 건 꽤 시간이 걸릴 일이다. 임대차보호법 하나로 모든 셋집의 안정성과 질이 한번에 나아질 리 없다. 기석씨조차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부족한 공공임대주택이 단숨에 늘어날 수 없다. 부동산 가격을 올리지 않는 무해한 소유와 적절한 임대주택 사이를 한동안 절묘하게 줄타기해야 한다.

시현씨네도 집을 살 생각을 한다. 시현씨네의 드림하우스라면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이다. “빌라에 살았다가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과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단독주택이 좋아요.” 시세차익은 없어도 된다. 대신 저렴하면 좋겠다. 낡아도 괜찮다. 지금 살고 있는 2억4천만원 전셋집도 나이가 많다. 50살쯤 된 것 같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온 듯한, 딱 그런 집인데 구멍 뚫린 천장 틈새로 기어 들어온 고양이가 갸르릉한다. “괜찮아요. 같이 사는 거다, 하고 생각하면.”

무던한 그도 집 때문에 울었던 기억은 있다. 이 집에 들어온 지 반년쯤 지났을 무렵 집주인이 ‘집을 팔아야 하니 나가달라’고 했다. 언제까지 내 주거가 다른 사람에 의해 좌우된 채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수도권 신도시 외곽에 비싸지 않은 단독주택 몇 곳을 봐두었다.

‘공공’에도 언제나 시세차익이 관여하는

대출이 쉽지 않았다. 애초부터 시세가 형성돼 있고 표준화된 상품에 가까운 아파트 수준의 대출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총부채상환비율(DSR) 규제까지 더해지고, 지금은 그냥 손을 놓았다. 그 와중에 깨달았다. 시세가 오를 것 같지 않은 주택은 세상이 이야기하는 ‘내 집’에 들지 않는다는 것. 금융상품처럼 시세가 형성되는 집, 그 시세가 오를 것으로 전망되는 집, 상품과 주거 사이에 있는 아파트만을 ‘내 집’으로 부를 수 있다. “분양주택이라고 해도 개발이익을 환수하는 다양한 형태를 내놓는 걸 기대했는데 딱 단일한 방식, 집값 상승이 이어지지 않으면 지속 불가능한 방식으로만 공급하고 있어요.”(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환매조건부 주택 등 시세차익을 공공이 환수하는 분양 방식이 시범적으로 이뤄진 적은 있다. 여전히 예외적이다. 그나마 시장 논리를 따라 어느 정도의 차익은 남겨야 수요가 있으리라는 전제도 이어진다.

저렴한 대신 시세차익은 기대하지 않는 시현씨네한테 선택지는 별로 없다. 살고 있는 전셋집이 빨리 팔리지 않을 거라고, 좀더 여기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을 뿐이다. “낡아서 잘 안 팔릴 것 같아요. 이 집도 그렇게 돈이 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이상한 위안을 구한다.

우진씨네: 주거 연대

서울 방배동 오피스텔 → 정릉동 아파트 → 정릉동 아파트

집에 관해 세상이 말하는 주인공, 그러니까 영혼까지 대출을 끌어모아서라도 아파트 한 채는 마련하고 싶고, 집값에 예민할 법한 중산층 세입자 가족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대기업 정규직이고 맞벌이로 한 달 1천만원 넘게 버는 우진씨네라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청약 가점도 만점에 가깝다.

‘내 집 마련’의 문턱에 있을 법한 우진씨는 이 세상이 규정한 주인공의 허구성을 낱낱이 고발한다. “우리 집은 쌍둥이 아이랑 아내랑 어머니, 다섯 사람이 사니까 30평대 집이어야 할 텐데요. 서울 강북 핵심 지역이 아니어도 분양가가 다 9억원을 넘어요. 그렇다면 중도금 대출은 나오지 않죠. 대출 없이 집을 마련할 현금은 우리도 못 모았어요.” 서울 집값은 대기업 정규직 16년차인 그에게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소득의 45%를 집에 쏟아붓는

부동산을 향한 욕망에 불타올라 돌진하는 시민의 이미지는 2022년, 어디까지 현실적인가. “이해관계가 얽힌 소수의 목소리가 마치 대다수인 것처럼 과다 대표되고 있다”고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말했다. 소득과 금리, 주택가격을 감안해 주택구매 부담을 나타낸 서울의 주택구매부담지수는 2021년 3분기에 1년 전보다 26% 올랐다. 서울에서 중간 소득 가구가 중간 가격의 주택을 산다면 원리금 상환 부담이 소득의 45%를 넘어선다. 대출은 죄어든다. 금리인상 분위기를 타고 빚 부담은 더한다.

그렇다면 지난 몇 해 청년의 모습으로 표상된 영끌 소유자는? 주택 소유 통계를 보면, 주택을 소유한 30대는 2017년 180만5천 명에서 2020년 168만 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가파른 집값 상승, 금리인상 분위기 속에 ‘내 집 마련’을 꿈꿀 수 있는 이는 점점 줄어든다. 이미 서울에 아파트를 소유하지 않았다면 새로 그 틈에 끼는 건 막대한 위험을 짊어지는 일이다. 서울의 자가 점유 가구는 42%뿐이다. 소유가 다수의 꿈이기 어렵다.

“서울에서 출퇴근 1시간은 당연해요. 그 정도 거리에서, 그냥 다섯 식구가 갑자기 내몰릴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는 집이면 돼요. 시세차익 같은 건 다 환수해도, 임대라도 상관없어요.” 경상소득 상위 20%에 속하는 우진씨조차 이런 말을 내뱉는 순간은 어쩌면 임계점이다. 대선이 있는 해, 정치가 유권자 49% 대 51%의 일이라면, 내 집 마련을 통한 자산 증식의 꿈이 안정적인 주거의 꿈에 자리를 넘기는 어떤 순간.

스스로 가난한 편이라는 20대 선혁씨와 엄연한 중산층인 40대 우진씨는 집에 관해서라면 같은 자리에, 비슷한 꿈을 꾸며 서 있게 됐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1398호 표지이야기

집에서 집값을 빼면 [사는집①]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511.html

최선의 집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는집②]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512.html

서울은 세입자의 도시다 [사는집③]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5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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