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내 곁에 산재

파견노동이 눈을 멀게 했다

휴대전화 부품 만들다가 메탄올 급성중독 뒤 실명한 20~30대들의 그 이후

제1378호
등록 : 2021-08-30 23:49 수정 : 2021-08-31 11:12

크게 작게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청년노동자 2명(오른쪽 셋째, 넷째)이 2016년 10월12일 국회에서 ‘제가 위험하게 일을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라고 쓰인 손팻말을 든 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노동건강연대 제공

2020년에만 노동자 10만8천여 명이 업무상 사고를 당하거나 업무상 질병에 걸렸다. 산업재해(산재)는 멀리 있지 않다. 일터에서 다치고 아픈 이들은 우리 곁에 항상 있다. 이철 작가와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가 산재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들은 ‘내 곁에 산재’ 이야기를 전한다. 노회찬재단과 〈한겨레21〉이 공동기획했다. 앞으로 격주로 이들의 기록을 연재한다. _편집자

노회찬재단 × <한겨레21> 공동기획
내 곁에 산재

① 평택항 이선호 친구 이용탁씨

②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동료 이준석 지회장

③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전 지회장 하창민

④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청년노동자들

갈 곳도 걸을 곳도 마땅치 않은 2021년의 여름이 답답하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모임이 끊겼다. 이제 거리두기에 좀 익숙해져서 살살 만날 방법을 찾아보자고 한 참이었다. 공간도 공간이지만 찾아오는 길이 쉬워야 한다. 젊은 시각장애인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청년노동자들과 가족, 사건 이후 이들을 지원해온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들이 6월 모처럼 만났다.

닷새 만에 공장에서 쓰러진 미영씨
20대 또는 30대 초반의 청년노동자 6명이 2015년 2월과 12월, 2016년 1월과 2월, 경기도 부천과 인천 공단에 위치한 3곳의 공장에서 각각 쓰러졌다. 삼성과 LG 스마트폰의 유심 트레이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대기업의 하청업체들은 인력업체를 통해 사람을 공급받아 생산물량을 맞춘다. 공장은 인력업체에 돈을 주고, 인력업체는 노동자에게 줄 돈에서 업체 몫을 떼고 4대 보험(고용·건강·산재·연금)의 노동자 부담분도 떼어간다. “4대 보험에 들었다”는 회사 쪽의 말은 대부분 거짓이지만 노동자들은 알지 못한다.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서 ‘공장 알바’라고 치면 이런 일자리가 주욱 올라온다. 파견노동이다. 취업도 바로 되고 서류도 필요 없으니 부담이 없다. 쓰러진 6명의 노동자도 ‘잠깐 하는 일’로 생각했다.

진구(당시 27살·가명)씨는 군대를 제대하고 노느니 정식 직업을 찾기 전에 돈이라도 모으자고 생각했다. 미영(당시 28살·가명)씨는 대학을 휴학하고 자격증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학자금대출도 갚고 싶고 생활비가 필요하던 차에 야간 알바로 공장 일을 찾았다.

작은 알루미늄 부품들이 깎여 나오면 세척용액이 분사된다. 뚜껑을 닫게 돼 있는 기계였지만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뚜껑을 열고 하는 것이 당연했다. “사장이 알코올이라고 말했던 것 같아요.” 수증기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용액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몸 안으로 들어가 시신경과 뇌신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일을 시작하고 닷새 만에 공장에서 쓰러진 미영씨는 알지 못했다.

“마스크도 없고 목장갑 껴도 금방 젖으니까 맨손이나 다름없었어요.” 출근하려고 눈을 뜬 진구씨는 감기몸살처럼 몸에 기운이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공장에서 일하고 20일이 지난 아침이었다. 6명 가운데 가장 오래 일한 노동자도 5개월이 채 안 되는 기간을 일했다. 건강했던 20대 청년들이 집에서, 공장에서 갑자기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갔다.

겨울의 전자부품 공장은 추웠다. 창문을 닫고 기계를 돌리면서도 환기장치가 없다고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운 목욕탕처럼 공장 안에 갇혀 있던 수증기는 메탄올이었다. 공단에는 안전한 에탄올의 3분의 1 가격인 메탄올을 공급받아 쓰는 곳이 많았다. 메탄올은 유독물질이다. 노출되면 체내에 빠르게 흡수돼 망막세포를 파괴하고 중추신경계에 손상을 입힌다. 메탄올을 다루는 노동자는 특수건강진단을 하라고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돼 있지만, 일반건강검진은 인력업체가 하고 특수건강검진은 공장 사업주가 하라는 법조항을 신경 쓰는 공장은 없었다.

점자 배우고, 바리스타 꿈꾸며
응급실로 실려간 후 노동자들이 겪은 상황은 비슷했다. 사용 기준치의 10배가 넘는 화학물질에 급성중독된 환자가 실려왔지만 병원에서는 어떤 일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오히려 “공장에서 쓴 화학물질이 원인이 아닐까” 묻는 보호자에게 아니라고 짜증을 낸 의사가 있었다. 쓰지 않았던 근로계약서를 쓰자고 내밀며 300만원을 건넨 인력업체 사장이 있었고, 노동자의 상태는 묻지도 않고 동향 파악만 한 공무원이 있었다. 근로계약서도 없고, 4대 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던 노동자들의 직업병은 이들에게 원인이 중요하지 않거나, 법 위반 사실이 탄로날까봐 덮어야 할 골칫거리일 뿐이었다.

진구씨와 미영씨 등이 각각 다른 병원에서 원인을 모른 채 허둥댈 때, 메탄올을 의심하고 공장에서 일하는지 물었던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아니었다면 더 많은 실명 노동자가 발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의사의 연락을 받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들이 공장으로, 병원으로 달려가지 않았다면 정부도 이 사고를 덮으려 했을지 모른다. 당시는 박근혜 대통령이 “파견노동이 일자리를 늘린다”고 선전하던 때다.

TV 시사 프로그램마다 청년노동자들의 실명 이야기를 다루는 동안, 진구씨와 미영씨는 장애인의 삶을 시작했다. 6명의 노동자는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전맹이거나, 약간의 빛을 구분할 수 있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됐다. 고용노동부는 일하다 시각장애인이 된 노동자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노동’이나 ‘산재’는 자기 관할이 아니라고 했다. 산재와 장애에 대해 책임져야 할 정부 조직은 서로 노동자들을 떠넘겼다.

시각장애인용 스마트폰을 사고, 점자를 배우고, 복지관에 등록하는 일 어느 하나 쉽지 않았다. 공장에서 돈을 좀 벌다가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진구씨는 장애인복지관에서 커피 제조법을 배웠고, 드럼에 재미를 붙여 복지관 가는 날을 기다리는 노동자도 생겼다. 빵 만드는 것을 배우고 싶던 노동자는 집 밖으로 나서는 것이 아직은 힘들지만 복지관에서 운동하는 습관을 들였다. 코로나19가 복지관 문을 닫게 하고 산책로를 폐쇄하게 하지 않았다면 시력뿐만 아니라 몸의 신경계까지 손상된 미영씨도 재활에 조금 더 힘을 냈을지 모르겠다.

그사이 인력파견업체 5곳과 공장 3곳의 사장 8명은 산업안전보건법과 파견근로자보호법(파견법)을 위반한 혐의로 적게는 벌금 100만원에서 많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받았다. 일감을 준 대기업들은 ‘1차 하청까지는 관리하겠지만 그 아래로는 어렵다’는 입장을 노동건강연대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보내왔다. 최근 유행하는 ESG(Evironment·Society·Governance) 경영이 사기가 아니라면 이들 대기업의 생각은 달라졌을 것이다.

실명한 노동자 더 있었다?
2021년에도 인터넷에는 ‘공장 알바’ 일자리가 넘친다. 제조업 생산라인에는 파견노동을 쓰지 말라고 파견법이 말하지만 틈은 많다. 그 틈이 넓어지고 굳어져 가난한 청년노동자를 빨아들인다. 기록되지 않고 보호되지 않는 파견노동이 메탄올 실명을 불러왔다. 2016년의 인천, 부천 지역 공단에는 실명한 노동자가 더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