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서울북부지법에서는 스토킹에서 시작된 ‘김태현(24)’의 일가족 살인사건 재판이 진행 중이다. 2021년 6월29일 미리 방청 신청을 한 기자들과 유족만으로 방청석이 다 찼기 때문에 법정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한동안 법정 밖에 있었다. 침착하게 재판 시작을 기다리는 유족을 보니 연대활동을 하며 만난 많은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해자 가족과 지인들이 떠올랐다. 항변할 수 없는 피해자를 대신해 법원에 오는 이들의 심정이 어떠할지, 가해자인 피고인의 일방적 읍소와 변명만 가득한 법정에서 어떤 생각을 할지,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스토킹은 피해자와 피해자 주변의 삶과 일상을 앗아가고 흔든다.
나 역시 스토킹 피해자다. 2010년 성폭력 피해를 당한 뒤 신고를 포기한 나는, 이어지는 가해자의 스토킹으로 추가 피해를 입었다. 차단해도 번호를 바꿔가며 연락을 시도하고 메시지를 보내는 가해자의 스토킹에 일상이 무너졌다. 반나절 껐다가 켠 휴대전화 화면에 읽지 않은 메시지가 500여 개 떴을 때의 서늘하고 끔찍한 감각은 여전히 생생하다. 구체적인 협박의 표현이 없더라도 가해자의 메시지 하나하나가 흉기가 되어 나를 찔러댔다. 동선, 가족, 지인 등 내 주변에 대해 언급할 때면 내 소중한 이들이 또 다른 피해자가 될까봐 두렵기도 했다.
‘스토킹’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그러나 당시엔 스토킹이 경범죄로 분류돼 10만원 이하 벌금형 처벌만 가능한데 고소하겠냐는 경찰의 답변을 받았다. 여기저기 상담 끝에 ‘정보통신망법 위반’(공포, 불안 등을 유발하는 메시지 등 도달)으로 접근해 벌금형의 유죄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가해자 행위가 공포와 불안을 유발하는 것인지 입증하는 과정이 지난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성범죄로 실형을 선고받고 출소 뒤 다시 시작된 가해자의 스토킹 행위에 대해서는 ‘당하면 오라’는 무성의한 수사기관의 대응에 싸움을 포기했다. 두 번 다시 피해 입증을 위해 그 과정을 감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스토킹 행위 자체만으로도 피해자 대다수는 신변 안전에 심각한 수준의 두려움을 느끼며 타인에 대한 혐오, 불신, 대인기피 증상 등으로 힘들어한다. 자살·자해 사고가 생기거나, 학업이나 직장생활을 중단하기도 한다. 연대 과정에서 운전하다가 자신을 쫓아온 남성 때문에 다시는 자가운전을 하지 못하게 된 피해자, 대학 선배의 스토킹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유학을 택한 피해자, 직장 동기의 스토킹으로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개명한 피해자, 가해자의 집요한 스토킹에 시달리다 환청·환시 등의 증상으로 폐쇄병동에 입원했던 피해자 등을 만났다.
스토킹은 강력범죄의 전조범죄라고 한다. 단일 범죄에 그치지 않고 다수의 범죄와 결합하는 형태를 보이며 강력범죄로 연결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성폭력, 신체폭력뿐만 아니라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여성 대상 살인·살인미수 사건의 30% 정도가 스토킹과 연관됐을 정도로 위험한 신호다. 그러나 이제까지 한국 사회는 스토킹을 구애, 애정, 짝사랑 등 개인의 다소 미성숙한 혹은 적극적인 감정 표현 형태로 보고 독려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스토킹 피해자들의 고통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거나 무시당했고, 관련 법 조항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분리해 처벌함에 따라 상당수 스토커는 중한 형을 피할 수 있었다.
‘당하면 오라’는 경찰스토킹 범죄 피해자는 스토킹의 직접 행위 대상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스토커는 피해자의 주변인(가족, 지인 등)이나 반려동물 등 피해자와 연관 있거나 소중히 여기는 대상을 범죄 목표물로 삼기도 한다. 피해자를 통제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의도대로 따르지 않는 피해자에게 보복하기 위해 그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가해자들은 생각한다. 실제 다수 피해자는 스토킹으로 주변마저 피해를 볼까봐 극도로 두려워하며, 그로 인해 가해자의 요구에 응하거나 피해자 본인의 삶을 축소해나간다.
현재 진행 중인 김태현 일가족 살인사건은 이례적이지 않다. BJ(인터넷 방송인)를 스토킹하다 피해자와 그 어머니에게 살해 협박을 하고 실제 어머니 직장으로 찾아간 20대 남성의 스토킹 살해 협박 사건,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이용해 피해자 지인들에게 악플을 달다 명예훼손으로 실형 선고를 받은 20대 남성 스토커가 출소 뒤 피해자 아버지를 살해하려던 사건(징역 10년 확정) 등 스토킹 피해는 피해자 주변으로 확대되기 일쑤다.
온라인 스토킹도 심각해지고 있다. 전통적 형태의 오프라인 스토킹에 비해 가볍게 다뤄지는데, 시공간 등 물리적 제약이 없고, 흔적이 영구히 남을 수 있으며, 가해자와의 즉각적·직접적 분리가 어려운데다, 디지털 성착취·성폭력을 포함해 다른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전조범죄 성격을 지닌다는 측면에서 심각한 가해행위다.
특히 개인정보를 알아내 저장하는 데서 나아가 당사자를 사칭하고, 그 정보를 다른 범죄에 이용하거나 유포해 제3자의 범행을 부추기는 방식은 디지털 성착취·성폭력 사건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형태다. ‘엔(n)번방/박사방/프로젝트 n번방’ 등 알려진 디지털 성착취·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들이 피해자 정보를 해킹 등을 통해 알아내 후속 범죄로 이어간 모든 과정이 온라인 스토킹과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2021년 10월부터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다. 그러나 이 법안은 여러 한계가 있어 시행 이후에도 개정 등 보완 작업이 필요하다. 우선 ‘반의사불벌죄’(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는 죄)로 규정됐기에 가해자가 범죄 피해 신고를 막거나 고소 취하, 합의 등을 강요할 가능성이 크다.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100m 이내로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는 ‘긴급응급조치’도 100m라는 물리적 거리가 피해자를 안전하게 보호할 만한 거리인지 의문이며, 최대 6개월의 기한도 너무 짧고, 가해자가 이를 어기더라도 과태료 처분에 그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피해자보호명령(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신청)이나 신변안전조치 규정이 없고, 고용 상황에서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처분 금지 등의 조치도 미흡하다. 더구나 스토킹 행위에 대한 엄격한 규정(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사유 없이 불안감 또는 공포감을 일으키는 행위/지속적 또는 반복적 행위) 때문에 단발성 행위는 처벌이 어려우며, 피해자 주변인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조치가 부재하다.
출소 뒤 보복범죄 위협에 노출돼 신고하러 갔을 때 경찰은 ‘당하면 오라’고 했다. 스토킹 피해를 봐도 처벌 규정이 없고 물리적 피해가 없는 것으로 보이니 자신들은 개입할 수 없다고 했다. ‘당하면’ 찾아갈 수가 있겠나. 신문기사에 가해자의 변명이 헤드라인으로 실리고, 수사관은 규정대로 했다며 입법 미비를 탓할 것이다. 그 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내 흔적을 지우고 숨었다. 다수의 스토킹 피해자는 나처럼 수사기관을 찾아갔으나 제때 보호받지 못했다.
그래도 첫 법안 발의를 했던 1999년으로부터 22년 만에 관련 법이 생겨 공권력이 개입할 근거가 만들어졌다. 그러니 수사기관은 제때 적절히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법원은 엄벌로 스토킹에 대응해야 한다. 관련 법의 구멍을 메우기 위한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더는 나처럼 살기 위해 숨는 스토킹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02-735-8994), 여성긴급전화1366으로 연락하면 불법 영상물 삭제, 심층 심리치료, 상담·수사, 무료 법률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너머n’ 아카이브(stopn.hani.co.kr)에서 디지털성범죄를 끝장내기 위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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