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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의 잘못된 특공, 잘못된 결과

관평원 사태로 세종 공무원 특공 폐지… “정착에는 기여 못하고 다주택자만 양산”
등록 2021-06-05 07:23 수정 2021-06-07 09:30
세종시 공무원들을 다주택자로 만들어 엄청난 이익을 안겨준 ‘공무원 아파트 특별공급’ 제도가 논란 끝에 폐지됐다. 신축 아파트로 가득한 세종시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세종시 공무원들을 다주택자로 만들어 엄청난 이익을 안겨준 ‘공무원 아파트 특별공급’ 제도가 논란 끝에 폐지됐다. 신축 아파트로 가득한 세종시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부겸 국무총리,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2021년 5월28일 오전 국회에서 만났다. 이들은 이날 세종특별자치시의 공무원 아파트 특별공급(특공) 제도를 폐지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5월17일 관세평가분류원(관평원)의 불법적인 청사 신축과 특공 의혹이 불거진 지 11일 만이었다.

국토교통부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세종시 이전 기관 공무원을 특공 대상에서 제외하는 후속 조처를 준비해 6월 안에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2009년 1월 시행된 세종시 아파트의 공무원 특공은 완전 폐지된다. 현재 특공 기간(이전 뒤 5년)인 행정안전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물론이고 특공이 예정됐던 중소벤처기업부 공무원들도 더 이상 특공을 받을 수 없다. 5월 말까지 행정안전부의 특공 대상 공무원은 1999명이었고, 이 가운데 실제 특공을 받은 공무원은 584명이다.

불법 특공 논란 일자 11일 만에 폐지

후속 조처를 맡은 국토부의 한성수 전 주택기금과장(현 기획담당관)은 “그동안 세 차례 특공 제도를 개선했지만 관평원 사태로 제도를 더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신입 공무원들이 불리해졌지만, 신혼부부 등 일반 특공으로 주택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이전 기관 공무원에 대한 특공 폐지는 관평원 사태가 불을 질렀다. 5월17일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은 대전의 관세청 산하 관평원 직원들이 불법으로 특공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기관은 세종시 이전 대상이 아님에도 세종시에 171억원짜리 청사를 지었고 이를 근거로 직원 82명 가운데 49명(59.8%)이 특공을 받았다. 현재 관평원은 경찰 수사와 국무조정실 자체 조사를 받고 있다. 감사원 감사도 받을 수 있다. 3개 야당은 5월25일 세종시 특공에 대해 국회 국정감사를 요구했다.

관평원에 이어 새만금개발청과 해양경찰청도 입줄에 올랐다. 이들 기관은 세종시에 와서 잠시 머물렀다가 각각 전북 군산과 인천으로 옮겨갔다. 세종시에서 장기 근무하지 않는데도 세종시 아파트를 특공 받은 것이다. 또 세종시와 대전에 있던 한국전력 지사들, 세종시교육청 산하기관의 편법적 특공도 잇따라 폭로됐다.

관평원 사태 이전에 세종시 특공 논란을 일으킨 곳은 현재 대전청사에 있는 중소벤처기업부였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1년 1월 세종시 이전이 결정돼 오는 8월에 옮긴다. 이전 이유는 세종시에 있는 경제 부처들과의 업무 협의 효율성이었다. 그러나 대전청사에서 세종청사까지의 거리는 겨우 22㎞로 차량으로 30~40분 정도 걸린다. 따라서 세종시 특공을 받기 위한 이전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세종시 특공이 처음부터 특혜나 불법으로 얼룩진 것은 아니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의 한 고위 관계자는 “(2009년) 애초 도입됐을 때는 이전 기관 공무원들의 조기 정착이나 세종시의 자족 기능 유치를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12년 동안 247개 기관의 2만6163명이 특공을 받았다. 이 기간에 공급된 전체 아파트 11만780채 가운데 23.6%였다.

특공은 오랫동안 인기가 없었다. 2020년까지 세종시에서 공급되는 아파트 중 공무원 특공 배정 비율은 50%였다. 하지만 공무원이 26.4%의 아파트를 받지 않아 실제 공급 비율이 23.6%에 불과했다. 특히 2013년엔 8240채가 특공에 배정됐는데 공무원이 실제 받은 것은 836채로 10%였다. 공무원들이 특공 배정된 아파트를 대부분 받은 것은 2018년에 이르러서였다.

폭등 전까지 인기 없어

세종시 특공이 비판받기 시작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세종시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1억2천만원이던 세종시 아파트의 중위 가격은 2021년 5월엔 5억8500만원(4.9배)으로 뛰었다. 2020년에만 2억원가량 올랐다. 수도권 아파트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와 2020년 7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국회 이전 발언이 결정타였다. 현재 세종시 아파트의 중위 가격은 전국에서 서울 다음으로 높다.

고위 공무원들이 세종시에 살지 않으면서도 특공을 받아 매매차익을 챙긴 일은 특공 비판에 기름을 부었다. 고위 공무원들은 초기부터 현재까지 대부분 이주하지 않았고 심지어 특공을 받고 한 번도 거주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공무원의 세종시 이주나 정착은 과장급 미만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런 문제점은 관료 출신 장차관이 임명될 때마다 빠짐없이 지적됐다. 멀리 갈 것도 없이 5월14일 취임한, 기획재정부 출신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서울 서초구에 실거주 아파트를 보유하면서 세종시에서 특공을 받았다. 노 장관은 2011년 특공을 받은 뒤 한 번도 거주하지 않고 2018년 팔아 2억원 이상의 매매차익을 챙겼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세 차례 공무원 특공 대상을 축소했다. 2019년 12월엔 고위 공무원과 2주택 이상 보유자를 제외했고, 2020년 12월엔 무주택자 우선·1주택자 처분 조건을 도입했다. 2021년 5월엔 ‘수도권’에서 세종시로 ‘본부’를 ‘이전’하는 기관만 특공을 받게 했다. 그러나 관평원의 불법 특공이 터지면서 하루아침에 제도 자체가 폐지돼버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전문가들은 이주나 실거주, 주택 보유 여부를 가리지 않고 공무원 전원에게 특공 자격을 준 점을 지적했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부동산학)는 “특공 자격을 무주택자나 가족 동반 이주자한테만 줬어야 한다. 그 밖의 사람들에겐 공공임대주택 제공이나 전세금 대출 같은 지원이 적절했다”고 말했다. 대구가톨릭대 전강수 교수(경제학)도 “제도를 잘못 설계해 공무원의 정착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하고 다주택자만 양산했다. 세종시뿐 아니라 전국 10개 혁신도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뒤늦은 폐지로 아파트값 불안정은 여전

적절한 시기에 특공을 폐지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재록 전주대 교수(행정학)는 “세종시가 어느 정도 자리잡은 뒤나 주택가격이 급등할 때 바로 특공을 폐지했어야 한다. 애초 취지에서 벗어난 제도를 계속 유지하다가 이런 상황을 맞았다”고 했다.

세종시 특공은 폐지됐지만 세종시 아파트값의 불안정은 계속될 전망이다. 임재만 교수는 “세종시는 인프라가 좋고 중산층이 많아서 앞으로도 주거지로 선호될 것이다. 특히 국회와 청와대 이전이 추진되면 다시 집값이 급등할 수 있다. 부동산 투기를 막고 불로소득을 환수할 대책을 미리 세워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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