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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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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경쟁률 10:1인 ‘지방 거점 대학’

수도권과 지방 도시, 일반대학과 직업대학이 공존 발전하는 핀란드의 고등교육 시스템
등록 2021-04-17 14:56 수정 2021-04-23 04:30
2021년 핀란드에서 헬싱키대학교를 제치고 경쟁률 10:1을 기록하며 지원자 수에서 수위를 차지한 땀뻬레대학교 캠퍼스. 땀뻬레대학교 페이스북 갈무리

2021년 핀란드에서 헬싱키대학교를 제치고 경쟁률 10:1을 기록하며 지원자 수에서 수위를 차지한 땀뻬레대학교 캠퍼스. 땀뻬레대학교 페이스북 갈무리

춘분도 부활절도 지난 4월의 핀란드는 아직 쌀쌀하고 찬 공기에 종종 눈이 내리는 북구의 초봄 날씨를 보인다. 길고 추운 밤의 계절을 지나 해가 지지 않는 백야를 향해 달려가는 낮의 시간은 성큼성큼 길어진다. 사람들은 차량의 겨울 타이어를 여름용으로 갈아 끼우고, 거리에는 청년들이 팔과 종아리를 시원스레 드러내며 활보하기 시작한다. 3월의 중요한 사회적 일정으로 전국 단위 고교졸업자격시험이 과목별로 약 2주에 걸쳐 치러지고, 3월 하순에는 2주의 대학 입학 지원 기간이 주어진다. 핀란드의 대학 입학 지원은 대부분 3월과 9월에 이루어지며, 예술대학 등은 그보다 한 달가량 먼저 실시된다. 학생들은 최대 여섯 개까지 지원서를 제출할 수 있는데 평균 서너 개 대학에 지원한다(2021년 평균 3.4개).

헬싱키대학교보다 지원자가 많은 땀뻬레대학교

이 기간이 종료되면 교육당국과 언론은 그해의 대입 지원 경향을 분석해 발표한다. 4월1일 핀란드 공영방송 의 뉴스를 보다가 올해는 땀뻬레대학교(남부 내륙 산업도시 땀뻬레 소재)가 헬싱키대학교를 제치고 지원자 수에서 수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땀뻬레대의 경우 10 대 1에 가까운 경쟁률을 기록했다. 그 밖에 지방 거점 도시에 있는 뚜르꾸대학교, 동핀란드대학교, 오울루대학교, 위바스뀔라대학교 등도 작년보다 지원자 수가 수백 명에서 수천 명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일견, 수도인 헬싱키를 중심으로 2020년부터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주거지에서 가까운 대학을 선택하는 경향이 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언론들은 지원자 수가 대폭 늘어난 대학들의 경우 언어치료(동핀란드대), 심리학(오울루대) 등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설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땀뻬레대의 경우에는 2019년 땀뻬레대학교와 땀뻬레과학기술대학이 통합하면서 규모가 확대된데다 최근 땀뻬레시가 대규모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도시경제와 고용 여건이 호조건인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분야별 지원 현황을 살펴보면, 일반 종합대학의 경우 의학(9.3 대 1), 농산림경제(9.2 대 1), 서비스영역(7.8 대 1)이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상업(경영·경제), 행정학, 법학 등도 경쟁률이 높은 분야이며 과학기술과 사회과학 분야도 올해 지원자가 상당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고등교육기관인 메트로폴리아응용과학대학(헬싱키 소재)과 땀뻬레응용과학대학도 전년보다 400명가량 지원자가 늘어 지원자 수에서 각각 5위와 8위를 기록했다. 응용과학대학 또는 폴리테크닉은 1990년대 핀란드가 후기 산업사회로의 전환을 대비해 직업교육 체제 전반을 개혁하면서 설립한 직업고등교육기관으로, 직업과 연계된 실용학문과 현장 훈련 프로그램이 중심을 이룬다. 통상 3.5년제로 운영되고 원하는 학생은 석사학위까지 받을 수 있다.

47%가 직업대학에만 지원

핀란드에는 수도권과 지방의 주요 거점 도시들마다 종합대학과 더불어 응용과학대학이 운영되는데, 2021년 지원자 수를 기준으로 10위권 대학에 5개 응용과학대학이 배치된 것이 확인된다. 실제 이번 대학 입학 지원자 중 47%가 직업대학에만 지원했고, 39%는 일반 종합대학에만 지원했으며, 나머지 14%는 두 종류 대학 모두에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핀란드의 고등교육 현황을 개관해보면, 2021년 4월 현재 13개 일반 종합대학과 22개 응용과학대학이 운영 중이다. 550만 명의 인구 규모에 비해 고등교육기관의 밀도가 매우 높고 대학 진학률도 약 70%에 이르러 유럽에서 높은 편에 속한다. 1900년대 초까지 핀란드에는 1640년 설립된 왕립뚜르꾸아카데미가 1828년 장소를 옮겨 재탄생한 헬싱키대학교 단 1개 대학만 운영됐던 것을 고려하면 지난 120년간 고등교육 기회가 엄청나게 확대됐음을 알 수 있다. 핀란드의 대학들은 근대 국민국가 형성과 보편적 선거권에 기반한 민주주의 확대 과정의 산물이자 주된 동력이었다. 특히 전후 보편적 복지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에 지역 분권과 평등 원칙을 중요하게 고려하면서 195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땀뻬레대를 비롯한 다수의 지방 거점 국립대학이 만들어졌다. 북유럽형 복지국가 완성 과정에서 무상 보편교육(조세 기반 대학 재정)이 확립되면서 박사과정까지 별도의 학비를 내지 않고 다닐 수 있게 됐다. 이로써 고등교육에 대한 보편적 접근 기회가 대폭 확대됨은 물론 이들 대학은 지역 경제와 사회 발전의 촉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신자유주의적 학술 자본주의에는 거센 비판

1990년대에는 앞서 설명했듯이 후기 산업사회로의 전환에 대응하는 전면적 직업교육체제를 개혁해 응용과학대학이 대거 설립됐고, 일반대학과 직업대학이 병행 발전하는 가운데 핀란드는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과 구별되는 대안적 직업 숙련과 고등교육 체제로서 국제적 관심을 받았다. 국립대학 법인화를 허용한 2010년 이후 핀란드의 대학과 고등교육 체제는 다시 한번 중요한 변화를 겪고 있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내세운 대학 통합과 재정 자율성을 명목으로 한 대학 재정 거버넌스 변화 등이 본격화하면서 신자유주의적 학술 자본주의의 득세와 대학 민주주의 약화 등에 대한 거센 비판이 제기된다. 이에 더해 코로나 팬데믹은 핀란드의 대학들에도 패러다임 수준의 중요한 도전을 제기한다.

서현수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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