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욕망을 버리려고 물건까지 버려야 할까. 2021년 진짜 신박한 정리를 제안한다. ‘마인드 미니멀리즘’이다. 나를 파괴하는 욕망, 욕구, 습관, 집착 따위는 2020년에 묻어두자. 기자들도 소소한 실천을 해봤다. 육식, 플라스틱 빨대, 하루 한 잔의 술, 게임 현질(아이템을 돈 주고 사는 것), 배달음식을 버렸다. 정말로 버리니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버리는 것은 끝없는 투쟁이라는 사실. _편집자주
‘하루 한 잔’은 아마도 대학 시절부터의 버릇인 것 같다. 세상 물정 모르던 고등학생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술의 마력에 빠져들었다. 맥주 1ℓ를 겨우 마시던 형편없는 주량이었고, 선배들의 폭압적인 술 강요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게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다. 시위를 마치고 난 저녁, 선후배들과 둘러앉아 한 잔 마시며 하루의 무용담을 떠들어대는 일도 즐거웠다. 수업은 밥 먹듯 빼먹었지만, 술자리는 별로 빼먹은 기억이 없다.
‘하루 한 잔’이란 버릇을 고질로 만든 것은 신문사였다. 취재원과의 술자리를 권장하고 낮술을 책망하지 않는 관대한 음주 문화가 ‘하루 한 잔’을 단단히 뿌리내리게 했다. 기분 좋게 마감하고 퇴근길에 들르던 단골 맥줏집이나 긴 야근을 마친 새벽에 야근자들끼리 모여 마시던 서울 청진동 같은 곳은 내 청춘의 주요 무대였다. 코로나 시대에도 재택근무 뒤 어스름에 한 캔 까먹는 재미는 여전히 달콤하다.
그러나 새해엔 달라지려고 한다. 누군가 그랬다. 늙은 주당의 행복은 세 가지에서 나온다고. 술 한 잔 살 돈과 술 한 잔 함께 마실 벗,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술 한 잔 마실 ‘건강’에서 나온다고 말이다. 늙은 주당으로서의 행복을 위해 오랜 고질이자 즐거움을 잠시 버리고자 한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휴대전화 화면에 뜬 이 문구 앞에서 또 망설인다. 색깔별로 퍼즐을 모아 터뜨리며 미션을 달성하는 게임이다. 2년 전 시작한 이 게임에서 내 레벨은 4600이다. 미션 4600개를 달성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꾸준히 뭐라도 했더라면, 흠흠.) 게임은 텔레비전을 볼 때, 퇴근길에, 기사가 잘 안 써져 멍때리고 싶을 때 한다. ‘레벨 컴플리티드’(레벨 달성)라는 단어는 매혹적이다.
게임은 게임이고 문제는 현질(아이템을 돈 주고 사는 것)이다. 라이프(생명)를 소진한 뒤 게임을 이어가려면 코인을 사야 한다. 라이프 5개 얻기 위해 필요한 코인은 25개. 코인 40개를 사려면 2500원, 125개는 5900원, 코인 25개보다 125개를 사는 게 ‘합리적’이다. (물론 사지 않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살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면, 귓가에 음악이 들리는 것 같다. “따단딴 따단딴 따단딴 딴따다단.” 그리고 나 홀로 ‘인생극장’을 찍는다. ‘그래, 결심했어. 커피 한 잔 값에 스트레스가 풀린다면 사도 돼’ ‘아니야, 하루 한 번씩만 사도 한 달이면 15만원이야’라며.
합리화와 ‘합리적 선택’ 앞에 망설이다 지난 주말 또 세 번이나 결제하고야 말았다. 12월에 결제한 금액을 찾아봤다. 1만원, 2만원, 3만원…. 세다가 그만뒀다. 더 세면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서. 스트레스 풀려다가 스트레스 받을 현질은 그만해야지. 티끌 모아 티끌이라지만, 2021년엔 현질 할 돈 모아 아이패드 사야지.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새해 결심 실천편] 2021년에는 버리자, 이 습관 ① 에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7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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