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 간부가 이른바 ‘유령 계정’(조원 계정)을 동원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한 정황이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원하는 시민들을 종북세력으로 몰고 유가족들이 거액의 보상을 노린다고 비난하는 여론이 비정상적 방법으로 형성된 사실이 일부 확인된 것이다.
세월호 여론 조작 정황‘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악의적인 여론 조작 사실이 있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트위터 분석 작업을 진행해왔다. 분석은 세 시기로 나눠서 했다. 1기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직후(2014년 4월16~26일), 2기는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갈등이 깊어진 시기(2014년 8월19~29일), 3기는 세월호 참사 1주기(2015년 4월11~21일) 등으로 각각 11일씩 총 33일을 분석 기간으로 삼았다.
특조위가 어느 빅데이터 전문 분석 업체에 용역을 맡겨 진행한 결과, 부정적 여론 조성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관리하는 프로그램 ‘트윗덱’이 활용됐다는 점이 드러났다. 누군가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대량의 트윗을 발송했음을 입증하는 증거다.
트윗덱은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폭넓은 트위터 여론 조작을 위해 사용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한번에 여러 계정에서 특정 글을 동시에 리트윗할 수 있고 정해진 시간에 원하는 글을 예약해서 올릴 수도 있다. 여러 계정을 가졌을 경우 편리하게 글을 올리고 전파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이 단독입수한 세월호 특조위의 ‘여론 조성을 위한 비정상적 SNS 계정 활동 그룹 분석’ 자료를 보면, 특정 시기에 하나의 ‘조장 계정’이 세월호 참사 관련 글을 올리면 비슷한 시각에 수십 개의 ‘조원 계정’이 해당 글을 리트윗한 사실이 확인된다.
특히 트윗덱을 활용한 세월호 참사 관련 부정적 여론 형성 시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2기 때다. 특조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문제 등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싸고 여야와 유가족의 의견 충돌이 일어나던 시점이었다. 특조위가 찾아낸 조장 계정은 이 기간 동안 11일에 걸쳐 모두 80편의 글을 작성했다. 대표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월호 유가족과 그 주변의 전문 시위꾼들이 기소권, 수사권을 달라고 헌법을 뒤흔드는 슈퍼갑 행세를 하면서 떼 법을 주장하고 있다. 내 세금이 세월호 특별법을 위해 단 10원이라도 쓰이는 것에 반대한다”(2014년 8월22일)
“김○○, 세월호 유가족, 민노총, 전교조, 그 외 괴담, 유언비어 유포자, 전문 시위꾼들은 이글 읽어보기 바란다. 당신네들의 명분은 없다”(8월24일)
“세월호 유가족은 금테 둘렀나? 모든 사고에 특별법 만들까?”(8월28일)
“박원순 시장의 추악한 농약급식 사건으로 이미 3명이 구속되고 검찰 조사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아는데, 언론이 세월호 특별법과 김○○라는 작자에게 쏠려서 좌파들에게 유리한 여론 조작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8월28일)
70개 유령 계정이 180만여 계정에 전파이들 80편의 글 가운데 48개는 거의 동시에 70개의 조원 계정에서 리트윗됐다. 분석결과, 이들 70개 계정은 2011년 12월 동시에 개설됐다. 그 영향력도 무시 못할 수준이었다. 조장 계정에서 비롯된 한 개의 글은 리트윗 등을 거쳐 최대 6만5880개 계정에 노출됐다. 평균 전파 범위(노출도)는 3만8491개 계정이었다. 평균 노출도에 조원 계정이 리트윗한 48개의 글을 곱하면 11일 동안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는 내용 등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글이 180만여 개 계정에 노출된 셈이다.
이같은 여론 조작 작업은 소수의 인원이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특정 계정에 올라오는 글을 70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일제히 리트윗할 가능성, 게다가 그 행위를 수십 차례에 걸쳐 반복할 가능성은 극히 낮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조장 계정의 주인이 트윗덱을 활용해 70개의 조원 계정을 만들어 자신의 글을 일제히 리트윗하도록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 사용자가 이처럼 트위터를 이용하는 것은 좀처럼 없는 일이다. 한 빅데이터 분석업체 관계자는 “홍보업체 같은 곳이 아닌 개인이 트윗덱을 활용해 여러 계정을 운영하는 것은 아주 드물다. 의도적으로 특정 여론을 부각하기 위한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트위터의 리트윗 수를 늘리면 해당 주장을 하는 사람이 소수여도 다수의 지지를 받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인터넷이나 SNS 반응을 주로 보면서 기사를 쓰는 언론사에선 두 의견이 고루 있는 것처럼 판단하고 보도하게 된다”고 했다. SNS가 기사에 영향을 미치고 그 기사가 다시 SNS를 통해 유통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 추가 취재를 거쳐 확인한 ‘조장 계정’의 주인은 현재 한 보수단체 간부를 맡고 있는 ㄱ씨였다. 그는 70개의 조원 계정이 일제히 만들어지기 한달 전인 2011년 11월부터 현재 사용하는 아이디가 아닌 다른 아이디로 트위터 활동을 시작했다. ㄱ씨가 일하고 있는 단체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0여 개 보수단체들이 종북 척결과 자유로운 기업 활동, 헌법적 가치수호 등을 목표로 만든 연합 조직이다.
ㄱ씨가 세월호 관련 부정적 글을 트위터에 전파시킨 과정은 국정원의 대선 여론 조작 활동 방식과도 유사하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SNS 활동을 담당했던 국정원 심리전단 안보5팀 직원 중 다수는 “여러 개의 트위터 계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다수의 트윗을 한 번에 게시하여 실적을 올리기 위하여 트윗덱, 트위터피드 서비스를 이용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당시 국정원 직원들은 422개의 트윗덱 계정을 사용해 트위터에서 대선 여론 조작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보수단체 간부, 국정원 글 리트윗하기도ㄱ씨의 트위터 계정은 지난 대선 기간 이른바 ‘십알단’ 표시를 달고 활동하기도 했다. 십알단은 새누리당과 연계해서 여론 조작을 벌였다는 의심을 받은 윤정훈 목사를 주축으로 활동한 트위터 그룹이다.
ㄱ씨의 트윗 활동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의혹도 발견됐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인터넷 여론 조작에 나선 것으로 확인된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김아무개씨의 글을 종종 리트윗했다. 2011년 11월부터 2012년 7월까지 ㄱ씨가 국정원 직원 김씨의 글을 리트윗한 것은 총 21차례였다.
흥미로운 것은, 두 인물 모두 트윗 글의 내용이 특정 시기에 나란히 변화했다는 데 있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결정되지 않았던 2011년 말과 2012년 초 국정원 직원 김씨는 정몽준 전 의원을 지지하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불리한 글을 올렸다. 다음은 국정원 직원 김씨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안철수의 킬러는 정몽준”(2011년 11월25일)
“박근혜 대세론은 곧 죽음: 여권의 잠룡으로 꼽히는 김문수 경기지사는 ‘박근혜 대세론은 곧 죽음이다. 경선에서 강력한 상대를 만나야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12월11일)
“전원책 ‘박근혜는 보수의 적(敵)’- 진보좌파로 불려야 되지 않겠습니까?”(2012년 2월17일),
국정원 역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박근혜 후보가 대선 주자로 확정되는 것을 경계한 듯 보인다. ㄱ씨는 직원 김씨가 이처럼 박근혜 후보를 비난하는 트윗 글을 다시 리트윗했다.
ㄱ씨도 트위터 활동 초기인 2011년 11월,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을 지지하는 글을 주로 올렸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2011년 12월에 올린 글을 보면, “정상적인 절차 없이 친박들은 그들만의 공주를 옹립하려고 하고 있다. 대체 박근혜와 박사모가 현 정부에 딴지만 걸고 한나라당 걸레를 만들더니 아무 절차도 안 거치고 대표를 맡아? 그들은 영혼이 없고 자리만 탐하는 수구세력이다”라고 적었다.
그런데 2012년 중반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부터 ㄱ씨는 박 후보에 대한 비난 글을 더 이상 올리지 않았다. 거의 같은 시기 들어 국정원 직원 김씨 역시 박근혜 후보를 옹호하고 야당 후보를 비판하거나 이명박 정부 시절 치적을 치켜세우는 데 집중했다. 트윗 활동 방식은 물론 그 내용도 유사점이 있지만, 국정원 직원 김씨와 보수단체 간부 ㄱ씨가 어떤 관계인지 전혀 밝혀진 바가 없다.
“국정원, 십알단과 관계없다”은 ㄱ씨를 직접 만나 세월호 참사 여론 조작 의혹과 관련한 여러 질문을 던졌다. 그는 여러 계정을 만들고 트윗덱을 활용해 리트윗한 것은 인정했다. 하지만 노출도가 180만 계정에 이른다는 내용은 “완벽한 소설”이라고 반박했다. ㄱ씨는 본인 계정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자신의 트위터 정보를 보여주며 “해당 기간 가장 노출이 많이 된 글이 8천명 정도에게 전파된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집계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분석 업체의 경우 각 계정의 팔로어들에게 전달된 수치를 기준으로 한 것이고 ㄱ씨의 경우는 실제 해당 트윗을 본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 계산하더라도 11일 동안 최소 10만명에서 20만명이 ㄱ씨가 작성한 세월호 비방 트윗을 직접 읽은 셈이다.
이같은 활동 배경에 국정원 등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국정원이나 십알단과의 관계성은 머리털 나고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고 답변했다. 또 “십알단 윤 목사 같은 정치 성향의 목사들은 체질적으로 싫어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활동과 관련한 내용에 대해 대부분 부인하거나 아예 대답하지 않으면서 “박원순이 정치적으로 힘들 때 선거시 여론의 변곡점에 (여론 조작이) 나타난다”며 한 트위터의 캡처 화면을 보냈다. 그는 “팔로어가 6천 명 수준인 사람의 트윗이 1만7천여 회 리트윗된 사례”라고 설명하며 “(진보 쪽) 여론 조작 증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트위터 이용자가 인위적으로 리트윗 수를 부풀리는 등의 비정상적 활동을 한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특조위의 이번 트위터 분석으로 세월호 참사 여론 조작을 위한 비정상적 SNS 활동 정황이 드러났지만, 현재까지 파악된 내용은 여론 조작 활동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16일부터 현재까지 2년 넘는 기간 가운데 한 달가량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특조위는 전체 기간으로 할 경우 분석 대상이 너무 많아 33일 분량의 트위터 활동 내역만 확인했다. 또 분석 대상을 ‘세월호’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트윗으로 한정했기 때문에 이 단어를 쓰지 않은 다른 트윗 글들의 여론 조작 의혹들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이 밖에 세월호 참사 관련 유언비어가 주로 유통된 카카오톡 등 메신저와 인터넷 기사 댓글 등도 분석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여론 조작 활동을 벌인 이들의 배경에 대해서도 조사하지 못했다. 아직 남은 숙제가 많은 것이다.
특조위 무력화에만 힘쓰는 정부하지만 정부는 특조위 활동을 사실상 강제로 종료하고 조사 등에 필요한 예산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특조위는 8월23일부터 이틀간 세월호 3차 청문회를 연다고 밝혔지만 정부의 비협조 때문에 정상적으로 열릴지 미지수다.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갈수록 정부의 방해는 더 거세지고 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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