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시험의 성적을 공개하지 아니하는 조항은 헌법에 위반된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6월25일 재판관 7 대 2의 의견으로 변호사시험법 제18조 1항이 합격자들의 정보공개 청구권을 제한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제18조 1항(시험정보의 비공개)은 “시험의 성적은 시험에 응시한 사람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아니한다. 다만 불합격한 사람은 6개월 내에 본인의 성적 공개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간의 서열화와 과당경쟁을 막고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해 법학 교육의 내실을 다지자는 취지로 2011년 7월 도입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로스쿨 입학-변호사시험(변시)-채용’이 불투명해진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중요한 평가지표가 될 수 있는 변시 성적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기존 대학 서열이 곧 채용 서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개인별 성적으로 줄을 세우지 않는 대신 어느 대학 로스쿨을 입학했느냐에 따라 이미 법조인의 운명이 결정돼버리는 것이다. 기존 사법시험(사시)-사법연수원 제도에서는 나이·학력·배경과 상관없이 사시와 연수원 성적을 합쳐 ‘몇 등까지는 법원, 몇 등까지는 검찰, 몇 등까지는 대형 로펌’이라는 식으로 채용됐다.
“공부 차원에서 헌법소원 냈다”이 때문에 지방 로스쿨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변시 성적 비공개가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2011년 8월 충남대 로스쿨 2학년 재학생(2기)이 “개인 성적이 공개되지 않아 지방 소재 로스쿨 출신은 우수한 법조 실력에도 불구하고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각하됐다. 로스쿨 2학년생이라 변시 합격 여부를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다시 로스쿨 1기들이 “내 변호사시험 성적을 알게 해달라”며 헌법소원을 잇따라 청구했다. 지난 6월25일 헌재의 결정은 이들 3건(2011헌마769, 2012헌마209, 2012헌마536)을 병합한 판단이었다.
송명욱(40) 아이로이어 대표변호사는 청구인이자 대리인으로 헌법소원에 참여했다. 7월1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공부 차원에서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를 작성했다”면서 “기쁜 일이지만 모두가 헌재의 (위헌) 결정에 환영하는 것은 아니라서 조심스럽다”고 했다. 다만 “변시 성적을 공개하면 지금껏 기회가 없었던 지방대 로스쿨의 야심찬 젊은 법조인들이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그는 대기업에서 5년간 마케팅 기획 업무를 하다가 2009년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지방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헌법소원을 청구한 이유는로스쿨에 입학할 때는 변시 성적이 공개되는 줄 알았다. 나이가 많은 탓에 학점이 좋지 못했던 터라 나는 변시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전략을 세웠다. 3학년 여름방학 때 갑자기 성적을 비공개한다고 법이 바뀌었다. 목표를 상실한 느낌이었다.
2011년 6월 변시 성적을 비공개하는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찬성한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변시는 자격시험인데 이 성적을 공개하면 시험에 매달려 (로스쿨) 학생들이 학교 공부를 안 할 것이다. 합격자의 서열화, 로스쿨 간 과당경쟁을 유발하는 문제점도 생길 수 있다.”
변시 성적 공개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많다.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나 지방대 로스쿨 성적 상위권생들은 그렇다. 학교 성적과 변시 결과가 다를 수 있으니까. 나는 변시 성적이 더 중요하다거나 로스쿨 학점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비법대 출신으로 지방대 로스쿨에서 탁월한 실력을 뽐내는 예비 법조인에게 더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로스쿨에서 만난 친구가 그랬다. 교사 출신인데 1학년 1학기 때는 중간 정도 성적을 올리다가 법학에 재능을 발견해 2학기부터 졸업할 때까지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변시 성적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 주요 로펌에서 면접할 때마다 떨어졌다. “훌륭한데 당신을 뽑아야 할 이유가 딱히 없다”고들 했다. 안타까웠다. 만약 변시 성적에서 높은 등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 최소한 그런 얘기는 듣지 않았을 텐데.
헌재, 성적 비공개가 로스쿨 서열화 고착화이번에 헌재는 변시 성적 비공개가 로스쿨 서열화나 과당경쟁을 방지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이 정책이 서열화를 더욱 고착화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검사 임용을 보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5개 로스쿨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이 2012년 57.1%에서 2013년 64.9%, 2014년 77.1%, 2015년 64.1%로 과반수를 차지한다. 주요 로펌에 채용된 로스쿨 출신 변호사의 80% 이상이 5개 로스쿨을 졸업했다. 변시 성적이 공개되지 않아서 출신 학교가 채용의 주된 기준이 됐고 그 쏠림 현상은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지고 있다.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돼야 할 법조인 등용문에서 반전과 역전의 기회조차 봉쇄한 채 ‘입구’의 차이를 ‘출구’의 차이로까지 연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조용호 헌재 재판관은 보충 의견에서 “변시를 통해 학벌을 극복하고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받고자 하는 다수 변시 합격자의 절규”를 받아들여 변시 성적을 공개한다고 덧붙였다.
대형 로펌은 SKY 대학 로스쿨에 다니는 예비 법조인을 1, 2학년 때 미리 뽑는다. 그래서 변시 성적이 공개되더라도 채용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변시 수석이라면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수석인데 지방대 로스쿨이라고 안 뽑을 수 있느냐’라고 최소한 따질 수 있다. 탁월한 지방대 로스쿨 출신이 대학별 서열화에 균열을 낼 수 있지 않을까.
비용이 많이 든다고 ‘돈스쿨’이란 비판이 있다.
로스쿨이든 사시든 드는 돈은 엇비슷하다. 돈과 시간을 들여야만 변호사가 되는 시대다. ‘계층 이동 사다리’로서의 역할이 퇴색됐다. 준비 기간을 따져봐도 로스쿨이나 사시나 3~5년 걸린다. 사시 준비하려면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사설학원에 다녀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사시에) 붙을 수 없다. 그 기간 동안 누군가 (사시준비생을) 지원해야 한다. 로스쿨도 마찬가지다. 나는 5년간 직장생활로 모은 돈에다 부모 도움까지 받았다. 다만 로스쿨의 장점은 다양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변호사로서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로스쿨·사시, 계층 이동 사다리 아니다
서울대 이재협(로스쿨 교수)·이준웅(언론정보학과 교수)·황현정(언론정보학과 박사과정) 연구팀이 2009년 로스쿨과 사시를 거쳐 사법연수원에 다닌 법조인 1020명의 ‘출신 배경’을 조사해보니 실제로 큰 차이가 없었다. 로스쿨 1~3기 출신 법조인의 아버지 학력이 대졸 이상인 경우는 67.5%, 연수원 40~43기 출신은 62.9%라고 밝혔다. 어머니가 대졸 이상인 비율은 로스쿨 출신이 52%, 연수원 출신은 42.8%였다. 201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 교육지표에 실린 비슷한 연령대(55~64살)의 대졸 이상 학력자 비율은 11%에 그친다. 가구 소득을 보면 로스쿨 출신은 월 1063만원, 연수원 출신은 월 1089만원으로 둘 다 상위 소득계층에 속했다. 부모 중 법조인이 있는 경우는 연수원 출신(4.7%)이 로스쿨 출신(3.6%)보다 많았다. 특히 로스쿨 출신의 출신 대학이나 전공은 연수원 출신보다 다양했다. 지방대 졸업자 비중은 로스쿨 출신이 17.4%로 연수원 출신(10.5%)에 비해 높았다. 연수원 39기 이전 경력법률가 집단에서는 지방대 비중이 7.3%에 불과했다. SKY 대학 출신 비중은 로스쿨이 55.5%로, 연수원(61.6%)보다 6%포인트가량 낮았다. 경력법률가 집단에서는 77.2%가 SKY 출신이다. 학부를 졸업하고 로스쿨과 연수원에 들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7년과 3.3년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표 참조).
지방대 로스쿨 출신이라서 힘든가.반수해서 수도권 로스쿨로 옮기는 학생들이 부러웠다. 3년 내내 그랬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돈과 시간을 더 쓸 수가 없었다. 졸업해서 서울 서초동에서 개업해보니 또 힘들더라. 다행히 조금씩 변하고 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늘어나면서 무시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고 생각한다. 차츰 변화된 체제에 법조인이 된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 같다.
“새벽 2시에 일어나 인터넷 상담”
처음 개업할 때 어땠나.개업을 준비할 때 같은 건물에서 문을 닫는 젊은 변호사가 있었다. 1년간 5천만원을 까먹었다면서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며 궁금해했다. 예전에는 사무장이 있었지만 요즘은 변호사가 직접 다 해야 한다. 실제로 실제로 인터넷 내선 전화를 설치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 인맥이 없으니까 (나에게 상담해올) 의뢰인을 만날 길도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알려보자고 마음먹었다. 인터넷 상담을 시작했고 지난해부터 블로그를 열고 전화·방문 상담을 받는다. 복잡한 사건이 아니면 대부분 무료다. 지난 4년간 5천 건 정도를 상담했다. 요즘도 새벽 2시에 일어나서 1시간 정도 인터넷에다 글을 남긴다. 그 의뢰인들은 이곳저곳에서 상담을 받아보고 만족스러운 법률사무소에 사건을 맡긴다. 경쟁이 치열하지만 그래도 살아남았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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