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변혁운동의 도화선이 되고자 함이 아닙니다. 역사의 이정표가 되고자 함은 더욱이 아닙니다. 아름답고 맑은 현실과는 다르게 슬프게, 아프게 살아가는 이 땅의 민중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 속에 얻은 결론이겠지요.”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의 도화선이 된 문구다. 1991년 5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고 김기설씨는 분신하며 남긴 유서에 이렇게 썼다. 검찰은 “유서의 필적이 김기설의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과 함께, 이를 물고 늘어졌다. “김기설은 광탄종합고등학교 1년을 중퇴한 학력의 소유자로 지식과 문장력이 부족함에도 피고인(강기훈)의 지식과 문장을 이용하여….”(‘자살 방조’ 혐의로 기소된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씨 공소장 중에서) 하루아침에 김기설은 유서조차 쓰지 못하는 무지렁이로, 강기훈은 죽음을 조장한 파렴치범으로 내몰렸다.
1991년 당시에는 몰랐지만, 여기에 또 한 명이 얽혀 있다. 바로 소설가 안재성이다. 김기설씨의 여자친구는 훗날 이렇게 증언한다. 분신하기 전에 김씨가 이라는 책을 들고 와서는 “유서는 이 책을 보고 쓸 거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운동권 젊은이들의 사랑을 다룬 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 죽어 민주주의 혁명의 도화선이 되자는 생각을 가지려고 애썼고, 때로는 정말 죽음을 통해 역사의 이정표를 세운다는 작은 영웅심에 사로잡혀보기도 했지만….”
안재성씨는 2014년에야 자신의 소설이 유서에 인용됐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그는 충격 탓에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벗어날 수 없는 업보를 덜어내려면 김기설과 강기훈 두 사람의 명예를 되찾아줘야겠다.” 지난 5월14일, 대법원은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강씨 사건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강기훈씨는 24년 만에 억울한 누명을 벗었다. 그러나 법원은 진실의 절반만 인정했다. 김씨가 유서를 직접 썼다는 사실, 그렇다면 누가 왜 유서 대필이라는 ‘거짓말’을 지어내 1991년 분신 정국을 잠재우고 민주화운동 세력을 말살하려 했는지에 대해 법원과 검찰은 입을 닫았다.
(주목)는 24년 동안 벌어졌던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의 진실을 담은 책이다.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시민모임)의 권유로 안재성씨가 각종 기록을 종합해 매끈하게 진실 공방을 엮어냈다. 소설처럼 술술 읽히지만 소설은 아니다. “냉정한 사실기록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위해, 재판기록 등 A4용지 1만 쪽에 이르는 자료를 요약·정리했고 작가의 상상은 덜어냈다. 지난 6월3일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안재성씨를 만났다.
김기설씨 유서에 자신의 소설이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1년 전에야 알았다는데.1991년에는 그 내용이 언론에 특별히 다뤄지지도 않았고, 당시 나도 노동운동을 하다가 수배 중일 때라서 전혀 몰랐다. 지난해 서울고법에서 재심 무죄판결이 난 뒤 ‘시민모임’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처음 들었다. 그러고 보니 소설 앞부분 문장을 따서 썼더라. 개인적으로 나는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절친한 친구 두 명을 분신으로 잃었다. 1986년 구로공단에서 분신한 박영진, 1988년 강원 탄광에서 분신한 성완희는 동갑내기 친구다. 나는 분신이나 투신에 격렬히 반대하며 살아왔다. 유서를 쓰는 데 비록 몇 개 단어일지라도 내 책이 활용됐다는 사실에 심한 충격을 밝았다.
작가가 아닌 기록자 안재성그래서인지 몰라도 책에서 김기설씨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공업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고 해서 유서조차 자기 손으로 쓰지 못하는 인물로 조롱받았던 노동자 김기설의 명예를 회복하는 의미도 크다”고 책에 썼는데.
그렇다. 김기설씨의 따뜻한 인품과 헌신성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분신했던 두 친구도 중학교 졸업 학력의 노동자였다. 똑똑하고 헌신적인 친구들이었다. 분신을 선택할 정도라면, 아주 이타적인 사람이다. 결코 아무나 분신하진 않는다.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은 (지금까지) 강기훈씨만 주인공이었다. 피해자의 고통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반면 김기설씨는 강씨에게 피해를 준 인물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관련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김씨의 삶과 생각을 복원해봤다. 굉장히 착하고 감상적인 인물이더라.
강기훈씨나 김기설씨 유족을 만나보진 않았나.한 번도 안 만났다. 만날 필요도, 만날 이유도 없었다. 등장인물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최대한 냉정하게 쓰고 싶었다. 피해자의 고통을 앞세우는 것이 오히려 신뢰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강기훈씨가 간암에 걸려 고통스럽게 지낸 시간들도 되도록 묘사하지 않았다. 책에 ‘작가’가 아니라 ‘기록’ 안재성이라고 쓴 이유기도 하다. 또 굳이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기록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는 “강기훈을 유서 대필범으로 만든 검찰 수사기록과 재판기록들이야말로 거꾸로 그의 무죄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근거였다”고 말했다. 처음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검찰과 법원, 언론 등 지식인 수십 명이 유죄라고 판단할 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막연히 짐작했다.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진실 공방을 쓸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기록을 보니 딴판이었다. “필적 감정 결과, 10여 가지 받침 모양이 비슷하다는 게 유일한 근거였다. 김형영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문서분석실장이 엉터리 감정 결과를 내놨고, 검사나 판사는 그걸 알면서도 강씨에게 누명을 씌워 그대로 밀고 나갔다. 기록을 읽고 나면 ‘이렇게 간단한 사건을 어떻게 유죄라고 할 수 있는지’ 분노밖에 남지 않는다.”
대법원이 무죄판결을 했지만, 당시 검사나 판사 중에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강기훈씨가 유서를 쓰지 않았다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24년 동안 싸웠다. 지금부터 할 일은 강씨가 유서를 썼다고 누명을 뒤집어씌운 ‘그 사람들’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국정감사도 좋고, 청문회도 좋고, 그들에 대한 명예 재판도 좋다. 기록이 아니라 소설을 쓰더라도, 그 진실을 밝혀내야 할 때가 됐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24년 만에 판결을 바로잡았다지만, 사법부는 지금도 상식에 어긋나는 정치적인 판결을 계속 내리고 있다.
사법부는 지금도 어긋나 있다마지막 부분에는 ‘그 사람들’ 32명의 면면이 공개된다. 이름하여 ‘거짓말 잔치’ 출연진 프로필. 총감독 김기춘(당시 법무부 장관), 총연출 강신욱(당시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부장검사), 연출 및 각본 신상규(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수석검사), 주요 등장인물 안대희(2005년 경찰청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요구한 관련 수사자료 제출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서울고검장) 등등. 안재성씨에게 책 쓰기를 권유했고 책 제목을 지은 김학민 전 학민사 대표(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가 프로필을 직접 썼다. 그는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다. 강기훈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 김기설이라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망친 잔혹극”이라고 말했다. 강기훈의 프로필엔 이렇게 쓰여 있다. “각본도 모른 채 강제 출연한 소극(笑劇) ‘거짓말 잔치’의 주인공”.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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