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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유난히 큰 알마의 고향은 바닷가 어촌 마을이다. 남중국해의 눈부신 쪽빛 바닷물이 어루만지는 해변에서 알마는 나고 자랐다. 그의 고향 바탕가스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110km 떨어져 있다. 차로 가려면 3시간은 족히 걸렸다. 알마네는 어부 집안이었다. 아버지도, 오빠들도 모두 고기를 낚았다. 딸만 꿈이 달랐다. 노래가 좋았다. 어릴 적부터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서 공연을 했다. 한 달에 5~6번 정도 파티장이나 행사장을 찾아 노래를 불렀다. 벌이는 시원찮았지만, 꿈은 컸다.
노래 부르는 일로 소개받아 온 클럽
2008년 2월, 마침내 기회가 왔다. 한 알선업소에서 해외 취업을 알선해줬다. 장소는 먼 나라, 한국이었다. 알마의 일은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기뻤다.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월급은 930달러였고, 숙식과 의류를 클럽에서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2009년 3월 알마는 ‘기회의 나라’ 한국 땅을 밟았다. 공항에 나온 클럽 매니저는 그를 바로 경남 옥포의 한 클럽으로 인도했다. 클럽에 들어선 알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알마는 “아주아주 놀랐다”(very, very shocked). 공연장 따위는 없었다. 접대부만 있었다. 이곳에선 필리핀 여성 23명이 남성 ‘고객’을 ‘접대’했다. 무어라 항의하려고 했지만, 매니저와 말도 잘 통하지 않았다. 업소에는 중간 매니저쯤 되는 필리핀 여성이 있었다. ‘마마상’이라 불리는 그는 “(다른 여성들을 보고) 따라해라”고만 했다.
성매매를 대놓고 강요받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여성 종업원들은 할당된 매상에 항상 쫓겼다. 남자 손님을 접대하며 한 달에 일정량 이상의 음료를 팔아야 했다. 목표치를 못 채우면 자유시간이 줄어들거나 다른 클럽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결국 여성들은 ‘바파인’(bar fine)이라 불리는 성매매로 떠밀렸다.
지난 3월22일 경기도 평택 외국인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시설 ‘두레방’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알마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바파인을 돌아보는 대목에서였다.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말은 자주 끊겼다. 그때, 매니저에게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씨발.”
한국말을 못하는 알마는 그때 이후 한국인 주인이 한 욕설을 또렷이 발음했다.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성매매를 거부하는 알마에게 돌아온 것은 주인의 반복된 폭언이었다. 그나마 구타는 면했다. 몇몇 동료는 매니저에게 발길질까지 당했다. 주인은 알마에게 기생충약이라며 태블릿 약을 권하기도 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약을 볼에 품고 삼키지 않았다. 무슨 약인지 끝내 알아내지는 못했다. 약을 먹으면 술에 취하지 않았고 각성 상태가 유지됐다는 말만 들었다. 주인 처지에서는 ‘매상’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이 됐다는 말이다.
클럽에서 벗어날 길은 없었다. 바깥세상을 알 수 없었다. 한국 땅에서는 의지할 곳, 아는 사람도 없었다. 클럽은 보이지 않는 감옥이었다.
성매매 외국 여성 수 추정치 없어
“수이사이드”(suicide·자살).
탈출구 없는 현실에서 벗어날 길은 많지 않아 보였다. 극단적인 생각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그해 8월 어느 날 아침, 알마는 클럽 숙소를 걸어나왔다. 잠을 자던 다른 동료가 잠결에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사우나에 간다고 했다. 짐은 꾸리지 못했다. 청바지에 티만 입은 채 클럽을 무작정 나왔다.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머리가 비어 있었어요.” 공황 상태였다. 길에서 사람들에게 터미널 가는 방향을 물었지만 낯선 시선만이 돌아왔다. “미친 사람인 줄 알았을 거예요.” 안색이나 행색 모두 꼴이 아니었다. 클럽을 나온 그는 우여곡절 끝에 두레방의 품에 안겼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는 이제 두레방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한국으로 잠시 돌아와 있다. 그는 클럽의 사장과 매니저 ‘마마상’, 그리고 한국의 외국인 알선업체를 창원지방경찰청에 고소해놓은 상태다. 작은 체구의 알마는 “그들이 처벌받기를 원하고, 나 같은 피해자가 더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는 14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여성은 60만 명으로 40%를 넘는 수치다. 취업자가 대부분이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결혼이민·유학·관광취업 등 여러 이유로 입국한다. 종사하는 업종도 다양하다. 이들의 일상은 통계화된 수치로 파악되지 않는다. 실제로 알마처럼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는, 또는 일했던 외국인 여성 수를 추정한 자료는 없다. 하지만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만 명 단위로 짐작되는 그들의 삶에 대한 조망은 필수적이라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은 ‘대한민국 성매매 보고서’ 마지막 순서로 여성가족부의 ‘외국인 여성 성매매 실태 및 제도 개선방안 연구’를 공개한다. 평택 등을 중심으로 외국인 성매매 여성 98명을 설문조사하고, 21명을 심층 면접한 내용이 담겨 있다.
우선 노동시간과 평균 수입에서 수많은 알마들의 고단한 삶이 묻어난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9.29시간, 대부분 저녁 6시부터 새벽 3시까지 일한다. 노동시간은 대부분의 경우 손님이 남아 있는 한 새벽 4시를 넘기는 일이 흔하다고 보고서는 말한다. 그렇다면 그 외의 시간은 이들에게 자유일까. 28%의 응답자가 “자유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72%는 자유시간이 있다는 말일까. 그렇지는 않다. 보고서는 “자유시간은 업소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평일 낮 시간이고, 음료 판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벌칙으로 자유시간이 박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힌다. 사실상 노동시간과 휴식시간이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평일을 제외한 월평균 휴일은 나흘에 불과하다.
취업·결혼으로 입국 뒤 빈곤에 떠밀려
높은 노동강도는 다른 한국 업소와 마찬가지지만 성매매를 폭력적으로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대신 일정 기간 한 외국인 여성이 성매매를 하지 않고 업소에서 일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이윤의 최대치를 설정한다. 예를 들면, 한 주한미군 출입 업소는 외국인 여성 1명당 열흘 기준으로 100점(1잔=1점)을 최저치로 주스 판매 점수를 매긴다. 한 사람이 주스를 팔아 얻을 수 있는 평균치가 아닌 ‘최대치’다. 이 점수가 더 무서운 것은 경험적 수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업소에 따라 손님이 성황인 곳은 같은 기간에 300점(잔)이 최저점인 경우도 있다. 이 수치를 지키도록 강요받는 것 자체가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업소에 처음 온 외국인 여성들은 대부분 이 점수를 지키지 못한다. “넌 열심히 일 안 해” “너 때문에 손해를 봐” 등의 말로 압박이 가해지고 한 번에 10~20점을 메울 수 있는 ‘바파인’(성매매)이라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린다. 예상치 않은 성매매에 외국인 여성들은 처음엔 거부하지만 업소 주인의 “환경이 더 나쁜 업소로 보낸다”는 협박과 “다른 동료들도 포기”하는 상황 등을 보며 바파인을 받아들인다. 바파인이 아니라도 할당량을 채우려면 이른바 ‘랩댄스’ ‘핸드잡’ 등 유사 성행위나 그에 가까운 성적 서비스를 해야 한다.
업소에서 하는 일에 대한 질문(복수 응답)에 “고객의 말벗, 또는 같이 춤추거나 술 마시는 일”이라는 응답이 49.5%로 가장 높게 나타나고 가수가 41%로 뒤를 잇지만, 이런 대답 뒤에는 몸을 팔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주스를 팔아야 하는 고단한 삶이 놓여 있다. 이렇게 해서 이들이 벌어들이는 평균 수입은 183만원이다. 알마와 같은 필리핀 출신은 138만원에 불과하다.
“외국인 여성의 성매매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성매매 피해여성 자활지원센터인 ‘다시함께센터’ 유복임 소장의 말은 거침없었다. “미군 부대 등 기지촌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 성매매는 이제 지역을 가리지 않고, 군인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실태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했다. 유 소장은 예술·흥행 비자를 이용해 외국인 여성들이 무용수나 가수로 들어온 10여 년 전과 상황이 달라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법무부 자료를 보면, 2003년 예술·흥행 비자를 받고 한국에 머무른 외국인 여성 수는 4453명이었지만, 2011년엔 3220명으로 줄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정부가 예술·흥행 비자 발급 조건을 강화한 결과다. 대신 외국인 여성의 성매매 유입 경로는 다양해졌다. 유 소장은 취업이나 결혼 등의 이유로 입국했다가 빈곤에 내몰려 성매매 업소를 찾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고 증언한다.
현실은 잔인하고 법은 무관심한
이들에 대한 보호가 시급하지만 현실은 버겁다. 가장 큰 문제는 실정법이다. 성매매 피해 여성은 3개월 정도 관련 기관에 입소한 뒤 본국으로 돌려보내지는데, 이 또한 탈성매매를 가로막고 있어 문제가 된다. 또한 예술·흥행 비자로 들어온 외국인 여성을 성적 서비스를 하는 업소에 불법적으로 넘기는 업자를 단속하는 데 현행 근로자파견법으로는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는 게 활동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실은 잔인하고 법은 무관심하다. 더 부족한 건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이다. 외국인 여성이 탈성매매를 해도 현재 전국에 외국인 성매매 피해 여성의 쉼터는 단 한 곳뿐이어서 도움을 요청하기 힘들다는 사실도 지적된다. 이번 조사에서 “여성단체 또는 인권단체가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답한 외국인 성매매 피해 여성의 비율은 60.7%에 달했다. 단체를 방문한 외국인 여성 16명은 모두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평택=김기태 기자 kk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