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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성매매 보고서 네 번째 이야기는 ‘청소년 성매매’다. 청소년 성매매는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전체 규모가 수치로 환산돼 있지 않다. 가출 청소년이 20만 명에 달한다는 일부 언론 보도로 그 규모를 짐작할 뿐이다. 물론 이런 추정은, 가출 청소년에 대한 낙인 효과를 불러온다는 측면에서 온당치 않다.
지난해 12월 중순 청소년 성매매 현황을 알려고 대표적인 ‘한 청소년 쉼터’를 찾았고, ㄱ씨를 만났다. 그는 현재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2시간의 인터뷰 뒤 온라인 상담에 동참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의 2010년과 2011년을 재구성했다. _편집자
새벽 2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방금 벌어진 일이다. 그 짓을 마친 그‘놈’이 돈을 주지 않고 갑자기 달아났다. 거리로 쫓아서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그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정말,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느낌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발을 뗄 수 없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주저앉았다. 2010년 여름. 가출 6개월째, 너무 배가 고파서 시작한 일이었다. 두들겨 맞을까봐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빠가 술을 마신 날에는 아빠한테 맞았다. 게임중독이던 오빠가 게임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날도 맞는 날이었다. 아빠를 미워하던 오빠는 아빠를 닮았고, 아빠를 넘어섰다. 무서워서, 아파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제 더는 갈 곳이 없다. 여기가 끝이다. 바닥을 쳤다. 대리석 바닥을 두들겨 주먹에 피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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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려고 시작한 성매매
이날만 두 번째였다. 두 번 모두 도망간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처음은 당황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 더 당하고 나니 눈물밖에 나지 않았다. 죽고 싶었다.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친구 ㅂ의 몸 안에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나를 이해해주고 아껴주는 ㅂ과 어떻게든 살고 싶다. ㅂ의 임신은 ㄱ 자신과 함께 지내려고 ㅂ이 ‘조건만남’을 하다가 생긴 일이다. 친구가 품고 있는 그 생명 앞에서 그냥 눈감을 수 없었다.
“그만두자.”
ㅂ에게 말했다. 가출한 지 5개월 만이다. 무작정 집으로 찾아갔다. 가족들은 할 말을 잃었다. 6개월 만에 돌아온 딸은 임신한 친구의 손을 잡고 있었다. ㄱ의 당당한 모습에 가족은 둘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불안한 동거는 오래가지 못했다. 우선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인터넷을 뒤졌다.
“왜 이걸 이제야 안 거야!”
미혼모 쉼터를 발견하고 두 사람은 얼싸안았다. ㅂ과 먹고살기 위해 처음 인터넷을 뒤졌을 때를 떠올렸다.
처음부터 성매매를 한 것은 아니었다. 대형마트 주차장 관리요원 자리를 얻었다.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가출한 ㄱ과 ㅂ은 주차장 관리요원의 일당만으로 찜질방과 하루 음식값 대기도 버거웠다. 찜질방 대신 PC방 커플 석을 전전했고, 밥 대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하지만 허름한 입성이 쉽게 눈에 띄었다. 관리자는 늘 잔소리를 해댔고,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다시 PC방에 나란히 앉아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보증금 80만원에 월 80만원의 원룸을 구해주고, 노래방에서 노래만 불러주면 된다는 아르바이트 제의를 받았다. 채팅 사이트 ’버디버디’에서 새벽에 방을 개설하면 그 정도의 아르바이트 제안은 쏟아져 들어왔다. 지금까지는 ‘막연하게 그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거부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선 ㅂ이 나섰다. 그런데 ㅂ은 술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 일이 아니라 ‘애인대행’을 하겠다고 했다. 노래방 도우미로 받는 돈으로는 생활비와 방값을 내기가 버거웠다. 1회에 20만원이니 일주일에 두세 번만 해도 집세와 보증금으로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생각과는 달랐다. 한 번 다녀오면 모욕감과 무력감이 쌓여 다시 나가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결국 월세를 내지 못하고 쫓겨났다. PC방 커플석에서 다시 살며 애인대행과 조건만남을 시작했다. 하루 일과는 저녁부터 시작된다. 돈을 벌어오면 모텔에 가서 목욕을 하고 낮잠을 잘 수 있다. 그리고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PC방비도 내지 못하고 쫓겨나야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두 달이 흐른 뒤, ㅂ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임신이었다. 그때부터 ㄱ이 나섰다. “ㅂ이 나를 위해, 나랑 같이 살려고 그렇게 한 거니까요. 제가 그가 한 만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인터뷰를 하다가 ㄱ이 입이 마르다며 자리를 비웠다. 5분 뒤 돌아와 그 경험을 쏟아냈다.
“사람들이, 아니 어른들이 내 몸을 그렇게 쓰라고 부추겼죠. 그렇게 쓰면 집에 돌아가지 않고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살 수 있다고. 그런 나를 원했으니까요.”
“그때는 내가 도구였어요. 돈을 벌기 위한 도구였죠. 나 스스로 내 몸을 써서 돈을 벌어 밥을 먹고 잠잘 곳을 찾아야 했어요.”
“성매매가 돈을 쉽게 버는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렇지 않아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한 시간, 두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나서 10만원이 나오니까요. 이렇게까지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을 표현할 수 없어요. 그런 티를 내면 (성구매자가) 그냥 가버리니까. 그러고 나면 나는 밥을 먹을 수 없으니까요.”
“나는 인형이다. 인형일 뿐이다. 나는 기계고,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사람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밥을 먹고 편히 잘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인형이다. 이렇게 다짐을 하죠.”
쉼터를 찾은 것을 두고 ㄱ은 ‘기적’이라고 말한다. 일단은 쉼터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쉼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도 ‘그곳은 무서운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라거나 ‘규제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감옥 같은 곳’이라는 소문이 떠돈다. 실제로 가출한 지 한 달이 안 돼 우연히 찾은 청소년상담보호소에서 ㄱ은 옷과 몇 푼 안 되는 돈을 뺏길 뻔하다 그곳을 뛰쳐나오기도 했다. “내가 세지니까 아무렇지도 않더라고요.” 그 시간이 ㄱ을 얼마나 몰아세웠을까. 그는 청소년상담보호소를 거쳐 지금의 청소년쉼터에 오게 됐다.
“그런 나를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ㅂ이 출산 때문에 미혼모센터에 들어가야 했고, ㅂ과 헤어지고 나서 청소년쉼터에 들어오게 됐고, 결국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오니까 정말 이해할 수 없더라고요.”
ㄱ씨는 지금도 가끔 꿈을 꾼다. 힘들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고통스러운 표정이다. 견디기 힘들다. 잔뜩 찡그리고 신음을 토한다. 그러다 깬다. 쉼터에 와서는 거의 매일 있었던 일이다. 그렇게 잠을 깨면 다시 잠들기 힘들다. 그냥 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면 흐르는 눈물을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다.
“어려서 자다가 눈을 뜨면 엄마가 없었어요. 깜깜한데, 엄마가 없으니까 그냥 울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다시 잠이 들었죠.”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기억은 엉켜 있다. 엉킨 기억은 정신의 상처와 무관하지 않다. ㄱ씨는 처음 쉼터에 들어와서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할 때 순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어떻게 가출을 하게 됐고,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래서 어떤 어려움에 처했다 등의 일들이 죄다 섞였다.
상처로 뒤엉킨 기억
“시작과 끝만 있었어요.”
기자와의 인터뷰처럼 시간의 처음과 끝을 이어서 설명하기까지는 6개월 넘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여전히 자존감을 완전히 회복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현재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청소년을 위해 일한다. 온라인 상담사가 된 것이다. 온라인 채팅사이트를 돌며 ㄱ씨는 불과 2년 전의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가출 청소년, 그중에서 성매매로 끼니를 잇고 있는 이들에게 사이버상에서 직접 말을 걸어 쉼터로 발길을 이어주는 징검돌 노릇을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ㄱ씨와 함께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았다. 한 채팅 사이트에 접속한다. 대화 사이트의 창에는 해당 채팅 사이트 공지로 “우리는 내·외부 모니터링을 통해 불법/음란 행위를 적발하고…”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ㄱ씨가 채팅방을 열자마자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160/45/빠른 93/올낫x이동x차x”
키와 몸무게, 나이 등과 함께 성매매 조건이 제시됐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다. “사는 사람이 24시간 있으니까 파는 사람도 생기는 것 같은데.” 밤을 함께 보내는 것은 안 되고, 원래 약속한 곳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으며, 차를 이용할 수도 없다는 조건만남의 문구다. 순식간이다. 놀라는 기자에게 “경악하셨군”이라며 웃는다.
“사람들이 이렇게 뜨는 것을 보고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자발적인 게 아니라 미리 어른(성구매자)들이 요구하는 조건에 맞게 만들어놨다가 복사해서 띄우는 거예요. 집을 나온 아이들 처지에서는 그걸로 먹고살아야 하고, 한 번에 되는 게 아니니까. 피해야 할 것도 있고요. 죽어도 하기 싫은 것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도 있고.”
호객처럼 보이는 문구들이 실은 “최소한의 나를 지키는 가이드라인”이었다. 순식간에 뜬 문구 아래로 ㄱ씨도 준비해뒀던 문구를 붙인다. 그가 일하는 청소년쉼터에서 만든 웹 전단이다. 하지만 이뿐만 아니다. 요즘은 캐릭터만 여자일 뿐, 불법적인 성매매업소에서 조직적으로 인터넷 성매매를 하는 경우도 많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가출 또는 성매매 하는 친구들을 상담해주고 도와주고 있는 또래 상담사입니다. 주거 제공, 일자리 안내, 법률 지원, 의료 지원, 개인 상담 등….”
돌아오는 답은 차갑다.
“꺼져.”
한참 동안 욕설이 이어진다. 옆에 앉은 기자가 민망할 만큼 낯뜨거운 욕설에 ㄱ씨는 웃는다.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놀라지 않아요.” 그들을 보는 시선은 담담하다. “대부분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피해자인데, 우리까지 비행청소년이라는 식으로 차갑게 대하면 안 되겠죠?” 자신이 그런 두 겹의 시선으로 겪은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때 차갑던 상대방이 “쪽지로 연락처 다시 남겨”라고 답한다. ㄱ씨는 “이 정도면 다음에는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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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상담사가 된 꿈 많은 열아홉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5시간, 여름 등 성수기에는 야간근무를 한두 시간 더 하는데, 한 달 동안 상담하는 사람만 60명 정도다. 이 숫자는 말을 거는 수가 아니라 도움을 줄 수 있고, 상대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경우만을 합산한 것이다. 기자가 ㄱ씨와 함께한 그날도 한 청소년이 인근에서 도움을 요청해 상담사가 급하게 현장으로 달려갔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한 이 사업에서 50명 넘는 청소년이 온라인을 통해 지원시설을 찾았다. 이 수치는 지금까지 청소년 성매매 피해자 문제에 관여해온 쉼터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성과다. 그중에서 ㄱ씨는 베테랑이다. 지난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이 남은 앞으로의 삶은 그에게 어떤 길을 열어보일까. 대답 대신 배시시 웃는다. “새끼손가락의 봉숭아물이 예쁘다”고 말하자 “아부 쩐다”(아부가 심하다)며 수줍어서 어쩔 줄 모른다. 영락없이 그는 꿈 많은 열아홉 청소년이다. 그의 꿈은 범죄 프로파일러다. 지금 그는 최고의 청소년 온라인 상담사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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