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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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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 찍고 싶어라!

등록 2000-11-29 00:00 수정 2020-05-02 04:21

영원한 청년으로 사는 가수 한대수의 희망사항… 음악을 통한 사회적 발언의 의미들

한국 포크록의 시조로 평가받는 가수 한대수(53)가 얼마 전 8집 앨범 을 냈다. 이 음반은 32년간 한씨가 뛰어왔던 음악 최전선에 마침표를 찍는 앨범이다. 그는 프롤로그에서 “영감이 없어지는 것도 사실이고 8개의 자작 앨범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음악적으로 다 한 것 같다”고 적었다. 또 “나의 과거의 선율을 계속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돈과 시간의 낭비라고 본다”고 모질게 못박았다. 떠날 때를 아는 사람 한대수. 그러나 그는 은퇴선언이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청년처럼 스스럼없고 솔직하고 기운이 넘친다.

김규항: 건강이 안 좋아졌다고 하든데 팔 아픈 것말고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한대수: 전체적으로 조금 다운됐죠. 아무래도 나이를 속일 수 없더라고요. (웃음)

김규항: 젊은 시절에 굉장히 정력적이어서 건강에 대해서는 별로 관리를 안 했죠?

한대수: 하나도 안 했죠. 운동도 안 했고….

최보은: 그러면 요즘엔 운동 좀 하세요?

한대수: 하나도 안 하죠. 예쁜 아가씨들 쫓아다닌 벌을 받는 건가? (웃음)

김규항: 요즘도 그러나요? (웃음) 하긴 아름다운 여성들을 좋아하는 덴 좌우가 없죠. (웃음)

한대수: 저는 외모만 봐요, 99%. (웃음)

김규항: 지나치게 솔직한 건 좋은데 좀 위험한 발언입니다. (웃음)

젊은 음악인은 넓은 세상을 품어야

최보은: 그럼 집에서 사모님과는 아무 얘기도 안 하고 얼굴만 보고 계세요?

김규항: 아무래도 오랫동안 같이 지내다 보면 여행도 같이 하고 고통도 같이 받으니까 서로 비슷해지더라구요.

최보은: 그런데 예쁘고 젊은 여자는 계속 나오잖아요.

한대수: 그러니까 지금 혼돈이 되는 거죠. (웃음)

김규항: 지금 부인도 충분히 젊지 않습니까?

한대수: 예, 나이 서른.

김규항: 이 정도에서 마감하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은데요. (웃음). 요즘 선생님께서 이른바 신자유주의,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비판적인데 80년대 우리나라에서 노래운동하던 청년들이 70년대 포크를 정리한 글에서 선생님께서 결국은 행복의 나라, 미국으로 가버렸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미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청년 시절 한국에 들어와서 잠시 음악활동하다가 미국으로 돌아간 부분에 대한 비판이었던 것 같은데.

한대수: 상대방이 제 음악이나 철학관, 인생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요. 저는 신경을 전혀 안 씁니다. 부산에서 만들었든 파리에서 만들었든 작품이 좋으냐, 나쁘냐가 중요한 거죠. 그리고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저로서는 오히려 지금 신세대 음악인들이 좀더 밖에 나가서 많은 것을 배우고 우리 문화의 나쁜 점과 좋은 점을 가릴 수 있도록 안목을 익히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에게 무슨 장충동 원조족발집처럼 포크록의 원조라는 말도 하는데, 사실 그것도 알다시피 제가 고등학교 때 다른 문화를 배웠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눈이 다른 분야로 뜬 거죠, 안 그랬으면 그런 음악을 할 수도 없었고 할 생각도 없었겠죠.

김규항: 고향이 부산인데 부산에 계속 계셨으면 트로트 가수가 됐을까요? (웃음)

한대수: 트로트 가수? 아니면 목장 주인이 됐겠죠. 우리집에 목장이 있었거든요.

김규항: 선생님께서는 신자유주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이미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서 반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자서전에서 언제부터 장사꾼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됐나, 왜 돈으로 모든 예술이나 정신적 가치가 팔려야 하나고 말씀한 게 인상적이었는데요.

한대수: 체제라는 것이 하느님이 내려와서 만든 게 아니거든요. 우리 인간이 만든 거라구요.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 체제가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 극소수만이 즐기고 행복해야 할 대다수가 고통에 싸여 있단 말이지요. 미국사회만 해도 중간 계층이 없어지고 극소수의 부유층과 대다수의 가난한 층만 남았어요. 미국이 가장 부자나라라고 하지만 그곳만큼 홈리스가 많은 나라가 없거든요. 뉴욕, LA 할 것 없이 전국에 수백만명의 홈리스가 있지만 이번 대선 때 어떤 후보도 홈리스에 관한 정책은 내놓지 않았다고요. 그리고 2000년에 전세계적으로 굶주리는 어린애들이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죠. 하늘 아래 이 지구상에 먹을 건 충분히 있거든요.

김규항: 한국도 결식아동이 아직 많습니다. 아이들이 밥을 굶고 있는데 예술이니 지식이니 떠드는 건 다 웃기는 일이죠. 한국의 현재 정치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한대수: 제가 미국에서 계속 살아왔기 때문에 대답할 자격이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요즘 남북대화가 이뤄지고 이산가족도 상봉하고 문화교류도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건 바람직하다고 보는데 정치적인 통합은 한 세대가 지나가야 할 만큼 상당히 오래 걸린단 말이죠. 그런데 구태여 정치적인 통일을 이슈로 삼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아시겠지만 미국이란 나라도 주마다 법이 약간씩 틀려요. 그와 마찬가지로 문화, 경제교류가 있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고갈 수만 있으면 그것도 한 나라가 된 거예요. 미국같이 뉴저지에는 열아홉살에 술 마실 수 있고 뉴욕에는 열여덟에 술 마실 수 있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단 말이죠. 그래서 합중국 형식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에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는 음악을 위해…

최보은: 그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말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지요. (웃음) 다시 음악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지금은 대중음악도 자본에 의해 거대한 스타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음악이 어떤 식으로 사회적인 측면에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보세요?

한대수: 미국에서 60년대부터 존 레넌이나 밥 딜런, 레나드 코언, 존 바에즈 이런 사람들이 여성운동, 흑인운동 같은 사회적인 이슈들을 음악에 담아서 사람들의 마음을 잡았잖아요. 꼭 음악뿐만 아니라 예술과 정치는 분리가 될 수가 없는, 그야말로 부자지간인 거 같아요.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정치인들은 항상 선동의 도구로 창작자들을 이용해왔구요. 이번 미국대선 때도 고어 진영에서는 제임스 테일러가 옆에서 기타를 치고 부시쪽에서는 가스 부룩스가 텍사스 모자 쓰고 나와서 노래했잖아요.

김규항: 미국사회에서 랩이나 하드코어 록음악은 가사에서 반역적인 메시지를 많이 담지 않습니까? 70년대 포크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그런 정신이 좀 있었고 80년대에는 반대로 한국의 전통적인 예술형식인 마당극이라든가 탈춤이라든가 민요, 이런 걸로 정치성, 사회성을 담으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사실 90년대 지나면서 대부분 폐기됐고, 지금은 이것도 저것도 없는 상태죠. 지금 우리나라도 하드코어가 유행이라는 데 이 역시 형식만 들어왔지 내용이나 정신 같은 건 없거든요.

한대수: 우리나라 문제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흐르는 음악 주류에 정신이 사라진 것 같아요. 모든 것이 디자인과 포장 시대예요. 예를 들어 로큰롤의 본고장이라는 미국 대중음악계에서도 제일 판을 치는 가수가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 롤리타처럼 예쁘게 포장된 소녀 가수들이거든요.

김규항: 사람들이 선생님처럼 예쁜 걸 자꾸 좋아하니까 그렇게 되는 거죠. (웃음)

최보은: 저는 사실 음악쪽으로는 무지한 편인데 한번은 음악평론가한테 이렇게 물어봤거든요. 음악이 사회적인 발언을 한다면 가사를 통해서 하는 것인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어봤더니 그분 말씀이 태도라고 말씀하든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대수: 그분이 정확하네요. 가사로 꼬집는 것보다 태도예요. 말로는 제가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지금 실업자들이 5만명이 된다더라, 서울역이 왜 이렇느냐’ 노래부르면 이거 완전히 지루하다구요. 저를 보고 사람들이 사회성을 띤 작곡가라고 말을 했는데, 저는 구체적으로 꼬집은 적이 한번도 없어요. 유신체제에 대해서 노래말을 쓴 적도 없고, 아이디어만 주는 거예요. 음악이 너무 세밀하게 들어가면 재미가 없어져요. 그리고 저는 꼭 한 세대에서만 일어나는 분명한 일보다도 전 인류에 관계되는 공통의 주제가 더 재미있기도 하구요.

최보은: 음반 재킷의 프롤로그에서 5개의 음반사를 찾아갔지만 다 거절당했다고 써놓았는데 혹시 연세가 드셔서 창작을 포기하려는 게 아니라 음반을 내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웃음) 그만두고 싶은 건 아닌가요?

5번이나 거절당하고 가까스로 음반 내

한대수: 이번 음반낼 때 제일 먼저 간 데가 지난해 데뷔 음반을 재출반했던 곳인데, 회사가 완전히 내려앉았더라구요. 다음에 찾아간 음반사는 3일 고민하다가 안 하겠다고 하고…. 평론가 이백천씨가 이거 안 된다 해서 다시 나를 데려간 회사에서도 성사가 안 됐고. 뉴욕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꾸리는데 손무현한테서 술한잔 하자고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판 좀 만들자, 어떻게 녹음할 기회가 없느냐, 그러니까 제가 하겠습니다, 그러더라구. 그래서 연결이 됐어요. 음반 한장 제대로 제작하는데 사실은 평균 5천원에서 1억원이 들거든요. 뮤직비디오까지 찍으려면 몇억 들어요.

최보은: 그럼 선생님 이번에 뮤직비디오도 찍으세요?

한대수: 안 돼죠. 화폐가 없으니까. (웃음) 내년에 음반이 조금 팔리고 나면 할지도 모르죠. 저도 사실 비디오 상당히 하고 싶어요. 전 사진작업도 하니까 아이디어도 많은데.

김규항: 형편이 그 정도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한대수: 삼십년 넘게 음악을 했으면서 음반사에서 거절당하는 일은 외국 같은 데서는 있을 수 없죠. 음반이 안 팔려도 가수의 카탈로그를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큰 경쟁력이 되니까, 우리는 시장이 너무 좁고, 어떤 가수는 1억원 들여서 했는데 석달 만에 20억원 벌었다 이런 성공신화만 자꾸 들리잖아요. 음반계가 모두 그렇게만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무척 힘들었어요.

최보은: 서태지도 라는 노래를 했지만, 요즘 랩하는 젊은 가수들은 체제나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노래를 하기도 하는데, 선생님 생각하고 그런 노래들이 같은 맥락이라고 보세요?

한대수: 완전히 다른 거 같아요. 랩의 시초가 억압된 소수민족의 고통이거든요. 말하자면 할렘에서 전혀 기회가 없는 흑인들이 백인사회나 경찰에 대해 내뱉는 분노를 말하는 건데 우리는 부유한 사람들이 하는 힙합이 돼버렸어요. 최고로 유행하는 패션이나 머리모양을 하고서 힙합을 하죠. 음악은 자기 생활의 솔직한 반영이 돼야 되는데, 그 정도로 화폐가 많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 정말 그렇게 분노를 느끼느냐, 아니면 음악을 상업화시키기 위해서 조작을 해낸 거냐 따져보면 힙합하는 한국 젊은이들 가운데 고통받는 친구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표면적으로 스타일만 따르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아직도 고생하고 있습니다. (웃음) 저의 가사들은 다 사실 그대롭니다.

사회적 분노인가, 상업적 조작인가

김규항: 아까도 말했지만 70년대 포크서부터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에 서양 형식이 들어올 땐 정신은 들어오지 않고 항상 껍데기만 들어왔거든요. 미국 흑인들에겐 랩이 있고 자메이카엔 레게라는 음악이 고단한 삶과 노동을 노래하는 기능을 하죠. 전통시대엔 우리에게도 다양한 노동요가 있었는데 오늘날 그런 기능을 하는 음악이 가능할까요?

한대수: 형식이 중요하다기보다는 그냥 자기 느낌을 솔직히 얘기하면 되겠죠.

김규항: 그런 가능성을 가진 후배 뮤지션은 있어 보입니까?

한대수: 저는 한번씩 시간나면 케이블TV도 보고 그래요. 제 나이쯤 되면 댄스뮤직 싫다, 듣지도 않는다 그러는데, 저는 좋은 곡도 많다고 생각해요. 예들 들어서 샵, 그 친구들 음악도 들을 만하더라구요. 김현정도 노래 잘하고 또 TJ인가 하는 남자가수도 아주 창작성이 뛰어나구요. 그리고 뮤직비디오가 많이 발전했더라구요. 많이 발달한 정도가 아니고 스타일이나 편집도 어떤 부분은 미국보다 낫더라구요. 그리고 일단 요즘 가수들 너무 젊고 예쁘지 않습니까. (웃음) 밥을 먹지 않더라도 메뉴는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메뉴보는 데 죄가 있습니까? (웃음)

김규항: 예쁘고 댄스한다고 하면 다 똑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군요. 샵이라….

한대수: 저는 항상 공부해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좋은 가수들이 있더라구요.

최보은: 후배 가수들하고 소통은 자주 하세요?

한대수: 어어부 밴드도 한번 만났고, 황신혜 밴드 이 친구들도 가끔 이야기하고 크래쉬의 안흥찬 같은 친구도 한번씩 만나면 아주 좋죠. H.O.T도 한번 만나면 좋겠는데 기회가 없네요. (웃음)

최보은: 후배들과 함께 무대에 오를 생각이나 계획은 없는가요?

한대수: 같이 나눌 수 있는 무대가 주어지길 바라구요. 우리는 상당히 구분하는 걸 좋아하는데 믹싱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힙합, 포크, 록음악도 같은 무대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자란 60년대의 생산품 아닙니까. 플라워 제너레이션인데, 그때 제일 재미있던 게 공연장에 가면 한참을 믹싱하더라구요. 색소폰 주자인 찰스 로이드가 재즈로 시작하면 그 다음에 탐 러시가 나와서 포크하고 사이키델릭 록밴드인 아이언버터플라이가 나와서 탁 끝내주거든요. 음악 스타일은 다른데 마인드는 똑같거든. 마인드가 뭐냐, 자유라고. 자유를 울부짖는 거라구. 재즈를 하든, 포크를 하든. 다들 생각도 안 하고 돈이 필요하다고 그러는데 사실은 돈이 필요한 게 아니고 결국은 자유가 필요한 겁니다. 돈이 있으면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마음대로 가질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저는 돈도 없이 자유를 택했지요. (웃음)

김규항: 이번 음반의 첫머리는 여러분 제가 병들었습니다라고 시작하고 인터뷰에서 앞으로 앨범내기 힘들 것 같다 말씀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여전히 정력적인 모습인데 지나치게 약한 모습 보이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한대수: 극복해야죠. 그런데 쉰 넘어서까지 싱어송 라이터하는 가수 별로 없잖아요. 그게 쉽지가 않더라구요.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작곡에 한계가 생기니까. 특히 록음악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되는데 영감이 없어지면 정말 제대로 하기 어렵죠. 노래만 할 수도 있겠지만 싱어송 라이터로서의 역할을 못할 경우에는 음악이 좀 불만족스러워요. 제 자신의 색깔이 없어지는 거 같아요. 노래를 안 하더라도 젊고 재미있는 밴드가 있으면 프로듀싱 작업 같은 것도 해보고 싶어요.

미국에 신경쓰지 않는 그날을 기다린다

최보은: 뉴욕에서는 음악작업말고 다른 건 안 하세요?

한대수: 미국에서는 지금 마누라 뒷바라지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웃음) 안마도 해줘야 되고 밥도 해줘야 되고. 사진작업도 계속 하고 있구요. 내년 7월에는 가나화랑에서 개인전이 있어요. 가나화랑은 순수미술전시만 했는데 사진전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한 40점 정도 계획하고 있는데 재밌을 거 같아요.

김규항: 가나아트 사장이 좀 파격적인 데가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한때 간첩으로 몰리기도 했던 홍성담씨의 개인 전시회도 있었죠. 판매도 꽤 됐다든데 선생님도 이번 기회에 돈도 좀 벌어서 다음 음반 준비해야죠. (웃음)

최보은: 그러면 뮤직비디오도 나오는 건가요?

한대수: 뮤직비디오 찍게 되면 가수 김현정씨한테 무릎꿇고 부탁해야지. 같이 출연해달라고. (웃음)

최보은: 오늘의 결론을 한번 내볼까요?

한대수: 하여간 제가 바라는 것은 우리 사회가 너무 돈 중심이 아닌 선의적인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에 대해서도 너무 신경쓰지 말고. (웃음)

김규항: 한대수는 여전히 청년이었다. (웃음)

최보은: 신자유주의여, 기다려라. 한대수 음악 나가신다. (웃음)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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