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우연히 케이블 채널에서 영화 을 보았다. 스크린보다 브라운관에서 더욱 사랑받았던 이 영화는 겉은 우악스럽지만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한 남학생의 이야기를 그린다.
고등학생 ‘짱구’는 거칠기로 소문난 부산의 상고에 진학해 ‘간지나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싶어 한다. 불량서클에 가입해 무서운 형님들을 등에 업고 서면 바닥을 주름잡고 싶어 하지만, 결국 그는 엄한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소심한 남학생에 지나지 않는다. 친구들과 건들거리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삼던 짱구는 아버지의 이른 죽음을 계기로 ‘보통 어른’으로 성장한다.
이 영화가 마음을 울린 것은, 뭐라도 될 것처럼 힘주고 다녔지만 결국엔 고만고만한 성인이 돼 허탈함을 느끼는 평범한 남학생의 회고담이나 성장담 때문은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일 땐 걸걸하고 재치 넘치지만 엄격한 부모 앞에선 늘 진심을 삼키는 내성적인 짱구의 모습 때문이었다. 무뚝뚝한 아들 짱구는 간경화로 온몸이 퉁퉁 부은 아버지에게 괜찮으시냐는 말 한마디 꺼내는 것이 쑥스럽다. 늘 뒤에서 후회하고 뒤에서만 안도한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면서도 손 한번 따뜻하게 잡아주지 못한다. 그 순간에도 그는 아버지가 어렵고 낯설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빈소에서 며칠 밤을 새우던 짱구는 환영 속에서 건강해진 아버지를 본다. 그리고 비로소 솔직한 자식이 된다. 사랑한다고, 괜찮은 어른이 되겠다고, 울음으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짱구에게 아버지는 다정하게 말한다. 다 알고 있노라고.
타인보다 가족에게 더 불친절할 때가 많다. 친구에겐 제때 격려하고 다독이고 안아주려고 노력하지만, 오히려 가족에겐 다정한 말을 삼키고 쉽게 짜증을 낸다. 말하지 않아도 가족은 내 진심을 다 알 것이라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실은 편리한 이기주의가 아니었을까?
지난해 겨울,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처음으로 겪은 가까운 가족의 죽음이었다. 내내 우리 가족이 함께 있었지만, 결국 할아버지는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찰나의 새벽에 홀로 세상을 떠나셨다. 생각해보면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드렸을 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하고 싶었고, 할 수 있었지만, 왠지 부끄러운 마음에 다음번에 건넬 것이라고 미루었던 것 같다. 조용한 진심은 소중하다. 그러나 나만의 진심에만 기대 자꾸만 말을 삼키다 보면, 그것은 언젠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로 우리를 덮칠 것이다. 후회라는 이름으로.
영화의 엔딩을 보며 생각했다. 삼키는 말보다 내뱉는 말이 더 많은,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어야겠다고.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냈을 때 남는 건 후회뿐이라고 누군가 그랬다. 부끄러움을 무릅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는, 언젠가 우리가 맞이할 먹먹한 후회를 덜어낼 마지막 위안이 되지 않을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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