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와 느티나무가 서로 닮아서 헷갈린다고 그 둘을 어떻게 쉽게 구분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내 답변은 이렇다. “열매가 아예 달라요. 팥알을 닮은 빨간 열매가 달리면 팽나무입니다. 열매가 달리기나 한 건지 아리송하다면 느티나무예요. 느티나무 열매는 잎에 바짝 붙어 맺히기 때문에 사람 눈에 쉽게 띄지 않거든요. 잎도 아주 다르게 생겼습니다. 팽나무는 잎 가장자리에 깔쭉깔쭉하게 베어져 들어간 톱니 같은 자국이 상반부에만 완만하게 있고 느티나무는 훨씬 거칠게 잎 전체에 있답니다.”
그러면 잎이나 열매가 없을 때는 어떻게 알아볼까? “나무껍질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면 느티나무, 그렇지 않고 매끈하다면 팽나무예요. 겨울눈이 가지에 납작하게 붙어 있으면 팽나무, 가지로부터 20~30도 정도 예각으로 떨어져 있으면 느티나무입니다.” 식물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꽤 세심한 눈과 노력이 필요하다.
식물분류학자들도 한때 비슷한 의문을 품었다. 생김새로만 구분했던 과거의 인위적인 식물분류 체계에서 팽나무가 어떤 나무와 더 가까운 혈통인지 명쾌한 답을 내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무의 전반적인 외형이 느티나무나 느릅나무와 닮았으니 그 혈통인 ‘느릅나무과’로 봐야 한다는 의견, 잎이 뽕나무랑 더 닮았으니 ‘뽕나무과’로 분류하자는 의견, 그 둘 다 모호하니 아예 독립된 ‘팽나무과’로 새롭게 정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팽나무의 혈통이 제대로 밝혀진 건 그간 맨눈으로 알 수 없었던 디엔에이(DNA) 염기서열을 비교해볼 수 있게 되면서다. 과거의 그 추론은 다 빗나갔다. 팽나무는 느릅나무과도 뽕나무과도 별도의 팽나무과도 아니라 ‘삼과’에 속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현대 과학은 팽나무가 마약이 되는 대마, 맥주 만들 때 넣는 홉과 같은 계통이라고 정리한다. 유전자를 해독해서 얻은 그 단서를 들고 팽나무의 생김새를 따져보면 알 수 있다. 아, 팽나무 꽃과 그 꽃의 결실 과정이 삼과에 속하는 식물과 닮았구나. 식물의 혈통을 짐작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는 잎이나 수형보다 잉태에 직접 관여하는 생식기, 그러니까 꽃에 있다.
꽃이 나아가야 할 길은 반짝 피었다 지는 개화가 아니라 모름지기 결실로 이어지는 일. 식물은 수정에 성공하면 열매를 맺는 데 에너지를 ‘몰빵’한다. 그건 단순한 여묾을 넘어 씨앗을 최대한 안전하게 지키고 어떻게 더 멀리 퍼뜨릴지로 직결된다. 그래서 식물은 유한한 시간과 체력과 능력을 결코 허투루 쓰지 않는다. 동물보다 더 지혜롭고 전략적으로 자기 씨앗을 지켜 대를 잇고 종을 유지한다. 그 맥락에서 본다면 팽나무는 고수 중의 고수다.
팽나무 열매는 살구나 복숭아와 비슷한 구조다. 단맛이 나는 과육질 안에 갑옷처럼 딱딱한 씨앗이 있다. 그게 진짜 씨앗은 아니고 씨앗을 싸고 있는 안쪽 껍질인 내과피(內果皮)라는 거다. 그 속껍질은 씨앗에 딱 붙어 있어서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마치 씨앗과 한 몸처럼 움직인다. 이런 형태의 열매를 식물분류학 용어로 ‘핵과’라 한다. 팽나무 열매는 크기도 모양도 비비탄 총알과 비슷하다. 색은 붉다. 그 불그레하고 말랑말랑한 과육을 벗기면 내과피, 즉 안쪽 껍질이 나온다. 과육을 벗긴 팽나무 내과피는 색깔이 하얘서 정말 비비탄 총알을 닮았다. 그 씨앗을 총알 삼아 ‘팽총’을 만들어 놀았다고, 팽나무가 흔한 바닷가 마을에서 자란 친구에게 들었다.
대체로 식물의 내과피는 나무의 목질부를 형성하는 성분인 리그닌(Lignin)으로 이루어져 있다. 팽나무는 좀 다르다. 리그닌도 아니고 그 비슷한 나무 재질도 아니다. 놀랍게도 아라고나이트(Aragonite)라는 광물질이다. 그건 달팽이 같은 연체동물의 딱딱한 껍질이 되는 성분이다.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에 지구에 등장한 팽나무는 그 어떤 극한 환경이 닥칠지라도 자신의 씨앗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제 몸에 광물을 품는 전략을 고안해냈다.
놀랄 만한 일은 또 있다. 아라고나이트만 지닌 건 아니고 사람들 사이에서 보석으로 익숙한 오팔도 일부 포함하고 있다. 아라고나이트와 오팔 등으로 이루어진 그 굳은 물질 덕분에 팽나무 내과피는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으스러지지 않은 채 버틴다. 오늘날 식물화석으로 발견되는 팽나무 씨앗이 과거의 기후와 식생을 해석하는 연구 분야에서 중요한 단서가 되는 이유는 그래서다. 더 놀라운 건 그토록 딱딱한 속껍질을 뚫고 팽나무는 이른 봄에 여린 싹을 밀어 올린다.
뭔가 좀 특별한 구석이 팽나무에 있음을 나는 꽤 일찍 느꼈던 것 같다. 커다란 팽나무 고목이 마을 복판에 서 있는 작은 시골 동네에서 나는 태어나고 자랐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생명체는 가족도 아니고 같은 반 친구도 아니고 그 나무였다. 유년의 내게 그 큰 팽나무는 마치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바브나무 같았다. 나무의 덩치가 몇 아름이나 되는지 두 팔을 벌려 한참을 재보거나, 땅에 떨어진 꾸덕꾸덕한 나무껍질로 탑을 쌓기도 하고, 제법 달콤한 열매를 따 먹어도 보고, 자잘한 씨앗을 하나둘 헤아리다 보면 금세 저녁이 찾아왔다.
하늘의 신이 그 팽나무를 타고 내려와 마을의 소원을 듣고 간다는 이야기를 할머니께 들은 적 있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온 마을 사람들이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팽나무 앞에 모일 때였다. 팽나무에 정성스레 새끼줄을 두르고 떡과 술을 차려 한 해의 풍농을 기원하며 절을 올리고 춤도 추었다. 그 기이한 풍경이 ‘동제’(洞祭)임을 알게 된 것은 내 학위논문 주제인 ‘팽나무속(Celtis)의 계통분류학적 연구’를 위해 전국의 팽나무를 찾아다니면서다. 오래 자라고 크게 자란 팽나무는 당산목으로 지목돼 신성시되곤 한다. 유구한 수령과 신비로운 수형 등의 가치를 인정받아 그간 다수의 팽나무 당산목이 보호수로 지정됐다. 우리나라 보호수는 느티나무와 소나무에 이어 팽나무가 세 번째로 많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팽나무와 팽나무가 포함된 숲은 최근 드라마 촬영지로 명성을 얻은 ‘창원 북부리 팽나무’를 비롯해 2024년 현재 7개나 된다.
그중 가장 먼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건 경북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에서 600년 넘게 산 팽나무, 황목근이다. 봄에 노란 꽃이 자욱하게 핀다고 황(黃)씨 성을, 최대한 깊이 뿌리 내리고 오래 살라는 바람에서 목근(木根)이란 이름을 일제강점기에 동네 사람들이 붙였다. 말살 통치에 맞서 나무를 지키려 팽나무 앞으로 토지를 등기 이전하려고 보니 보통명사 팽나무가 아니라 특정한 개체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필요했던 것. 그렇게 1939년부터 자신 명의의 토지를 소유하게 된 황목근은 연간 토지세를 꼬박꼬박 내는 모범 납세목이 됐다.
홀로 자라는 것 또한 팽나무 특유의 성품이다. 팽나무는 모수(母樹) 가까이에 모여 자라지 않는다. 한자리에 뿌리 내린 채 열매를 떨어뜨리는 방식보다 더 나은 비법을 팽나무는 안다. 자식을 더 멀리 보내어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지 않을 것이다. 팽나무는 과즙이 많은 달콤한 열매를 새와 포유류에게 제공하고 그걸 먹은 동물은 팽나무 씨앗을 퍼뜨리는 산포자가 된다. 동물은 팽나무 열매를 통째로 삼키거나 딱딱한 내과피를 발라서 내뱉는다. 동물의 입에서 아밀라아제에 씻기면서, 또는 동물의 따스한 내장을 통과하면서 팽나무 씨앗은 대체로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발아력이 높아진다.
팽나무는 무던하고 자비롭다. 적어도 내가 관찰한 바로는 그렇다. 바닷바람 쌩쌩 부는 척박한 바위틈에 자라면서 양분을 더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제 몸을 내어주는 데 한 치의 인색함이 없다. 다양한 나비의 애벌레를 키우는 것으로 명성이 높은 나무가 팽나무다. 왕오색나비를 비롯해 수노랑나비, 흑백알락나비 등의 애벌레가 팽나무에서 먹고 자고 자라서 나비가 된다. 비단벌레도 팽나무숲에 기대어 산다.
한반도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팽나무는 더 많다. 옛 바닷사람들은 포구 주변에 으레 자라는 커다란 팽나무에 배를 묶어 닻을 내리고 머물렀다. 그래서 남부지방에서는 팽나무를 포구나무라고 한다. 포구나무를 줄여서 제주에서는 폭낭이라고 부른다. 제주에 사는 아름드리 고목 대부분이 폭낭이다. 제주시 한림에 가면 아름답기로 유명한 명월리 팽나무숲이 있다. 조선 후기 유학자들과 시인들이 어울려 풍류를 즐기던 장소로, 명월대가 있는 문수천을 따라 수령 500년 이상의 팽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는 곳이다. 그 큰 팽나무숲이 지금까지 내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일찍이 선조가 나무를 살뜰히 살피고 지켰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송정’(松政) 제도처럼 제주에는 ‘종수감’(種樹監)이라는 직책을 두어 팽나무를 돌봤다. 마을 향약에는 ‘팽나무 한 줄기 한 잎이라도 해친 자는 목면(木棉) 반(半) 필을 징수한다’는 보호 규정을 담을 정도였다고.
제주 4·3 사건으로 사라진 마을을 찾을 때 팽나무는 일종의 단서가 된다. 강요배 화백의 <팽나무와 까마귀>는 항쟁이 있었던 4월 제주를 고스란히 담은 그림이다. 미군정과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무고한 주민과 마을이 사라진 곳에 덩그러니 살아남은 팽나무. 어떤 참혹한 광경을 제 몸에 알알이 새긴, 무언가를 말하려는 팽나무. 그림 속 팽나무는 결단코 뽑히지 않을 각오로 뿌리를 굳게 박고서 어딘가를 지켜보거나 누군가를 지켜주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내가 살아 있는 팽나무를 최대한 또렷하게 기록하고 싶어서 세밀화로 그리거나 카메라로 수백 컷을 찍어 겨우 건진 한두 장의 사진에 담을 수 없는 그 무엇이 강 화백의 그림 속에 있다.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는 절기, 춘분이 지났다. 아름다운 계절이 잊지 않고 우리를 다시 찾아왔다. 그러면 나는 일종의 봄맞이 의식 같은 것을 한다. 팽나무를 만나러 가는 일. 그 나무 아래에서 최대한 결기 있게 선포한다. “봄입니다!” 하고. 팽나무는 그저 잠잠히 서 있을 뿐이다.
말보다는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 나무의 성정임을 나는 안다. 지금 팽나무는 꽃눈을 보동보동 부풀리며 개화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건 봄이 왔다는 팽나무의 언어다. 4월이 왔으니 팽나무는 그 특유의 노란 꽃을 얼마간 하염없이 피울 것이다.
허태임 식물분류학자·<나의초록목록> 저자
*연재 소개: 식물학자가 산과 들에서 식물을 통해 보고 듣고 받아 적은 익숙하지만 정작 제대로 몰랐던 우리 식물 이야기.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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