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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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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고 낯선 두부오이비빔국수

어린이 대상 채식요리 강의, 먼저 오이 걱정 늘어놓지 않길 잘했네
등록 2023-07-14 22:15 수정 2023-07-19 14:16

“채식해서 마른 거예요?” “식물은 안 불쌍해요?”

아이가 물으니 익숙한 질문도 낯설게 들린다.

미루고 피해왔던 채식요리 강의를 하러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내부에 있는 키움센터에 왔다. 어린이와 접점이 없는 내겐 생소한 장소다. 브랜드 아파트에는 방과 후 아이들을 돌보는 시설이 있구나 짐작할 뿐이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고루 섞인 초등학생 15명과 채식 이야기를 나누고 비건 비빔국수를 만들면서 60분을 보내야 한다. 무료로 채식 레시피를 배포하던 비전문가를 아이들은 거리낌 없이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선생님, 휴대전화 번호 알려주세요.” “50㎏ 넘어요?” “사인해줄 수 있어요?” “유튜브 구독자 몇 명이에요?”

질문을 멈추지 않는 아이들과 마냥 기다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으니, 센터 선생님들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해줬다. 혼자였다면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왔을 것이다. 아이들이 나보다 훨씬 많은 문장을 말했다.

학생들에게 채식 음식을 알려주는 동안 선생님들이 국수를 삶아 왔다. 교실 한쪽에 쌓여 있던 색깔 접시가 아이들 앞에 하나씩 놓였다. 노랑 접시, 파랑 접시, 분홍 접시…. 아이들이 할 일은 자기 접시 위에 필러로 오이를 다섯 번만 얇게 저미는 것이다.

큰 그릇에 삶은 소면과 으깬 두부를 넣고 간장과 들기름, 들깻가루를 넣고 비볐다. 거기에 아이들이 저민 오이를 넣고 골고루 섞은 다음, 색깔 접시 위에 동그랗게 올려 나눠줬다. 원하는 사람에게 김자반을 뿌려주겠다고 하자 모두가 원했다. 한 손에 장갑을 끼고 돌아다니며 모든 아이의 국수 위에 김자반을 뿌려줬다. 오이를 남기거나 싫어하는 아이가 한 명도 없어서 놀랐다.

수업 때 만들 요리로 두부오이비빔국수를 선택하자 ‘아이들은 오이를 싫어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었다. 나는 어른의 지레짐작으로 ‘어쩌면 아이가 싫어할 만한 재료’를 미리 배제하고 싶지 않았다. 재료의 호불호보다 중요한 것은 체험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강요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스스로 배운다. 설령 오이를 싫어하더라도 취향이 아닌 식재료를 다루는 법이든, 싫어하는 메뉴만 있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이든, 내겐 맛없는 오이가 다른 친구들에겐 맛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든… 마주하고 대응할 것이다.

낯섦과 차이를 느낄 때 거부와 수용을 적절하게 할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 상황을 겪어봐야 자기 기준을 세울 수 있다. 그래서 당장 눈앞에서 오이를 치워주는 게 아니라 오이가 있어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주는 것이 더 좋은 교육이다… 라고 믿으면서도 아이들이 맛없어할까봐 걱정했는데, 다들 맛있게 잘 먹어줘서 어찌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아이가 반응하기 전 먼저 오이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지 않기 잘했다. 아이들은 어른의 말 한마디에도 크게 영향받아 ‘이거 싫어하니?’라고 물으면 그때부터 싫어할 수도 있기에, 아이를 대할 때는 내게 편리한 편견이 아니라 관찰하는 관심을 갖고 대해야 한다.

몇몇 아이는 자기 부모님이 이 국수 만들 줄 모른다고 걱정하며 또 먹을 수 있게 유튜브에 레시피를 꼭 올려달라고 당부했다.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몇 동 몇 호!” 아무렇지 않게 집 주소를 큰 소리로 알려주면서.

글·그림 초식마녀 비건 유튜버
*비건 유튜버 초식마녀가 ‘남을 살리는 밥상으로 나를 살리는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4주마다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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