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경기도 고양시 우보농장에서 ‘청년귀농 자급·자립 플랫폼’이란 주제로 교육받을 때였다. 하루는 ‘토종 씨앗’을 주제로 변현단 토종씨드림 대표의 강연이 있었다. 그는 토종 씨앗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토종 씨앗을 지키는 일은 순환의 체계를 다시 만드는 일이다”라고 했다. 한동안 이 말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 생일에 단체 하나를 골라 기부를 요청하는 글을 올리곤 했는데, 그해에는 ‘토종씨드림’으로 하기로 했다. 이를 눈여겨봤는지 변현단 선생님이 나를 토종 씨앗 수집에 초대해주셨다.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씨앗 수집에 동행했다. 장소는 경기도 평택. 한 카페에서 어른들이 새끼손톱만 한 씨앗들을 바라보며 이건 토종이니 개량종이니 하고 있었다. 서리태 같은 콩은 이로 깨물어 쪽을 나누더니 속이 황색인지 청색인지 구분하기도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동행하다가 자연스럽게 토종씨드림 활동가가 된 지 벌써 3년째다. 홍보 담당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다음 카페 등을 관리하고 콘텐츠를 생산한다. 그리고 함께 토종 씨앗을 수집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닌다.
토종씨드림은 토종 씨앗을 수집하고, 보존하고, 연구하고 이를 다시 농부들에게 나누는 일을 하는 단체다. 2008년 4월 ‘소멸하는 토종 씨앗 보전’이라는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체와 개인이 모여 결성한 비영리 민간단체다. 2023년부터 사단법인이 됐다.
요새는 전북 장수와 임실의 토종 씨앗을 수집하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다. 네이버 지도로 지역을 미리 분석한다. 비닐하우스가 많은 지역은 토종 씨앗이 나올 확률이 낮다. 길이 꼬불꼬불하고 계획이 덜 된 곳, 작은 밭이 많은 지역에 토종 씨앗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씨앗 수집 시작! 서너 팀으로 나눠 각자가 맡은 지역으로 흩어진다. 한 팀에 토종 씨앗을 구분할 줄 아는 리더, 기록자, 촬영자가 있다. 집집이 돌아다니며 문을 두드리고 어르신을 만난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 때부터 계속 받아서 심는 토종 씨앗, 재래종 씨앗을 찾고 있어요.” 이렇게 말을 걸면 대부분 “에이 그런 거 요새 누가 해, 다 사서 하지”라고 말한다. 간혹 “그런 건 다 받아서 하지” 말하는 분이 일명 씨갑시(씨앗)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다. 그들이 계속 씨앗을 지켜온 이유는 대부분 맛이나 경제적 사정 때문이다. “그래도 옛것이 더 맛있지.” 가족의 영향도 있다. “이 옥수수는 손자가 좋아해. 때맞춰 심어서 방학 때 오면 주지.” 이렇게 말하는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셨다.
우리가 찾는 건 단순 ‘씨앗’만은 아니다. 씨앗에 담긴 지혜를 듣는다. 오랜 시간 온갖 풍파를 견디면서도 매년 이 씨앗을 받고 뿌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지혜가 쌓였을까. 더러는 찔레꽃이나 무궁화꽃의 피고 지는 시기로 작물을 심는 분도 있다. 들쑥날쑥한 기후위기 시대에 날짜를 기억하는 것보다 더 지혜로운 방법이다.
평택에서 토종 씨앗을 수집하고 있을 때다. 평택은 미군기지가 들어서며 도시화가 진행 중이었다. 이런 곳에선 토종 씨앗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한 마을 두세 집에서 비슷한 씨앗을 수집했다. 이 씨앗을 나눠준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는 청갓, 맷돌호박, 아욱, 준저리콩, 조선배추 등 14가지가 넘는 토종 씨앗을 홀로 받아오셨다. 이런 어르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들을 만나는 지금, 이 순간이 간절한 이유다.
글·사진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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