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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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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호 때는 오지 마세요”

창간호부터 1000호까지 모두 모아놓은 창간독자 안태숙씨
이사갈 때도 버리지 못해 ‘특별대접’, 자식들도 모두 독자
등록 2014-03-12 14:28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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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C21A1A">수집벽</font> [명사] 취미나 연구를 위해 여러 가지 물건이나 재료를 찾아 모으기를 대단히 즐기는 버릇.

20년 동안 간행된 주간지 1천 권을 한 권도 빼먹지 않고 모두 모아놓은 일을 달리 표현할 수 있을까. 안태숙씨(55·왼쪽에서 두 번째) 집 안 창고에는 1960년대부터 모아놓은 각종 수집품이 있다.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식당 한쪽엔 옛날 교과서와 신문이 전시돼 있기도 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한겨레21 사전’ 나왔으면 좋겠어요” </font></font>

볕이 잘 드는 거실의 한 책장에 1천 권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작은아들 김상래(30)씨는 ‘특별대접’이라고 했다. “다른 책들은 창고 안에 상자로 포장돼 있는 게 많아요. 은 거실에 나와 있잖아요.” 물론,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1996년 경기도 문산의 지하 연립주택에서 살던 시절 물난리가 났다. 안태숙씨는 “옛날 신문을 포함해서 한 수레는 버렸나봐요”라며 당시 속상함을 전했다. 은 그때도 ‘특별대접’을 받았다. 보관된 잡지는 얼룩 하나 없이 깨끗했다.

1천 권의 은 100호 단위로 색인이 붙어 있었다. 가족과 관련된 기사가 등장한 제158호와 제500호에는 별도 표시가 있었다. 제158호(1997년)에는 손님들이 낸 밥값에서 100원씩 떼어 ‘북녘동포 돕기 운동’에 보탠다는 사연이 소개됐다. 제500호(2004년)에는 당시 23살, 21살이 된 두 아들이 대입 논술시험 준비를 로 했다는 이야기가 담겼다. 안씨는 과거 사진을 보며 “그땐 젊었네”라고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미소가 잘 어울리는 그의 얼굴엔 세월이 느껴지지 않았다. 타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남편은 함께하지 못한 채 전화 통화로 아쉬움을 전했다.

20년 동안 안씨 가족에겐 변화가 많았다. 1996년 경기도 고양시 벽제에서 시작한 식당은 2003년 파주로 옮겨왔다. 찾아오는 손님이 늘면서 식당이 유명해졌다. 인터넷 검색창에 식당 이름 ‘메주꽃’을 입력하면 무수한 후기가 쏟아진다. 장성한 두 아들은 규모가 커진 식당 경영에 합류했다. 도자기 공예가인 안씨는 식당 옆에 별도의 공방도 마련했다. 아들들은 각각 결혼해서 모두 세 아이를 낳았다.

이 가족에게 은 어떤 의미일까. 큰아들 김청래(32)씨는 “바쁜 일상 탓에 ‘통독’은 못하지만, 지금도 사회를 보는 새롭고 신선한 감각을 놓치지 않고 싶어 목차 정도는 꼭 챙겨본다”고 했다. 부부 또한 독자일뿐더러, 과거 잡지를 들춰보는 일도 쏠쏠한 재미다. “의 등장 이후 이만한 잡지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이 다뤘던 모든 분야를 집대성하는 ‘한겨레21 사전’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20년은 너끈히 버티라는 주문</font></font>

1천 권을 쌓아놓고 가족사진을 찍은 뒤, 안씨는 “사진도 찍었으니 2000호 때는 오지 마세요”라며 웃었다. 기분 좋은 덕담이다. 불안한 미디어 환경 따위 개의치 말고, 답게 20년은 너끈히 버티라는 주문일지니.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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