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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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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의 왕’ 기재부를 쪼개라

민주·혁신당 중심으로 기획재정부 개편 움직임…조직·권한 비대하다는 문제의식 커
등록 2025-05-16 16:17 수정 2025-05-19 13:25
2025년 3월2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복귀한 한덕수 국무총리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위원 간담회에 참석해 직전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기재부 출신이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2025년 3월2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복귀한 한덕수 국무총리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위원 간담회에 참석해 직전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기재부 출신이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2025년 6월3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기획재정부 개혁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4월 초 더불어민주당 허성무·오기형 의원은 기재부를 예산처(부)와 재정경제부로 분리하는 법안을 내놓았고, 민주당 의원들은 4월23일과 28일 잇따라 기재부 개혁 토론회를 열었다. 이재명 후보도 4월27일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기재부가) 경제 기획을 하면서 재정까지 틀어쥐어서 정부 부처의 왕 노릇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세부적인 안은 나중에 내겠다”고 기재부 개혁 방침을 내비쳤다. 검찰 개혁과 함께 기재부 개혁을 강령에 포함한 조국혁신당은 4월30일 ‘기획재정부 개혁 방안’을 가장 먼저 발표했다.

 

정부 위의 정부로 군림

기재부 개혁이 이렇게 큰 의제가 된 것은 무엇보다 그동안 기재부가 정부 안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왔기 때문이다. ‘모피아’라는 말처럼 예산권을 쥐고 행정부 기관들을 통제했고 이를 바탕으로 기재부 출신들이 행정부 안팎의 고위직을 차지해왔다. 특히 관료 출신의 역대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들은 민주당이 집권한 시절 진보적 정책을 번번이 막아섰고, 청와대나 집권당과 충돌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다른 행정부 기관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직 검찰만 기재부와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4월 관료 출신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집권당인 민주당을 상대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보편 지급에 한 달 동안 반대했다. 그러자 당시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 정도로 완화된 안도 못 받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여기가 기재부의 나라냐”며 강하게 비판했다고 알려졌다. 이어 8월 홍 부총리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요구에도 부정적 태도를 밝혔다. 이에 이 지사는 “이 나라는 기재부의 나라가 아닌 국민의 나라이고 기재부는 (…) 국민의 머슴임을 기억하기 바란다”고 반박했다.

기재부는 민주당 정부와 국민의힘 정부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021년 재정 건전성 악화가 우려된다며 소상공인 재난지원금 지급 등에 반대하다 결국 61조원의 역대 최대 초과 세수를 올렸다. 그럼에도 기재부는 문재인 정부 임기 말까지 2022년 세수 전망을 보수적으로 유지했다. 그러나 새로 들어선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틀 만에 세수 전망을 긍정적으로 바꿔 59조원의 추가경정 예산안을 발표했다.

기획재정부가 들어있는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의 모습. 연합뉴스.

기획재정부가 들어있는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의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검찰-기재부 연합 정권’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2024년 7월 윤석열 대통령은 기재부 출신의 김병환 금융위원장과 김완섭 환경부 장관을 임명했다. 이에 따라 당시 중앙 행정부에서 기재부 출신 장관급 이상 인사는 6명이 됐다. 나머지 4명은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경제부총리,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이었다. 2022년 7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은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고위 공직자 533개 자리, 504명을 조사한 뒤 기재부 출신이 65개 자리(12.2%)를 차지해 1위라고 발표했다.

기재부의 힘은 학계의 연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전주대 최민지 박사와 오재록 교수의 논문 ‘관료제 권력 측정’(2024)을 보면, 노무현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2003~2022년)까지 4개 정부에서 가장 관료제 권력지수(BPI)가 높은 중앙 행정부 기관은 기획재정부(재정경제부 포함)였다. 관료제 권력지수는 관료조직이 가진 권력의 크기를 수치로 표시한 것이다. 이 논문은 기재부가 4개 정부에서 일관되게 관료제 권력지수 1위를 차지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기획재정부는 각 부처의 예산을 취합·조정·통제하고, 총액 설정권, (정부 안) 심의권을 가지고 (…) 모든 관료제 기관 위에 서 있다. 또한 기재부 출신 관료들은 대통령실, 국무조정실, 일부 부처의 장차관과 재정 담당자에 두루 배치돼 있어, 기재부의 인적 파워와 영향력을 더욱 강고하게 만들었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기획재정부를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 등 2개로 나눌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민주당 안에선 그동안 기재부가 예산권을 쥐고 다른 부처들의 자율성을 훼손했고 재정 건전성이란 독단을 앞세워 적극적 재정 정책을 방치해왔다고 본다. 기획예산과 재정경제 두 기능은 경제기획원이 만들어진 1961년부터 다른 기관으로 시작했고 김영삼 정부에서 처음 통합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다시 분리됐고,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다시 통합돼 오늘에 이르렀다.

정당이나 전문가들은 공룡이 된 기획재정부를 2개로 쪼개는 데는 다수가 찬성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기획예산 기능을 어디에 둘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민주당은 기획예산처를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두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오기형 의원이 낸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이 방안이다. 이는 행정부 기관에 대해 정책 조정과 평가를 하는 총리실(국무조정실)이 기획예산까지 맡아 국가 정책의 관제탑이 되는 것이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기획예산처는 정책 조정 기능이 있는 총리실로 가는 것이 맞는다. 다만 예산 권한을 총리실에 집중하지 말고 각 부처로 분산해 자율권과 재량권을 줘야 한다. 기획예산처의 인력 규모가 작고, 밖에는 재정경제부가 있으니 그 권한이 제한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5년 4월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획재정부 개혁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신정훈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2025년 4월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획재정부 개혁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신정훈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예산·정책 분리는 필요하지만…

그러나 이 방안은 선출되지 않은 총리에게 너무 큰 권한과 책임을 주고 대통령은 여전히 총리를 내세워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가 될 우려도 있다. 또 총리가 오랫동안 기획예산 권한을 휘둘러온 공무원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심지어 실무 책임자인 국무조정실장은 기재부 차관 출신들이 독차지해왔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총리실에 업무 평가 기능이 있으니 기획예산도 그리 가는 게 자연스럽다. 문제는 대통령중심제에서 아무 실권이 없는 총리의 형식상 권한이 너무 커진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제학)도 “기획예산 기능이 총리실로 가면 과연 실권이 없는 총리 주도로 예산 편성과 정책 조정이 될까. 컨트롤타워가 없어서 갈등이 생길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둘째는 기획예산 기능을 대통령실로 옮기는 것으로, 조국혁신당이 제안한 방안이다. 이것은 대통령중심제에 부합하며 대통령제를 만든 미국에서도 시행하고 있다. 이것의 장점은 대통령의 권한과 책임이 명확해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동안 총리나 장관들을 내세워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을 지지 않은 한국의 대통령에겐 부담스러운 방안이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예산 편성과 정책 조정은 대통령 업무의 핵심이다. 예산 권한을 대통령실로 옮기면 대통령 업무의 책무성과 투명성이 높아진다. 중요 정책이 잘못되면 대통령이 책임감을 갖고 교정할 수 있다. 책임지지 않는 제왕적 대통령을 실제 업무를 하는 정치인 대통령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오재록 전주대 교수(행정학)도 “미국 모델로 가는 것이 합리적이다. 대통령실에 예산처를 두고 의회에도 예산처를 둬야 한다. 두 기관이 서로 경쟁, 견제하면서 예산을 만들고 집행, 감시하게 해야 한다. 그동안 기재부에 예산과 경제 정책을 다 몰아놓으니 기재부도 검찰처럼 스스로 권력이 됐다. 이제 대통령실에서 직접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방안에 대해선 위헌 논란도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66조에 따라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으로서 행정권을 갖지만, 행정 각부를 지휘하는 것은 제86조에 따라 대통령의 명을 받은 총리다. 따라서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는 기관은 비서실, 국가안보실, 경호처 등이며, 행정부 기관들은 절차상 대통령의 명을 받아 총리가 지휘해야 한다. 우석진 교수는 “대통령실엔 보좌 기관만 있고, 행정기관은 모두 총리 산하에 있다. 행정 기관을 대통령실에 직접 갖다 붙이는 것은 현행 헌법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조국혁신당의 차규근 의원은 “위헌 논란의 속내는 대통령의 권한이 강해지는 것에 대한 우려일 것이다. 기획예산처를 대통령실에 둔다고 해도 비서실처럼 직속 기관으로 하지 않고 국가정보원처럼 산하 기관으로 두면 논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처럼 기획예산처를 대통령실이나 총리실에 배속시키지 않고 별도 기관으로 두는 방안도 있다. 허성무 의원이 낸 정부조직법 개정안이다. 그러나 이번 기재부 개혁이 그 권한을 축소·통제하려는 의지가 강한 점을 고려하면 채택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2025년 4월 30일 조국혁신당이 국회 소통관에서 기획재정부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황운하 원내대표(왼쪽)와 차규근 의원. 차규근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2025년 4월 30일 조국혁신당이 국회 소통관에서 기획재정부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황운하 원내대표(왼쪽)와 차규근 의원. 차규근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이와 함께 국회의 예산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한국의 국회는 예산안의 심의·확정 권한만 있고, 편성에 전혀 관여하지 못한다. 또 정부의 동의 없이 예산안을 증액하거나 새 항목을 설치할 수 없다. 미국 의회가 독자적인 예산 편성 기관(의회예산처, CBO)을 갖고 편성 단계부터 관여하고 대통령실 관리예산처(OMB)가 제출한 예산안을 자유롭게 증감할 수 있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정창수 소장은 “국회의 예산 권한이 너무 약하다. 국회가 행정부의 예산 편성 과정부터 참여해서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예산안 제출 뒤 조정 권한도 매우 제한적이다. 심지어 국회의원은 자기 지역구 예산을 확보하려고 기재부 뜻에 따른다. 지금 상황에선 새 정부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헌법을 바꿔서 국회의 예산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산 집행에 대한 회계검사 권한을 가진 감사원을 국회 산하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도 오래전부터 나왔다. 미국은 예산 집행 감시나 결산을 의회와 의회 산하 정부회계감사원(GAO)이 주도한다. 회계검사를 대통령 산하의 감사원이 맡는 일은 선수가 심판을 보는 격이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미국처럼 감사원을 의회에 두는 것이 맞는다. 그래야 예산 집행이나 결산에 대해 제대로 감사할 수 있다. 말로는 감사원이 독립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을 뒷받침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국회의 예산 권한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기재부 개혁 방안과 관련해 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기재부를 2개 기관으로 분리하고 개헌을 통해 감사원을 국회로 넘겨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회가 행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총액 안에서 증액도 하고 예산 편성·집행·결산에 대해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기재부 개혁과 관련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개헌에 대해선 대선 기간에 공식 의견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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