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일본 정상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자부심을 얻은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주변의 발언을 보면 짐작이 된다. “앞만 보고 달렸는데 어느덧 세상의 맨 앞”(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라거나 “3국 협력 역사는 2023년 8월18일 이전과 이후로 나누게 될 것”(김은혜 홍보수석)이란다. 문학적 수사까지 동원한 자화자찬이다. 그래서 얻은 게 무엇이냐면… 딱히 잡히는 게 없다.
중국 봉쇄라는 미국의 이익, 군사 대국화라는 일본의 이익에 버금가는 우리의 이익 말이다. 대통령은 “(3국 협력이) 인도·태평양 범지역 협력체로 진화할 것”이라며 “위험은 확실하게 줄어들고 기회는 확실하게 커질 것”이라고 했다. 스케일도 확신도 커졌지만 그만큼 막연하고 공허하게 들린다.
아무리 ‘동맹’을 지향해도 미국과 일본의 이익이 우리 것일 순 없다. 의무와 구속력이 없는 정상 간의 ‘정신’ ‘원칙’ ‘약속’은 아무리 강조한들 그들 임기 내에만 유효한 MOU(양해각서)일 뿐이다. 최선의 외교는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해가 되지만 않아도 차선이다. 지도자 개인의 이해에라도 충실하다면 그나마 ‘똥망’은 면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동아시아 패권을 유지하며 본인의 재선 가도에 힘을 더했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한국과 미국의 이해와 지지를 내세워 재빨리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 두 정상이 제 실속을 챙기는 동안 윤 대통령은 자아도취와 같은 자부심 말고 무엇을 챙겼는가. 안타깝게도 많은 국민은 이번 3국 정상회의를 지켜보면서 긍지는커녕 근심만 늘었다.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미국·일본 편에 서면서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까지 적대시해버리는 바람에 군사적·경제적 위험은 커지고 운신의 폭과 기회는 줄어들 게 뻔한 탓이다.
대체 왜 이런 ‘노선’을 걸어야 하나. 대통령이나 집권세력은 설득은커녕 설명조차 한 적이 없다. 고작 미-중 패권 다툼과 신냉전 시대를 들먹일 뿐이다. 나날이 발언 수위를 높이는 대통령의 ‘대결적 세계관’을 보며 짐작할 수밖에 없다.
“거짓선동 날조 세력이 민주주의,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한다”며 “사기꾼에 농락당해선 절대 안 된다”(2023년 4·19 기념사)더니, “반국가 세력들이 북한 제재를 풀어달라 읍소하며 종전 선언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2023년 6월28일 한국자유총연맹 창립기념 축사)고 주장했다. 급기야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난데없이 “일본은 우리의 파트너”라 천명하고는,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민주, 진보 운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패륜적 공작을 해왔다”고 맹비난했다. 때와 장소, 상황 불문하고 야당은 물론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을 북한과 나란히 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 몰아붙였다.
‘통치’의 명분을 ‘적의’에서 찾은 듯하다. 유난히 빈 정체성을 메꾸려 찾아낸 게 하필 철 지난 이념이다. 심지어 그것이 지나치게 과잉되는 바람에 거의 ‘증강현실’적 인식마저 보인다. 그 속에서 야당은 경쟁 상대가 아닌 격퇴 상대이고, 북한은 공존이 아니라 멸절의 대상이다. 함께 도모해나갈 ‘앞날’ 따위는 없다. 이런 사생결단과 선악의 세계관을 보편 가치이자 국제적 규범이라고까지 믿으니 외교도 마치 ‘성전’을 치르듯 하는 게 아닐까.
윤 대통령은 확신에 찬 ‘호국’을 하고 있다. 정말 나라가 어려워서 호국하는지, 그 호국 때문에 나라가 어려워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김소희 칼럼니스트*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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