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공무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10년간 공공-민간 함께한 서울시 협치 경험 긍정하고 체계·역량 보완해야
등록 2021-11-20 08:34 수정 2021-11-21 23:51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시행한 민간 위탁 사업들은 정부가 미처 커버하지 못하는 사회의 틈새를 메우는 사업을 포함했다. 서울시가 사회적 협동조합을 통해 참여예산 사업으로 시행한 서울 은평구 갈현동 단기 입주형 재활주택 모습. 정용일 선임기자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시행한 민간 위탁 사업들은 정부가 미처 커버하지 못하는 사회의 틈새를 메우는 사업을 포함했다. 서울시가 사회적 협동조합을 통해 참여예산 사업으로 시행한 서울 은평구 갈현동 단기 입주형 재활주택 모습. 정용일 선임기자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의 행보는 의아하다. 오 시장은 2021년 9월13일 ‘서울시 바로 세우기: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지난 10년간 서울시가 민간 위탁금과 보조금으로 “중앙정부와 민간 고유의 영역으로 인식되던 영역, 그리고 아직은 행정에 있어 생소한 분야에까지” 1조원 가까이 지원했다는 내용이 뼈대다.

시민에게 지혜를 구하는 시청

‘비정상의 정상화’는 박근혜 정부에서 내세웠던 용어다. 나아가 오 시장은 민관 협치(거버넌스)까지 부정하고 있다. ‘거버넌스’는 1970년대 말부터 복지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지금까지 논의·실천된 다양한 이론에서 나온 개념이다. 보수파가 존경하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신자유주의 ‘신공공관리론’에서 시작됐다.

전세계적으로 정부와 민간의 경계가 점차 무너지고 전통적인 행정의 영역이나 업무가 변화되고 있다. ‘거버넌스 전환’은 학문 세계만이 아니라 공공부문에서의 변화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용어가 됐다. 그 중심에는 정부의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 기업이나 시민사회의 다양한 자원을 어떻게 파악하고 확보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들어 있다.

오세훈 시장의 말대로 ‘시민단체 출신인 시 간부들의 압력에 못 이겨 부적절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면서 자괴감을 느꼈다’는 공무원들이 있다면, 그런 공무원은 그가 10여 년 전 시장 재임시 즐겨 활용하던 ‘퇴출’ 대상이 아닌가? 새로운 거버넌스를 구축할 때 민간에 창의력을 구하려면 행정부에도 그에 걸맞은 적절한 권한이 부여돼야 한다. 시 행정부가 민간과의 협업 체계와 새로운 책무 구조를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변동이 심하고, 복잡하며, 불확실하고, 모호한 상황이 이어지는 시대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협력 구조를 매개하는 ‘중간지원조직’이 필요하다. 미국이나 영국 등 거버넌스 선진 사회에서는 중간지원조직이 보편적이다. 그런데 오 시장은 이러한 중간지원조직을 ‘중개소’라고 비하했다. 코로나19 유행 같은 비정상적 상황이 반복된다면 자원을 연계하고 활용해 이런 문제를 극복하도록 돕는 중간지원조직은 필수적이다.

지난 10년간 서울시는 이런 상황을 서울시장과 서울시청 공무원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봤다. 그래서 지혜를 가진 모든 시민이 문제 해결을 위해 참여하게 하자는 거버넌스를 설계하고 이행해왔다. 서울 곳곳에서 시민들이 참여해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축적됐다. 관변단체로만 인식되던 주민자치위원회도 마을 의제를 발굴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주민자치회로 전환되고 있다.

때로는 생소하고 때로는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지난 10년의 서울시는 시민이 함께하는 문제 해결 과정에 초점을 맞춘 거버넌스, 다시 말해 협치를 지향했다. 공무원 행정부가 정해놓은 ‘엄정한 절차’에 따라 시혜적으로 예산을 집행하거나 이미 결정해놓은 정책을 단지 위원회에서 전문가들의 추인을 받는 데 그치지 않았다.

협치와 혁신, 시간 주고 다듬어야

민간의 활력을 끌어내기 위해 합당한 인력을 구했고, ‘노동의 종말’ 시대에 대비하는 사회적경제를 더욱 촉진했다. 이전의 많은 주택정책이 주택을 건물로만 보았기에 실패했던 일을 교훈 삼아 ‘사회주택’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마을과 생활 단위 문제는 기초지방정부가 더 잘 안다고 보고 서울시 예산을 25개 구청에 나눠 지역사회 혁신을 추진하도록 했다.

지난 10년간 서울시 정책기조는 ‘혁신’과 ‘협치’였다. 물론 혁신은 기존 관료 중심 거버넌스에서 나오기 어렵고, 협치의 성과도 단시일 내에 나타날 수 없다는 점에서 실험적 측면이 있다. 많은 시민이 공공 영역에 등장했지만, 시민 참여가 확장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내는 성과가 축적되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에서의 도시재생이 여전한 개발 욕구와 균형을 이루는 데는 한계가 있다. 친환경 에너지에 집중해 원전 하나 분량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었지만, 계속 늘어나는 에너지 소비를 감당하지는 못했다. 청년들의 참여 구조를 마련했지만, 청년 스스로의 문제 해결 성과는 좀더 기다려야 했다.

기초지방정부 중심의 협치 구조는 마련했지만, 서울시 예산이 계속 지원되지 않아도 구청 단위 사업이 계속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그리고 전환도시, 서울민주주의위원회, 재정민주주의 등 정책은 좀더 다듬어질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복잡하게 얽힌 현대사회의 문제를 푸는 데도 ‘연결’이 중요함을 서울 시민이 경험하고 인식했다는 점은 중요하다.

유엔은 2015년 인류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이해 당사자 그룹과 협의한 끝에 193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문제 해결의 새로운 틀로 수립했다.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할 목표가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후퇴하자 2021년 유엔은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을 한국에 호소했다.

거버넌스를 돌아보라

국제사회는 글로벌 문제가 마을 문제로 이어진다는 ‘글로컬’(글로벌+로컬)한 문제 해결 구조를 마련하는 데 마음을 모으고 있다. 서울시 정치도 거버넌스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설계와 역량을 가다듬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10여 년 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추진했던 ‘디자인 서울’ 정책이 ‘엄정한 행정의 틀’에서 이뤄진 것인지, 서울시민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던 ‘천만상상 오아시스’가 과연 시민의 아이디어를 구하려던 것인지 오 시장은 돌아볼 일이다.

오수길 고려사이버대학 교수(행정학)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