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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메시아 같은 제3후보, ‘권력욕망’이 변수

절반의 실패 맛본 안철수·정몽준,
윤석열은 ‘반문 대표, 집권 의지, 가족 의혹’ 등 권력욕망 갖춰

제1370호
등록 : 2021-07-02 23:27 수정 : 2021-07-0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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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10일 안철수 당시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과 정몽준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노총회관에서 열린 한국노총 창립 68주년 기념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느 정부나 끝 무렵은 대체로 혼란스럽다. 대통령과 여당의 인기는 시들해진다. 시작할 때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다. 팍팍한 일상에 뿔난 민심은 여권을 겨냥한다. 야당은 불난 정권을 더욱 코너로 몰아붙인다. 같은 여당 대선 주자들도 각자도생을 선택해 현 정부와 차별화에 나서기 십상이다. 혼돈의 임기 말, 대선이 다가오면 국민은 메시아(구세주)를 찾는다.

제3의 후보(이하 3후보)는 국민이나 혹은 어느 진영에 메시아다. 정치 신인, 대중 인기, 인생 스토리…. 3후보가 갖는 보편적 특징이다. 현실에서 메시아가 이상으로만 존재하듯이 3후보도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도 선거 때마다 3후보는 늘 나타났다. 2000년 이후 네 명이 손꼽힌다. 2002년 정몽준 전 2002 월드컵조직위원장, 2007년 고건 전 국무총리, 2012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2017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다.

안철수, 신인·인기·스토리 갖췄으나
3후보들 가운데 안 대표는 ‘덜 실패한 사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3후보 실험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청춘콘서트로 이름을 알렸다. 청년에게 희망 메시지를 전달했던 청춘콘서트는 2011년 후반 박경철 경제평론가, 평화재단과 공동으로 개최됐다. 이명박 정부 말 어수선한 분위기에 청춘콘서트는 큰 흥행을 거뒀다. 안 대표는 청년의 희망으로 떠올랐고 2030세대로 지지세가 확산했다.

안 대표 인기가 높아지면서 그의 청렴한 부 축적과 컴퓨터 백신 무료 배포도 널리 알려졌다. 안 대표 스토리는 정치 입문 초기에 완성됐다. 안 대표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절반 가까운 지지율로 경쟁 상대가 없을 정도였다. 그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후보직을 양보했다. 5% 내외에 머물던 박 전 시장은 안 대표 지지율을 거의 흡수해 여유 있게 당선했다.

안 대표는 정치 신인, 대중 인기, 인생 스토리까지 3후보 조건을 완벽하게 갖췄다. 그는 2012년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11월 초순까지 박근혜 후보에 이어 2위를 유지했다. 안 대표의 지지율은 문재인 후보에게 단일화를 제안하면서 하락했다. 야권후보 단일화 국면에서 야당 지지층이 대거 문 후보에게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11월23일 대선 후보를 사퇴했다.

2012년 안 대표의 실패는 약한 권력욕망과 정치력 부재 탓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조기 입당 또는 대선 완주 승부수가 주효했을 것이란 시각이다. 안 대표는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 돌풍을 일구며 기사회생했다. 그러나 2017년 대선과 이듬해 서울시장 패배, 2021년 4·7 재보궐선거 야권 서울시장 단일후보 경선 패배 등으로 반전을 이루지 못했다.

정몽준, 경선 전략·정치력의 한계
정몽준 전 위원장도 안 대표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대한민국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르면서 정 전 위원장은 정치권에 갑작스레 등장했다.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이 크게 패배하자 노무현 후보가 흔들렸다. 노 후보 지지율 하락과 함께 당내에서 후보교체론이 비등했다. 정 전 위원장은 이 틈새를 파고들었다. 대선 출마 뒤 정 전 위원장은 다자대결 여론조사에서 2위를 굳혔을 뿐만 아니라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의 양자대결 여론조사에서도 우위를 확보했다.

정 전 위원장은 2002년 11월 말 야권후보 단일화 여론조사 경선에서 패배한 뒤 선거 전날 단일화를 철회했다. 이는 곧 노 후보 당선으로 이어졌다. 권력욕망 부재가 경선 전략 실패와 정치력 한계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대선 뒤 정 전 위원장은 국민통합21을 창당하고 2004년 총선에서 당선했다.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입당 뒤 5선을 달성하고 당대표까지 지냈지만 대선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17년 대선 반기문 전 총장, 2007년 대선 고건 전 총리도 정치 신인, 대중 인기, 인생 스토리를 갖춘 3후보들이다. 이들은 임기 말 여권에서 대선 후보로 화려한 주목을 받았지만 금세 시들고 말았다. 두 사람 모두 국내외 최고위 관료를 지냈지만 이는 돌발변수의 연속인 정치·선거에서 통하지 않았다. 이들의 초고속 출세가 되레 권력욕망을 가로막았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안 대표와 정 전 위원장은 그나마 절반의 실패로 평가할 수 있지만, 반 전 총장과 고 전 총리는 반사체에 그치고 말았다.

2021년 6월29일 출마 선언 이후 장도에 나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3후보의 특징을 갖췄다. 그는 3월 총장을 사퇴한 초신선 상품이다. 가는 곳마다 화환이 늘어서고 구름 인파가 몰려든다. 사시 9수, 고시생 때 상여 멘 의리, 늦깎이 결혼 따위의 스토리도 늘 따라붙는다. 윤 전 총장은 3월 이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차기 대선 양강구도를 지키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에 복당한 홍준표 의원, 최재형 전 감사원장, 안 대표 등 2위권의 추격이 거세지만 아직 여유가 있다.

집권 의지 강한 보수 진영, 자유로운 2030
윤 전 총장은 3후보 특징 외에 권력욕망으로 차고 넘친다. 반문재인(반문) 대표, 집권 의지, 가족 의혹은 윤 전 총장의 권력욕망을 구성한다. 그는 2019년 8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내정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맞서며 지지율을 쌓았다. 그는 반문 대표성을 확보했다.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은 단순 반사체에 비해 훨씬 탄탄하다.

보수 진영의 집권 의지도 어느 때보다 강렬하다. 36살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출범은 이를 방증한다. 보수 진영은 필승카드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거리가 있는 대선 후보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윤 전 총장은 본인 외에 부인·장모도 각종 의혹에 싸여 있다. 역풍 가능성이 생겼으니 중도 포기도 쉽지 않다. 진보 진영 일각에선 윤 전 총장을 평가절하하지만 이제 정치지형은 달라졌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새롭게 등장한 2030세대는 진영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다. 이들에겐 윤 전 총장도 선택 가능한 대선 후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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