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조정훈(사진) 국회의원을 이른바 ‘엔엘(NL) 운동권’ 출신의 덜 유명한 ‘586 인사’ 정도로 잘못 알았다. 언뜻 어느 사진에서 스치듯 본 새치 많은 머리카락 때문인지, 더불어민주당의 위성비례정당에 참여한 이력 탓인지 모르겠다. 편견이었다. 허경영의 공약까지 챙겨 보는(배꼽 빠져 아껴 읽는다), 소수당 애호가임을 자처하는 처지에서 부끄럽다.
조 의원이 첫 기자회견 시간을 몽땅 의원실 보좌진을 소개하는 데 썼다는 기사를 봤을 때나 플랫폼노동자의 경력증명서 발급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1호 법안을 냈을 때도 나름 트렌드를 아는 명민한 초선의원이겠거니 했다. 뒤늦게 다시 보게 된 건 지난여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그 단수 높은 정세균 총리를 부드럽고도 단호하게 ‘먹이는’ 모습을 보면서다. 당시 정부는 8월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것에 자화자찬하는 분위기였다. 조정훈이 총리에게 물었다. 그날 온전히 쉴 수 있는 노동자가 몇 명인지 아시냐고. 총리는 답을 못했다. 임시휴업은 공공기관과 300명 이상 종업원을 둔 사업장에만 적용된다. 전체 노동자의 15%만 누릴 뿐 나머지 1900만 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일당벌이의 위협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휴식에도 차별이 있다. 그는 이를 ‘휴식신분제’라고 말했다.
첫 행보가 ‘감이 좋아’ 어떤 사람인가 봤더니 1980년대 운동권과는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그들을 세대교체 대상으로 보고 다음 세대가 직접 나서겠다며 2020년 2월 시대전환이라는 작은 정당을 창당한 이였다. 세계은행 출신으로 2016년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됐으나 공천받지 못했고 그렇게 쉽게 정치에 발 들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그쪽으로는 줄을 서지 않았다. 체급 낮은 문국현이나 거품 없는 안철수, 덜 유명한 반기문 정도가 아닐까 짐작했다. 그런데 어라, 그 뒤로도 행보가 심상치 않다.
2022년부터 온 국민에게 조건 없이 매달 최소 30만원씩 지급하도록 하는 기본소득법안을 제일 먼저 발의했다. 30만원은 증세 없이 일단 시작할 수 있는 금액이고 2029년에는 월 50만원으로 인상한다. 기본소득의 성격과 지급 범위, 회계 등 제반 사항을 아우른 것으로 만약 통과된다면 세계 최초의 시도가 된다. 2021년 예산안 심사과정에서는 국회 상임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의결에 반대하며 회의장을 뛰쳐나와 울분에 찬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예산소위에서 여러 의원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결정한 내용이 두 거대 정당 간사의 입김만으로 빈대떡 뒤집듯이 바뀌는 것을 목격하면서다. 그는 수백억 원이 근거와 설명도 없이 왔다갔다한 과정을 밝히며 국민을 향해 “혼내달라”고 호소했다.
의원 한 명인 정당의 대표이나, 말할 때마다 반향이 크다. 정부 안보다 후퇴했다는 평을 듣는 여당 주도의 공정경제3법을 비판하며 소액주주의 권한을 ‘진짜 보호’하는 상법 재개정안을 제출하고, 본격적으로 주4일제 도입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방역으로 영업권이 침해된 가게에 대한 보상은 시혜가 아니라 국가의 채무이행이라고도 했다. 고작 6개월 만에 쌓은 필모그래피라기엔 사뭇 놀랍다. 어떤 현안과 이슈에 조정훈의 의견이 궁금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빠르게 치닫는 양극화에 누구보다 앞서 경고음을 내고, 팬데믹으로 변화가 가속화된 노동의 형태와 구조를 이해해 문제 해결에 잰걸음을 한 덕분이다. 민감하고 민첩하다. 대표 발의든 공동 발의든 당원들에게 직접 묻는 절차도 거친다. 작은 정당의 장점이다. 가성비 절대 갑이다.
그 많은 여당 인사 중에는 왜 조정훈만 한 이가 눈에 띄지 않을까. 어떤 의원들은 “이제는 국회에 와서 공작 중인 쿠데타 세력”과 “평생 독재의 꿀 빨던” 이들을 무찌르는 ‘민주화 투쟁 중’이고 어떤 의원들은 윤석열 검찰총장과 드잡이하느라 바쁘기 때문인 것 같다. 새해에도 먹고사는 문제는 아무래도 우리끼리 해결해야 하나.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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