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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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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사용습관 고쳐드립니다

“바꾸어도 요금이 많이 안 줄겠네요” 말에 신뢰감 상승…
단말기는 현금 계산, 소액결제는 안 돼
등록 2013-10-10 15:42 수정 2020-05-03 04:27

하루에도 몇 번씩 ‘114’에서 전화가 온다. 앞자리 번호는 010, 070, 1566 등으로 바뀌었지만 내용은 한결같다. ‘휴대전화를 공짜로 교체해주겠다.’ 약정 기간 24개월이 지나자 지겹도록 전화벨이 울렸다. 거절하는 내 목소리에 짜증을 넘어 분노가 담길 때쯤 ‘호갱님’(호구+고객)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나섰다.

호갱님 탈출 방법을 찾아서

‘알뜰폰’을 써보기로 했다. 알뜰폰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의 통신망을 빌려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다. 통신망 투자비와 운영비가 들지 않아 통신요금이 기존 이동통신사보다 최대 30% 저렴하다. 약정 기간이 따로 없어 해지가 편하고 기존 이동통신사에서 쓰던 휴대전화에 사용자식별모듈(USIM·유심)만 바꿔 사용할 수도 있다. 가입자가 이미 200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유통망이 적은 게 흠이었다. 지난 9월27일부터 우체국에서 ‘알뜰폰’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9월30일 오전 10시 서울의 한 우체국 알뜰폰 창구에서는 50대, 20대 여성이 알뜰폰 안내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알뜰폰 가입 방법을 묻자 우체국 직원의 질문이 쏟아졌다. “월평균 통화량이 몇 분인가요?” “최신폰을 원하시나요?” “문자·데이터 이용량이 많은가요?” 예상한 질문이었다. 전날 이동통신사 누리집에서 적어온 내 기록을 말했다. “한 달에 250~300분 통화하고요. 문자는 130개, 데이터는 1GB 정도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럼, 알뜰폰으로 통신요금이 크게 줄지 않겠네요.” 물건을 구입하러 온 고객한테 이게 무슨 소리인가. 생각해보니 우체국 직원은 휴대전화 판매점 직원이 아니었다. 휴대전화를 팔면 수십만원의 리베이트(판매장려금)를 챙기는 판매점 직원과는 다른 처지였다. 갑자기 그에 대한 신뢰도가 확 올라갔다.

우체국 직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알뜰폰은 통화량과 데이터 이용량이 적어야 유리해요. 하지만 사용량이 왜곡돼 고칠 여지가 있으면 해보세요.” ‘왜곡된 사용량?’ 그랬다. 기본료 5만4천원을 내고 ‘300분 무료 통화, 200건 무료 문자, 무제한 데이타’ 상품을 3년 가까이 쓰다보니 쓸데없이 사용량이 많아졌다. 특히 월말에 무료 통화가 남았다는 문자를 받으면 미친 듯이 전화를 돌렸다. 와이파이(Wi-Fi)가 터지는 곳에서도 마구 데이터를 썼다. 조금만 신경 쓰면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부 판매, 알뜰폰 사업자에겐 ‘그림의 떡’

우체국에서 판매 업무를 대행하는 알뜰폰 서비스 업체는 스페이스네트·머천드코리아(LG유플러스 망), 에넥스텔레콤·에버그랜모바일(KT 망), 아이즈비전·유티컴즈(SK텔레콤 망) 등 6곳이다. 중소기업 지원정책이라 CJ헬로비전, SK텔링크 등 대기업 계열사는 제외했다. 가입비는 따로 없고 요금제는 선불 5종, 후불 13종이다. 현재 보유한 단말기로도 호환만 가능하다면 이 요금제로 바꿀 수 있다(유심 개통). 그러면 통신요금이 절반으로 줄어든단다.

알뜰폰 단말기도 저렴한 중고 폴더 단말기부터 최신 스마트폰까지 17종을 내놓았다. 다만 대부분의 단말기(최고가 27만8천원)는 현금으로 계산해야 한다. 일부 사업자는 스마트폰을 할부로 내놓았지만 약정 기간을 정해 기존 이동통신사와 다를 바 없다. 한 알뜰폰 관계자의 설명이다. “단말기를 할부로 판매하려면 할부신용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현재 서울보증보험이 취급한다. 문제는 보증 조건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재무건전성과 월 1만 명가량의 가입자 유치 실적인데, 중소 알뜰폰 사업자에겐 ‘그림의 떡’이다.”

우선 비교체험을 해볼 작정으로 중고 폴더폰을 현금 2만2천원에 샀다. 신제품(5만5천원)은 벌써 동났다고 했다. 개시 며칠 만에 제품이 없다니 역시 영세한 업체구나 싶었다. 요금제는 기본료 1500원에 음성 1.5원(초), 문자 15원(건), 데이터 51.2원(MB)을 선택했다. 월 200분을 사용하면 통신요금 1만3천원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데이터 요금은 비싼 편이라 사용량을 확 줄여야 한다고 했다.

가입신청서를 쓰다가 질문을 던졌다. “휴대전화 본인 인증은 되죠?” “아니요.” 소액결제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는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2012년 8월 정보통신망법 개정으로 온라인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본인 확인하는 게 금지됐다. 본인확인기관으로 인정받는 사업자만 본인 인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 확인기관으로 등록하려면 자본금 80억원, 보안 전문가 8명을 갖춰야 한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2012년 12월 인증을 받았다. 하지만 알뜰폰 사업자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이유는 역시, 영세하니까.

휴대폰을 받고 시작된 나와의 싸움

가입신청서를 쓰고 단말기 대금을 현금으로 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우체국이 알뜰폰 판매자에게 가입 정보를 넘긴 뒤 하루 만에 확인 전화가 왔다. 휴대전화를 택배로 받아야 해서 이틀이 더 걸렸다. 고객센터 상담원의 설명에 따라 휴대전화 전원을 껐다 켰더니 신호가 잡혔다. 알뜰폰 사용자가 된 것이다. 통화 품질, 데이터 속도는 기존 이동통신사와 다르지 않았다. 통신망을 빌려쓰니까 당연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왜곡된 휴대전화 사용 습관을 바로잡아 요금을 줄일 수 있느냐.’ 나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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