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머리감기 서비스에 드는 돈을 고객에게 돌려주는 가치 혁신 전략
소비자에게 배송을 맡기는 스웨덴 가구점 이케아의 성공을 떠올리다 </font>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7년 전 어느 날, 팩스에 ‘남성 전용 미용실’이라는 생경한 단어로 시작하는 자료가 들어와 있었다. 5천원짜리 남성 전용 미용실 체인 1호점이 문을 열었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외환위기를 극복할 우리 시대의 지혜라고 흥분하며 ‘틈새시장을 노린 새로운 미용실’이라고 소개하는 글을 썼다. 그게 블루클럽과의 첫 만남이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나는 처음 썼던 글에 썼던 ‘틈새’라는 단어를 후회해야 했다. 부끄럽게도 글을 쓴 뒤 한참이 지나서야 블루클럽을 직접 찾아가 머리를 자른 그날이었다. 그건 미용 서비스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혁신한 신상품이었다. 요즘 블루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으로 불리기도 하는 가치 혁신(value innovation) 전략의 교과서였다. ‘틈새’가 아니라 ‘전체’를 먹을 수 있는 사업모델이었다.
틈새가 아니라 전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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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나 미용실이 소비자에게 주는 가치는 머리 손질이다. 이 가치가 생성되기까지의 가치 사슬(value chain)을 소비자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렇다. 1. 차례를 기다린다. 2. 의자에 앉아 머리를 자른다. 3. 머리를 감는다. 4. 헤어드라이어 등으로 머리 뒷손질을 받는다.
그런데 블루클럽은 이 경쟁의 법칙을 깨뜨렸다. 세 번째 단계 이후의 서비스를 아예 제공하지 않고 그만큼을 돈으로 돌려줬다. 소비자에게 스스로 머리 감고 손질하게 하고 그 품삯을 지불하면서, 전통적인 가치 사슬을 뒤흔든 것이다. 그리고 7년 만에 체인점 수가 1천여 개 가까이로 늘어나 국내 최대 미용실 브랜드가 됐다.
가치 사슬 분석으로 가치 창출 단계를 나눈 뒤, 각 단계의 가치를 계산해보면 성공 요인은 명확해진다. 5천원을 내고 머리를 자른 사람들이 3천원을 더 내고 머리 감기와 머리 손질 서비스까지 살 것인가. 그렇다면 그 모든 서비스를 8천원에 제공할 수 있는 미용실은 경쟁력이 있다. 그렇지 않은데 미용실들이 전체 서비스를 8천원에 팔고 있다면, 5천원에 머리 자르기 서비스만 제공하는 미용실은 성공한다. 블루클럽의 사례는 물론 후자였다. 머리 감기 서비스를 위해 3천원이나 더 내고 싶지 않은 수많은 젊은 남자들이 블루클럽으로 발길을 옮겼다.
스웨덴의 조립식 가구 판매 업체 이케아도 가치 혁신으로 성공한 사례다. 스웨덴이나 한국이나 미국이나 가구 산업의 가치 사슬은 이렇다. 1. 가구점에 가서 가구를 고른다. 2. 사고 싶은 가구가 없다면 다른 가구점으로 간다. 3. 가구를 구입한다. 4. 가구를 배송, 설치한다.
조립식 가구가 등장하기 전, 가구 판매 업체들은 첫 번째와 네 번째 단계에서 경쟁했다. 말 많은 점원들이 나서서 일단 가게에 들어온 소비자를 잡아두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소비자가 들어와서 어떤 가구에 관심을 보이면 일단 가격 깎아주기부터 시작한다. 그때부터 점원과 소비자 사이에는 제로섬 게임이 시작된다. 경쟁자가 바로 5m 거리에 있는 가구거리에서 가격 흥정은 가구점에게 제살 깎아먹기 게임일 뿐이다. 게다가 흥정의 전제는 가구 값 안에 배송비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케아는 발상을 바꿔 가치 사슬을 다시 정의했다. 일단 가격부터 깎아주고 보는 대신, 소비자가 가구를 사기 위해 들이는 비용을 전체적으로 분석했다. 해답은 배송에 있었다. 가구를 조립한 뒤 배송하는 것과, 아니면 나무판과 못을 일단 집으로 가져가서 그곳에서 조립해 설치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비용이 더 많이 들까? 당연히 전자가 월등히 비용이 많이 든다. 조립한 가구를 배송하려면 커다란 트럭을 사용해야 하지만, 조립하지 않은 가구는 개인용 자동차로도 쉽게 배송할 수 있다.
가치 사슬 재정의, 조립하는 가구!
그래서 이케아는 네 번째 단계를 없애고 조립식 가구를 팔기 시작했다. 소비자에게 배달을 시킨 셈이다. 대신 소비자가 가구 운반을 위해 지불하는 비용보다 가구 값을 더 많이 깎아줬다. 절약한 비용의 일부로는 상세한 제품 정보지를 만들고 매장 규모를 초대형으로 키워 소비자들이 여러 가구점을 돌아다니는 비용을 아낄 수 있게 했다. 이런 가치 혁신이 이케아를 연간 매출 130억달러(13조원) 규모 기업으로 키웠다. 설립자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세계 6위 갑부로 떠올랐다.
블루오션 전략은 흔히 경쟁 없는 틈새시장을 찾아 영리하게 끼어드는 전략으로 잘못 이해된다. 사실 문제는 그 시장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다. 기업이 스스로 하는 것보다 소비자가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면, 과감하게 소비자에게 맡겨버리고 그 품삯을 돌려주는 것도 블루오션을 만드는 가치 혁신의 한 방법이다. 블루클럽과 이케아는 이 과정을 거쳐 푸른 바다를 직접 만들어낸 기업들이다.
<font color="#C12D84">이번주의 용어</font>
가치 혁신(value innovation)
가치 사슬(value chain)
블루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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