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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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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과 황금광 시대

2009년에 등장한 가상화폐 ‘비트코인’으로 제2의 ‘골드러시’ 노리는 사람들
화폐로서 꾸준히 가치 유지할지 관심
등록 2013-12-11 14:47 수정 2020-05-03 04:27

1848년 1월, 존 서터와 제임스 마셜은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강 근처에서 제재소를 짓던 중 우연히 금맥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황금을 좇아 서부로 몰려들었다. 5년 동안 해마다 적게는 10만 명, 많게는 2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확천금의 꿈을 줄지어 팠다. 황금은 곧 고갈됐지만, 이주민의 땀은 훗날 캘리포니아를 세웠다.
캘리포니아의 후예, 실리콘밸리도 황금광 시대를 맞았다. 21세기, 누구나 ‘골드러시’를 꿈꾼다. ‘비트코인’ 얘기다.
비트코인은 가상 화폐다. 2009년 등장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란 사람이 만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름만 보면 일본인으로 추정되지만, 여러 사람이 이름을 돌려쓴다는 추측도 있다.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이 없다. 일반 화폐처럼 발행 주체가 없다는 뜻이다. 소유주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그 대신 거래 내역은 ‘블록체인’이란 서버에 보관된다. 거래 내역을 확인하려면 복잡한 수학적 계산을 거쳐야 하는데, 그에 대한 보상으로 비트코인이 제공된다. 이 과정을 금을 캐는 것에 빗대 ‘채굴’(mining)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직접 암호를 풀 필요는 없다. 채굴은 컴퓨터가 맡는다. 19세기 골드러시와 비슷하되, 컴퓨터가 곡괭이와 굴착기 자리를 대신한 모양새다.
비트코인은 꽤 전복적인 화폐다. 거래는 익명성을 보장하고, 거래 수수료도 없다. 검은돈이 흘러다니기 좋은 유통 구조다. 올해 10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마약과 해킹 소프트웨어 등이 밀거래되는 웹사이트 ‘실크로드’를 폐쇄하면서, 이곳에서 2년 동안 950만비트코인이 거래됐다고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12월5일 기준으로 우리 돈 11조4천억원에 이르는 규모다.
그저 반짝 떴다 사라질 유행으로 보기엔, 지금 비트코인 경제 규모가 너무 크다. 비트코인은 애당초 2100만비트코인까지만 발행되도록 설계됐다. 지금까지 1200만여비트코인이 발행됐다. 12월1일 기준 시세로 1440조원 규모다. 한국 국가 채무를 몽땅 갚고도 남는 액수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10달러에 거래되던 1비트코인은 지난 11월27일, 비트코인 거래소인 마운트곡스 기준으로 100달러를 넘어섰다. 12월1일에는 1214원까지 치솟았다. 금 1온스가 1250달러 정도에 거래되니, 그야말로 ‘금값’에 버금가는 몸값이 됐다.
그러니 비트코인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비트코인을 캐려면 복잡한 암호를 풀어야 한다. 요즘 가정에서 쓰는 PC 1대로 이 암호를 풀려면 어림잡아 5년은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여럿이 컴퓨팅 자원을 조금씩 보태 비트코인을 캐내 나누는 ‘채굴 풀’도 생겼다. 하지만 채굴 풀에 가입해 열심히 PC를 돌려봐도 지금으로선 전기요금도 못 건진다. 비트코인은 캐낼수록 암호가 복잡해지고, 그만큼 채굴 시간과 컴퓨팅 자원 낭비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채굴이 어렵다면, 주식처럼 비트코인을 사고파는 방법도 있다. 비트코인 거래소에서 매일 시세를 확인하고 사면 된다. 일본 마운트곡스나 한국 코빗 같은 곳이 대표 사례다.
비트코인은 실물경제로도 조금씩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캐나다에선 올해 11월, 비트코인 ATM 기기가 등장했다. 이 기기에선 8일 동안 10만달러, 우리 돈으로 1억원이 넘는 비트코인이 거래됐다. 지난 11월29일,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에 비트코인으로 결제한 거래는 6296건이었다. 올해 초에 비해 6300% 늘어난 수치다.
비트코인은 화폐로서 꾸준히 가치를 유지할까. 여기서 의견이 엇갈린다. 비트코인은 손에 쥐는 화폐가 아니다. 암호화된 파일로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같은 저장장치에 보관해두는 가상 화폐다. 몸값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친다. 신용카드라면 분실 신고 절차라도 있지만, 비트코인은 잃어버리면 보상받을 방법도 없다. 지난 11월에는 7500비트코인이 든 HDD를 실수로 버린 영국인의 사연이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우리 돈으로 100억원에 이르는 돈이다.
생각이 꼬리를 물다보니 섬뜩한 상상도 덧붙는다.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장하기 위해 자정이 넘으면 비트코인 채굴을 강제로 막는 ‘비트코인 셧다운제’ 같은 게 생겨나진 않을까. 이 정부가 창조경제를 활성화한답시고 ‘한국형 비트코인’이라도 만들면 어떡하나. 액티브X 기반 프로그램으로 채굴하고, ‘샵메일’로 전송받고, 공인인증서 기반으로 결제하는 ‘창조코인’이 등장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희욱 기자 asadal@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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