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더 중요한 시간관리,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아둘 것인가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timelast@hani.co.kr
들어온 월급을 그저 월급 통장에 넣어두는 직장인은 이제 원시인에 가깝다. 월급날이면 돈을 어디에 얼마나 분산해 넣을지 고민하는 것은 월급쟁이의 기본적 소양에 속한다. 안전한 예금에 얼마를 넣고, 수익률이 높지만 위험도 큰 주식에도 일부를 넣고, 큰돈이 생기면 부동산에도 나눠넣는 식이다. 이게 바로 ‘투자 포트폴리오(portfolio)’다.
포트폴리오는 과거에는 대기업 경영자 또는 대규모 자금의 투자를 맡는 펀드매니저들이나 생각하던 개념이다.
찰스 핸디의 ‘포트폴리오 인생론’
사업 포트폴리오는 기업의 사업 구성 내역이다. 경영자는 이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성해야 사업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기 마련이다. 투자 포트폴리오는 투자 상품의 구성 내역이다. 늘 큰돈을 굴리는 펀드매니저는, 투자자산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성해야 위험을 줄이면서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지 늘 생각하기 마련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이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수입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산 포트폴리오를 생각하게 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돈을 굴릴 때면 반드시 생각하는 이 포트폴리오라는 개념을 시간에 대해서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다. 아일랜드 출신의 경영학자 찰스 핸디가 그 사람이다. 그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진정한 경쟁력을 가지고 행복을 누리려면, 시간을 투자 포트폴리오처럼 관리하며 ‘포트폴리오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맞는 얘기다. 다들 돈을 관리할 때는 잠재 수익과 위험을 따져 정교하게 계산한다. 그러나 시간은 그저 급한 일부터 닥치는 대로 처리하면서 보내는 게 보통이다.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귀중한 시간을 이렇게 사용하는 것은 뭔가 비합리적이다.
찰스 핸디는 ‘유럽의 피터 드러커’라고 부를 만한 원로 경영학자다. 미국 선탑미디어와 유럽경영개발재단(EFMD)이 발표한 ‘50인의 사상가’(Thinkers 50)에서 피터 드러커에 이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찰스 핸디의 ’포트폴리오 인생론’은 그의 조직이론에서 출발한다. 그는 1989년에 펴낸 저서 (Age of Unreason)에서 미래 기업은 ‘토끼풀 조직’ 형태를 갖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토끼풀은 핸디가 태어난 아일랜드의 국화이기도 하다. 주목할 점은 토끼풀이 세 개의 잎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한 잎은 정규직 핵심 노동자다. 이들은 기업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고, 기업은 이들의 고용을 보장해준다. 또 다른 한 잎은 비정규직 노동자다. 이들은 기업에 큰 기여를 하지만, 대체될 수 있는 인력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의사결정 참여 정도와 고용 보장 정도는 약하다. 마지막 한 잎은 파트타임이나 임시직이나 계약제 외부 컨설턴트다. 핸디의 정의대로라면 이들이 바로 포트폴리오 노동자다.
핸디는 저서에서 과거 기업은 한 개의 잎, 즉 정규직 노동자로만 이루어졌지만, 미래 기업은 세 종류의 노동자 비중이 거의 비슷해질 정도로 노동이 분화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과거에 전혀 없던 프리랜서, 즉 ‘포트폴리오 노동자’라는 계층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포트폴리오 노동자들은 기업에서 일거리를 보장받지 못하지만, 대신 기업으로부터 속박받지도 않는다. 고용안정과 자유를 맞바꾼 셈이자 안정된 수입과 시간을 맞바꾼 것이기도 하다. 이런 조직 형태의 변화가 바로 사람들이 ‘포트폴리오 인생’을 설계하고 누릴 수 있는 배경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포트폴리오 노동자는 분명 기업의 외부인이지만, 기업에는 중요한 자원을 제공한다. 핵심 경영 의사결정은 기업 내부의 경영자와 정규직 임직원들이 내리지만,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지식의 상당 부분은 포트폴리오 노동자에게서 빌려올 수 있다. 미래 기업은 점점 더 많은 주요 기능을 포트폴리오 노동자들로부터 가져올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포트폴리오 인생의 모델을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찰스 핸디 자신이다. 그의 시간 포트폴리오는 다음과 같았다. 1년을 날짜별로 배분해 100일을 공부에 할애하고, 일에 150일을 투입했다. 돈을 벌기 위해 총 250일을 투자했기 때문에 10%인 25일을 자원봉사일로 넣었다. 또 나머지 90일은 집안일, 휴일, 여가 등으로 넣었다. 그리고 절대로 어기지 않았다. 일거리가 아무리 많더라도 절대로 일하는 시간을 늘려 수입을 키우지 않았다. 포트폴리오 인생의 이점인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진정한 자기 경영의 시대
사람들이 돈만큼 시간을 선호하기 시작하는 사회, 안정만큼이나 자유를 선호하는 사회, 거대 브랜드의 뒤에 숨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브랜드가 되고 싶어하는 사회, 그게 바로 선진 사회의 특징이다. 급한 성장보다는 성숙된 삶을 추구하고, 무조건적인 성공보다는 마음속의 행복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사회다. 이런 사회일수록, 시간의 중요성은 점점 커진다. 당연히 시간을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하고 행복해진다. 진정한 자기 경영의 시대가 온 것이다.
당신은 지난 한 해 365일 가운데 어느 정도를 일에 사용했는가? 또 며칠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가?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는 데는 며칠을 사용했는가? 지금이라도 시간 포트폴리오를 한번 점검해보시라. 그리고 은퇴 뒤 제2의 인생 준비를 위해서, 재충전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도 여러분의 시간을 배분하시라. 경영학이 자기계발에 대해 주는 교훈이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오랜 투자 격언이 있다. 그 바구니를 떨어뜨리면 모두 다 깨어져버리니 말이다. 당신의 소중한 시간에 대해, 달걀을 다룰 때 들이는 정성 정도는 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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