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추억과 꿈을 선물하는 즐거운 가족나들이 3선… 조금만 수고하면 특별한 휴일 만끽한다
온 가족이 어디서 봄날을 만끽하고 싶은가. 부모는 추억 속으로 달려가고 아이는 자연 속에서 꿈을 키울 수 있다면 맞춤한 가족 나들이가 될 것이다. 휴일을 짧게 지내려면 일단 부지런해야 한다. 심지어 길게는 몇주 전부터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할 일이다. 오전과 오후, 저녁으로 계획을 세워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보자. 그것이 부담스럽다면 오전과 오후도 좋고 오후와 저녁도 좋다. 두개의 프로그램도 힘겹게 느껴진다면 하나만 해도 후회 없는 휴일을 보낼 수 있다. -편집자 |
글 · 사진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오전 10시- 도심에서 생태체험
우리 아이 나비가 되었네
나비 따라 나선 아이 나비가 되고, 꽃이 좋아 풀숲에 서면 들꽃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에서나 나비나 들꽃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뜻한 햇볕에 깨어난 곤충들이 하늘을 서성거리고, 씨앗이나 뿌리로 땅속에서 겨울을 보낸 풀들이 새싹을 내밀고 있지만 좀처럼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니 우리는 어느새 그들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나라 토종의 아무르산 개구리 알이 작은 올챙이로 자라 습지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을 보려면 도심을 한참 벗어나야 한다. 생명이 깨어나는 현장으로 떠나보자.
개울가 버들강아지가 활짝 피어나면서 봄을 맞은 서울 강동구 길동자연생태공원(www.parks.seoul.kr/kildong)은 길동에서 하남시로 넘어가는 곳에 자리잡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생태공원인 여의도샛강생태공원(1997)에 이어 1999년 5월 개장한 길동자연생태공원은 다른 생태공원과 달리 인터넷으로만 사전 예약제를 실시한다. 아침 10시부터 30분 간격으로 15명씩 하루에 모두 2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다. 서울시 공원녹지관리사업소 김성호 팀장은 “생태공원은 시민을 위한 휴식공간이 아니다. 다양한 생물종들이 안전하게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생태공원의 의미를 살려 사전 예약제를 채택했다”고 말한다.
길동자연생태공원에 가려면 불편이 즐기겠다고 미리 다짐하는 게 좋다. 가족 나들이라 해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생물들의 서식 공간을 넓히려고 주차장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산책로 역시 생물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매우 좁다랗게 조성했다. 1시간가량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생명의 노래가 귓가에 맴돈다. 산책로에 들어서면 좁쌀을 튀겨놓은 것 같다는 조팝나무가 비탈면에서 백설보다 희고 눈부신 모습으로 탐방객을 맞이한다. 낙엽이 쌓였던 자리에는 키 작은 복수초·노루귀 등이 고운 때깔을 자랑하고 오리나무·개암나무에는 잠자던 곤충들이 깨어나 주위를 서성댄다. 아직은 서툴게 날갯짓하는 애호랑나비가 비행을 시도하고 딱따구리는 나무에 부리의 힘을 자랑하려고 한다.
생태교육 자원활동가인 서윤애(42·애칭 자작나무)씨는 보려고 하는 만큼만 보인다며 이렇게 말한다.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생태공원이 너무 썰렁하다고 한다. 하지만 생물이 주인이고 사람은 객이기에 최대한 꾸미지 않아야 한다. 한번에 모두 보려 하지 말고 노랑꽃을 모두 찾아보는 식으로 그때그때 주제를 정하거나 초지·저수지·습지 등 지구별로 살펴보는 게 좋다.” 길동자연생태공원에는 45명의 자원활동가들이 교육과 모니터링·교재제작 등 3개 팀에서 활동한다. 이들은 생태학교의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해설자로 활약하며 수시로 동식물의 변화를 현장 스케치해 교재로 펴내기도 한다. 가족 단위로 탐방할 때 공원에서 나눠주는 교재를 활용하면 다양한 동식물을 깊이 알 수 있다.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아이와 함께 생태공원을 찾은 주부 박혜선(42·서울 성동구 마장동)씨는 “교외로 나가면 아이들이 식물 이름을 물어보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주 다녀 가족의 생태 선생님 구실을 하고 싶다. 자원활동가들이 동행하며 설명하는 게 인상적이다”라고 말한다. 길동자연생태공원에는 평일임에도 봄을 느끼고 자연을 배우려는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오는 5월에는 엄마와 아이가 천연 재료를 이용해 실용품을 만드는 천연염색 교실이 열린다.
# 오후 2시- 흙놀이 공연 참여
생일잔치, 흙 케이크로 해볼까
요즘 아이들에겐 흙놀이라는 말 자체가 낯설 수도 있다. 말보다 마우스로 소통하는 방법을 먼저 배운 요즘 아이들 아닌가. 그들이 놀이터의 모래도 아닌 아스팔트에 묻힌 흙을 놀이 도구로 여기려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흙에 살리라”던 노랫말을 떠올리며 잃어버린 기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흙과의 자유로운 만남을 주선하는 곳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별관(광화문 갤러리)이다. 물체극(오브제극)이라는 독자적 장르를 개척한 작가 이영란씨가 디자인한 어린이를 위한 다섯 가지 흙놀이 는 놀이를 하는 전시공연이다. 작가는 넓은 공터에 흙과 모래, 벽돌, 널빤지 등으로 만들었던 그만의 공간 ‘본부’를 새롭게 단장했다. 어른이 된 아이에게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어른이 될 아이에게는 추억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흙을 만지며 나만의 작품을 만들고, 흙물로 그림을 그려 전시하고, 찰흙 바닥 위에서 까슬까슬한 촉감을 느끼며 이리저리 뛰노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바투’는 ‘두 물체 사이가 아주 가깝게’라는 뜻의 순우리말. 발과 흙의 교감을 위해 참가자들은 흙놀이터에 들어가기 전에 신발과 양말을 벗어야 한다. 흙놀이터는 손바닥 전시실과 발바닥 전시실 그리고 우물극 공연장으로 이뤄졌다. 두곳의 전시실에는 경기도 여주에서 가져온 30여t의 옹기토가 수북이 깔려 있고, 유년의 기억과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동굴과 물, 빛 등의 오래된 소도구가 가득하다. 손바닥 전시실에 들어가면 ‘이야기 천사’ ‘놀이 천사’들이 다양한 흙놀이를 통해 흙에 대한 감각을 깨운다. 바닥에서 한줌의 흙을 떼어내 만지면 이내 다양한 소조 작품이 되고, 흙물은 특유의 질감을 오롯이 드러낸 추상화를 탄생시킨다.
30여분 동안 흙으로 만들기, 그리기, 찍고 뽑기 등 5개의 놀이를 체험한 다음에는 발바닥 전시실로 이동한다. 발바닥 전시실은 희망놀이터와 우물극 공연장으로 이뤄졌다. 희망놀이터는 그야말로 흙에서 뛰노는 공간이다. 아이들은 흙으로 만든 개미굴을 빠져나오며 던지기, 흙밟기, 사방치기, 팔방놀이 등을 하면서 흙에 익숙해진다. 온 가족이 흙놀이터를 찾은 이원우(36·회사원)씨는 “아이들보다 내게 더 즐거운 시간이었다. 흙으로 이렇게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다음엔 놀이하기 좋은 흙이 있는 현장에 직접 가고 싶다”고 말한다.
우물극 공연장에 들어서면 작은 우주가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은 별빛 가득한 우물 속에서 바투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흙놀이터에서 이색적인 ‘바투 생일파티’를 열 수도 있다. 미리 신청해 흙으로 만든 케이크와 촛불로 색다른 잔치를 여는 것이다. 는 오는 6월6일까지 매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씩 10회 동안 펼쳐진다.
# 저녁 7시- 별자리 여행
아빠가 보여주는 ‘별 헤는 밤’
누군가는 별이 ‘스타’인 것은 ‘스’스로 ‘타’기 때문이라 했다. 밤하늘의 별들을 쫓으며 두 발이 허공을 떠도는 느낌에 빠졌던 추억을 간직한 부모는 도시에서 별 헤는 밤을 알지 못하는 아이를 안타깝게 여긴다. 우주의 별이 생명의 고향임을 알면서도 고향을 떠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 우리 아이가 밤하늘의 별을 고향으로 여길 수는 없을까.
나만의 별을 찾아가는 별자리 여행은 대기가 맑은 높은 산이 제격이다.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있지만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5천~6천개. 우리가 볼 수 있는 별 가운데 가장 밝은 큰개자리의 시리우스는 태양계에서 8.6광년 저편에 있다. 겨울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오리온자리의 베텔게우스는 500광년, 리겔은 700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별들을 맨눈으로 보기는 힘들다. 더구나 도심의 불야성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지구를 향해 달려온 별과의 만남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별자리 여행 출발지로 국립 천문대를 떠올렸다가는 큰코다친다. 전문연구기관인 소백산·보현산 천문대는 일반인에게 밤을 보여주지 않는다. 현재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천문대는 10여 군데. 경기도 일산시 증산마을에 있는 연세대학교 어린이 천문대(www.astrocamp.net)는 주말에 ‘아빠와 함께 하는 천체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무게 3t에 지름 61cm짜리 반사망원경을 보유해 연구자들이 관측용 데이터를 얻던 천문대가 어린이 천문대로 변신한 것은 지난해 11월. 도심에서 비켜나 있어도 정문 앞까지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 불빛에 반사망원경이 본래의 기능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 ‘서글픈 역사’를 간직한 어린이 천문대에 어둠이 내리면 가족 단위의 일행이 학습관을 채운다. 항성과 행성을 구별하지 못하던 일행은 30여분에 걸친 김승현 어린이 천문대장의 강의를 들으며 별자리 여행의 기본을 다진다. 일행은 옥상에 설치된 10여대의 120mm 굴절 망원경 곁에 가족별로 자리를 잡는다. 겨울철 별자리가 서쪽으로 저물어갈 즈음 동쪽 하늘에서 나타난 사자자리를 앞세운 봄철 밤하늘에 다가서려는 것이다. 4등성 이상의 별들이 떠돌아야 할 밤하늘은 달빛에 주눅들어 있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굴절 망원경을 조작하는 것조차 힘겹지만 머지않아 토성·목성·수성 등 5개 행성의 ‘우주쇼’의 여운을 가슴에 간직할 수 있다.
우주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면 실내의 반사망원경을 통해 행성을 관측한다. 반사망원경은 열린 천장 사이로 신비로운 토성의 실체를 보여준다. 얼음조작과 먼지로 이뤄진 둥근 고리는 말로만 듣던 그대로의 모습이다. 31개에 이르는 토성의 위성 가운데 몇개는 눈으로 볼 수 있다. 별자리 여행을 마친 다음에는 우주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스타리 나이트’(Starry Night)를 보며 일순간에 수만년의 별자리 여행으로 프로그램을 마친다.
[도심의 자연생태공원] |
* 월드컵공원(02-300-5605):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에 조성된 대규모 공원으로 5만8천여평의 하늘공원에서 생태관찰을 비롯해 자연놀이, 세밀화 그리기 등을 할 수 있다. 억새밭 사이에서 새나 곤충을 관찰한다.
* 여의도샛강생태공원(02-3780-0717): 국내 최초의 생태공원. 5만5천여평의 공간에 풀밭·숲·연못을 만들었다. 곤충과 물고기, 새들이 모여 자연스레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습지성 식물도 관찰할 수 있다.
* 선유도공원(02-2631-9368): 2002년 4월 공원으로 조성·개방됐다. 정수장 건축 시설물을 재활용해 녹색 기둥의 정원, 시간의 정원, 물을 주제로 한 수질정화원, 수생식물원 등을 만들었다. 수생식물이 많이 있다.
* 우면산자연생태공원(02-570-6395): 오는 5월 개장을 앞두고 있다. 9만여평을 이용해 도시림과 계곡을 주제로 들어서는 산림생태공원이다. 참나무숲과 나비관찰원 등을 둘러보는 1320m의 관찰로를 조성했다.
[아이와 함께 문화체험] |
* 어린이 연극 페스티벌(02-766-8679): 오는 6월 말까지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열린다. 등을 볼 수 있다. 주말에는 탈 만들기, 한지 공예 등의 행사를 연다.
* 삼청각 어린이 공연축제(02-3676-3456): 전통문화 공간으로 자리잡은 삼청각에서 전통놀이와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잔디밭에서 고리던지기·투호 등을 즐기고 ‘그림연극’과 인형극 을 봐도 좋다.
* 극단 사다리의 어린이 공연(02-382-5477): 환상적인 무대의 뮤지컬 드라마 과 전쟁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보여주는 반전 연극 을 세종문화회관 등지에서 공연한다.
* 가족 뮤지컬 매직키드 마수리(02-545-1211): 어린이 문화콘텐츠의 새로운 블루칩으로 불리는 작품으로 5월1일부터 9일까지 어린이대공원 돔 아트홀에서 공연한다. 상상 속의 마법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천문대에서 별자리 여행] |
* 별마로천문대(033-374-7460):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국내 최대 규모의 시민천문대다. 800m의 산 정상에 자리잡아 관측 여건이 좋은 곳으로 꼽힌다. 강원도 영월군 영흥리 봉래산에 있다.
* 여주 세종천문대(031-886-2200): 26인치 ‘불곡천체망원경’ 등 최첨단 천체관측 시설과 6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숙박시설 등을 갖춘 종합 천문교육 시설이다.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의 여주청소년수련원에 있다.
* 대전시민천문대(043-863-8763): 대전광역시에서 건립해 (주)천문우주기획에서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시민천문대다. 매주 토요일 저녁 8시부터 ‘별★음악회’를 마련하고 있다. 대전시 유성구 신성동에 있다.
* 김해 시민천문대(055-863-8763): 2002년 2월에 개관한 영남 지역에서 유일한 시민천문대다. 지름 8m의 둥근 반구형 스크린에 밤하늘의 별들을 재현해주는 천체투영기가 비치돼 있다. 경남 김해시 어방동 분성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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